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외전-데이브 칼데르트의 후일담 (2)
데이브는 가족 혹은 아군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적이라고 인지한 순간, 죄인이라고 인지한 순간에는 차갑기 그지없는 사람이었다.
“할 말? 무슨 할 말이 있다는 거지?”
“네놈의 죄에 관한 이야기다.”
“죄? 아, 사기를 말한 건가? 내가 왜 사기지? 저 여자가 제대로 계약서를 확인 안 한 게 문제일 뿐이지.”
데이브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데이브가 말한 양아치 대장의 죄는 사기가 아니었다.
자신의 품속을 뒤적이던 데이브는 칼데르트가의 가주만이 지니는 가주패를 꺼내들었다.
“백작을 모욕했는데 네가 죄가 없다고?”
데이브가 가문패를 치켜세우자, 양아치 대장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거, 거짓말하지 마라!”
“거짓말? 귀족을 사칭하는 게 얼마나 큰 중범죄인지는 알고 있을 터.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 같나?”
양아치 대장는 다급히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이 소란을 잠재우기 위한 경비대가 도착한 상태였다.
왕실 직속 경비대였기에 당연하게도 경비대는 데이브를 알아보았다.
“어··· 칼데르트 백작님? 어째서 이곳에···.”
“저기 있는 자들이 나를 모욕하며 조롱하더군. 잘처리해주길 바란다. 게다가 사기같은 행각도 벌리고 있는 거 같네.”
데이브의 말에 경비대는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경비대가 주변정리를 해준 덕분에 데이브와 티아스만 남게 되었다.
티아스가 갑자기 격식 차린 자세로 무릎을 꿇었다.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백작님···.”
벽이 세워진 듯한 티아스의 행동에 데이브는 당황했다.
데이브는 티아스가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티아스, 왜 그래요?”
“저같이 천한 것에게 말을 높이지 말아주십쇼, 백작님.”
티아스에게 백작이란 직위는 너무나도 높고 멀었다.
그리기에 티아스에게 데이브는 한없이 멀게만 다가왔다.
“티아스, 제발 그러지 마세요.”
데이브는 어떻게든 티아스를 일으켜세울려고 하였다.
하지만 티아스는 요지부동이었다.
“백작님께서는 저같이 천한 것이 아닌 다른 귀족 자제분을 만나는 게 좋을 겁니다.”
“······.”
“백작님께서 저에게 내려준 은혜는 어떻게든 갚겠습니다.”
데이브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만큼 티아스의 태도는 강경했다.
전혀 바뀔 것만 같지 않았다.
“티아스, 나중에 다시 찾아올게요.”
타아스의 딱딱한 태도에도 데이브는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데이브가 처음으로 같이 있고 싶다고 생각한 여자가 바로 티아스였다.
‘지금은 좀 당황해서 그럴 거야···.’
시간만 지나면 티아스가 자신을 받아줄 거라 생각한 데이브였다.
그것도 그럴 것이 연인이었던 둘의 사이는 전혀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 * *
데이브는 시간이 날 때마다 티아스의 가게를 들렀다.
하지만 항상 티아스의 태도는 변치 않았다.
데이브가 다가갈수록 티아스는 멀어져갔다.
그리고 데이브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아버님··· 제발, 따님을 설득하는 데 도와주십쇼.”
티아스의 아버지가 가게에 복귀한 것이었다.
데이브는 티아스의 아버지에게 머리를 숙였다.
티아스의 아버지는 그런 데이브의 태도에 당황하고 말았다.
“어이쿠, 귀족이신 분이 저같은 평민에게 고개를 숙여서는 안 됩니다.”
데이브와는 첫만남이었을 터인 티아스의 아버지는 데이브를 알고 있었다.
“저를 알고 계신 겁니까?”
“네, 알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제발 말씀 좀 낮춰주시죠.”
데이브는 단호하게 말했다.
“싫습니다. 장인어른이 되실 분께 어찌 말을 쉽게 할 수 있겠습니다.”
티아스의 아버지는 데이브의 강경한 태도에 말을 높이라는 문제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장인어른께서는 어떻게 저를 아시는 겁니까?”
“그게···.”
티아스의 아버지는 자신이 들었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혼자서 가게를 운영하던 티아스는 한계에 다다랐는지 가게의 안에서 울고 있었다고 하였다.
그러던 중에 나타난게 데이브였다.
“딸이 백작님을 만났을 때에 매우 기뻐했답니다.”
“네?”
