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스틱 치킨~
"이 사람 어때요?"
"음......."
포식은 신청자들의 참가신청을 살펴보는 중이었다. 그럭저럭 인기가 있는 프로그램이긴 하지만 제대로 된 지원자는 없었다.
제대로 된 요리사들은 모두 기피하고 있다고 봐야했다. 음식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 시킬 수 있는 실력을 가진 이들에게 요리를 가지고 장난을 치는 포식의 프로는 어찌 보면 모욕이었다.
- 저는 전문 요리인이 되고 싶은 요리사 지망생입니다. 하루 만에 계란 프라이를 마스터했으며 다음에는 단계를 뛰어넘어 카레를 완성했습니다.
처음 카레를 완성했을 때는 3접시를 먹었습니다. 처음 만드는 요리라도 제 손을 거치면 먹을 만한 것이 된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제 실력을 '먹어봐'에서 시험해보고 싶습니다. 재미와 시청률을 보장합니다.
절 뽑지 않으면 프로그램 망합니다. 지금 이 글을 복사해서 다른 세 명에게 올리지 않으면 직장에서 짤립니다.
"어?"
심후의 참가 신청을 읽는 순간 포식의 머릿속에선 전구가 깜빡 거렸다. 아이디어의 전구가 정신없이 깜빡이는 동안 포식은 서둘러 참가자 프로필을 살폈다.
"이 사람이야! 당장 연락하죠! 꼭 잡아야 합니다!"
장난이라고 할 수 있는 참가 신청이었다. 그러나 포식의 머리는 맹렬히 회전하며 어떻게 하면 심후를 써먹을 수 있을까 궁리하기 시작했다.
"흐흐흐,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고 요렇게 하면......."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중얼거리는 모습을 보자 피디는 얼른 사람을 시켜 심후를 섭외하도록 했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포식이 자신만의 세계에 빠진 아이디어를 쓴 경우 최소한 손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번에도 대박이 날까?'
피디는 여전히 자신의 세계에 빠져 있는 포식을 보며 한줄기 기대를 품었다.
에린을 여러 차례 잡으며 돈을 많이 벌게 된 심후는 차츰 게임하는 시간을 줄여나갔다. 게임이 재미있기는 했지만 오래 하다 보니 살짝 질리는 감이 있었다.
특히, 에린을 계속 잡으며 돈을 많이 벌게 되니 흥미가 떨어졌다. 때문에 잠시 휴식을 취하며 다른 일에 몰두하기로 결정했다.
아무리 재미있는 게임이라도 계속하다보면 질리기 마련이었다. 이후 무공을 익히며 심공론을 공부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이 잔뜩 있었지만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렇게 일주일의 시간이 흐르자 심후의 성장이 멈추었다. 뇌전공은 아직도 계속 익혀야 하지만 성장은 기대할 수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185센티미터 정도면 충분하지.'
키도 컸고 몸도 더 멋있어졌다. 특히 다리가 더 길어져서 모델과 같은 분위기가 솔솔 풍겼다.
피부 아래 드러난 잔근육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콧노래가 절로 흘러나왔다.
기분이 좋아서 이번에는 직접 로스트비프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금방 구운 빵에 마요네즈를 바르고 얇게 썬 로스트비프와 치즈를 번갈아 쌓아올린 샌드위치였다.
커다란 샌드위치를 들고 한 입 베어 물자 치즈와 로스트비프, 그리고 빵이 입안에 가득 찼다. 씹으면 씹을수록 입안에 퍼지는 감칠맛은 턱을 더욱 빠르게 움직이게 했다.
턱은 분주히 움직이며 샌드위치를 분쇄했다. 목구멍을 타고 샌드위치가 넘어가니 사라진 식감으로 인해 혀는 허전하다고 아우성이었다.
때문에 먹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부드러운 치즈와 로스트비프가 잘게 조각나며 혀를 감싸니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으음!"
기분 좋은 신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영원히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영원히 이어지기엔 샌드위치는 너무 작았다. 몇 번 먹으니 금방 손이 비었다.
"아."
빈손은 아쉬움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눈은 아쉬워하지 않고 계속 주변을 탐색했다. 남아있는 빵, 로스트비프, 치즈, 그리고 마요네즈가 확인되었다.
식재료를 확인한 뒤에는 자동이었다. 생각보다 더 빠른 식욕은 샌드위치를 만들어 입에 넣게 했다.
허겁지겁 먹으며 샌드위치를 다 먹으면 또 다시 만들어 먹었다. 로스트비프와 치즈가 다 떨어졌을 때는 빵에다 마요네즈만 발라서 먹었다.
결국 마지막에 남은 것은 마요네즈뿐이었다.
"쩝."
상당히 많은 양을 먹었음에도 아쉬웠다.
한 줄의 식빵과 한 덩이의 로스트비프, 그리고 치즈가 전부 소모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30분이었다. '더 먹고 싶다.
'일반인에 비하면 상당히 많은 양을 먹은 것이지만 심후는 부족함을 느꼈다. 외출이 필요했다.
로스트비프 샌드위치의 감동을 다시 맛보기 위해선 식재료 조달은 필수였다. 심후는 달렸다.
식재료가 진열된 마트를 향해 심장이 터지도록 달렸다. 심장은 첫 데이트를 할 때보다 더 두근거렸다.
마트에 들어서자 온갖 식재료들이 자신의 맛스러움을 뽐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로스트비프는 포장된 것으로 5킬로그램이나 사버렸다.
모짜렐라 치즈도 사고 식빵도 종류별로 하나씩 샀다. 전화가 걸려온 것은 그때였다.
"네? 만나자고요?"
프로그램 출연자로 선정 되었으니 만나서 계약을 하자는 얘기였다. 식욕이 사라졌다.
식재료는 사지 않고 그냥 걸어 나왔다. 나중에 마트 직원이 투덜거렸지만 불만을 들어야 할 심후는 이미 떠난 뒤였다.
방송국은 서울에 있어 꽤 거리가 있었으나 심후는 찾아가는 동안 지루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별 생각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
정규 방송에 비해 인지도가 낮은 인터넷 방송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방송이었다. 전혀 다른 세계에 살던 사람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방송이라는 세계 속의 인물과 만나는 것은 물론 같이 일하게 된다니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한심후씨?"
피디는 심후를 보자마자 멍한 표정을 지었다.
큰 키에 빛나는 피부, 균형 잡힌 몸매는 사람의 시선을 잡아끄는 마력이 있었다. 피디로 일하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을 봐왔기 때문에 그냥 보기만 해도 상대가 카메라에 어떤 식으로 나올지 감이 왔다.
심후는 소위 스타들에게서나 느껴지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단정하고 조용하면서도 날카로운 이미지. 또한 어딘지 모르게 야수와 같은 분위기도 은밀하게 풍겼다.
