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거대한 문, 황제의 알현실로 보이는 장소였다.
나는 그 장소에서 서 있었다.
“이 문 너머에 벨레스가 있는 건 확실하군.”
문 너머로 풍겨오는 기운은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벨레스의 기운이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벨레스의 기운에 손에 땀이 절로 났다.
하지만 두렵지가 않았다.
‘여신의 가호가 붙어있으니까··· 게다가!’
현재 내 목에 걸린 목걸이는 하프드래곤족의 승리를 기원하는 목걸이었다.
전혀 질 요소 따윈 없었다.
나는 거대한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며 기분 나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드디어 왔구나.”
벨레스가 황좌에서 거만하게 앉아 나를 내려다보았다.
“벨레스··· 아니, 이젠 벨페레스라고 하는 게 맞겠군.”
황좌에 앉아있는 벨레스는 인간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악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실 네놈이 이렇게 나를 쓰러트리로 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 역시 네놈처럼 강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역시 그때 죽였어야 했어.”
나는 서서히 퇴마검에 기운을 담기 시작했다.
“솔직히 우리 둘 사이에서 할 말은 없어야 정상이 아닌가.”
“그건··· 그렇군···.”
벨레스도 서서히 황좌에서 일어났다.
먼저 움직인 것은 나였다.
벨레스를 향해 퇴마검을 휘둘렀다.
벨레스는 높게 날아올라 내가 휘두른 검을 피해냈다.
“역시··· 그 검을 들고 있는 걸로 보아 네놈은 진짜구나.”
“···그때 속은 게 너무나도 분한 건가?”
벨레스는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말해서 화가 많이 났지. 하지만 이젠 아니다. 괜한 화로 방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거 참 아쉬운 일이군.”
날고 있는 벨레스를 향해 내가 손을 뻣었다.
염동력으로 벨레스를 최대한 끌어내렸다.
“오호··· 이 힘도 많이 강해졌구나···.”
“언제까지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 말할 수 있을까?”
어느 정도 끌어내려진 벨레스를 향해 내가 검을 휘둘렀다.
벨레스은 손으로 내가 휘두른 검을 막아냈다.
벨레스가 외쳤다.
“내가 이기나 네놈이 이기나 한번 두고 보자고.”
“내가 할 말이다.”
그리고 벨레스와 나는 쉬지 않고 공격을 오갔다.
* * *
벌써 수백 차례의 합이 오갔다.
벨레스와 나의 차이는 없었다.
근소한 차이마저 없었다.
그야말로 같은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인간 따위가 이 정도로 강해지다니. 여러모로 놀랍구나.”
“흥, 악마 따위도 마찬가지.”
벨레스 말고, 다른 악마도 처리한 적이 있는 나로서도 이렇게 강한 악마는 놀라웠다.
다른 악마와 비교해보아도 벨레스가 이상한 것이겠지.
슬슬 결판을 낼 때가 찾아왔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퇴마검에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을 실었다.
내 근육에도 힘을 실었다.
벨레스 또한 마지막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벨레스가 말했다.
“이번 것으로 끝나겠구나.”
“기필코 너에게만큼은 지지 않을 거다.”
“흥, 네놈을 죽이고, 훗날 너와 관련된 모든 것을 없애주마.”
“절대로 그럴 일은 없다.”
미친 듯이 기운이 날뛰었다.
나는 힘겹게 검을 휘둘렀다.
벨레스도 내게로 주먹을 휘둘렀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여파가 내게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나는 최대한 참으며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한 치 앞도 모르겠군.’
너무나도 같은 힘끼리 부딪힌 탓에 무승부만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나는 승리한 뒤에 에피니아와 함께 여행을 떠날 것이다.
서로가 부딪히던 찰나에 퇴마검에서 있을 수 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 무기도 한계에 다다랐나보구나!”
퇴마검에 금이 가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퇴마검은 부서지며, 벨레스의 공격이 나를 덥칠 것이 분명했다.
나는 다급하게 벨레스의 공격을 흘리는 데에 힘을 쏟았다.
그때 퇴마검이 부서졌다.
다행히도 벨레스의 공격을 어느 정도 피해낼 수 있었지만, 배를 스친 공격은 나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
“크하하하, 끝이구나!”
벨레스가 다른 손을 이용해 나를 공격하려 때였다.
