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10/64)

즐거운 시간 보내셨으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후우."

가상현실접속기에서 나온 심후는 숨을 크게 내쉬었다.

'내가 몇 시간이나 게임을 한 거지?'

시계는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몇 시간이나 했는지 계산해보려 했지만 언제부터 게임을 시작했는지 기억이 없었다.

요리 공부를 좀 하다가 게임을 시작한 탓이었다. 냉장고를 열고 사과 쥬스를 꺼내 마셨다.

은은한 달콤함과 부드러운 사과향이 어우러지며 몸에 스며드는 기분이 되었다. 좋았다.

아무 때나 일어나도 괜찮다는 사실이 좋았다. 냉장고를 열었을 때 마시고 싶은 것이 있는 것도 좋았다.

세상을 좌우하는 갑부들에 비한다면 별 것 아니지만 나름대로 여유를 가지고 살 수 있는 현실은 만족스러웠다. 

'열 좀 받았겠지?'

게임 속에서 사냥했던 유저들을 떠올리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운 좋게도 한 유저를 잡았을 때 베이직 저격용 소총이 떨어졌다. 그것을 냉큼 주운 뒤에 무기 상점으로 달려가 가진 돈으로 저격용 소총의 탄약을 전부 구입했다.

이후 벌어진 것은 일방적인 사냥일 뿐이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확실하게 저격을 해주니 상대는 속수무책이었다.

심후를 잡기 위해 가까이 접근하면 다른 몬스터들을 상대해야만 했다. 여럿이 함께 덤벼들었지만 가까이 접근하는 동안 하나씩 확실하게 처리하는 것은 물론 조금만 불리해지면 다른 몬스터들을 향해 도망쳤다.

확실하게 스킬의 쿨타임을 계산하며 행한 덕분에 위험에 빠지는 일은 없었다. 

'밥이나 먹자.'

게임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는 주방으로 향했다.

이제 처음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기에 부족한 것도 많고 힘들기도 했지만 요리를 피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늘은 카레를 해볼까?'

그냥 봤을 때는 어려워 보였지만 자세히 과정을 살펴보면 그리 어려울 것이 없는 요리였다.

적당히 썰어서 익히다가 끓이는 것이 전부로 보였다.

심후는 콧노래를 부르며 재료를 다듬었다.

고기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서 익히고는 감자와 당근 등 카레에 넣을 야채를 적당히 썰어 넣었다. 레시피를 철저히 따른 조리였다.

'맛있다.'

다 조리된 카레를 밥 위에 뿌려서 비벼 먹으니 감칠맛이 샘솟았다.

딱히 자신이 만들었기에 맛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 맛있는 것이라고 심후는 생각했다. 그 증거로 세 번이나 밥을 더 퍼먹었다.

접시는 깨끗이 비워졌다. 카레가 많이 남아서 더 먹고 싶었지만 배가 꽉 차서 무리였다.

즐겁게 놀고 배도 부르게 되니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별 생각 없이 티브이를 틀고 채널을 돌리기 시작하다 한 채널에서 우뚝 멈췄다.

"오늘도 먹어봐! 자! 오늘의 주제는 뭡니까?"

"주제요? 제 주제에 무슨 주제요?"

빼빼마른 게스트의 반문에 메인 진행자인 한포식이 삐딱한 눈을 뜨는 것이 보였다. 

'호오, 또 무슨 짓을 하려나?'

배꼽이 빠질 정도로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흥미가 생긴 심후는 채널을 고정했다.

'먹어봐!'

의 메인 진행자, 한포식은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시청률을 다시 올릴 수 있을까? 사람들이 새로운 자극에 취하게 만들까? 고민하는데 에너지를 너무 쏟아부어 허기가 졌을 때 먹었던 떡볶이 5인분은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자극. 맵다. 배부르다. 하지만 맵지 않다면? 맛이 좋다면? 반전이 있으면 어떨까? 내가 무슨 생각하는 거지? 여긴 어디? 우주인가? 나는 블랙홀인가? 음식을 빨아들이는 어둠이다.

'인간의 생각이란 것은 그다지 깔끔한 것이 아니다. 특히 한포식의 경우에는 상당히 난잡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남들과는 다르게 생각하는 것도 가능했다.

엽기적인 먹는 방송을 생각해낸 것도 바로 난잡한 사고방식 덕분이었다.'나는 천재다. 하지만 도전을 즐기지. 그래, 내가 왕이다.

