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뒤에는 수많은 유저들을 달고 달리며 앞에 나타나는 좀비들을 무찔렀다. '후후후, 그래. 계속 쫓아와라.
'도망치면서 마주친 좀비들을 보니 재미있는 생각이 하나 더 떠올랐다. '여기면 적당하겠지?'나타나는 좀비들의 수준이 점점 달라졌다.
초보가 상대하기에는 조금 버겁기는 하지만 뒤를 쫓는 무리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수십 명이 총을 쏴대니 좀비 몇 마리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래, 더 쫓아와.'
머신건으로 쉽게 죽일 수 없는 좀비들이 계속 나타났다. 이에 권총으로 무기를 바꾸고는 좀비들을 하나 둘 유인했다.
교묘하게 좀비들을 피해 도망치며 뒤를 쫓는 무리와 싸우게 만들었다. 유저들은 신이 났다.
뭉쳐서 총을 쏘니 그 효과가 정말 대단했다. 조그마한 파티라면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었다.
필드를 휩쓸고 다니는 것은 무척이나 즐거웠다.
"으하하하! 막타는 내가 먹었다!"
운이 좋은 사람은 강한 좀비를 죽이고는 돈을 벌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문제가 발생했다.
"어? 총알이."
신나게 총을 쏴댄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총알이 모두 떨어진 유저들 중 레벨이 20 이하인 유저들은 망설임 없이 멈추고는 근접 무기를 꺼냈다.
'더 따라 다녀봐야 시간 낭비.'
돌아가는 길도 아득했다. 총알도 없으니 좀비를 만나면 근접 무기로 싸워야 했다.
허나 근접 무기로 얼마나 상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너무 멀리 나왔기에 자신들이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을 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좀비와 싸우다 죽으면 바로 안전 구역으로 페널티 없이 이동할 수 있기에 망설임이 없었다. 초보들은 그렇게 하나 둘 무리에서 떨어져나갔다.
양떼 무리에서 떨어져나가는 길 잃은 어린 양처럼 떨어져 나갔다. 뒤돌아 가는 길에 만난 좀비에게 처참하게 죽음을 당했다.
수가 점점 줄어드는 것을 보며 심후는 미소 지었다.
'바보들.'
뒤에서 들리는 총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총소리가 상당히 줄어든 것으로 보아 전투 가능한 유저들은 반도 안 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이제 시작이다.
'길의 모퉁이를 도는 순간 심후는 좀비로 변신했다.
"어?"
심후를 쫓던 유저들은 모퉁이를 도는 순간 당황했다. 앞서 달리고 있어야 할 심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디 갔지?"
"속지 마요! 그 자식 변신했습니다!"
"아하!"
유저들은 바로 근처의 좀비들을 공격했다. 그러자 멀리 있던 좀비 하나가 후다닥 뛰는 게 보였다.
"저기 있다!"
유저들은 다시 뒤를 쫓기 시작했다.
좀비로 변신한 심후는 좀비들 사이를 여유롭게 지나칠 수 있었다. 좀비의 모습을 한 심후는 절대 선제공격을 받지 않았다.
뒤에 쉬지 않고 쫓아오는 유저들을 달고 계속 도망치던 심후는 확 트인 광장이 보이자 환하게 웃었다.
드넓은 광장은 좀비들로 바글거리고 있었다.
심후는 곧바로 광장의 좀비들 틈으로 섞여 들어갔다.
"어?"
뒤를 쫓던 유저들은 광장의 좀비들을 보고 당황했다.
심후를 구분해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하죠?"
"돌아가야죠. 저 놈들하고 싸우다가 죽을 것 같은데."
유저들이 많이 모여 있긴 했지만 반수 이상이 총알이 떨어졌다. 심후의 뒤를 쫓으며 신나게 쏴댄 탓에 금방 소모되었다.
"어쩔 수 없네요."
무엇보다 근방에서 만난 좀비들은 강했다. 허나, 쫓을 때는 마음대로 쫓아왔어도 돌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좀비들 사이에 숨었던 심후는 천천히 걸어서 근방의 외진 곳에 몸을 숨겼다.
