#142화

적들이 스켈레톤으로 다시 태어난 탓에 나는 포위된 형태가 되었다.

평범한 적들에게 포위당한 형태도 안 좋지만, 죽지 않은 언데드를 상대로 포위는 더욱 안 좋았다.

그래서 나는 포위를 풀기 위해 한 방향을 뚫기로 했다.

“하여튼 스켈레톤은 또 오랜만이군.”

부활의 악마를 상대했을 때가 떠올랐다.

리치가 된 포트와 켈튼이 나를 뒤쫓아왔지만, 나는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포위를 벗어났다.

‘저기가 좋겠군.’

양옆에 높게 절벽이 위치한 협곡이었다.

포위를 당하지 않기 위해 동굴도 생각해보았지만, 상대에 마법사가 있는 이상 머리 위는 트여있는 게 좋았다.

그렇기에 선택한 협곡이었다.

협곡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뒤돌았다.

수많은 스켈레톤들이 엉겨붙으며 내게 다가왔다.

그들의 뒤엔 포트와 켈튼도 있었다.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

조금은 진정되었지만, 내 분노는 사그들지 않았다.

저들은 하르의 원수였다.

하르에게 창을 던진 것은 켈튼이었다.

하지만 켈튼만 처리한다고 내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적을 섬멸해야만 내 분노도 약간은 잠잠해질 것이다.

“우선 한 방.”

몰려오는 스켈레톤을 향해 퇴마검을 휘둘렀다.

퇴마검에서 쏟아진 기운이 스켈레톤에 부딪히는 순간 스켈레톤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단 한 번의 공격에 많은 스켈레톤이 사라졌음에도 여전히 수는 많았다.

“···정말 옛 생각이 떠오르는군.”

포트가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포트의 주문이 끝나면 계속해서 스켈레톤이 추가되었다.

내게로 끝없이 스켈레톤이 쏟아졌다.

“언제까지 뒤에서 숨어있을 생각이냐!”

포트와 켈튼은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스켈레톤들만이 내게로 달려들었다.

아마 최대한 내 힘을 소비시킬 생각이겠지.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일이었다.

‘스켈레톤들에 처치하는데 드는 기운은 얼마되지 않는다.’

기운을 쓴 만큼 회복되었다.

이렇게 대치하는 것은 저들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다.

오히려 스켈레톤만 허비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스켈레톤은 매개체가 필요하지.’

한마디로 인간의 시체가 있어야만 스켈레톤을 생성할 수 있었다.

‘애당초 뼈부터 새롭게 만드는 게 아니라면 말이지.’

전에 던전에서 보았던 리치와 포트는 스켈레톤을 만드는 게 달랐다.

그렇기에 포트는 계속해서 스켈레톤을 만들어낼 수는 없을 것이었다.

“언제까지 이 짓만 할꺼냐!”

내가 파고드는 것도 생각해보았지만, 그것이 포트와 켈튼이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계속해서 포트와 켈튼을 살폈다.

그리고 순간 포트의 손이 움직였다.

“뼈창···?”

몇 구의 스켈레톤이 하나로 합쳐지더니 창이 되었다.

포트는 그 창을 켈튼에게 건넸다.

그리고 켈튼은 내게 창을 던졌다.

“어림도 없다!”

나는 퇴마검으로 뼈창을 옆으로 쳐냈다.

옆으로 튕겨나간 뼈창은 여타 다른 마법들과 다르게 사라지지 않았다.

‘뼈를 매개체로 삼아서 그런가.’

그러던 중에 뼈창의 이상이 보였다.

뼈창의 모습이 바뀌더니 스켈레톤으로 변한 것이었다.

아마 내가 방심을 하는 것을 노린 거겠지.

하지만 난 방심하지 않았다.

뼈창에서 태어난 스켈레톤의 두개골을 단번에 부쉈다.

“언제까지 이렇게 재미없는 짓만 할 거냐! 덤빌 생각이 없는 거냐!”

소모전의 가장 큰 단점은 아무래도 긴 시간이 끌린다는 것이었다.

‘설마···?’

눈앞에 원수가 있다는 이유로 분노하고 있던 나는 가장 중요한 것을 잊었다.

이렇게 시간을 계속 끌리면 벨레스가 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제야 알겠군.”

포트와 켈튼은 내가 먼저 움직이길 기다리는 게 아니었다.

단순히 내가 경계를 하며 최대한 시간을 지체시키는 것이었다.

상대의 목적을 알아차린 이상 그 목적대로 내가 움직여줄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

나는 포트와 켈튼에게 달려들었다.

자꾸 앞에서 들러붙는 스켈레톤들을 베어내며 접근을 계속했다.

내가 점점 가까워오자 포트가 켈튼을 바라보며 외쳤다.

“켈튼!”