나는 돈이 좋아. 사람들도 좋아해. 돈 싫은 인간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내가 절에 보내서 머리를 박박 밀어야지. 그리고 문어랑 나란히 진열하면 시청률이 오를까? 문어가 두 개면 두더지 뿅망치 오락기계가 딱인데. 뿅뿅뿅. 게임이 하고 싶다. 먹는 방송으로! 그래! 게임! 먹어봐 게임! 대결이 아닌 게임이다!'

"즐기는 거야! 아싸!"

포식은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피디에게 어필했다.

"한 번 해보자고. 안 되면 포식씨만 방송 그만 두면 되지."

피디는 농담을 던지며 웃어주었다. 이후 다른 고정 출연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짜냈다.

'먹어봐 요리게임'의 탄생이었다.

"오늘도 먹어봐! 자! 오늘의 주제는 뭡니까?"

"주제요? 제 주제에 무슨 주제요?"

"에헤이! 이거 알만 한 사람이 그러지 말고!"

언제 봐도 어색한 개그였다. 무리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이지만 그게 또 한포식의 캐릭터였다.

그의 개그는 언제나 오버의 향연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매번 안 웃기다가 가끔 한 번씩 빵 터트려주었다. 다른 사람들은 '로또 개그'라고 칭하기도 했다.

웃기면 좋고 아님 말고 식이란 소리였다. 

"안 웃겨요! 빨리 진행해요!"

한 여성 출연자의 고성에 빼빼마른 남자는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시청자 여러분.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이게 아니라 오늘부터 시작하는 요리게임! 먹어봐 요리게임을 시작하겠습니다!"

"요리게임라고요? 먹는 걸로 게임합니까?"

"네!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출연자들의 대결뿐만이 아니라 게임도 합니다!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시스템이죠! 일단! 광고 보고 돌아오죠! 채널 고정 하세요!"

"컷! 잠깐 쉬겠습니다!"

피디의 사인이 나오자 출연자들은 축 늘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활발하게 말하던 분위기와는 영 딴판이었다.

"형, 이거 정말 잘 될까?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될 거 같은데."

빼빼마른 남자, 당면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아까 얘기 해놓고 또 딴 소리냐? 넌 그게 문제야. 왜 이렇게 오락가락해?"

"아니, 일단 다른 시도를 해야 하는 건 공감하니까 찬성을 하긴 했는데 영 아닌 거 같아서. 불안하잖아."

"나만 믿어. 이 프로가 누구 덕에 여기까지 왔냐?"

"당연히 형 아이디어 덕분이지."

인터넷 방송국이라고는 해도 방송 작가가 존재했고 피디가 있었다.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은 이들의 몫이었다. 하지만 '먹어봐'는 포식이 아이디어를 내서 이끌어온 프로그램이었다.

프로그램 자체가 워낙 엽기적인 내용이기에 다른 사람들은 거의 포기 상태였고 계속 포식에게 의존하는 형태였다. 괜히 끼어들어서 건드렸다가 망해버리면 책임을 져야 하기에 기피하는 것이었다.

"그래, 나만 믿어라. 그럼 언젠가 우린 정규 방송보다 더 인기를 끌어서 다 돈방석에 앉게 될 거야."

"그랬으면 좋겠어. 그런데 형."

"응?"

"나 예명 바꾸면 안 돼? 당면이 뭐야. 당면이."

당면은 불만을 호소했다. '먹어봐'를 시작하면서 포식과 함께 시작한 당면의 본명은 원래 따로 있었다. 하지만 포식은 이름을 바꿔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평범한 이름으로는 시청자들의 기억에 남기 힘들다는 것이 이유였다. 뭔가 특이하고 외우기 쉬운 예명으로 활동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면이 어때서? 알기 쉽잖아. 나중에 당면하면 잡채 만드는데 쓰는 당면이 아닌 네 얼굴이 떠오를 정도로 유명해지면 되는 거야. 그리고 당면 얼마나 좋냐.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요리 재료잖아. 넌 그냥 홍보되는 거야 임마."

"그래도 그렇지. 허구한 날 잡채 같은 놈이라고 놀림 받는데 이건 뭐."

