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나는 에피니아에게 차갑게 식어버린 하르를 보여주기 싫었다.
그래서 곧바로 트리오 마을 인근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하르의 무리로 다가갔다.
내가 무리에 도착하기 전에 하르의 냄새라도 맡은 것인지 먼저 무리가 다가왔다.
“너는···.”
하르의 짝인 뿔은빛늑대가 내게로 다가왔다.
나는 하르의 짝 앞에 하르를 내려다두었다.
“정말로 미안하다···.”
내가 좀 더 나은 판단을 했다면 하르는 이렇게 죽어버리진 않았을 것이었다.
내 잘못은 아니었지만, 내 잘못처럼 느껴졌다.
“하르를 잘 부탁한다.”
맨처음엔 하르의 짝이 하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한 마리씩 하르에게 접근했다.
그 모습은 내게 왠지 모를 여운을 안겨주었다.
‘하르는 좋은 대장이었나보구나.’
차갑게 식어버린 하르에 대한 무리의 감정이 고스란히 내게 다가왔다.
하르의 짝은 나를 원망하는 듯한 감정과 더불어 오묘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이 자리에 있는 게 거북했기에 자리를 떠났다.
* * *
나는 트리오 마을에 도착한 뒤 곧바로 후퇴를 명했다.
치포르 황자나 에피니아는 내게 후퇴의 이유를 묻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했다.
‘둘이 갔었는데 혼자 돌아왔으니까···.’
게다가 내 행색은 엉망진창이었다.
내 말에 따라 전부 후퇴를 감행했다.
언제 올지 모르는 벨레스에게 도망치기 위해서였다.
‘지금 싸우면 전혀 승산이 없어.’
어느정도 회복된 나지만, 이 상태로 벨레스와 싸우는 것은 자살하는 것과 다를게 없는 행동이었다.
그렇기에 후퇴를 감행한 것이었다.
가지고 있는 짐을 모조리 버리면서까지 후퇴했다.
* * *
수하르와 적들이 교전했던 협곡에 도착한 벨레스는 눈앞에 벌어진 참상에 짜증부터 났다.
“쓸모없는 것들.”
자세한 내막을 알 수는 없었지만, 한 가지 사실은 알 수 있었다.
“역시 그놈한테 패배했구나.”
사실은 벨레스는 자신의 수하들이 수하르를 이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약간의 기대는 했었다.
그만큼 흑마법사가 연구하고 있던 사기는 벨레스에게도 흥미로운 기운이었기 때문이다.
“뭐, 상관없겠지.”
협곡에 남은 전투 흔적으로 보아 분명 수하르도 상처를 입긴 하였을 거라 벨레스는 짐작했다.
혹여나 상처를 입지 않았더라도 지금의 수하르는 자신을 이기지 못할 거라 생각한 벨레스였다.
“어서 쫓아가봐야겠군.”
벨레스는 자신이 한 예상과 다르게 조금 늦었지만, 수하르는 아직 멀리까진 도망치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렇기에 벨레스는 서둘렀다.
“지금 처리해놔야지!”
벨레스는 수하르가 후퇴하고 있는 미케네르 제국 방향으로 날아갔다.
* * *
나는 멈추지 않고 후퇴했다.
휴식이 필요한 시점에도 멈추지 않았다.
벨레스가 온다면 나를 포함한 모두가 죽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잠깐만···.’
후퇴하는 와중에도 힘을 회복하고 있던 나였다.
게다가 켈튼과의 전투를 통해 나는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었다.
‘온 힘을 다한 게 확실히 도움이 됐지.’
한번 비우는 것으로 더 성장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한 가지 능력이 생겼다.
나도 모르게 생각을 입밖으로 내뱉었다.
“가능하려나···?”
내 옆에서 말을 타고 달리던 에피니아가 물었다.
“뭐가?”
“벨레스에게서 도망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이렇게 도망을 치고 있더라도 얼마가지 않아서 분명 벨레스에게 따라잡힐 것이다.
내 예상대로 벨레스는 나를 노리고 쫓아오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방법이 있어?”
“응.”
아직까진 힘이 모이지 않았기에 내가 벨레스를 상대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도망치고 있는 것이었다.
“내 생각대로 벨레스가 움직여줘야할텐데.”
나는 곧바로 벨레스에게 성공적으로 도망치기 위한 방법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도박수에 가까웠지만, 시도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
* * *
수하르의 기척을 쫓던 벨레스는 잠시 자리에서 멈추었다.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이지?”
