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 (13/64)

강렬한 경험이었다. 뒤돌아보려는 순간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돌고 도는 세상 속에서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누는 적의 모습이 보였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싸워야 했다. 싸워서 이기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의 존재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희열을 느끼고 싶었다.

몸이 땅에 닿는 순간 정신을 집중했다. 한 번도 해본 적 없을 정도로 무섭게 집중하자 수많은 정보가 순식간에 뇌로 전달되었다.

눈앞에 휘날리는 먼지 알갱이마저 보일 지경이었다. 

'반격해야 해!'

의지가 일어나기도 전에 무의식은 서브머신건을 들어 방아쇠를 당기려 했다. 하지만.

"잘 가라.

말 한 마디와 함께 모든 것이 검게 물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광장이었다.

"후후후후후."

웃음이 나왔다. 정말 만만치 않은 놈이라고 에린은 생각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몸은 이미 달리고 있었다. 

'이번에야 말로!'

최고였다.

적이 강하다는 것을 확인하니 더욱 즐거웠다. 강한 존재를 극복하고 이겨낸 순간에 느껴질 쾌감을 떠올리니 심장이 콩닥거렸다.

심후는 또 다시 옥상까지 달려온 에린을 상대해주었다. 문을 사이에 두고 공방을 벌이다 옥상에 있는 엄폐물 뒤에 몸을 숨기는 과정까지 똑같이 반복했다. 하지만 에린은 처음과 달리 달려들지 않았다.

'어떻게 그 순간에 빠져 나가 뒤로 돌아온 걸까?'

심후가 자신의 뒤를 잡은 과정을 유추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엄폐물의 왼쪽으로 접근할 때 반대편으로 빠져나가 엄폐물을 돌아 뒤로 접근하면 되는 문제였다.

'단순히 운이 좋았던 걸까?'

엄폐물을 자세히 살핀 결과 어디에도 탐색하고 있는 기색은 없었다. 거울은커녕 유리 조각 같은 것도 주변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그때 보이는 것이 있었다. 기다란 그림자였다. 

'저거였나?'

옆으로 조금 움직이니 긴 그림자도 따라 움직였다.

뒷걸음질 치니 그림자가 따라왔다. 엄폐물 뒤쪽에 보이지 않도록 그림자를 물리니 심후가 고개를 슬쩍 내미는 것이 보였다.

수수께끼는 풀렸다. 이제 공략하는 일만 남았다. 

'다가가면 그림자 때문에 반대로 돌아 나오겠지. 그땔 노리면 돼.'

서브 머신건을 꺼내들었다.

심후에게 당하며 하나 떨어트렸지만 여분이 있었기에 양손에 하나씩 드는 것은 문제없었다.

에린은 멧돼지처럼 달렸다.

길고 긴 그림자가 앞으로 쭉 뻗어나가며 상대에게 존재를 알리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엄폐물 근처에 도달했을 때 갑자기 급정거를 하며 몸을 틀었다. 그 순간 심후와 눈이 마주쳤다.

반대쪽으로 돌아 나오며 에린을 살피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서브 머신건을 들어 방아쇠를 당겨주었다.

공기를 뚫고 반가움을 담은 총탄이 무수히 날아갔다. 심후가 몸을 숙여 다시 엄폐물 뒤로 숨는 것을 보았다.

이번에는 엄폐물 위로 뛰어 올랐다. 그리고 한 걸음 내딛으며 한쪽 방향으로 돌고 있는 심후를 보았다. 그때 심후도 에린의 위치는 눈치 챘는지 몸을 돌리는 것이 보였다.

'느려!'

자신의 승리를 자신하며 에린은 방아쇠를 당기려했다. 그 순간 심후가 들고 있던 저격용 소총이 불을 뿜었다.

가까운 거리이기에 정밀한 조준 따위가 없어도 맞추는 것이 가능했다.

왼쪽 어깨를 맞는 순간 몸이 돌아갔다.

그때 노리쇠가 움직이며 총알이 장전되는 소리가 들렸다. 에린은 반격하기 위해 오른손에 든 서브 머신건으로 심후를 공격했다.

허나 몇 발 심후의 몸에 적중 시키는 순간 몸이 반대편으로 돌아가 등을 보이게 됐다. 저격용 소총의 파괴력이 몸을 회전시키고 있는 탓에 오래 조준하고 있는 것이 불가능했다.

'왼손으로!'

등을 보이며 한쪽으로 돌아가고 있는 상황, 에린은 왼손을 뒤로 향하며 보지도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울린 총성에 앞으로 고꾸라졌다. 정확히 뒤통수에 총알이 박힌 것이었다.

'아직 안 죽었어!'

에린은 몸을 뒤집으며 변신을 해제했다. PK 카운트를 올리기 싫어하는 유저라면 잠깐이나마 주저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심후는 평범한 유저가 아니었다.

몸을 뒤집어 공격을 하려는 순간 심후의 몸이 처음 보는 좀비로 변하는 것을 보았다. 이후 총성이 울리더니 사망 판정이 떴다.

'나와 같은 스킬을 익히고 있었어.'

광장에서 다시 부활한 에린은 심후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다 웃었다.

'그래, 그 사람이었어.'

이름도 얼굴도 알 수 없었지만 추측결과 에린은 최초로 도플갱어의 육신 스킬을 사용해 난동을 부린 유저라고 판단했다.

'무기도 여기선 구할 수 없는 거고. 비정상적일 정도로 다른 민첩 같은 것은 안올리고 다른 것에 투자한 것도 그렇고.'

만나보고 싶은 사람과 싸워봤다고 생각하자 참을 수 없었다. 에린은 또 다시 달렸다.