켈튼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 발자국 앞으로 나왔다.

그와 동시에 포트는 주문을 외웠다.

포트의 주문이 끝나고, 죽음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기운이 포트에게서 켈튼에게로 옮겨졌다.

“내, 내가 상대해주마!”

창을 든 켈튼은 매우 위태로워 보였다.

잘못 건드리면 펑하고 터질 것만 같이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대로 켈튼에게 검을 휘둘렀다.

켈튼 또한 내게 창을 휘두르려 했지만, 퇴마검의 실을 이용해 단숨에 움직임을 묶었다.

그리고 단번에 켈튼의 목을 베어냈다.

“목이 베이면 죽겠지.”

켈튼의 목이 두동강나는 것을 확인까지 마친 나는 포트에게로 달렸다.

당황하고 있어야할 포트는 웃기 시작했다.

그것도 매우 기쁜 모습으로 말이다.

“크하하하, 너무 쉽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나!”

“···뭐가 쉽다는거지?”

“그야, 켈튼이 너무 쉽게 죽은 것이지. 이봐, 스켈레톤의 매개체가 뭔지 아나?”

인간의 시체로 알고 있다.

그리고 곧바로 깨달았다.

포트에게 켈튼이 살아있는 것보다 죽은게 더 좋을 것이다.

강한 자의 시체를, 그것도 죽은 지 얼마되지 않은 시체를 스켈레톤의 매개체로 삼을 수 있게 되니 말이다.

하지만.

“강자의 시체를 이용해 스켈레톤은 만들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강자의 시체로 강자의 힘을 이끌어내면 영웅의 시체를 손에 넣은 리치를 이 세상에서 당해낼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가 주문을 외웠던 것을 잊기라도 한 것이냐!”

그러고보니 포트가 켈튼에게서 주문을 외웠었다.

하지만 별다른 변화는 느껴지지 않았기에 무시했다.

뒤에서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다.

분명 켈튼의 시체가 있을 곳이었다.

“시체가 되어버리기 전에 마법을 걸면 강자의 시체를 온전히 사용할 수 있지.”

“그런가···.”

“그 어떤 리치도 소드마스터의 시체로 스켈레톤을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보아라, 저게 바로!”

나는 고개를 돌려 켈튼의 시체를 확인했다.

분명 내가 목을 베어냈다.

그 영향 탓인지 켈튼의 몸이 켈튼의 머리를 옆구리에 안고 있었다.

“소드마스터의 시체를 부활시킨 듀라한이라는 것이다.”

현시대엔 존재하지 않는 사령들을 이끄는 기사, 듀라한이었다.

듀라한이 된 켈튼이 순식간에 포트의 앞으로 움직였다.

“내가 엄호할테니, 저놈은 네가 상대해라. 켈튼!”

켈튼은 내 생각과 전혀 다른 행동을 취했다.

켈튼이 허공에 손을 뻗자 창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창을 포트의 두개골에 박아넣는 것이었다.

“커헉! 켈튼,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인가!”

마치 창에 포트가 흡수되는 것으로 보였다.

불길한 느낌에 나는 내 팔에 있는 팔찌에 최대한의 힘을 불어넣었다.

그와 동시에 전신갑옷이 내 몸을 감쌌다.

“후우··· 기분이 좋군···.”

포트가 창에 흡수되자 주변에 있던 스켈레톤들도 힘없이 널부러졌다.

켈튼의 모습이 바뀌었다.

흑빛이 감도는 갑옷이 켈튼을 감싸고 있었다.

게다가 목이 분리되었던 켈튼이었다.

“목은··· 생기지 않았지만··· 움직임이 꽤나 자유로워진 거 같군.”

켈튼의 머리가 켈튼의 몸 위에 떠있었다.

목이 없는 것을 제외한다면 갑옷을 착용한 켈튼이었다.

하지만 기존에 켈튼과 가장 다른 점이 있다면 하나였다.

“사기를 통해서도 반신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것인가.”

이론적으로는 사기와 다른 기운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반신의 경지를 이룰 수 있다.

눈앞에 켈튼이 그런 행동으로 반신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었다.

쉽게 보지 못하는 상대로 켈튼이 변모한 것이었다.

“반신의 경지에 오르면서 종족마저 바뀌다니··· 듀라한 이랬나?”

켈튼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듀라한? 그보다 더 뛰어난 존재가 되었지. 예를 들자면··· 데스나이트? 뭐 그런게 된 거 같군.”

“데스나이트···.”

듀라한과 데스나이트 둘다 사령을 이끄는 기사다.

다른 점은 듀라한은 기사라는 점이고, 데스나이트는 기사들의 왕이 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었다.

먼저 움직인 것은 켈튼이었다.

사기로 반신의 경지를 이룩한 켈튼이었다.