“너무나도 힘들어서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때마침 나타난 게 백작님이었습니다.”
“···그런가요.”
데이브는 이상했던 티아스와의 첫만남을 떠올렸다.
확실히 손님 옆에 서있는 건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다만 사람과의 대화를 원했던 티아스는 그걸 바랐기에 서 있던 것이었다.
“그리고 백작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힘들었던 게 많이 나아졌다고 하더군요.”
“그런가요···.”
“백작님께서 고백했을 때는 기뻐서 하루종일 제게 떠들더군요.”
씁쓸한 표정을 짓는 티아스의 아버지였다.
“다만 백작님의 정체를 알게 된 이후론 매우 우울한 상태입니다. 백작님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지 않고요.”
“······.”
“그전까지만 해도 혼인을 하게 된다면 백작님과 하게 될 거라고 운명을 만난거 같다고 기뻐했지만 말이죠.”
데이브는 티아스의 아버지의 말을 듣고 기뻐했다.
그래도 티아스가 데이브 자신과 같이 혼인을 생각하고 있던 것이었으니 말이었다.
“덕분에 용기가 생겼습니다!”
“네? 무슨?”
“장인어른··· 기필코 제가 티아스를 설득하겠습니다!”
그리고 힘을 얻은 데이브는 매일 같이 티아스의 가게를 찾았다.
* * *
티아스는 본인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나는 데이브 님을 좋아해.’
하지만 그 마음을 숨기로 결심했다.
데이브의 정체가 백작이라는 것을 알고 말이다.
데이브는 매일같이 티아스를 찾아왔다.
그런 데이브를 티아스는 매번 딱딱한 태도로 대했다.
마치 처음만난 사람처럼 말이다.
“백작님, 어서 오세요.”
“티아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가 알려드릴까요?”
티아스는 궁금했지만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짜피 거절해도 데이브는 말할 것을 알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 일이 있었다니까요!”
“네, 그렇군요.”
티아스는 최대한 표정을 숨겼다.
티아스의 옆에서 데이브가 혼자 떠드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티아스는 하나하나 귀담아 듣고 있었다.
게다가 재미있어 하고 있었다.
데이브의 이야기는 티아스에겐 하루의 기쁨일 정도로 좋았다.
하지만 신분 차이라는 벽 때문에 데이브의 행복만을 바라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 가게도 많이 번창하기 시작했네요.”
“아버지께서 돌아오셨으니까요.”
“아, 그렇지. 장인어른 음식 솜씨가 끝내주긴 하더라고요.”
순간 이상한 단어를 들은 것만 같은 티아스였다.
티아스는 장인어른이라는 단어는 자신이 잘못들은 것으로 하기로 했다.
‘이러다가··· 말겠지···?’
보통 귀족이 평민이 꼬시는 것은 하룻밤의 장난이라고 티아스는 알고 있다.
데이브가 그러지 않을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티아스였지만 시간이 흐르면 데이브도 티아스 자신을 잊고 잘 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티아스의 그런 예상은 틀렸다.
며칠, 몇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데이브는 변치않았다.
데이브는 칼데르트가로 돌아갔음에도 티아스에게 편지를 보냈다.
수도에 있으면 무조건 티아스를 찾았다.
“···정말로 포기할 생각이 없으신 건가.”
티아스는 그런 데이브의 진심을 엿보았다.
하지만 신분차이라는 벽이 너무 높았다.
평민과 귀족.
가게주인의 딸과 한 가문의 주인이었다.
게다가 데이브에겐 아내가 없기에 티아스가 본처가 되는 것이었다.
“정말로 어떡하지···?”
그런 티아스의 고민도 모른 채하며 데이브는 매일같이 찾았다.
그러던 어느 날 데이브가 티아스에게 말했다.
“티아스, 오늘은 외출하는 게 어때요?”
오늘은 작년 티아스와 데이브가 연인이 되기로 한 날이었다.
이렇게 데이브가 티아스를 찾은지도 벌써 일 년이 다 된 것이었다.
“···아니요!”
티아스는 한순간 긍정할 뻔했다.
“에이, 사귄 지 일 년이면 기념일인데··· 외출해요!”
티아스는 데이브의 입에서 나온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네?”
“사귄 지 일 년이면 보통 기념하지 않나요?”
“백작님과 제가 사귄 지 일 년이라고요?”
“네! 어라··· 제가 날짜를 착각했나? 아닐텐데요···.”