나는 퇴마검의 부서진 파편과 그 안에 있던 실을 염동력으로 잡아챘다.
그리고 실로 벨레스를 묶어 벨레스의 균형을 무너트리고, 파편을 전부 벨레스에게 날렸다.
승부는 한순간이었다.
“크헉! 이럴··· 수가···.”
단번에 파편의 폭풍을 맞게 된 벨레스는 그대로 힘없이 쓰러졌다.
나 역시 배에서 느껴지는 고통으로 쓰러졌다.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나는 벨레스를 끝까지 지켜보았다.
내 공격이 제대로 통했는지 벨레스는 점차 가루가 되어 사리지고 있었다.
“다시 태어나지도 마라.”
그리고 나는 의식을 잃었다.
* * *
카스테오 제국은 다시 나테아르덴 제국으로 돌아갔다.
죄를 지은 카스테오 나테아르덴의 시체는 수도 광장에 매달아 황족이라고 할 수 없는 치욕을 주었다.
당연하게도 나테아르덴의 다음 황제는 치포르 나테아르덴이 되었다.
그리고 치포르 황자의 황제의 즉위식이 열린 날이었다.
“우리 제국의 은인이신 수하르 장군님은 언제 깨어나시는 거냐.”
강대한 기운이 사그라든 후에 치포르 황자를 비롯한 모두가 황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알현실에 도착한 이들은 쓰러져있는 수하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벨레스의 시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기에 수하르의 승리라 판단했다.
하지만 수하르의 숨은 붙어있었지만, 깨어나질 않았다.
환자를 데리고 이동할 수 없었기에 치포르 황자는 수하르를 위해 나테아르덴 제국의 황실에 자리를 마련했다.
그리고 수하르의 옆에선 에피니아가 지극정성으로 간호했다.
“기억난 김에 한번 가봐야겠군.”
치포르 황자는 황제 즉위식으로 바쁜 와중에도 수하르를 찾아가기로 했다.
자신의 즉위신에 은인인 수하르가 참석하기 바라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다.
수하르가 있을 방에 도착한 치포르 황자가 방문을 두드렸다.
“수하르 장군님··· 치포르 황자입니다.”
여태까지 그래 왔듯 답이 없었다.
치포르 황자는 실망하면서도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에피니아님도 있을 텐데?’
항상 수하르의 곁에 에피니아가 있었다.
그랬기에 방문을 두드리면 수하르가 답을 해주진 않지만, 에피니아가 답을 해주었다.
“······!”
수하르가 있어야할 침대가 비어있었다.
창문이 열려있어 창을 통해 들어온 바람이 커튼을 흔들고 있었다.
“이게 무슨···!”
치포르 황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은인이 수하르가 사라진 것이었다.
“이걸 어떻게 설명 드려야하는 거지?”
잠시 자리를 비운 에피니아가 돌아오면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고민하던 치포르 황자의 눈에 한 편지가 들어왔다.
“설마···?”
치포르 황자는 편지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 편지를 뜯어보았다.
“후··· 다행이군···.”
편지는 수하르가 작성한 것이었다.
이만 떠나보겠다는 내용이 담긴 편지였다.
“···즉위식에 참가해주시길 바랬건만.”
짧은 인연이었지만, 치포르 황자는 수하르가 마음에 들었다.
마음 같아선 나테아르덴 제국의 귀족으로 만들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룰 수 없는 일이란 걸 치포르 황자는 알고 있었다.
‘수하르 장군님이 가진 힘을 봐버렸으니까.’
벨레스와 수하르가 싸우고 있던 알현실이 아닌 바깥에서 있었지만, 싸움의 여파는 엄청났다.
인간을 뛰어넘은 존재인 소드마스터도 그 여파를 두려워했다.
그렇기에 한 나라가 지닐 수 있는 사람이 아니란 것을 치포르 황자도 알고 있었다.
“참··· 아쉽구나.”
치포르 황자는 서둘러 자신의 즉위식을 준비하고 있는 곳을 향했다.
수하르가 떠난 걸 확인한 치포르 황자가 즉위식을 미룰 이유는 존재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 * *
벨레스와의 싸움이 끝난 후 나는 꿈을 꾸었다.
화려한 빛에 감춰진 인간이 아닌 무언가를 만난 꿈이었다.
온화한 말투로 그 무언가가 내게 말했다.
“···고맙다고 말해두지.”