'5분만 버티면 돼.'
변신을 해제하자 쿨타임이 시작되었다.
앞으로 5분이 지나야 스킬을 다시 사용할 수 있었다.
'노래 한 곡 들으면 되겠군.'
음악 실행 프로그램을 이용했다.
유저에게만 들리는 것이기에 음악이 흘러나와도 좀비들은 반응하지 않았다.
'돈을 얼마나 줄까?'
많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림잡아도 50명은 될 것 같았다. 그 중에 계속 총을 쏴댄 인간들이 반 정도 되니 25명 정도는 돈이 많은 인간들일 것 같았다.
'한 명이 1골드만 있어도 25골드. 머신건 든 녀석들은 한 5골드에서 10골드쯤 주려나?'
즐거운 상상을 하다 보니 5분은 훌쩍 지나갔다.'이제 내 차례다.
'숨은 곳에서 나오는 심후는 달리며 방아쇠를 당겼다.
광장에 울리는 한줄기 총성에 좀비들의 고개가 일제히 심후를 향했다.
"크어어어어엉!"
적을 발견한 좀비들은 함성을 지르며 일제히 심후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가자! 이놈들아!"
신이 나 외친 심후는 열심히 달리기 시작했다.
후퇴하며 안전구역으로 향하는 유저들은 흩어지지 않았다. 5분이 지났지만 아직 안전구역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상당히 먼 거리를 정신없이 쫓았기에 자신들이 얼마나 멀리 온지도 확인 못했었다.
원래는 달려서 돌아가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죽었던 좀비들이 다시 생성되며 길이 막혔기 때문이었다. 하는 수 없이 하나씩 제거하며 돌아가야만 했다.
좀비들을 상대하는 유저들의 얼굴은 조금씩 나빠졌다. 총알이 떨어진 유저들이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머신건을 든 9명만 남게 되자 유저들은 불안해졌다. 그때였다.
"저기요. 뭔 소리 안 들려요?"
"뭐가요?"
"좀비 소리요."
"앞에 있는데 왜 뒤에서 들려요."
뒤쪽에서 경계를 서던 유저의 말에 앞서가던 유저는 뒤돌아보았다. 앞에서 길을 뚫는 총성 때문에 소리를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허나, 얼마 지나지 않아 뒤돌아본 유저도 좀비들의 함성을 들을 수 있었다.
"이건!"
"뒤쪽에 좀비!"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눈치 챈 유저들은 당황했다. 영상에서 본 일이 있었다.
바로 몹몰이를 당한 좀비들이 내는 함성이었다.
"저기!"
얼마 지나지 않아 수많은 좀비를 뒤에 달고 달려오는 심후가 보였다.
"미친 새끼!"
가스통을 가득 실은 트럭으로 건물을 향해 돌진하는 테러리스트의 포스가 느껴졌다.
"저 놈부터 죽이죠!"
유저들은 죽지 않고 돌아가는 것을 포기했다.
심후를 내버려두면 좀비에게 휩쓸려 사망하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어차피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되니 심후라도 죽여야 덜 억울했다.
허나, 이들의 뜻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유저들이 자신을 향해 공격하려는 낌새를 느끼자마자 심후는 변신했다.
앞에서 변신하는 심후를 본 유저들의 안색은 일그러졌다. 좀비로 변신하자 달리기를 멈추고는 좀비들 뒤로 숨은 것이었다.
다행이라면 심후가 좀비로 변하자 뒤를 쫓던 좀비 무리가 일제히 멈췄다는 사실이었다.
"저 스킬 쿨 타임 있으니 다시 쫓아오긴 힘들 겁니다.
도플갱어의 육신이란 스킬에 대한 분석은 끝났다. 웬만한 유저들은 스킬의 약점을 다 알고 있었다.
게임 시작한지 1주일도 지나지 않았기에 플래티넘급 스킬의 숙련도가 높을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허나, 돌아가기 위해 다시 등을 돌린 순간 불행이 시작되었다.
좀비들 사이에 숨은 심후는 머신건을 꺼내들고는 달렸다. 유저들을 향해 일직선으로 달리는 것이 아닌 다른 길로 빙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측면을 잡고는 난사를 시작했다.
