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1/64)

허름한 좁은 방 안, 한 남자가 소주병을 빨고 있었다.

"씨발."

술이 다 떨어진 병이 바닥을 굴렀다.

남자는 멍한 눈으로 구르는 병을 보다가 미친놈처럼 낄낄낄 웃었다.

"썅노무 세상."

알코올로 인해 꼬인 혀로 세상을 저주하며 일어난 남자는 방 밖으로 나갔다.

길고 긴 복도에는 수없이 많은 문이 보였다. 남자가 거주하는 곳은 쪽방촌이란 곳이었다.

비틀거리며 좌우로 흔들리니 의도치 않게 몸으로 남의 방문을 노크하는 꼴이 되었다. 쿵쿵 거리는 소리를 내자 문을 열어보는 사람도 있었고 욕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남자는 그런 것에 상관하지 않고 운동화를 구겨 신었다.

"푸하!"

건물 밖으로 나오니 차가운 밤공기가 온 몸을 어루만져주었다.

뜨거운 숨을 토해내니 차가운 공기가 폐를 간질였다. 

"히히히."

은근히 기분이 좋아졌는지 남자는 웃으며 근처의 편의점으로 향했다.

가진 돈으로 산 것은 소주였다. 

"조쿠나! 개노무 세상!"

빙글빙글 도는 걸음으로 세상을 향해 외쳤다.

"뒈져라! 조까는 세상! 크크크크."

술주정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몇 걸음 걷다가 길가에 주저앉은 남자는 소주병을 빨기 시작했다.

몸을 앞뒤로 흔들며 욕을 흥얼거리며 술을 마시고 또 마셨다.

"에이!"

술이 다 떨어지자 남자는 병을 던졌다.

딱딱한 길바닥에 던져진 소주병은 깨졌다.

"다 피료업서! 다 뒈져라! 에이 썅놈들."

남자는 그렇게 주정을 부리다 길가에 쓰러져 잠들었다.

"아잉, 누가 보잖아."

"괜찮아. 보긴 누가 봐."

"그래도."

"그러지 말고 얼른 들어가. 응?"

남자는 치를 떨면서 두 남녀를 보고 있었다.

한 명은 자신이 따르는 형님, 다른 하나는 자신의 애인이었다. 두 남녀는 모텔 앞에서 애정행각을 벌이며 안으로 들어섰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개새끼들.'

욕이 치밀어 올라 모텔 안으로 들어서서 계산을 하는 두 사람을 향해 덤벼들었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시야가 바뀌었다.

이번에는 전화가 거는 중이었다. 전화를 걸자마자 없는 번호라는 음성이 들렸다.

'내 돈!'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가 사업상 필요한 일이라며 금방 갚는다며 빌려간 돈은 받을 길이 없어졌다. 지인들 모두 그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었다가 연락이 두절되었다는 이야기에 연락한 것인데 사실이었다.

많은 돈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의심하지 않고 빌려주었다. 목돈을 빌려달라고 했었다면 당연히 주저했겠지만 얼마 되지 않는 돈이라 흔쾌하게 빌려주었다.

시야가 또 바뀌었다.

키워 주시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시야가 또 바뀌었다.

부모님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는 어린 시절의 몸을 가진 상태였다.

"애는 당신이 데려가!"

"난 싫어! 당신이 키워!"

"애 엄마가 애를 키워야지!"

"내가 무슨 돈이 있어서! 여자 후릴 돈은 있고 애 키울 돈은 없어?"

서로 자신을 맡지 않으려는 부모님들의 모습에 가슴에는 커다란 상처가 남았다.

"아, 시발 꿈."

추위에 떨며 일어나던 남자는 욕을 내뱉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은 왜 그렇게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건지. 부정적인 것은 이상하게도 더 기억에 오래 남았다. 길바닥에서 잠들었던 남자는 서둘러 몸을 일으키려했다. 그러나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과도한 음주로 인해 두통이 밀려왔고 길에서 잔 탓인지 감기까지 들었다.

"퉤!"