'화난 표정을 지으면 참 볼만하겠는데?'
화려한 꽃미남 같은 스타가 있는가 하면 강렬한 이미지를 가진 스타도 있었다. 스타란 모름지기 자신만의 개성을 갖고 있는 법이었다. 그러한 분위기를 가지지 못했거나 이미지를 형성하지 못하면 사람들의 기억에 남기 어려운 것이 바로 방송계였다.
기억에 남을 수 없다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이거 잘 되겠는데?'
좋은 예감이 들자 심후가 더욱 반가워진 피디는 손을 꼭 잡았다.
한편, 심후는 피디가 손을 잡고 웃으면서 놓질 않자 오해했다.
'설마?'
남자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는데 초면에 너무 친근하게 구니 무척 부담스러웠다.
"어? 누구?"
부담스러운 악수로부터 구해준 것은 포식이었다.
"이쪽은 한심후씨."
"이야! 반갑습니다. 이거 정말 느낌 좋은데요? 우리 앞으로 잘해보죠."
"잘 부탁드립니다."
계약건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심후가 달리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시간 조율도 편했다.
출연료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방송국 측에서 모든 식비와 차비를 부담한다는 조건이었다. 이미 종우에게 받은 생활비가 있기에 돈이 급하지 않은 심후는 순순히 계약에 응했다.
'유명해지면 돈은 알아서 굴러 들어온다.'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돈이 적다고 투덜거려봐야 좋지 않은 인상만 남을 뿐이었다. 또한 연예인 지망생들은 스스로 로비를 하면서 방송 출연 기회를 잡으려고 안간힘이었다.
만약 포식의 '먹어봐'가 괴상한 컨셉의 방송만 아니었어도 참가 신청자가 넘쳐났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게임은 방송에 나온 그대로 계속 하는 겁니까?"
심후의 질문에 포식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게임은 더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얼마든지 바꿀 겁니다.
뭔가 생각하신 거라도?"
"네, 룰렛으로만 하는 건 좀 단조로운 느낌이니 여러 가지 게임을 곁들이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렇긴 하지만 너무 게임에 집중하면 요리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게 됩니다. 프로의 핵심은 바로 요리니까 여기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잘못하면 이도저도 아닌 프로가 돼서 그나마 있던 시청자들까지 잃게 되니까요."
'별 거 아닌 거 같아도 대충 방송을 만드는 건 아니네.'
"심후씨는 요리사지망생이라고 하셨죠?"
포식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빠져있는데 피디가 질문을 던졌다.
"네."
"그럼 이건 어떨까요? 요리게임 외에도 심후씨가 식당에서 요리 수업을 받는 모습을 찍는 겁니다."
"기왕 하는 거면 하는 척하는 게 아니라 정말 식당에 취직하는 건 어떨까요?"
심후는 농담을 던졌다. 그러나 그것을 덥석 문 사람이 있었다.
"오오! 그거 좋네요. 리얼! 진짜로 일하는 모습을 담는 겁니다. 몰래 카메라 형식으로."
"그거 그냥 일만하니까 재미없을 거 같은데."
피디가 말렸으나 포식은 막무가내였다.
"아니에요. 어차피 짧게 나가는 거니까 찍다보면 좀 건질게 있죠. 정 뭐하면 일 끝나고 인터뷰 형식으로 해도 되고 그날 배운 요리가 뭔지. 뭘 연습했는지 찍어도 되니까요. 사장님 인터뷰를 해도 되고 다른 사람들 인터뷰도 있고."
"그거 그냥 식당 사람들 얘기잖아요."
"그러니까! 그 갭이 좋다는 겁니다. 우리 프로 뭡니까? 엽기 요리가 테마잖아요. 방송 내내 미친 요리를 만들고 먹고 쓰러지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마지막에 반전으로 쨘! 하면 사람들이
'오?'
할 겁니다."
"반전 치고는 너무 약한데요?"
"그럼 애피타이저로!"
심후의 방송 분량이 늘어나는 소리였다. 나쁠 것이 하나도 없기에 심후는 순순히 응했다.
"그런데 남자 하나만 하면 좀 그러니까. 여자도 한 명 하죠? 아니면 경쟁자! 라이벌을 넣던가!"
피디의 말에 포식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빨리 끄덕여서 턱살만 출렁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이야기는 정말 순조롭게 이어졌다. 심후는 며칠 후 촬영을 위해 나오라는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왔다.
같은 시작, 에린은 심후가 게임에 들어오지 않자 답답함을 느꼈다. 심후와 싸운 이후로는 다른 유저와 싸우는 것은 그다지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치열하게 상대의 수를 읽어가며 싸웠던 순간의 기억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한 번도 심후를 잡지 못한 사실도 한 몫 했다.
강한 승부욕은 이대로 지나쳐선 안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일하나?'
사람에겐 각자의 생활이 있으니 게임을 하다가 갑자기 나가버려도 어쩔 수 없었다.
특히 심후와 자신은 친구가 아니었으니 상대에게 로그아웃하는 이유를 알릴 필요도 없었다.
'여기서 나가면 다시 만나기 어려울지도 모르는데.'
심후와 싸웠던 빌딩 옥상에서 미적거리던 에린은 결국 로그아웃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심후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제니. 나랑 같이 게임하지 않을래?"
"어떤 게임인데요?"
"올라이프 50. 지금 하고 있는데 좀 도와줬으면 하는 일이 있어서."
"어떤 게임인데요?"
"올라이프 50. 지금 하고 있는데 좀 도와줬으면 하는 일이 있어서."
도와달라는 말에 제니는 바로 계정을 만들고 캐릭터를 생성했다. 부유한 집안의 아가씨인 에린에게 메이드가 쓸 가상현실접속기 한 대 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과학문명이라고 하셨죠?"
"그래,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누굴 좀 조사해줬으면 해."
"알겠어요."
방송국 주변에는 빌딩이 많았다. 관공서도 있었고 회사들도 많았다. 그리고 식당과 술집들도 많았다.
심후는 포식 그리고 방송 스텝들과 함께 이동해 한 식당 앞에 섰다.'바밥바'라는 괴상한 이름을 가진 식당이었다. 아니, 실내 장식을 보면 식당인지 호프집인지 구분이 좀처럼 가질 않았다.
"여기가 바로 심후씨가 앞으로 요리 수업을 받게 될 곳입니다."
"여기 식당인가요?"
"맞습니다."
"그럼 저건 뭐죠?"
심후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에는 술병이 잔뜩 진열된 바가 있었다.
"아, 저건 신경 쓰지 말아요."
주변을 둘러보면 식사보단 술을 마시는 사람이 더 많았다.
"아무래도 식당 같아 보이진 않는데."