티아스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티아스는 데이브와 헤어진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데이브의 말은 자신과 아직까지 사귀고 있는 듯한 말이 아닌가.
“저랑 백작님이 사귀고 있나요?”
“네. 기억 안 나요? 제가 꽃다발 들고 고백했을 때?”
“그··· 기억은 나죠! 그런데··· 헤어지지 않았나요?”
“에이.”
데이브가 티아스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
“헤어지자고 말한 적은 없잖아요.”
능청스럽게 답하는 데이브를 본 티아스는 간신히 웃음을 참아냈다.
“아니, 헤어지자고는 말 안 했지만··· 헤어지자는 늬앙스였잖아요.”
“어쨌든 전 헤어지자고 들은 적은 없어요.”
그와 동시에 티아스의 웃음이 터져나왔다.
티아스의 마음이 완전히 기운 순간이었다.
“그래요, 외출하기로 해요!”
“······!”
티아스가 마음이 열린 순간부터는 데이브와의 관계는 급속도로 전개되었다.
일 년을 기념하는 날로부터 한달도 채 지나지 않아서 둘은 혼인을 하게 되었다.
티아스의 아버지와 티아스는 수도에서 가게를 접고, 칼데르트가의 영지로 가게되었다.
그곳에서 티아스의 아버지는 다시 식당을 하게 되고, 티아스는 티아스 칼데르트가 되어 데이브의 곁을 지키게 되었다.
* * *
데이브와 티아스의 방에서 데이브가 티아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과 연인이 된게 내 인생의 최대 운이었어.”
“에이, 과찬이에요.”
“아니, 정말로. 당신과 연인이 된 이후로 갑자기 업무량도 줄었다니까!”
티아스는 데이브가 농담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데이브는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곤, 낮게 중얼거렸다.
“정말인데···.”
* * *
레티아 왕녀는 이불 안에서 울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서럽게 말이다.
레티아 왕녀의 방밖에서 노크소리가 들렸다.
“레티아 왕녀님, 모피아입니다.”
모피아는 레티아 왕녀를 보살피는 시녀였다.
레티아 왕녀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모피아는 방문을 열었다.
이불 안에서 레티아 왕녀의 얼굴이 빼꼼 나왔다.
“아직 들어오라는 말은 안 했는데··· 모피아.”
모피아는 아무말없이 레티아 왕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왕족 앞에서 대놓고 내쉬는 한숨은 불경죄에 속했다.
하지만 이 둘 사이에선 상관없는 일이었다.
모피아는 레티아 왕녀를 어렸을 때부터 봐온 언니 같은 사람이었다.
레티아 왕녀 본인도 그렇게 생각했다.
“레티아 왕녀님··· 참으로··· 한심하십니다···.”
모피아가 레티아 왕녀를 대놓고 비난하는 데엔 이유가 있었다.
“······.”
“레티아 왕녀님은 왕국의 두 번째 검성이신 수하르 님께 실연당하셨죠.”
레티아 왕녀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후로 수하르 님의 혈육이신 데이브님에게 반해버렸고요.”
레티아 왕녀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호감을 보이질 못할망정 왜 업무로 그렇게 괴롭힌 겁니까!”
레티아 왕녀가 울고 있던 이유는 호감이 있던 데이브에게 최근 연인이 생겨서였다.
“그게···.”
레티아 왕녀가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자, 어서 말해보시죠.”
“동생을 좋아했다는 것을 알아차리면 내가 가진 호감이 거짓처럼 느껴지잖아···.”
모피아는 레티아 왕녀의 말을 납득할 수가 없었다.
물론 모피아는 레티아 왕녀의 말은 이해는 했다.
하지만 그게 업무로 괴롭힌 이유에 대한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왜 업무를 그렇게 주신 겁니까!”
“조금이라도 인상을 깊게 주려고···.”
모피아는 머리가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그걸 말이라고.”
“어쩔 수 없잖아!”
“에휴, 됐습니다. 그냥 이번 사랑은 포기하죠. 업무로 괴롭힘을 주는 것도 멈추고요.”
“그럴 거야··· 난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을 방해하는 사람이 되긴 싫으니까.”
레티아 왕녀의 대답에 모피아는 레티아 왕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레티아 왕녀께도 운명이 나타나실 거예요.”
“응···.”
데이브는 모르고 있는 레티아 왕녀 혼자의 실연 이후로 데이브의 업무는 정상적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추가로 동화 속 이야기처럼 레티아 왕녀와 한 호위기사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은 지금의 레티아 왕녀는 아직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