남자의 눈에는 독기가 어렸다.

자신의 보금자리인 쪽방으로 비틀거리며 돌아가는 동안 연신 욕을 내뱉었다.

남자의 이름은 한심후. 올해 23살이었다.

직업은 생산직 종사자. 정말 별 볼일 없는 남자에 불과했다. 쪽방에 돌아온 심후는 꼬박 1주일을 앓았다.

정신이 흐트러진 상태에서 몸까지 아프고 돌봐주는 사람이 없어 간단한 감기로 끝날 것이 상당히 독해졌다.

춥고 외로웠다.

어려서 부모가 이혼하며 서로 심후를 키우기를 거부했다. 결국 할아버지의 손에서 자라게 되었지만 할아버지는 17살이 되던 해에 돌아가셨다.

이후 할아버지가 남겨준 약간의 재산과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생활비를 충당하며 정규 교육을 모두 마쳤다. 이후 한 일은 공장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심후는 세상은 그래도 살만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돈을 떼먹고 도망가고 순정을 바쳤던 여자가 자신이 철썩 같이 믿고 지내던 형님과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된 것에 세상을 향한 신뢰는 무너졌다.

여자는 헤어지고 나서 하루도 지나지 않아 형님이란 작자와 모텔에 간 것이었다. 자신 몰래 둘이 사귀고 있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화가나 덤벼든 심후는 그대로 얻어맞고 기절했다. 이때부터 제 정신이 아니었다.

"살았네."

마음은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몸은 살고 싶다고 아우성이었다. 마구 굴려봤는데 몸은 끈질겼다.

결국 살았다. 

"그래, 알았다."

하지도 않을 혼잣말이 나왔다.

믿을 사람 하나 없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몸뚱이와는 떨어지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니 친숙하다고 생각해버렸다. 

"이제 아프게 안 할 게. 응? 알았어. 맛있는 거 먹고 싶다고?"

자신의 몸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며 '미친놈'이란 단어를 떠올리고는 킥킥 거렸다.

점점 미쳐가고 있었다. 제 정신? 그런 것을 유지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고통스럽고 아픈 것이 현실이었다.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계속 되는 고난에 마음은 이미 지쳐 쓰러졌다.

쓰러진 마음은 일어날 힘이 없었다. 모든 것을 끝내버리고 싶었다.

죽고 싶은 생각이 가득했다. 혹독하게 자신을 학대하듯이 굶어보기도 하고 죽도록 술을 퍼마시기도 했다. 기왕 죽는 것 가진 돈을 다 처먹고 죽자는 생각뿐이었다.

그래도 몸은 살고 싶다고 아우성이었다. 술 먹지 말라고. 아프니까 좀 쉬자고. 몸에 좋은 것 먹자고.

몸은 살고 싶다고 발악하는 중이었다.

무의식은 의식이 선택한 길이 틀렸다며 계속 반항했다. 그렇기에 다른 존재로 느껴졌다. 또 다른 존재가 자신의 안에 있다고 느껴졌다.

"오냐. 그래. 나한텐 너 뿐이다.

넌 배신 안 할 거지? 아니야. 너도 언젠가 날 배신할 거야. 세상에 믿을 거 하나 없지. 암. 크크크."

혼잣말 끝에 흘러나오는 광기와 허무가 깃든 웃음이 이어지며 심후는 변했다.

"그래, 좆같은 세상. 끝까지 가보자. 썅."

쌍소리를 내뱉으며 벌떡 일어났다.

가장 먼저 한 일은 몸을 추스르는 것. 어지러운 몸을 달래기 위해 돈을 아끼지 않고 썼다. 모아 놓은 돈이 얼마 되지 않은 상황임에도 심후는 망설이지 않았다.

'돈 다 떨어지면 뒈지지 뭐.'

원래 죽을 생각이었으니 망설일 것 없다 생각했다. 끝까지 발악하다가 죽게 되면 죽는 거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가슴 한 구석이 후련해졌다.