수하르가 이끄는 군대를 쫓던 벨레스였다.
하지만 거기서 가장 기운이 강한 것은 수하르였기에 수하르의 기운을 쫓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느껴지는 기운은 이상했다.
“혼자서 도망치기로 한 것인가?”
수하르의 기운이 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뭔가 속셈이라도 있는 것인가?”
벨레스는 혹시 도망치고 있는 게 미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더 기운을 감지하는 데에 힘을 쏟았다.
그리고 알아차렸다.
“정말로 혼자서 도망치는 중인 것 같군.”
벨레스가 느끼기론 그저 혼자서 도망치는 수하르의 기운이었다.
“멍청하군. 네놈과 군대 둘을 고르자면 난 당연히 네놈을 쫓지.”
벨레스는 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수하르의 기운을 쫓기 시작했다.
* * *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야 벨레스는 수하르의 기운에 다다를 수 있었다.
“역시 맞았군.”
벨레스의 육안으로 확인된 수하르는 저번과 같은 전신갑옷을 착용하고 있었다.
“확실히 네놈의 선택은 맞았다.”
군대와 함께 움직이는 것보다 수하르 혼자 움직이는 게 더 빨랐다.
만약 벨레스가 군대를 쫓았다면 이것보다 훨씬 빠르게 따라잡았을 것이었다.
“이만 멈추거라!”
벨레스가 수하르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수하르는 검을 빼들고는 공격을 최대한 막아냈다.
하지만 그 탓에 벨레스의 접근을 막을 수 없게 되었다.
“우선 멈춰서 이야기하는 게 좋겠지.”
수하르의 코앞에 나타난 벨레스가 주먹을 휘둘렀다.
벨레스의 주먹에 맞은 수하르가 날라가며 여러 그루의 나무를 부쉈다.
그리고 멈춘 수하르는 힘없이 쓰러져있었다.
그런 수하르에게 벨레스가 다가갔다.
“고작 이 정도 공격에 정신을 잃다니 많이 약해졌나보구나.”
벨레스는 조소를 지으며 쓰러져있는 수하르에게 다가갔다.
그러다 문득 벨레스는 수하르의 이상한 점을 눈치채고 말았다.
“네놈··· 검이 이상하군···.”
벨레스가 지금까지 봐온 수하르의 검이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검에 불과한 검이었다.
벨레스는 왠지 모를 불쾌감이 들었다.
“설마···!”
벨레스는 다급하게 수하르에게 다가갔다.
수하르의 앞까지 접근한 벨레스는 다급히 수하르의 투구를 벗겼다.
그리고 드러난 얼굴을 확인한 벨레스는 허무감을 감출 수 없게 되었다.
“내가 속았단 말인가!”
수하르가 있어야할 갑옷의 안엔 아무것도 없었다.
갑옷이 살아있는 것처럼 혼자서 움직인 것이었다.
“크하하하하, 정말 재밌군. 내가 속다니.”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알아차린 벨레스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이내 조용해진 벨레스는 수하르로 착각했던 전신갑옷을 계속해서 공격했다.
벨레스의 공격에 갑옷은 찌그러지며 이내 다시 팔찌로 돌아갔다.
팔찌로 돌아갔음에도 벨레스는 멈추지 않았다.
이윽고 팔찌는 산산조각이 나서 부서지고 말았다.
“후우··· 다시 돌아가야겠군.”
지금부터 수하르를 쫓는 것은 무리라고 벨레스는 판단했다.
그렇기에 차라리 카스테오 제국의 황실로 돌아가 수하르를 기다리기로 했다.
“날 속인 대가는 톡톡히 치르게 해주마.”
벨레스의 등에서 악마의 날개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하늘로 솟아오른 벨레스는 다시 카스테오 제국의 황실로 향했다.
만전을 기한 채 수하르와의 싸움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 * *
갑옷과의 연결이 끊어졌다는 것을 알아차린 나는 쾌재를 불렀다.
“됐어, 도망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떠올린 방법은 팔찌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내 의지를 담으면 무생물이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마치 골렘처럼 말이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팔찌를 이용해 전신갑옷을 불러내어 골렘처럼 부리는 것이었다.
“도박수에 가까웠지만 성공했지.”
오면서 회복한 모든 기운을 전신갑옷에 쏟아부었다.
이로써 벨레스는 분명 모든 기운을 전신갑옷에 쏟은 탓에 기운이 남아있지 않은 나보다 전신갑옷이 나라고 착각할 것이 분명했다.