"컥! 저 새끼가!"
측면에서 기습을 당하자 몇몇 유저들이 맥없이 사망했다. 화난 유저들은 바로 심후를 뒤쫓았다.
이에 심후는 다시 좀비들의 품으로 돌아갔다.
"이!"
심후가 하는 짓의 의미를 깨달은 유저들은 이를 악물고 돌아서야만 했다.
게릴라전 형식으로 자신들을 유인해 잡으려는 수작이 눈에 훤히 보였다.
"앞으로 10분! 10분만 여기서 버팁시다!"
좀비무리와 거리를 두고 유저들은 버티기로 했다. 그러나 좀비들 사이에 숨은 심후는 쉬지 않고 다른 길로 움직여 다시 나타났다.
"여기 이대로 있으면 다 죽어요!"
사태를 파악한 유저들은 결국 도망치기로 했다. 스킬의 영향으로 좀비들의 공격을 받지 않는 상태의 심후와 싸운다는 것은 불리했다.
기습하고 도망치기를 반복하기에 잡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대로 계속 습격을 당하다가는 몰살 확정이었다.
유저들은 빠르게 뛰며 길을 뚫기 위해 달렸다. 그러나 심후는 뒤를 쫓으며 머신건을 갈겼다.
"하하하하하하하!"
광기에 찬 웃음소리가 총성과 함께 울려 퍼졌다.
"3명이 저 놈 상대해!"
머신건을 든 9명 중 한 명이 외치자 3명이 후방으로 돌아가 심후를 견제했다. 그러자 심후는 바로 도망치며 숨었다.
"젠장!"
10분 간 이어진 심후의 게릴라전에 사망자가 25명이나 되었다.
총알이 떨어진 이들이 반격하지도 못하고 죽은 것이었다.
"권총이라도 쏘세요!"
뒤늦게 견제할 사람들이 필요함을 깨닫고 머신건을 든 유저들은 무료로 받은 권총을 건넸다. 그러나 5분 후 다시 악몽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10명이 죽었다.
남은 15명은 서둘러 벗어나려 했다.
허나 심후는 좀비들을 몰고 이들이 가려는 길목에 좀비들을 채워놓았다.
"더 이상 못 갑니다!"
길을 꽉 메운 좀비들을 본 유저들은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어이없네."
허탈하고 기가 막힌 유저들은 화도 나지 않았다. 완벽하게 당한 것이었다.
이후 심후는 좀비들을 끌고 다니며 유저들의 길을 막고는 게릴라전을 펼쳐 마지막 한 명까지 잡아 죽였다.
"쓰레기 새끼! 게임 그따구로 하지 마라! 다음에 만나면 내가 너 꼭 잡는다!"
"응, 그래."
마지막 남은 유저는 그렇게 갔다.
"크크크크크."
뒤를 쫓던 유저들을 몰살 시킨 심후는 즐겁게 웃으며 다음 도시를 찾아 걷기 시작했다.
"쓰레기 새끼! 게임 그따구로 하지 마라! 다음에 만나면 내가 너 꼭 잡는다!"
"응, 그래."
마지막 남은 유저는 그렇게 갔다.
"크크크크크."
뒤를 쫓던 유저들을 몰살 시킨 심후는 즐겁게 웃으며 다음 도시를 찾아 걷기 시작했다.
거대한 체육관 안, 나무로 만들어진 바닥 위에 디뎌지는 하얀 발의 주인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타앗!"
맑고 고운 미성의 기합이 사방으로 퍼지며 몸이 떠올랐다.
도복을 입긴 했지만 폭발적인 움직임을 보일 때마다 출렁이는 가슴과 드러나는 둔부의 곡선은 남자를 시선을 잡아끌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체육관 안에 남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멋져요, 에린."
"그래?"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움직임을 보여주던 여자는 무공 수련을 마쳤다. 머리 뒤로 질끈 묶은 금발은 아름답게 찰랑거렸다.