"어허! 술안주도 요리입니다. 배우세요. 심후씨 처지에 이것저것 가리면 씁니까?"
"죄송합니다.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카메라가 모든 상황을 기록하는 동안, 심후는 바밥바의 주방에 소개 되었다. 그리고 처음 맡게 된 일은 바로 설거지.
"요리 배우러 왔는데."
"군소리 하지 말고 설거지부터 하세요! 요리의 기본은 깨끗한 그릇! 그릇도 제대로 못 닦으면서 무슨 요리를 합니까!"
포식이 한 마디 날려주고는 나갔다. 이후 카메라맨만 홀로 남아 심후를 찍다가 일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해서 카메라만 설치하고는 가버렸다.
홀로 남게 된 심후는 설거지를 시작했다. 그리고 전쟁이 시작되었다. 술집이라서 씻어야 하는 잔이 장난 아니게 많았다.
특히 시간이 지나며 저녁을 지나 밤이 깊어지자 설거지 양은 폭주하기 시작했다.
머리는 지겹다고 생각하면서도 손은 계속 움직였다.
세제를 묻히고 닦고 헹구고의 반복이었다. 무엇을 얼마나 씻었는지도 기억할 수 없었다.
내가 설거지감이고 설거지감이 나인 합일의 경지에 도달한 심후는 설거지를 척척 해냈다. 무공으로 인해 발달한 신체 능력이 이를 가능하게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하루 일과가 끝나고 일당을 받는 시간이 되자 회의감이 들었다.
'이건 아닌데.'
일당이 든 봉투를 사장에게 직접 받고는 카메라 앞에 섰다.
"이건 정말 아닌 거 같아요. 저 정말 요리 프로에 출연하는 거 맞죠?"
2일째. 심후는 여전히 설거지를 해야만 했다.
움직이는 손은 이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제는 혼자서 두 사람 몫을 해내고 있었다.
"와, 너 진짜 잘한다. 어디서 일했었냐?"
"아뇨, 식당일은 처음입니다."
"그래? 진짜 세척기가 따로 없네."
"전 요리가 하고 싶은데요."
심후가 쓴 웃음을 짓자 같이 일하던 사람들은 웃으며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배우고 싶으면 문 열기 전에 와서 일해야지."
요리장의 말에 심후는 시간을 옮기려고 했지만 사장의 반대에 부딪쳐 옮기지 못했다.
"주방이란 하나의 팀이다. 모두가 하고 싶은 일만 할 순 없어. 넌 지금 설거지 담당이야."
사장이 근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눈은 힐끗거리며 카메라로 향하는 것이 보였다.
"네."
심후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모두 일하러 간 사이에 카메라 앞에 와 한 마디 남겼다.
"카메라 때문에 다들 쇼하는데, 이거 억지 아닙니까? 저 정말 괜찮을까요?"
설거지만 한 지 1주일이 흘렀다. 처음에는 자신에게 정말 기회가 온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포식은 잘해보자며 연신 연락을 해왔다. 식당에서 일하며 일하는 모습을 찍게 된 이후에는 그대로만 계속 해달라며 신신당부를 할 정도였다.
처음 방송을 찍는 거였는데 생각보다 날림이라는 생각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자신의 모습이 처음으로 전파를 탄 순간 날아갔다.
'뭐야 저게?'
첫날. 식당에서 일하게 된 순간의 영상이 나왔다.
밑에는 '우리의 호프, 요리사 도전하는 날'이라고 자막이 나왔다. 이어서 설거지를 하는 모습이 약 1분 분량 정도 편집되어 나왔다.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설거지에 몰입해 있는 모습. 계속 힘들지만 그래도 꿈을 향해 나아간다는 생각에 열심히 일한다는 내레이션이 함께 흘러나왔다.
"오늘 일은 힘들지만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열심히 합니다.
정말 감동적인 내레이션이었다. 하지만 반전이 있었다.
"이건 정말 아닌 거 같아요. 저 정말 요리 프로에 출연하는 거 맞죠?"
카메라에 대고 한 한마디가 지금까지 공들여 쌓아올린 분위기를 깨버렸다.
감동은 순식간에 날아갔다. 이어서 스튜디오가 나오며 포식이 말했다.
"그럼요. 우린 평범하지 않아요. 아주 거칠게 키워드리겠습니다."
이어서 포식은 참가자들을 데리고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이 뽑은 요리장이 게임에서 패배하며 최악의 요리를 만들자 그것을 먹고는 외쳤다.
"당신 해고야!"
"한 번만 기회를 더 주세요!"
"잘 할 수 있어요?"
"네!"
"정말 잘 할 수 있어요?"
"네!"
"좋아요. 그럼 다음 주에 다시 한 번 나와 주세요."
약 30분 정도 되는 방송은 그렇게 끝이 났다. 끝까지 다 본 심후는 피식 웃고 말았다.
'나쁘진 않네.'
자신의 모습이 의외로 잘 나왔다고 생각했다. 편집도 잘 해주었다.
네트워크로 반응을 살피니 나쁘지 않았다. 바로 크게 대박이 나지는 않았다.
그럴 정도의 임팩트는 없었다. 하지만 기존의 시청자들의 반응은 신선해서 다음 주 내용이 기대된다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좋아. 그럼 내일도 힘내볼까?'
방송 분량을 더 뽑기 위해선 자신이 더 잘해야만 했다.
매일 같은 자리에서 머물러서는 분량을 더 차지 할 수 없었다.
'너무 오버하는 건 좋지 않아. 그건 한포식하고 캐릭터가 겹치니까.'
수면을 위해 가상현실접속기에 누우며 심후는 자신의 방송 컨셉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나중에 레스토랑이라도 차리거나 유명 호텔에 들어가려면 실력을 보여줘야 해.'
평생 요리사로 살 생각은 아니었지만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요리사들이 전부 맛있는 것을 먹고 사는 것은 아니지만 훗날 무공을 연구하며 요리 연구도 병행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묵묵히 요리만 해서는 인기가 없어. 말이 많은 것은 너무 가벼워 보이고. 엉성한 요리는 절대 해선 안 돼. 요리에 한 해서는 진지한 모습을 보여줘야 해.'
요리에 관한 자세는 정리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어떻게 프로그램 속에 동화되느냐가 문제였다.
'자연스럽게 나가기만 하는 것도 너무 밋밋해.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보다 더 튀면 좋아하진 않을 거고. 뭔가 보조하는 격으로 띄워주는 게 좋겠네.'
컨셉을 정하고 나서 시작한 것은 요리 레시피를 무작정 외우는 것이었다. 포토그래픽 메모리를 얻은 이후로는 외우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요리책을 펴놓고 한 번씩 집중해서 봐주면 책 한 권을 통째로 외우는 것이 가능했다. 심후는 이런 식으로 여러 나라의 요리들을 공부했다.