만약 전신갑옷이 아닌 내가 있는 군대를 따라왔다면, 나는 저항도 못하고 죽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벨레스가 전신갑옷을 따라갈 줄 알았지.”
벨레스가 혹시라도 군대를 궤멸시키고 전신갑옷을 쫓을 것을 우려해 전신갑옷이 도망에 모든 힘을 쏟게 만들었다.
그렇게 두 갈림길에서 당연 벨레스는 내 기운이 강하게 느껴지는 전신갑옷을 선택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우선 거리도 벌어졌으니까.”
이제는 휴식을 취하며 내 힘을 완전히 회복할 시간을 벌 수 있게 되었다.
안도감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정말로 다행이야.”
내 옆에 있던 에피니아가 내 말에 답해주었다.
“그러게 말이야.”
이제 내게 남은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힘을 회복한 후에 벨레스와 싸운다.’
길다면 길다고 말할 수 있는 벨레스와의 싸움을 드디어 끝낼 기회가 다가오는 것이었다.
* * *
수하르 일행은 안전을 위해 카스테오 제국에서 완전히 빠져나와 휴식을 취했다.
수하르 일행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 해도 제국간의 전쟁은 멈추지 않았다.
미케네르 제국의 황실로 복귀한 황제가 말했다.
“정말 얼마 남지 않았군.”
수하르가 나타나고 전황은 미케네르 제국 측으로 기울었다.
현재 수하르가 진군을 멈추고, 휴식을 취하고 있더라도 전황은 여전히 유리했다.
“벨레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게 걱정이군.”
벌써 미케네르 제국이 카스테오 제국 황실 코앞까지 다다랐다.
분명 벨레스는 카스테오 제국의 황실에 있을 거라 황제는 생각했다.
그렇기에 수하르의 복귀를 기다리며 진군을 늦추었다.
벨레스를 상대할 수 있는 것은 수하르뿐이고, 괜히 수하르도 없이 벨레스를 노렸다가는 큰 피해만 입게 되니 말이다.
“하루라도 빨리 회복되면 좋겠군.”
이제 두 제국 간의 전쟁은 수하르와 벨레스의 전투만을 남긴 상황이 되었다.
* * *
거목의 아래에서 나는 명상을 취했다.
자연력을 받아들이며 최대한 힘을 회복하는 데에 힘을 쓰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에 감았던 두 눈이 서서히 떠지면서 한 생각이 내 머릿속에 스쳤다.
‘회복이 끝났다!’
나는 곧바로 몸을 움직여보았다.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항상 착용했던 팔찌가 없어 팔목이 허전한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사실 이제는 갑옷은 필요 없는 경지기도 하지.”
전보다 살짝 더 경지가 올랐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벨레스보다 약간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방심하진 않을 것이다.
‘내가 성장한 만큼 벨레스도 성장했을 가능성이 있으니까.’
그나저나 이제 완전히 회복된 이상 벨레스와의 전투를 준비해야만 했다.
나는 막사에 있을 치포르 황자를 찾아갔다.
“치포르 황자님, 지금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건가요!”
“이제 전쟁이 다 끝나가고 있습니다. 남은 곳은 카스테오 제국의 황실뿐입니다.”
“···역시 그렇군요.”
그렇다는 것은 정말로 벨레스와 나의 전투만이 남은 것이었다.
“미케네르 제국은 아직 카스테오 제국의 황실을 공격하지 않고 있습니다. 수하르 장군님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출발하죠.”
힘도 회복했고, 경지도 상승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모두 했다.
이제 남은건 벨레스와의 전투와 약간의 운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기다려라, 벨레스. 아니, 벨페레스.’
뒤에 숨어 대륙에 이상한 짓을 하려던 악마 녀석에게 본때를 보여줄 때가 찾아왔다.
솔직히 말하면 벨레스은 내게 원수와 다름없는 인물이었다.
‘회귀 전의 복수를 드디어 마칠 수 있게 되었구나.’
벨레스에게 피해를 본 많은 이들이 존재하겠지만, 그 존재들 중엔 칼데르트가도 있었다.
드디어 복수할 기회가 생겼다.
그리고 기회였다.
‘벨레스를 처리한 이후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말 것이야!’
전부터 그려왔던 내 이상적인 인생계획을 실천할 때가 다가온 것이었다.
다른 말로는 드디어 쉴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