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밀리아 칼데르트의 후일담
밀리아 칼데르트는 자신의 과거를 후회했다.
메드락이라는 이상한 보석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는 하나 용서받지 못할 짓을 저질렀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밀리아 칼데르트는 한없이 선을 추구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귀족 자제분이 저희를 이렇게까지 도와주시고··· 정말로 귀족의 모범이십니다!”
밀리아에게 도움받은 평민들이 하던 말이었다.
밀리아가 도움을 주는 사람들은 주로 어려운 생활을 하는 평민이었다.
밀리아는 본인 스스로 가진 게 없기에 그런 이들에게 차마 돈을 주진 못했다.
하지만 노동을 자처했다.
평민의 밭일을 돕던 밀리아의 곁에 칼데르트가의 기사 제이콥이 다가왔다.
“밀리아 님, 안 힘드십니까?”
“괜찮아요. 오히려 몸을 움직이니 기분이 좋은걸요.”
제이콥에겐 밀리아라는 사람은 매우 새롭게 다가왔다.
전에는 이렇게 평민을 도우는 것을 소름돋을 만큼 싫어하는 인물로 보았다.
하지만 지금은 정성이 눈에 보일 정도로 진심으로 보였다.
다만 제이콥에게 한 가지 걱정되는 게 하나 있었다.
‘밀리아 님의 호위기사로 발령받은 지도 벌써 오 년··· 계속 이런 삶을 사신다면 단명하실 수도 있겠어.’
밀리아는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았다.
전에 제이콥은 밀리아에게서 들은 진심 때문에 이런 일을 말리지도 못하고 있었다.
‘자신의 손으로 혈육을 죽이려 했다는 사실에 자기혐오를 하고 계신 거겠지.’
물론 그것은 이상한 보석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제이콥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밀리아를 위로해주었다.
하지만 밀리아에게 위로는 전혀 듣질 않았다.
밀리아는 수시로 고행 속에 들어가며 선을 배풀고 있는 것이었다.
“밀리아 님, 슬슬 혼인도 하셔야하지 않습니까. 언제까지 이런 삶을 사실 생각입니까.”
밀리아가 침묵했다.
밭일을 돕던 손도 멈추었다.
밀리아의 나이는 혼기가 차다못해 늦었다.
과거의 일이 있지만, 밀리아의 외모는 뛰어났다.
인성마저 뛰어나다.
혼인하지 못할 이유가 밀리아에겐 없었다.
“무섭고, 두려워···.”
제이콥이 자주 말하던 혼인에 대해 처음으로 밀리아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제이콥의 질문에 대한 답엔 조금 어울리지 않았다.
“무섭고, 두렵다는 게 무슨 말이십니까. 혹시 남성공포증이라도 생기신 겁니까?”
“아니, 그런 건 아니야. 다만 내가 혼인을 하고, 나에게서 태어날 아이가 너무도 무서워.”
아이는 축복이란 말을 자주 들었던 제이콥에겐 이해하지 못할 말이었다.
하지만 제이콥은 그 말을 최대한 이해해보려 했다.
“그렇긴 하죠. 출산이라는 게 자칫 잘못하면···.”
“그런 게 아니야!”
밀리아가 제이콥의 말을 강하게 부정했다.
“나같은 아이가 나올까봐, 무서운거야. 게다가 요즘 들어 꿈까지 꿔.”
“꿈··· 말입니까?”
“응, 매번 꿈 속에 악마가 나를 찾아와. 그리고 어서 자신을 낳아달라고 말해.”
“······.”
꿈은 꿈일 뿐이라는 것은 제이콥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밀리아가 악마에게 빙의된 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제이콥에겐 다르게 다가왔다.
“정말입니까?”
“응.”
“···그럼, 교회는 찾아가보셨습니까?”
악마의 천적은 신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악마가 가진 부정한 기운은 신성한 기운으로 정화할 수 있다.
“가봤어. 하지만 내게 악마의 부정한 기운이 깃들어 있지 않대.”
“에피아 신성제국을 가보신다면···.”
“그곳도 가봤어.”
“그렇다면··· 수하르 님은.”
“수하르에게도 가봤어. 그저 꿈이라는 말만 들었어. 내겐 부정한 기운 따윈 없데.”
인간의 경지에 벗어난 수하르의 말이라면 제이콥도 믿을 수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밀리아가 꾸는 꿈은 그저 꿈일 뿐, 부정한 무언가가 있다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도 왜 밀리아가 두려워하는지 제이콥에겐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럼, 그것은 그저 꿈일 뿐이잖습니까.”