'책이 모자라.'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그대로 기억을 했다고 해서 모두 이해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머릿속에 담아두고 필요할 때마다 빠르게 내용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큰 장점이었다. 시대가 변하며 기억 보조 장치들이 수없이 개발되었지만 자신의 뇌로 기억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인 것은 없었다.
곧바로 전자서점에 연결해 요리책을 샀다. 오랜 세월 동안 꾸준히 출판 되어온 요리책 중 세월을 거쳐 명작이라 불리며 살아남은 것들이 있었다.
워낙 구입하는 양이 많아 가격이 만만치 않았지만 아낌없이 돈을 썼다. 지식을 늘리는 일이기에 망설이지 않았다.
고도로 발달한 문명사회에서 정상적인 방법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식을 쌓아야만 했다. 정보가 곧 무기이고 돈인 세상이기 때문이었다.
지식이 없다면 유용한 정보를 보고도 가치를 알아보지 못해 돈으로 만들지 못하는 일이 허다했다. 때문에 지식을 쌓는 것에는 아낌없이 투자했다.
심후는 요리책뿐만 아니라 법전도 구입했다. 법을 자세히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얻는 것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그 외에도 회계에 관한 책도 구입했다. 돈이 없고 머리가 안 좋던 시절에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어려운 공부를 한다고 해도 쉽게 결과를 얻을 수 없으니 자신의 길이 아니라 생각하고 필요한 정보 이외에는 일부러 공부하려고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젠 집중해서 보면 머리에 저장이 가능했다. 또한 이해하는 것도 시간을 들이면 충분히 가능했다. 이것저것 사다보니 꽤 많이 사게 되었다.
'음, 요리의 역사. 그냥 역사책도 한 번 볼까? 방송하다보면 이런 저런 얘기할 것들이 많을 테니 알아두는 게 좋겠네.'
손해 보는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머릿속에 다 각인되는 것들이었다.
책을 사놓고 읽지 않으면 돈 낭비에 가깝지만 전부 읽고 머릿속에 담을 수 있다면 본전은 찾은 것이고 얻은 지식을 사용하게 된다면 이익을 얻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오늘은 이쯤 사고 일단 읽자.'
방송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심후는 공부삼매경에 빠졌다.
좁은 방안, 데뷔 때 잠깐 반짝했지만 이제는 한물갔다고 소문난 여가수 김지윤은 자신이 출연한 방송을 보는 중이었다.
'꽤 멋지네.'
심후가 처음 등장하는 모습을 본 지윤은 흥미를 느꼈다.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심후가 깔끔하게 요리복을 입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왠지 멋있어 보였다. 설거지에 불과했지만 심후를 보는 순간 호감을 느꼈기에 설거지를 하는 모습도 멋있어 보이는 것이었다.
'한 번 꼬셔볼까?'
잘나가는 여가수였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발각된다면 인기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 바로 여자 연예인의 스캔들이었다.
희한하게도 이러한 것은 시대가 변해도 쉽게 변하질 않았다.
남자 연예인과 여자 연예인이 스캔들이 나면 항상 불리한 것은 여자 쪽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남자 연예인의 스캔들을 여자들은 그래도 용서해준다.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를 유혹한 여자 연예인을 응징했다. 각종 말도 되지 않은 루머를 만들어 뿌리는 것은 기본이었고 심한 경우에는 협박을 하기도 했다.
극성팬들로 인해 깨진 연예인 커플도 많았다. 또한 여자 연예인의 경우 남성팬을 둔 경우가 많기에 남자 연예인과의 스캔들은 치명적이었다. 남성팬들의 습성상 다른 남자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알려지면 관심이 식어서 외면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지윤은 이러한 제약에서 자유로웠다. 일단 한물 간 연예인이란 것이 주요했다.
18살에 걸그룹으로 데뷔한 지윤은 1년 전까지만 해도 꽤 알려진 걸그룹의 멤버였다. 하지만 멤버 중 하나가 가장 인기가 많은 남성 아이돌 그룹인 '젠틀파이브'의 멤버와 열애설이 터진 것이 화근이었다.
어마어마한 숫자를 자랑하는 젠틀파이브의 팬덤은 지윤이 속한 포포걸스를 깎아내리는 일에 혈안이 되었다.
무슨 일을 해도 비난에 가까운 비평을 하며 포포걸스에게 야유를 퍼부었다. 그 결과 포포걸스의 인기는 하락했다.
데뷔 이후 잠깐의 성공으로 간신히 이어져오던 그룹은 해체설이 나돌고 있는 중이었다. 가수로 데뷔하고 4년. 이제 22살이 된 지윤은 현재 상황이 답답했다.
인지도를 유지하기 위해 괴상한 요리프로에까지 출연하게 된 것은 불만이었다. 원래라면 한창 활동하며 인기를 누려야 할 시기인데 벌써부터 한물갔다는 소릴 듣고 있었다.
아이돌로 데뷔했기에 나이가 들자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소릴 듣고 있었다.
'이제 스캔들 낸다고 뭐 더 달라질 것도 없는 것 같고.'
답답한 상황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지친 지윤에게 심후는 신선하게 느껴졌다.
연예인도 아닌데 연예인 포스가 느껴지는 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제 스캔들 낸다고 뭐 더 달라질 것도 없는 것 같고.'
답답한 상황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지친 지윤에게 심후는 신선하게 느껴졌다.
연예인도 아닌데 연예인 포스가 느껴지는 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소속사에서도 거의 포기했으니까 말리지도 않을 거야.'
심후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돌려보며 지윤은 어떻게 말을 걸지 고민했다.
"여기 감자 껍질 벗겨놔."
"이걸 전부 제가 해요?"
"응."
"언제까지요?"
"그냥 해. 그냥 다 해. 대신 내일까지 5상자는 끝내놔야 한다. 내일 써야 하거든."
일이 막 끝나려는 시간, 심후는 요리장의 부름을 받고 창고로 갔다.
"저 추가 수당은 받는 거죠?"
"그건 없어. 대신 다하면 일 다 끝나고 나서 주방사용 허락해주지. 대신 제대로 못하면 못한 만큼 추가로 더 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하나의 시험임을 깨달은 심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돈을 받지 못하고 노동력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주방을 사용할 수 있게 허락해 준다니 공짜로 일 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창고에 쌓여있는 감자 상자를 보니 한숨이 나왔다.
'언제 다하지?'
척 보기에도 상자가 30개쯤 되어보였다.
'내일 근무시간이 되면 설거지를 시킬 거고 결국 일 끝나고 틈틈이 계속 감자 껍질을 벗겨놓으란 거네.'