지닌 힘에 차이는 있겠지만, 충분히 나와 대적이 가능할 정도가 되었다.

켈튼이 내게 창을 휘둘렀고, 나는 그 창을 쳐냈다.

한 차례의 부딪힘이 끝난 후에 켈튼이 멍하니 자신의 창을 보며 말했다.

“이게··· 네놈과 그분이 이룬 경지···.”

“정말로 반신의 경지에 올랐구나···.”

나 또한 곧바로 알아차렸다.

켈튼은 반신의 경지에 오른게 확실했다.

벨레스를 제외하면 전력을 행할 상대가 없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켈튼은 전력을 다해야만 승리할 수 있는 상대로 변해있었다.

‘더 이상 시간 끌리는 것도 싫다.’

나는 최대한으로 기운을 끌어올렸다.

괜히 시간을 끌었다가는 벨레스가 오거나, 켈튼이 조금이라도 반신의 경지에 익숙해지는 일이 생길 것이 분명했다.

전자든 후자든는 내게는 좋지않은 일이었다.

“적응할 시간도 주지 않다니. 용서없구나.”

“내가 상대해야할 반신의 경지가 둘이 되는 것보단 낫지.”

“맞는 말이다.”

켈튼도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기운을 끌어올렸다.

벨레스와는 비슷하지만 다른 기운이었다.

불쾌함의 끝판왕이었다.

벨레스의 기운과 비교하자마 벨레스의 기운은 오히려 산뜻한 기운일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사기를 통해 반신의 경지를 이룩한 켈튼은 기분 나쁜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단 한 번도 이 정도 힘을 내본 적은 없으니 어찌 보면 같지.”

“···재밌는 소리를 하는군!”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기운이 퇴마검에 담겼다.

성역 안에서 만난 드워프들이 퇴마검을 강화시켜주지 않았다면 부서졌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힘겹게, 아주 천천히 퇴마검을 휘둘렀다.

남들이 보았을 때는 아주 느린 공격이었을테지.

하지만 그 안에 담긴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끄으으윽···.”

최대한 고통을 참으며 검을 휘둘렀다.

내 몸 안의 마나가 조금이라도 남아있지 않게 최대한의 힘을 실었다.

만약 이 힘을 허공에 보낸다면 하늘에 떠있는 태양이 부서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켈튼의 상황도 나와 마찬가지로 보였다.

창에 담긴 힘이 나와 엇비슷했다.

방금 전 반신의 경지에 오른 자가 낼 수 있는 기운은 단연코 아니었다.

“죽어라!”

“네놈이야말로!”

온 힘을 쏟아낸 내 기운이 켈튼의 창에서 나온 기운과 부딪혔다.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는 두 기운이었다.

그리고 한순간이었다.

내 기운이 켈튼의 기운을 집어삼켰고는 그대로 켈튼에게 쏟아졌다.

신성한 기운마저 갖춘 내 기운은 켈튼과 닿는 동시에 켈튼을 서서히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켈튼은 자신의 패배에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인지 개운해보이는 표정이었다.

“조금 아쉽군.”

“아쉽다고?”

“조금만이라도 더 싸울 기회가 주어졌다면 좋았을텐데. 좋은 싸움이었다.”

나는 한순간 어이가 없었다.

켈튼은 스스로를 명예로운 죽음으로 포장하는 듯했다.

“웃기지 마. 네놈은 동족을 배신했고, 내 친구를 죽였어. 좋은 싸움? 아주 더러운 싸움이었다.”

절대로 좋은 싸움이 될 수 없었다.

제아무리 비슷한 경지에 비슷한 힘을 가진 자들끼리 싸움이라도 한쪽은 명예도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켈튼이 무어라 말할려고 했지만, 이미 켈튼의 입은 사라져있었다.

나는 켈튼을 향해 침을 뱉으며 말했다.

“평생을 지옥에서 살길 바란다.”

* * *

싸움을 마친 나는 차갑게 변해버린 하르를 업었다.

그리고 에피니아가 있을 트리오 마을을 향했다.

‘미안하다, 하르야.’

하르를 처음 만났던 조르던 자유도시에 묻어줄려했다.

그러던 중에 한 존재가 떠올랐다.

‘하르에게도 짝이 있었지···.’

그렇다는 것은 내가 하르를 묻어주는 것보다 하르의 짝에게 건네주는 것이 옳은 행동일 것이다.

어쨌건 하르에겐 짝, 바로 가족이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하르는 무리를 이끌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은빛늑대는 특이하게도 무리를 이끄는 대장이 죽을 경우 인간과 비슷하게 장례를 치루는 것으로 알고 있다.

“미안하다. 나중에 다시 만나자, 하르야.”

나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하르가 이끌고 있던 무리는 우리를 따라왔으니 트리오 마을의 인근에 하르의 무리도 분명 있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