오랫동안 참고 참았던 똥을 싸고 나서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상쾌한 바람으로 폐를 정화한 기분이었다. 비싼 죽을 사먹었다.

전복죽이었다. 평소에는 낭비라고 생각하며 참았다. 

'저거 먹을 돈이면 돈 모았다가 데이트 할 때 선물 하나 더 사줄 수 있는데.'

라는 생각을 하며 참았었다.

"씨팔."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여자가 생각나자 욕이 절로 튀어나왔다. 그래서 화를 내면서 죽을 퍽퍽 퍼먹었다. '내가 다 처먹을 거다.

'이제 더 이상 남에게 퍼주는 건 사양이었다. 형님이란 작자도 그렇고 애인도 그렇고. 사람에게 잘 해줘봐야 소용없음을 깨달았다.

잘 해줘봐야 배신당하면 그걸로 다 땡이었다. 인연이 끊어지면 돈만 아까울 뿐이었다.

돈이 썩어 넘치는 부자였다면 허허 웃으며 넘어갈 수 있었을지도 몰라도 공장에서 힘겹게 돈을 벌며 모았던 심후에게는 큰돈이었다. 웃어 넘길만한 액수가 아니었다.

"꺼억!"

전복죽을 다 먹고 나서 낮잠을 잤다. 공장은 전화로 그만 두었다.

공장 측에서도 별 말은 하지 않았다. 심후를 대체할 인원은 언제든지 채울 수 있었다.

'얼마나 남았냐?'

폰을 꺼내 자신의 은행 계정을 확인해보니 얼마 남지 않았다. 1달 정도의 생활비만 남은 상태. 1달 후에는 거지란 소리였다.

'아르바이트나 하자.'

직장을 얻고 싶다고 갑자기 어디서 뚝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 동안 놀 수 없으니 아르바이트라도 하며 생활비나 벌 참이었다.

'만만한건 가상현실접속방인가?'

가상현실접속기를 임시로 사용할 수 있는 업소가 바로 가상현실접속방이었다. 300년 전에는 피씨방이 존재했지만 세월이 흐르며 피씨방은 사라졌다.

아무도 구형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손에 든 휴대전화로 모든 것이 가능했다.

단, 가상현실 경험은 가상현실접속기가 있어야만 가능했다.

과거에는 자동차가 있어야 폼 좀 잡을 수 있었지만 이젠 시대가 변했다.

집에 가상현실접속기가 있어야 좀 산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흐르며 진화해온 문명은 급기야 하나의 현실을 창조해냈다는 평가를 받는 중이었다.

'그래, 나도 그 세상 속에서 살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가상현실의 주민이 되기 위해선 현실에서 상당한 경제력을 가져야만 했다. 접속기의 가격도 가격이지만 이용료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가상협실접속방이 흥행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구매는 할 수 없지만 돈을 모아서 잠깐 가상현실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 번 가상현실에 접속한 사람은 헤어 나오질 못했다. 그 곳은 또 다른 세계였다.

별천지였다. 원하는 환상의 세계를 즐길 수 있었다. 

'접속방에서 일하다보면 손님 없을 때 잠깐 즐길 수 있다고 했으니까.'

바쁜 시간대에 일한다면 즐기는 건 못한다. 하지만 손님이 없는 아침 시간에는 가능했다.

24시간 영업을 기초로 하기에 야간에도 손님은 꽉 들어찬다. 가상현실에 접속하는 순간 가수면 상태에 빠지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집을 구하지 않고 접속방을 전전하기도 했다.

실제로 월세를 내는 것보다 이쪽이 더 쌌다. 때문에 접속방은 더욱 늘어나는 추세였다.

특히 샤워장과 아침을 제공하는 곳은 더욱 인기였다.  

'방을 정리하자.'

돈은 공장에 나가는 것이 더 쳐주지만 미련은 없었다.

자신을 배신했던 사람들이 일하는 공장에 다시 나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나중에 두고 보자.'

언젠가 돈을 벌어 성공한다면 꼭 복수해주겠다고 다짐하며 심후는 방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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