한숨을 내쉬며 상자 하나를 들고 주방의 구석으로 향했다. 그리고 감자 깎는 도구를 들고 감자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기계를 사용한다면 무척 편하지만 식당 같은 곳에서 기계를 쓸 리가 없었다.
대량으로 감자를 쓰게 된다면 모를까 식당 같은 곳에서는 그냥 사람이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것도 요리 수업의 일환으로 생각하자.'
식재료를 다룰 수 있는 기회가 왔다는 것이 바로 찬스라고 생각하며 심후는 작업에 열중했다.
워낙 몸이 지닌 능력이 좋다보니 작업은 금방 익숙해졌다. 뛰어난 감각과 신체조절 능력은 감자 껍질을 아주 얇게 벗겨내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초보의 실력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묵묵히 일을 수행하다보니 어느 새 상자가 비어버렸다.
심후는 연속으로 5 상자를 끝내고는 카메라를 보고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 날, 심후가 벗겨놓은 감자를 보며 요리장은 감탄했다.
"오오! 이것은 마치 누드 조각 같은 솜씨!"
"심후씨, 조각가 해도 되겠네."
"그러게. 감자를 이렇게 예술적으로 벗겨놓는 사람은 심후씨가 처음이야."
"이거 아까워서 어떻게 조리하죠?"
주방 사람들은 연신 감탄했지만 결국 감자는 채 썰어져 요리에 사용되었다. 예술적으로 벗겨놓든 대충 벗겨놓든 감자는 감자일 뿐. 중요한 것은 최종적으로 요리된 모습이었다.
과정에서 아무리 아름답게 변신했다 해도 결과물이 될 수는 없었다. 심후가 아름답게 벗겨놓은 감자들은 프렌치프라이가 되어 사람들의 뱃속으로 사라졌다.
맛? 그냥 프렌치프라이의 맛이었다. 더 맛있지도 맛없지도 않은 프렌치프라이의 맛이었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심후는 열심히 감자를 벗겼다. 열심히 벗겼다.
벗기면 벗길수록 더욱 능숙해져 감자 껍질이 끊어지지 않게 칼로 벗기는 것에도 성공했다. 그리고 마지막 감자를 벗길 때는 감자 껍질을 실처럼 길게 만드는 것도 가능했다.
그야말로 신기였으며 이는 카메라에 그대로 녹화되고 있었다.
심후의 감자껍질 벗기는 모습이 방송을 타자 단번에 히트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진기명기가 아닐 수 없었다.
바밥바는 단숨에 유명해졌다. 심후가 벗긴 감자로 만들어진 프렌치프라이가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갔다.
방송을 본 사람들 중 하나가 영상을 네트워크에 올렸고 이를 보고 신기하게 생각한 사람들이 먹어보겠다며 바밥바를 찾아온 것이었다. 덕분에 심후는 감자를 더 벗겨야만 했다.
물론 이번에는 추가 수당을 받을 수 있었다. 심후 덕분에 장사가 더 잘 되었으니 주지 않을 수 없었다.
좋아한 것은 바밥바의 사장만이 아니었다.
포식과 피디도 좋아했다.
심후가 보여준 것은 기대 이상의 모습이었다. 때문에 애피타이저 형식으로 프로 시작에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디저트처럼 프로 끝에도 심후의 모습을 끼워 넣기로 했다.
시작에는 평범하게 일하는 모습을 그리고 끝에는 무엇인가 신기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덕분에 심후는 많은 식재료를 다듬는 일을 도맡게 되었다.
바밥바 사장은 요리장에게 특별히 명령해 심후에게 식재료 다듬는 일을 가르치도록 했다. 심후가 또 다시 대단한 모습을 보인다면 가게 매출이 더 올라갈 것이기에 내린 지시였다.
불타도록 잘 되는 가게에 기름을 끼얹는 사건은 다음에 일어났다.
새벽. 술 마시는 손님들도 모두 돌아가고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은 퇴근한 시간, 심후는 홀로 주방에 남았다.
'뭘 만들어 볼까?'
감자 껍질 벗기기로 이제 영업시간이 끝나면 주방을 자유롭게 써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다른 식재료를 다듬어야 해서 많은 시간을 쓸 수 없었지만 불만은 없었다.
사장이 아침이 될 때까지 있어도 추가수당을 준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방송에서 어필할 수 있는 것은 뭐가 있을까?'
감자 껍질 벗기는 모습으로 크게 히트 쳤다.
여기서 주춤하게 되면 하향곡선을 그리며 시청률 상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었다. 재료 다듬기만으로는 사람들의 흥미가 금방 식어버릴 수 있기에 심후는 다음을 생각했다.
단순한 요리사가 아닌 인기 요리사가 되기 위해서는 식재료 다듬기만 잘해서는 부족했다.
'가게의 주요 요리는 버거와 샌드위치, 피자, 그리고 여러 가지 튀김, 구이.'
식당이라고는 하지만 술안주로 쓸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재료는 쓰고 남은 것들을 사용해도 좋다고 했다. 방송국과 이미 얘기가 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쓰고 남은 재료들은 버리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마냥 놔두며 쓴다면 음식의 질을 떨어트릴 우려가 있었다. 식당 경영에 있어서는 가장 민감한 문제 중 하나였다.
오래된 식재료를 쓰면 음식의 맛은 떨어진다. 음식의 맛이 떨어지면 손님이 떨어진다. 그렇다고 식재료를 계속 버리면 쓰지 않은 식재료만큼 식당은 손해를 보게 된다.
때문에 식재료를 알맞게 주문해야 하는데 이게 어려웠다. 손님이란 항상 고정적으로 오는 것이 아니었다.
올 때는 밀려오기도 하고 오지 않을 때는 평소의 절반도 안 되는 손님을 받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고 식재료를 항상 최소한도로만 구비해놓으면 손님이 밀려올 땐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이러한 변수에 대처해야 하는 것이 바로 식당 경영자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바밥바의 사장은 심후가 쓸 재료를 허락하는 대신 방송국에게 재료를 쓴 만큼 돈을 받기로 했다. 물론 여기에도 딜이 있었다.
조금만 쓴다면 돈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필요이상으로 많이 쓴다면 구입했을 때 쓴 가격을 그대로 받기로 했다. 심후의 실력이 예상외로 뛰어난 것에 고무된 방송국에서도 프로에 조금 더 투자하기로 했다.
시청률이 조금씩이나마 올라가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심후는 그야말로 남의 돈으로 요리 연습을 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샌드위치를 연습하기는 그렇고.'
방송에 내보내기에는 너무 약하다는 생각이 들어 제외했다. 뭔가 재미있는 것을 보여줘야만 했다.
'그래, 피자다.'
피자를 만드는 영상은 이미 한 번 봤기에 과정은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쇼를 보여주자.'