“나도 알아! 하지만 그런데도 무서운 걸 어떡해. 이겨내보려고 착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했어. 그럼에도 꿈은 바뀌지 않아.”
“······.”
어쩌면 광기처럼 보이는 밀리아의 선행의 이유를 제이콥은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밀리아는 속죄뿐만이 아니라 선행을 통해 악마의 부정한 기운을 몰아낼려는 것이었다.
악마의 부정한 기운이 밀리아의 착각이라고 하여도 말이다.
“그렇다면 밀리아 님은 더 이상 꿈을 꾸지 않는다면 혼인하실 겁니까? 그리고 선행을 그만두실 겁니까?”
“꿈을 꾸지 않는다면···?”
몇 년간 선행을 지속해오던 밀리아였다.
그런 밀리아가 선행을 그만둔다고 생각해보았다.
선행말고 어떤 것을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는 밀리아였다.
“모르겠어.”
“제 생각엔 꿈을 꾸지 않더라도 선행은 계속될 것만 같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그야, 선행을 할 때 밀리아 님의 표정이 가장 밝았기 때문입니다. 이마저도 속죄를 위한 연기라면 당신은 배우를 하는 게 좋겠죠.”
제이콥의 말에 진심을 느낀 밀리아는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다.
갑작스러운 눈물에 제이콥은 당황했다.
“갑자기 무슨 일이십니까? 혹시 밭에 거머리가 물기라도 하셨습니까?”
“아니, 기뻐서··· 왠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은 거 같아.”
“네?”
“나 앞으로도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살래. 꿈을 꾸지 않더라도 말이야.”
밀리아의 다짐에 제이콥은 다시 한번 당황했다.
제이콥의 의도는 밀리아가 혼인에 대해 생각해주길 원했다.
하지만 밀리아의 다짐대로면 혼인 상대를 찾긴 어려울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혼인은···?”
“뭐, 나중에 좋은 사람이 나타나겠지.”
말을 마친 밀리아의 표정은 한결 가벼워보였다.
이에 제이콥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
밀리아의 선행은 멈추지 않았다.
처음에는 칼데르트가의 인근 마을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밀리아는 만족하지 않았다.
“그래, 단체를 세워야겠어.”
“네? 밀리아 님, 그게 무슨···.”
밀리아는 선행을 위한 단체를 만들어냈다.
기부를 받고, 사람을 구하고,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들기 위한 단체였다.
단체가 된 후엔 행동반경은 로토 왕국 전체가 되었다.
오로지 선행을 목표로한 단체였기에 그 뜻을 아는 귀족들은 자신의 체면 혹은 명예를 위해 많은 돈을 기부했다.
부유한 상인들 마저도 기부를 아끼지 않았다.
“이제는 더 큰 세상으로 가야할 때야.”
“밀리아 님··· 혹시 무슨 교회라도 세울 생각이십니까?”
“교회? 그거 좋겠다. 교회랑 협업하는 거야! 제이콥, 좋은 생각 고마워.”
밀리아는 로토 왕국을 벗어나 에피아 신성제국과 협업을 이루었다.
그렇게 교회와 밀리아가 만들어낸 단체는 협업을 통해 더욱 큰 단체로 성장하게 되었다.
“아직 부족해.”
“이제는 충분한 거 같습니다만···.”
밀리아는 멈추지 않았다.
결국 밀리아는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나라에 단체의 지부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 일은 쉽지만은 않았다.
에피아 신성제국과 협업을 맺은 탓에 종교를 믿지 않는 나라에 배척당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밀리아의 끈질긴 설득으로 그 나라에도 단체의 지부를 세울 수 있었다.
“더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려나?”
밀리아가 만든 단체는 이제 대륙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혹여나 밀리아가 만든 단체에 소속된 사람을 습격할 경우 대륙의 공적이 되는 일도 생기기도 했다.
그렇기에 수많은 악인들도 밀리아의 단체에 소속된 사람들에겐 한 수 접고 들어갔다.
“밀리아 님··· 바깥 소식은 듣고 있으십니까?”
“바깥? 아, 우리 단체에 대한 칭찬 말이야?”
“아닙니다! 요즘 온 사람들이 밀리아 님을 뭐라고 지칭하시는 줄 알고는 계십니까?”
“어··· 나야, 모르지.”
바쁘게 살아온 밀리아였다.
바깥에서 들리는 자신의 평가따윈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신경 쓸 새가 없었다.
“성녀님이라고 합니다. 성녀님!”
“성녀···? 성녀라면 내가 아는 그 성녀인가?”