커다란 푸른 눈동자는 순진함을 머금은 보석 같았다. 여자의 이름은 에린 브라운, 세계를 움직이는 경제 가문인 R 가문의 일원이었다.
에린의 어머니가 바로 R가문의 여인이었다. 어려서부터 관심을 이끈 투자 감각으로 인해 R가문에서는 에린을 다른 직계 후손들과 같이 소중하게 대했다.
비록 가문의 직계 후손과 같은 자리에서 가문을 이끄는 자리까지 올라갈 순 없지만 능력에 따라 얼마든지 대우를 받을 수는 있었다. 에린에게 다가간 메이드는 수건과 음료를 건네며 부러운 눈길을 보냈다.
아름다운 외모, 젊음, 여기에 평범한 사람을 뛰어넘는 지성과 가문의 후광까지 가졌다. 여기에 뛰어난 무공 실력까지 갖추었으니 에린이 부럽지 않을 수 없었다.
"고마워, 제니."
싱그러운 웃음을 짓는 에린의 모습에 제니는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같은 여자인데도 반할 것만 같았다.
'아아, 평생 모실게요.'
속으로 다짐을 하면서 제니는 에린의 뒤를 졸졸졸 따라다녔다.
샤워를 하고 자신의 방에 홀로 남게 된 에린은 옷을 훌훌 벗어던졌다.
하얀 나신은 신이 만든 예술이었다. 풍만한 가슴과 둔부를 잇는 몸통은 너무나 잘록해 버티지 못하고 부러지는 것은 아닐까 싶은 정도였다. 또한 탄탄한 허벅지와 단련된 복부는 건강함을 과시했다.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나신은 곧 기저귀로 인해 빛을 잃었다.
에린은 기저귀만 착용하고는 방 한 구석에 있는 가상현실접속기에 몸을 뉘였다.
곧 이어 가상현실에 접속하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새로 시작한 올라이프 50의 소식을 검색해보는 것이었다.
'음?'
게시판을 살펴보는데 상당한 조회수를 기록한 게시물이 있었다.
- 몹몰이는 범죄다. 상당히 간단한 제목과는 어울리지 않는 내용이 실려 있었다.
게시물에 실린 하나의 동영상, 그리고 밑에 실린 이야기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사고 있었다.
- 이런 놈은 잡아 죽여야 합니다.
과학 문명의 발전을 저해하는 아주 나쁜 놈입니다.
- 그래요! 죽입시다!
- 와아! 공적이다! 죽이자!
사람들은 흥분하며 복면인을 죽이자며 성토했다.
'설마?'
이후 관련 게시물을 찾아보니 몇 가지가 더 올라와 있었다. 과학 문명의 안전 구역 근처에서 심후의 복장을 따라했던 유저들이 PK 당했다는 이야기였다.
해당 유저들은 억울함을 성토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앞으로 죽기 싫으면 얼굴 가리지 말고 다니라는 소리만 들었다.
'호오?'
에린의 호기심은 계속 상승했다. 이어 심후의 영상을 계속 찾아보았다.
처음 제네시스 길드원들이 올린 글에 실린 것도 보았다. 홀로 돌아다니며 도플갱어의 육신을 써서 유저들을 농락하는 모습이 그대로 보였다.
'이거야! 아아! 내가 원하는 건 이거야!'
에린의 가슴은 콩닥거렸다. 거침없이 유저들을 향해 총을 난사하는 모습은 너무나 멋져보였다.
유저들을 피해 도망치면서도 다시 나타나 끈질기게 잡아 죽이는 집요함을 확인했을 땐 등골이 짜릿했다.
'나도! 나도 할 거야!'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유저들과 싸우는 모습은 에린의 안에 잠들고 있던 자유를 갈망하는 마음을 자극했다.
상류층의 일원으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규칙에 얽매인 삶을 살았었다. 어릴 때는 교육 받은 대로 살기만 했었다.
응당 그래야 하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명서 지켜야 할 것들이 많아질수록 마음속에 잠들었던 욕망은 더욱 커졌다. 가끔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치솟기는 했지만 그럴 때마다 가문을 생각했다.