결정을 내린 심후는 피자 반죽을 가지고 쇼를 했다. 처음에는 살짝 동그랗게 펴더니 허공에 던지며 빙글빙글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피자 반죽이 쭉쭉 늘어나며 원반이 되며 점점 커졌다.
처음이라 망친 것도 있었지만 심후는 재료를 버리지 않고 다시 연습했다. 떨어트리기도 하고 찢어지기도 했다.
모든 과정은 카메라에 담겼다.
"됐다!"
대략 열 번 정도 실패한 이후 심후는 성공했다.
아름다운 원을 그리는 피자판이 완성된 것이었다. 한 번 성공하자 여러 번 실패하면서 재활용했던 피자 반죽은 한쪽에 치워놓고 새로운 반죽을 이용해 똑같이 만들었다.
둥글게 펴진 판 위에 소스를 발랐다.
'토핑은 뭘로 할까?'
살짝 고민하던 심후는 올리브와 치즈로 끝내기로 했다.
재료를 이것저것 쓰면 여러 가지 맛이 나지만 왠지 간단한 피자가 먹어보고 싶어졌다.
토핑을 얹고 오픈에 넣은 이후 남는 시간에는 재료를 다듬었다.
이제는 신의 경지에 이른 솜씨이기에 피자가 완성되는 순간 재료 다듬기가 끝났다. 그야말로 전광석화! 땡하고 오븐이 소리를 내며 꺼지는 순간 재료 다듬기는 끝났다.
피자를 꺼내놓은 심후는 카메라로 자세히 찍기 시작했다.
"검은 올리브 피자입니다.
이제부터 맛보겠습니다."
노릇한 치즈 위에 펼쳐진 검은 올리브. 피자를 조각내서 들어올리는 순간 치즈가 늘어나는 모습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녹화되었다.
늘어나다 끊어진 치즈를 다시 들어 조각 위에 얹고는 한입 문 순간, 치즈의 쫀득함과 피자 소스와 올리브의 맛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머릿속에 저장한 레시피를 응용해서 만든 것인데 제대로 만들어졌다.
피자는 뜨거웠지만 심후도 뜨거웠다. 맛있는 것을 봐서 열 받았다.
먹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는 욕망의 화산이 폭발해서 뜨거웠다. 한쪽을 다 먹고 나자 이번에는 두 쪽을 겹쳐서 먹기 시작했다.
샌드위치처럼 만들어진 피자를 덥석덥석 베어 먹으면서도 심후는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입은 쉬지 않았다.
피자 한 판이 사라지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아! 잘 먹었다."
남아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깨끗하게 비워버렸다.
입맛을 다시는 심후는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뒷정리를 시작했다. 그리고 카메라를 끄며 한 마디 남겼다.
"오늘은 여기까지."
야밤에 피자를 만들어 먹는 모습은 다음 날 방송국에 전달되었다.
영상을 본 순간 포식과 피디는 침을 꼴깍 삼켰다.
"이거 대박 나겠는데요?"
"얜 왜 광고를 찍고 있어!"
피자를 만드는 모습이 예술이었다. 허공을 빙글빙글 도는 피자 반죽이 아름답게 펴졌다.
소스가 발라지는 모습은 우아했다. 치즈와 올리브가 올려지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이어서 오븐에서 피자가 완성되는 동안 빠르게 재료를 다듬는 모습은 신기였다. 마지막에 피자를 먹는 모습은 참을 수 없는 질투를 느끼게 했다.
나도 먹고 싶다. 그런 감정을 느끼게 만들었다. 쉬지 않고 피자를 먹는 모습에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영상으로 보는 것뿐인데 보는 사람에게 마치 자신의 몫이 금방 사라질 거라는 감정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만큼 먹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포식은 단숨에 심후를 호출했다.
"갑자기 왜요? 일 나가야 하는데."
"이리와 봐요. 우리 촬영합시다."
포식은 심후에게 요리복을 입히고는 촬영장으로 떠다밀었다. 프로를 위해 만들어진 스튜디오 안에는 촬영 스텝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른 분들은요?"
"오늘은 없어도 됩니다. 자! 피자 만드세요."
순간 심후는 사정을 이해했다. 자신이 찍은 영상을 확인하고 이러는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된 이상 순순히 찍어주면 재미 없지.'
"혹시 피자 먹고 싶은 겁니까?"
"어허! 오늘은 단지 테스트 하는 것뿐입니다! 자 얼른 만들어보세요. 다음 방송에 출연시킬 자격이 되는지 시험하는 거니까."
"에이, 표정 보니까 먹고 싶은 표정인데요. 사심 방송 하지 맙시다."
심후의 비웃음을 본 포식은 움찔 했다. 어느새 자신이 끌려가고 있었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오호? 꽤 하는데?'
포식은 흐뭇한 감정을 숨기고 먼 곳에 시선을 두었다.
"어허. 아니라니까. 하여간 빨리 만들어 봐요. 어서."
"공짜는 안 되는데."
"출연료 줍니다!"
"네! 알겠습니다."
돈에 약한 모습을 보이며 심후는 피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후 다 만들어진 피자는 포식과 피디가 먼저 먹고는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이후 피자는 계속 만들어졌고 방송 스텝들이 이를 나누어 먹었다.
포식은 흐뭇한 감정을 숨기고 먼 곳에 시선을 두었다.
"어허. 아니라니까. 하여간 빨리 만들어 봐요. 어서."
"공짜는 안 되는데."
"출연료 줍니다!"
"네! 알겠습니다."
돈에 약한 모습을 보이며 심후는 피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후 다 만들어진 피자는 포식과 피디가 먼저 먹고는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이후 피자는 계속 만들어졌고 방송 스텝들이 이를 나누어 먹었다.
심후가 피자 만드는 모습이 방송되었다. 방송이 시작할 때 처음 부분에 피자를 만드는 모습이 살짝 방송되었다.
허공을 나는 피자 반죽이 나타나자 시청률이 슬금슬금 올라갔다. 이후 포식과 출연자들의 엽기적인 행각을 벌이는 요리 게임이 진행되었다.
주제는 피자. 정말 엉망진창이었다. 요리 마무리라고 해놓고 엽기적인 토핑들이 적힌 판이 등장했다.
산낙지 다리, 초고추장, 생굴, 그리고 여러 가지 재료들이었다. 오븐에 넣고 굽기 전에 올렸다면 어떨지는 몰라도 다 구워진 피자에 올려봐야 쓸모없는 것들뿐이었다.
유일하게 괜찮은 것은 아주 작은 부분의 '무
(無)
'. 아무것도 없다는 칸뿐이었다. 오직 그것만이 제대로 된 피자를 완성할 수 있는 길이었다.
완성된 피자 위에서 산낙지 다리가 꿈틀거렸다. 이 정도는 그래도 애교였다.