"참아라. 우리가 돈 버는 게 그렇지. 그냥 웃어. 폼 잡아가면서 어느 세월에 유명해져서 돈 버냐? 그리고 나도 바꿨잖아."

"포식이는 귀엽기나 하지."

"크크크. 억울하면 네가 메인 해라."

"됐네요. 하여간 난 형만 믿는다. 딸랑딸랑."

"그래."

허허 웃으며 자신을 따르는 당면의 애교를 받아주는 포식의 마음속에는 식은땀이 줄줄 흘러 강이 생겼다. 포식도 성공은 자신 없었다.

어쩌다 내놓은 아이디어 하나가 자신의 캐릭터와 겹쳐지며 대박을 쳤었다. 그때 방송국에서 전권을 위임받기까지 했다.

작은 인터넷 방송국이기에 포식을 잡기위해 전권을 내준 것이었다. 피디를 능가하는 권력이란 정말 달콤했다. 하지만 권력이 생긴 만큼 의무도 따르기 마련, 시청률 하락과 함께 점점 강도가 강해지는 압박에 악몽까지 꿀 정도였다.

'꼭 성공해야 해!'

포식은 이를 악물었다. 절대 실패할 순 없었다.

"5! 4! 3! 2!"

"우와오! 언제 시작했데? 피디님 방금 놀란 거 편집 오케이?"

과장된 몸짓으로 놀란 표정을 짓는 모습은 조금 전까지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과장이 너무 심해 가식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행동과 말투였다.

"당면씨! 잡채로 만들기 전에 빨리 게임 설명을!"

덩치 큰 출연자가 뒤에서 당면을 재촉했다. 그러자 당면은 인상을 찡그리며 고정 출연자 중 한 명인 덩치 큰 남자를 보며 외쳤다.

"입 다물라! 소고기! 내가 잡채가 되면 넌 무사할 줄 아냐!"

"두 분 싸우지 마세요. 자꾸 싸우면 잡채랑 스테이크로 만들 테니까."

"쳇! 요리게임! 빨리 설명 보다는 한 번 보여주는 것이 더 빠르죠. 말보다 행동하는 당면이 여러분께 보여드리겠습니다!"

이후 당면은 포식, 그리고 소고기라는 예명을 가진 남자와 함께 조리대 앞에 섰다.

"게임의 룰은 간단합니다. 요리를 하면 되죠."

"네? 그게 무슨 말인가요?"

"그게 답니다. 요리를 하면 됩니다."

"그게 무슨 게임이에요? 네? 이거 사기 아닙니까?"

"아닙니다. 사기 아닙니다. 요리를 하면 됩니다. 단!"

"단?"

"게임을 통해 식재료와 조리 방법이 정해집니다. 참가자는 최대한 자신의 솜씨를 발휘해 만들면 됩니다."

"그러니까 게임을 통해 식재료를 정하고 요리 방법까지 정해진다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요리의 질은 참가자가 얼마나 노력을 했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죠."

"그럼 만든 요리는 심사합니까?"

"물론입니다. 심사해서 이기면 상금이! 지면 벌칙이 주어집니다."

"잠깐잠깐잠깐!"

포식과 당면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소고기가 끼어들었다.

"왜 그러세요?"

"난 이 게임 반대합니다."

"아니 왜요?"

"제발 살려주세요."

덩치 큰 소고기는 그대로 무릎을 꿇고는 절을 하며 애원했다.

"저 살 빠진 거 보이죠? 이대로 이상한 음식 계속 먹다가는 병원에 입원할 거 같아요."

"어허! 이 사람이!"

"고기 오빠! 왜 약한 모습 보이고 그래요!"

다른 출연자들이 야유를 퍼부었으나 소고기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럼 하다못해 외부인을 섭외해주세요."

"외부인이요?"

"네, 전문 요리사로요. 그 사람들이라면 그래도 뭔가 먹을 만한 것으로 만들거 아닙니까? 여러분! 어때요?"

"어? 좋은 생각이네?"

"좋아요!"

심사위원을 맡을 출연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찬성했다. 

"좋습니다! 그럼 오늘은 시범 경기로 한 게임만 하고 홈페이지에 공지 올릴테니 시청자 여러분! 관심 있으면 참가 신청 해주세요!"

이후 룰렛을 돌려가며 요리 제목을 정하고 씨름과 각종 미니 게임으로 식재료 쟁탈전을 벌이며 방송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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