그런 삶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기에 언제나 참아왔다. 삶이 그리 힘든 것도 아니었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자유는 가상현실로 느끼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화제가 된 심후의 플레이를 보니 잠들고 있던 욕망이 깨어났다. PK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직접 해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심후처럼 해본 적은 결단코 한 번도 없었다.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유저들을 서슴지 않고 적으로 돌리는 모습은 에린의 마음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왕 놀이 따윈 재미없어!'
에린은 무협 문명에서 키우던 캐릭터를 삭제했다. 같이 시작한 친구들과 적당히 노닥거리며 장난이나 하면서 시간 때우려던 마음은 사라졌다.
'싸우는 거야! 죽도록 싸우는 거야! 하하하하!'
올라이프 49의 캐릭터를 생성하고는 바로 아이템 거래 사이트에 들어갔다. 검색을 해보니 바로 뜨는 글들이 있었다.
- 도플갱어의 육신 스킬북 삽니다.
'경쟁자!'
아이템 거래 사이트에 뜬 것을 본 에린은 초조해졌다. 혹시나 경쟁자에게 스킬을 빼앗기게 될까 두려웠다.
빼앗기게 되면 그만큼 게임을 늦게 시작해야만 하기 때문이었다.
'제발! 제발! 경매로 올라와라 제발!'
초조한 마음으로 자신이 원하는 아이템이 올라오길 기다리길 2시간. 도플갱어의 육신이 경매 사이트에 올라왔다.
'앗싸!'
경매에 올라오자마자 에린은 최고가를 질러버렸다. 최고가가 무려 10만 달러였지만 망설이지 않았다.
최고가를 정하지 않았다면 경매 기간 동안 가격이 계속 올랐겠지만 최고가를 정해놓고 한 경매였기에 금방 끝났다.
'후후후후후!'
스킬은 바로 익히지 않았다.
어차피 올라이프 50에 가서 익혀야만 했다.
도플갱어의 육신 스킬을 지닌 에린의 캐릭터는 바로 50에서 새롭게 시작하게 되었다.
에린이 만든 캐릭터의 이름은 '스틸레토'였다. 올라이프 50에 접속하자마자 바로 도플갱어의 육신을 익혔다.
이어서 바로 머신건을 구입하고는 안전 구역을 벗어났다.
안전 구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좀비로 변신했다.
초보자들이 사냥하는 것이 보였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끼아아아아아!"
날카로운 기합을 내지르며 머신건을 갈겼다. 캐릭터를 통해 느껴지는 진동에 몸 한 구석이 흥건하게 젖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하하하하하!"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자신을 향해 욕을 하며 달려드는 유저들을 보니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래, 이런 게 필요했어! 싸우자고!'
R가문의 직계와 같은 대접을 받는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웬만한 사람들은 모두 굽실거렸다.
존재하는 것만으로 남들 위에 설 수 있다는 것은 우월감을 느끼게 해주지만 한 편으로는 고독한 일이기도 했다. 아무리 자존심 상하는 소리를 해도 상대들은 비굴한 모습을 보일 것이 뻔했다.
에린이 직접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주변의 다른 이들이 하는 행동을 보았기에 어렵지 않게 짐작이 가능했다.
친구라고 하지만 언제 배신 때릴지 모를 인간관계의 연속은 에린을 피곤하게 했다.
'그래! 불만이 있으면 덤비라고!'
솔직하게 덤벼드는 유저들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감정에 솔직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것인가?
정신과 행동이 일치하는 세상에 대한 즐거움에 에린은 잠시 방심했다.
"어?"
방심의 대가는 컸다. 유저들을 잡으며 레벨을 올리던 에린은 등 뒤에 나타난 유저들에 의해 사망했다.
안전 구역의 광장에서 부활한 에린은 어이가 없었다.
'어쩌다 당한 거지?'
다시 필드로 나갔다.
유저 사냥을 시작했다. 그러자 욕설이 들려왔다.
"아오! 어디서 이런 떨거지가!"
심후로 인해 도플갱어의 육신 스킬을 이용하는 유저가 급증했다.