왠지 모르게 나는 그 무언가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았다.
그랬기에 화가 났다.
“왜 당신이 할 일을 남한테 떠넘기는 건지···.”
“···문제가 생겨버린다.”
“그건 핑계죠.”
“······.”
“하여튼 앞으로 내 꿈에 나올 생각은 하지 마쇼.”
이 무언가가 어떤 사정이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내게 일을 떠넘긴 형태가 되었으니 내 분노는 정당했다.
게다가 이 일을 통해 내 곁을 떠난 존재도 있으니 말이다.
“···그 아이에 대한 걱정은 하지 말거라. 최대한의 편의를 봐줄테니.”
“혹시라도 또 이상한 일을 맡길 생각은 하지 마세요. 당분간이 아니라 계속 쉴 생각이니까.”
내 말에 무언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은 왠지 모르게 만족스러워보였다.
‘아, 그렇군. 오히려 내가 쉬었으면 하겠구나.’
나는 인간을 벗어난 존재가 틀림없었으니 말이다.
“이제 슬슬 깨어날 시간이 되었구나··· 잘가거라.”
“예, 두 번 다시 볼일은 없길 바랍니다.”
그리고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꿈에서 깬 직후는 나는 나를 간호 중인 에피니아를 맨처음으로 보았다.
에피니아는 눈을 뜬 나를 보고 많이 놀라워하고 있었다.
“드디어 깨어났구나!”
“응, 당연하지.”
단번에 상황판단을 마쳤다.
그 싸움 이후로 나는 깨어나지 못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깨어나지 못하고 있던 나를 에피니아가 간호하고 있었다.
나는 상처 입었던 배를 확인했다.
상처는 씻은 듯 나아있었다.
“맞다, 이럴 때가 아니지.”
“어? 왜? 뭐가?”
나는 에피니아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에피니아를 내 품으로 끌어안았다.
창문을 열고 바깥으로 뛰어내렸다.
오랜만에 움직이는 것이었지만 딱히 문제 될 게 없었다.
에피니아는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뭐하긴 우리 혼인하러 가야지. 이럴 시간이 없어.”
내 말에 에피니아가 멍하니 나를 쳐다보았다.
이내 해맑게 웃는 에피니아.
“그러네!”
나는 에피니아를 품에 안고 땅에 착지했다.
갑작스러운 착지에 에피니아는 영문을 몰라 했다.
“어? 왜?”
“생각해보니 갑자기 사라지면 당황할 수 있잖아. 편지는 써놓고 가야지.”
“그건 그렇지.”
다행히도 에피니아가 편지를 쓸 도구를 가지고 있었기에 나는 짧게 편지를 썼다.
그리고 내가 방금 뛰어내렸던 창에 편지를 날려보냈다.
“이제 진짜로 출발하자!”
“그래!”
나는 에피니아를 품에 안고 날기 시작했다.
* * *
에피니아와 나의 식은 조촐하게 진행되었다.
식을 위한 정장을 입었지만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다.
에피니아 역시 식을 위한 순백의 드레스를 입었다.
나는 에피니아에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
“후우··· 빨리 식을 끝내고 여행을 떠나할텐데.”
“그러게 말이야.”
나와 에피니아는 하객들을 확인했다.
에피니아는 감탄을 하며 말했다.
“역시 영웅의 식이야.”
“제일가는 제국의 황녀님의 식이기도 하니까.”
미케네르 제국과 나테아르덴 제국의 전쟁은 미케네르 제국을 유일한 강자로 만들어주었다.
그런 제국의 황녀의 식이었다.
그리고 전쟁을 승리로 이끈, 벨레스란 악마를 물리친 영웅의 식이기도 했다.
하객의 수준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나와 에피니아가 보낸 초대장으로만 입장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정말로 엄청난 하객들이었다.
“어···?”
하객을 살피던 나는 이상한 것을 목격하고 말았다.
데이브 형이 넘어진 레티아 왕녀를 일으켜세워주고 있었다.
그런데 레티아 왕녀가 데이브 형을 바라보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나는 그것을 잘못 본 것으로 치부하기로 했다.
에피니아가 말했다.
“자, 이제 식의 주인공들인 우리가 나갈 차례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에피니아와 팔짱을 낀 채로 식의 중심으로 걸어갔다.
모두의 축복을 받으며 말이다.
[회귀한 영주는 쉬고 싶다]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