낙지 다리가 꿈틀거리며 달라붙기는 하지만 원래 그런 요리가 있으니 두 가지를 같이 먹었다고 보면 된다는 심사위원들이었다. 하지만 청국장이 마지막에 올려진 피자는 모두의 기피 대상이었다. 하지만 먹어야 했다. 그들은 심사위원이었기 때문에.
엽기적인 피자를 먹은 심사위원들은 하나 같이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무사한 이는 없었다. 피자를 먹은 출연자들은 전부 스튜디오에서 뛰쳐나갔다.
"그럼 이제부터 저의 비밀병기가 만든 피자를 보시겠습니다."
이어서 오븐에서 심후가 피자를 꺼내는 모습이 나왔다.
심후가 카메라를 들고 직접 찍은 피자가 확대되어 화면을 채우는 순간 은은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소년과 소녀가 새끼손가락을 걸고 살짝 흔들며 걷는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멜로디였다.
피자의 치즈가 늘어나고 열심히 먹는 심후의 모습이 계속 흘러나왔다. 두 조각을 겹쳐서 먹는 모습이 나가는 순간 시청자들은 피자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방송이 나간 이후, 올리브 피자의 판매가 급증했다. 아울러, '먹어봐 요리게임'의 시청률도 폴짝 뛰었다. 또한 심후가 일하는 바밥바의 매출도 급증했다.
몰려드는 손님들은 심후가 만든 올리브 피자를 먹어보길 원했다.
덕분에 심후는 주방에 설 수 있었다.
"올리브 피자가 나갑니다!"
"주문 밀렸어! 빨리 더 만들어!"
오븐에서 피자가 꺼내지는 순간 동이 났다. 만드는 것보다 주문이 밀려드는 것이 더 빨랐다.
몸이 두 개라도 모자를 판이었다. 하지만 심후는 묘기를 보여주었다.
피자 반죽을 허공에 던지며 저글링을 하기 시작했다.
빙글빙글 도는 피자의 원판이 허공을 오르락내리락 했다. 정말 진귀한 장면이었다.
한 번에 5개의 피자 반죽을 허공에 띄우니 서커스가 따로 없었다.
반죽의 크기가 딱 알맞게 퍼지자 양 손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국자를 양손에 들고 재빠르게 소스를 발랐다. 이어서 잔상이 남을 정도로 빠르게 손이 움직이자 치즈와 올리브가 뿌려졌다.
숙달된 요리사가 아니고서는 보여줄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아니! 숙달된 피자 장인이라 하더라도 쉽지 않은 움직임이었다.
여하튼 바밥바는 피자로 떼돈을 벌었다. 심후가 가게를 그만두면 모두 원래대로 돌아갈 일장춘몽에 불과한 성공이지만 반짝이는 성공이 있는 것이 밋밋하게 무난한 것보다 더 나았다.
"심후씨, 다음에는 뭘 만들 겁니까?"
주방으로 쳐들어온 포식은 심후가 오븐에서 꺼내는 피자를 약탈했다.
"그거 돈 내세요."
"우리 사이에 이러깁니까?"
"사장님! 여기 무전 취식자가!"
"알았어요! 냅니다!"
모든 것은 카메라에 담기 위한 쇼였다.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뜻이 통하니 포식은 즐거웠다.
'어디서 이런 복덩이가.'
항상 오버하는 자신과 달리 자연스럽게 쿵짝을 맞춰주는 심후가 사랑스러워 보이는 포식이었다.
자신의 성정체성이 비정상이었다면 사랑에 빠졌을 거라고 생각될 정도로 호감을 느꼈다.
"자, 그럼 말해주시죠."
"피자 만들면 안 되나요?"
"노노노노노. 피자는 만들어봤잖아요. 얼른 최종병기로 거듭나기 위해선 다른 것도 해야죠. 설마 피자집을 만드는 것으로 만족하실 겁니까?"
"물론 아니죠."
"자! 그럼 당신의 포부를 여기서 펼치는 겁니다! 다음 요리는?"
"음, 퓨전 만두를 한 번 만들어보겠습니다."
"만두요? 뭘 하실 건지 물어봐도 됩니까?"
"비밀입니다. 그럼 전 바빠서 이만."
심후는 다시 피자 만들기에 돌입했다. 영업이 모두 끝난 시간, 포식이 찾아왔다.
"힘들지 않아요? 보니까 굉장히 바쁘던데."
"주방에 서려면 다 그렇죠 뭐."
"피곤하면 말하세요. 굳이 무리할 필요 없습니다."
포식은 심후의 건강을 염려했다.
영업시간 내내 피자를 만들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보통 식당에서도 없는 강도였다고 했다.
심후가 피자를 만드는 속도가 빠른 것은 알지만 그것도 오래 지속되면 체력에 문제가 생길 것 같아 보였다.
'아무리 철인이라도 그런 식으로 매일 일하다보면 지칠 거야.'
요리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제대로 배우기만 한다면 꼬맹이도 할 수 있는 것이 요리였다. 하지만 요리사가 되는 건 달랐다. 계속해서 남들이 먹을 요리를 만들어야 하는 직업이었다.
실수를 해서도 안 됐다. 요리 하나 완성했다고 쉴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실력이 좋은 요리사는 작품이라고 생각되는 요리를 계속해서 찍어내야 했다. 때문에 체력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다.
하루 일하고 몸살 나서 일주일 쉬는 사람 따윈 아무도 좋아하지 않았다.
"걱정 마세요.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로?"
"새로운 요리 도전하는 거 보려고요. 궁금해서 참을 수가 있어야죠."
"그럼 시작하죠."
말하는 순간 포식은 방송 모드로 돌입하더니 활짝 웃었다. 특유의 오버하는 가식적인 웃음이었다.
"여러분! 오늘은 제가 직접 우리의 비밀병기가 수련하는 장면을 확인하겠습니다."
수련이라고 했지만 심후가 재료를 다듬는 모습은 미숙한 수련자의 것이 아니었다.
칼질은 마스터의 것이었다. 칼빛이 번쩍 하는 순간 재료는 갈라져있었다.
칼날이 도마를 두드리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저기, 만두한다면서요? 왜 이렇게 프라이팬을 많이 쓰죠?"
"그냥 만두는 재미없잖아요. 새로운 걸 해보려고요."
그냥 배를 채우기 위해 먹는 거라면 뭘 먹든 상관없다. 아니, 애초에 식당 같은 곳에 올 필요도 없었다. 단순히 먹기 위해서라면 편의점 같은 곳에서 저렴한 것들을 사먹으면 그만이었다.
비싼 돈 주고 식당에 갈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좀 더 맛있는 것을 먹고자 하는 욕망이 있는 이들은 맛집에 관심이 많았다.