“예, 보통 종교에서 신의 말을 따르는 그 성녀입니다.”
성녀 혹은 성자는 신의 말을 전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 중에서 가장 올바른 성품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런 별칭이었기에 에피아 신성제국에서도 성녀는 없었다.
그런데 그런 성녀라는 별칭을 밀리아가 얻게 된 것이었다.
성녀라는 별칭에 밀리아는 볼이 발그스레해졌다.
“그래? 조금 부끄럽네.”
“아니, 조금 부끄럽네하며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응···? 왜?”
“혼인에 대해 생각이 있으시긴 한 겁니까?”
제이콥이 혼인에 대해 말하자 밀리아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바쁘게 살아가는 동안에도 제이콥은 수시로 혼담을 밀리아에게 가져왔다.
하지만 밀리아는 일을 핑계로 혼담을 미루었다.
밀리아에게 혼담은 그저 귀찮은 일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또 그 얘기야? 그래, 알겠어. 혼담 가져와바, 조금은 한가해졌으니까.”
귀가 따가울 정도의 잔소리를 들은 밀리아였다.
그렇기에 조금 한가로워진 지금이라도 제이콥의 잔소리를 피할 겸 혼담을 진행해볼 생각이었다.
‘물론 받아들일 생각은 없지만.’
하지만 밀리아는 생각과 달리 제이콥은 기뻐하지 않았다.
“늦었습니다···.”
“어? 왜? 혹시 나한테 들어온 혼담이 없던 거야?”
밀리아는 스스로를 미인이라고 자부하진 않았다.
그렇다고 본인 스스로 폄하하진 않았다.
그렇기에 혼담 하나둘은 무조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밀리아였다.
실제로도 일하던 중에 계속해서 혼담이 들어왔으니 말이다.
“이젠 없습니다.”
제이콥의 단호한 말.
밀리아는 제이콥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없다니 정말이야?”
“네.”
“···내가 나이가 있어서 그래?”
어느덧 밀리아의 나이도 서른이 다 되어갔다.
평민사회는 물론이고, 귀족사회에서도 적령기는 지난지 한참이었다.
“그건 아닙니다.”
“그럼··· 내가 외모가 별로라서?”
제이콥이 약간 주저하며 말했다.
“밀리아 님, 당신은 아름답습니다. 인품마저 갖춰 더 아름답게 보이죠.”
“그럼, 왜?”
“당신이 성녀님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이콥의 말을 밀리아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보통 성녀님은 혼인을 하지 않죠.”
“그건··· 아니지!”
성녀라고 불려도 혼인을 한 경우도 많았다.
옛 이야기에도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물론 최근 역사에 나타난 성녀는 혼인을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애당초 나는 성녀님이라 불릴 뿐이지, 진짜 성녀님이 아니잖아.”
제이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미 세간엔 밀리아 님이 성녀님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밀리아 님이 성녀님이라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더 이상 혼담은 오지 않고 기존에 왔었던 혼담마저도 사라졌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밀리아에게 혼인에 대한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이 경우는 달랐다.
밀리아는 지금은 하지 않더라도 훗날 혼인은 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거짓말이지···?”
제이콥이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밀리아가 힘없이 쓰러지며 무릎을 꿇었다.
“···제이콥, 나 어떡해?”
“이제는 별수 없습니다.”
“그러지 말고, 답 좀 내봐. 호위기사잖아!”
제이콥이 한숨을 내쉬며 검지손가락을 펼쳤다.
“아직 단 한 가지 방법이 남아있습니다.”
“단 한 가지 방법?”
“바로···.”
“바로!”
“성녀님이라는 별칭도 신경 쓰지 않을 만큼 밀리아 님을 사랑해줄 용자를 만나는 겁니다.”
“······.”
용기 있는 자가 보낼 혼담만이 밀리아가 가진 유일한 기회였다.
사실 제이콥이 생각해낸 방법은 더 있긴 했다.
바로 밀리아가 먼저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혼담을 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그 방법을 밀리아가 선택할 일은 없었다.
‘그야, 밀리아 님의 혼담을 받은 상대는 쉽게 거절할 수가 없으니까.’
그렇기에 밀리아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물론 그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었다.
“이제부터는 선행뿐만이 아니라 원하는 사람에게 혼담을 받을 수 있을 만큼 매력도 가꾸는 게 좋겠습니다.”
“아, 알겠어.”
용기있는 자의 혼담이라도 밀리아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혼담은 성사되지 않는다.
이제는 성녀가 되어버린 밀리아에게 남은 것은 원하는 용자가 나타나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