이날, 에린은 총 7번 죽음을 맞이했다. 심후가 도중에 로그아웃하지만 않았어도 사망 숫자는 더 늘어날 수 있었다.

'끈질기네.'

가상현실접속기에서 기어 나온 심후는 샤워를 하며 계속해서 덤벼들던 에린에 대해 생각했다. 에린이 계속 덤벼준 덕분에 상당히 많은 골드를 얻었다.

더불어 서브 머신건도 여러 개 챙겼다. 당분간 돈 걱정 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기분이 좋은 상태에서 뜨거운 물에 샤워까지 하고 나니 날아갈 것만 같았다.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크아! 좋다."

샤워 후에 마시는 시원하게 사과 쥬스를 마시니 기분이 상쾌했다.

몸에서 사과향이 풍길 것만 같았다. 

'많이 컸네.'

전신 거울 앞에 서서 몸을 살폈다.

키가 자라 있었다. 모두 가상현실접속기와 뇌전공 덕분이었다.

심후가 가상현실접속기 속에서 게임을 하는 동안 몸은 꾸준히 무공을 자동으로 익히고 있었다. 그 결과 키가 자란 상태였다. 또한 몸의 근육들의 능력도 향상 되어 있었다.

'앞으로 조금만 더.'

무공 수련 프로그램에 의하면 앞으로 조금만 더 하면 성장이 멈춘다고 했다. 길쭉한 몸은 표범처럼 날렵하면서도 힘이 넘쳐보였다.

샤워를 금방 끝낸 피부는 어린아이의 피부처럼 부드럽게 빛을 머금었다. 과거, 종우를 만나기 전의 모습과는 천차만별이었다.

'좋아, 좋다고.'

변한 모습에 거부감 같은 것은 없었다. 강하고 아름다운 육체를 가지게 된 지금이 오히려 더 행복하다고 느껴졌다.

모든 것은 순조로웠다. 이제 적당한 직업을 얻고 돈과 명성을 함께 거머쥘 차례였다.

'돈이 있으면 복수는 식은 죽 먹기다.'

직접 나서서 괴롭힐 필요도 없었다.

게임 속에서는 물론 현실에서도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었다. 전문가에게 의뢰하면 그만이었다.

복수는 정보를 얻은 이후에 자세히 계획을 세우면 되는 문제였다. 또한 자신의 돈을 떼먹고 도망친 친구를 찾는 것도 쉬웠다.

다만 가장 어려운 복수는 바로 부모에 대한 것이었다.

'이건 나중에 생각하자.'

이혼하면서 자신을 버린 부모를 생각하면 머리가 어지러웠다. 앞서가는 생각에 좋았던 기분이 금방 식었다.

"아! 배고프다!"

울적한 기분을 털어내기 위해 일부러 큰 소리를 냈다. 전화기를 들어 치킨과 중화요리를 동시에 주문했다.

바삭한 치킨과 오랜 전통 중화요리인 짜장면이 도착했다. 짜장은 바로 비볐다.

짜장과 면이 뒤섞이자 입 안에 군침이 돌았다. 입 안 가득 면을 흡입하면서 느껴지는 촉감은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여기에 보는 것만으로도 바삭한 튀김옷을 입은 닭다리를 뜯어 먹으니 즐거움은 배가 되었다. 행복했다.

다른 말은 필요 없었다.

요리란 것은 정말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가장 쉬운 수단이었다.

살기 위해선 먹어야 한다. 그리고 기왕 살 거라면 조금 더 즐겁게 살고 싶다. 그래서 좀 더 맛있는 것을 먹는다. 요리사가 된다면 행복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식사를 마치고 빈 그릇을 보면서 심후는 그렇게 생각했다. 복수도 복수지만 일단 먹고 살자. 즐겁게 살자고. 무공으로 인해 변해가는 몸이 가진 가능성은 무궁무진했다.

감각이 예전보다 더 발달했다. 기억력이 향상했다. 학습 능력이 좋아졌다.

뿐만 아니라 집중력도 좋아졌다. 더구나 예기치 못한 능력도 하나 생겨났다.

포토그래픽 메모리. 순간 기억능력이 생겼다.

집중한 상태에서 본 것을 있는 그대로 기억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눈을 감고 떠올리면 그대로 보였다.

능력을 제대로 쓰기만 하면 성공은 식은 죽 먹기였다. 하지만 모든 능력을 전부 내보일 생각은 없었다. 홀로 감당하기 힘든 보물을 가졌으니 다른 사람들이 보물을 가졌다는 것을 절대 알게 해서는 안 되었다.

아직은 별 다른 힘이 없는 존재였기에 조심해야만 했다.'천천히 가자. 시간은 내 편이다.

'조급해지려는 마음을 다독이며 심후는 닭 가슴살을 집었다. 바삭한 튀김옷이 손이 닿자 부스러졌다.

치킨과 함께 배달된 여러 가지 소스를 보다 토마토소스에 찍어 입 안 가득 베어 물었다. 새콤달콤한 양념과 바삭함, 그리고 닭고기의 촉감이 뇌를 자극했다.

'좋다.'

행복했다. 먹는 것은 진정으로 행복한 일이었다.

조급해지려는 마음을 다독이며 심후는 닭 가슴살을 집었다. 바삭한 튀김옷이 손이 닿자 부스러졌다.

치킨과 함께 배달된 여러 가지 소스를 보다 토마토소스에 찍어 입 안 가득 베어 물었다. 새콤달콤한 양념과 바삭함, 그리고 닭고기의 촉감이 뇌를 자극했다.

'좋다.'

행복했다. 먹는 것은 진정으로 행복한 일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