게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이기에 많은 유저들은 레벨을 올려도 보너스 포인트를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과학 문명이고 초반에 만나는 적이 좀비이니 대부분 팀을 이루어 무기로 승부하고 있던 것이었다.
보너스 포인트는 후일 자신이 얻게 되는 스킬과 연계하기 위해 아끼려고 했다. 하지만 심후로 인해 그러한 계획은 틀어졌다.
플래티넘급 스킬인 도플갱어의 육신 스킬을 입수한 유저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처음 나타나는 이들의 약점은 바로 부족한 마력이었다. 때문에 대부분 민첩에 포인트를 투자하지 않고 움직이는 것을 깨달은 유저들은 어쩔 수 없이 민첩에 투자했다.
계속해서 방해를 받느니 차라리 잡겠다는 생각이었다.
무려 5번이나 사망한 후에야 에린은 변해버린 유저들의 성향을 파악했다.
'더 이상 안 되는 건가?'
같은 방법으로는 유저들을 상대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파악했다. 아무리 도망쳐도 자신보다 빠른 속도로 다가와 잡아버리니 초반에 심후가 보여준 플레이를 따라하는 것은 어려웠다. 하지만 에린은 포기하지 않았다.
'난 돈이 있어. 이럴 때 안 쓰면 언제 또 써?'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하는 게임이었다.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일반인의 1년치 봉급을 하루 만에 쓸 수 있는 재력을 보유한 사람이 바로 에린이었다.
열 받은 에린은 자신의 모든 보너스 포인트를 민첩에 투자했다.
'마력은 포션으로 해결하면 돼.'
아이템 거래 사이트에 접속해 10만 달러로 골드를 샀다.
하루도 안 돼 20만 달러를 썼지만 이 정도 썼다고 에린의 통장에 티가 나는 일은 없었다. 세계 최고의 부를 이룩한 가문의 일원이 바로 에린이었다.
그것도 투자 감각으로 인정받고 있는 사람이었다. 20만 달러 정도는 잠깐 투자하면 금방 벌어들일 수 있는 돈에 불과했다.
'감히 날 잡아?'
미소가 급격하게 썩어 들어갔다. 광기에 물든 에린은 다시 머신건을 사들고 안전구역을 벗어났다.
처음 산 머신건은 사망과 함께 떨어트렸다.
"싸우자!"
에린은 다시금 머신건을 들고 유저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유저들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여러 번 죽으면서도 지치지도 않게 계속 덤벼들었으니 또 나타나리라 예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더구나 광장에서 부활할 때 아예 옆에 붙어 다니며 감시했다.
안전 구역에서 못 잡으니 필드로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적당한 장소에서 변신 할 때까지 건드리지도 않았다. 변신했을 때 죽이면 유저들 또한 PK 카운트가 안 올라가기에 좋았다.
에린은 적당한 장소에서 변신하고는 유저들과 맞붙었다.
"왼쪽으로 돌아가!"
"이쪽은 오른쪽으로 간다!"
유저 무리는 에린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길을 돌아가서 포위망을 형성하려 했다. 하지만 에린은 이제 과거의 에린이 아니었다. 민첩에 올인한 에린의 속도는 어느 누구보다 빨랐다.
캐릭터를 만든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유저를 조금만 잡아도 레벨이 쑥쑥 올라갔다. 그럴 때마다 에린은 민첩에 모두 투자했다.
'10분!'
제한 시간이 다 되자 변신이 풀렸다. 그러자 유저들은 공격하지 않고 뒤를 쫓기만 했다.
'후훗! 변신했을 땐 안 잡겠다는 거지?'
PK 카운트가 올라간 상태로 안전 구역으로 가면 자동으로 감옥행이었다.
때문에 유저들은 차라리 에린이 변신할 때를 기다릴 뿐이었다. 허나, 이것이 유저들의 실수로 이어졌다.
권총을 꺼내든 에린은 도망치면서 좀비를 계속 끌어들였다. 심후가 쓴 방법을 응용하는 것이었다.
이어서 쿨타임이 끝나자 최하급 마력 포션을 마시고는 달리면서 변신했다. 에린은 마녀처럼 웃으며 유저들을 사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