기왕 먹는 밥, 좀 더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이다. 이들에게 먹는 것은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때문에 예전부터 만들어왔던 음식만 해서는 맛있는 것을 먹고자 하는 이들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것은 어려웠다. 항상 맛있는 것을 먹어왔던 사람에게는 조금 맛있는 정도로는 어필하기가 어려웠다.
그들이 심하게 운동이라도 한 이후라면 모를까 계속 맛집을 돌아다니며 까다로워진 입맛을 사로잡는 것은 어려웠다.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지.'
때문에 진정 실력 있는 요리사는 도전해야만 했다.
항상 연구하며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했다. 같은 것만을 만들다보면 경쟁자들이 턱밑까지 쫓아오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되면 수많은 경쟁자들과 같은 요리를 가지고 맛의 경쟁을 펼쳐야 하며 이런 경쟁은 당연히 부작용을 불러온다.
신선함이 떨어지기에 어디를 가나 비슷비슷하다고 고객들이 생각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굳이 멀리 일부러 찾아와서 먹지 않고 근처에서 비슷한 요리를 만드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버리는 것이었다.
심후는 그냥 실력만 뛰어난 주방의 부품으로 멈추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 생각하며 발전하는 요리사가 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남들이 만들어 본 것들을 만들줄 알아야 함과 동시에 새로운 것에도 도전해야 했다.
재료 살 돈을 들이지도 않고 실험해볼 수 있는 기회는 흔하지 않았다. 포식의 프로에 출연하게 된 덕분에 수없이 많은 재료를 다뤄볼 기회를 얻었다. 또한 이제는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니 내가 원하면 뭐든 사올 기세야.'
잔뜩 기대를 하며 눈을 빛내는 포식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었다.
"설마 스파게티를 만들어서 만두피로 싸려는 겁니까?"
"아뇨. 보시면 압니다."
심후는 스파게티 소스를 만들었다.
두 종류를 만들었는데 하나는 토마토를 쓴 소스였고 다른 하나는 까르보나라 소스였다. 만들어진 소스를 졸이고 졸여서 걸쭉하게 만들자 여기에 치즈와 두부를 잔뜩 섞어 흩어지지 않게 만들었다.
"헛, 이것은! 첫사랑에 빠진 소년의 붉은 열정이 담긴 토마토와 하얀 순정을 지닌 소녀의 마음과 같은 맛이 나는 만두속입니다!"
방방 뛰며 카메라 앞에서 연신 만들어진 만두속을 먹으며 자랑하는 포식 때문에 만들어 둔 것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그만요! 그거 다 먹으면 못 만들잖아요."
"아! 죄송합니다. 너무 맛있어서 그만. 역시 비밀병기 다운 실력입니다.
심후는 만두를 완성했다. 만들어진 만두는 모두 기계로 찍은 것처럼 똑같은 형태였다.
예쁘게 만들어진 만두의 표면에는 버터가 발라졌다. 이후 오븐 속에서 익히자 노릇하게 구워졌다.
"오오! 이 아름다운 자태!"
오븐에서 꺼내지기가 무섭게 포식이 달려들었다.
"앗! 뜨거워요! 조심!"
경고를 날린 순간 만두를 깨문 포식은 방방 뛰었다.
금방 만든 따뜻한 음식이 좋다하나 음식에는 모두 최고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적정 온도가 존재했다. 사람에 따라 기호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너무 뜨거운 경우 오히려 많은 맛들이 뜨거움에 가려져 제대로 맛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또한 심한 경우 포식처럼 혀를 데이는 일도 생겼다.
"흐허! 후! 후! 후!"
혀를 식히기 위해 노력하는 포식을 뒤로하고 심후는 만두 하나를 집어 반으로 갈랐다. 그러자 치즈가 늘어나며 갈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것이 매우 뜨거워보였다.
"후우!"
살짝 불자 뜨거운 김이 날아갔다. 이후 조심스럽게 입에 넣고 씹으니 만두피와 어우러진 스파게티 소스와 피자가 입안에서 춤을 췄다.
"음! 맛있네요."
만두는 금방 동이 났다. 이름도 붙여졌다.
피자만두. 그런데 포식이 갑자기 음흉한 표정을 지었다.
"심후씨, 만두 좀 만들어주세요. 심사위원들에게도 먹여주게요."
포식은 심후가 만들어준 만두를 가지고 떠났다. 하지만 만두는 중간에 절반가량 다른 것으로 바꿔치기 당했다.
스튜디오 안, 출연자들은 심후가 만두 만드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고는 감탄했다.
"나도 먹어보고 싶다.
출연자들은 모두 한숨을 내쉬었다. 심후가 만든 맛있는 것을 먹고 싶지만 자신들의 처지는 스튜디오에서 악랄한 게임의 룰에 의해 완성된 요리를 먹어야 할 팔자였다.
"하하하! 여러분! 실망하지 마세요. 제가 여러분을 위해 심후씨가 만든 만두를 가져왔습니다!"
포식의 소개와 함께 만두가 등장했다. 조명이 비춰주니 만두에 후광을 입어 더욱 맛깔스럽게 빛났다.
출연자들은 행복해하며 만두를 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행복한 미소는 오래 가지 않았다.
"퉤!"
여성 출연자 중 하나가 거칠게 만두를 뱉었다.
"이건 겨자잖아!"
"아하하하하! 깜빡했네요. 제가 만든 것도 섞었는데. 조심해서 골라 드세요! 반은 제가 먹었습니다."
만두에 손을 대는 사람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이날도 시청률이 조금 상승했으며 바밥바의 메뉴에는 퓨전만두가 추가되었다.
"퉤!"
여성 출연자 중 하나가 거칠게 만두를 뱉었다.
"이건 겨자잖아!"
"아하하하하! 깜빡했네요. 제가 만든 것도 섞었는데. 조심해서 골라 드세요! 반은 제가 먹었습니다."
만두에 손을 대는 사람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이날도 시청률이 조금 상승했으며 바밥바의 메뉴에는 퓨전만두가 추가되었다.
"퉤!"
여성 출연자 중 하나가 거칠게 만두를 뱉었다.
"이건 겨자잖아!"
"아하하하하! 깜빡했네요. 제가 만든 것도 섞었는데. 조심해서 골라 드세요! 반은 제가 먹었습니다."
만두에 손을 대는 사람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이날도 시청률이 조금 상승했으며 바밥바의 메뉴에는 퓨전만두가 추가되었다.
늦은 시각, 바밥바는 영업을 끝내고 문을 닫았다. 종업원들은 모두 돌아가고 남은 것은 심후뿐이었다.
'오늘은 뭘 만들어볼까?'
매일이 새로웠다. 가끔 식당에 없는 재료들은 주문만 하면 바로 공수가 가능했다.
'먹어봐 요리게임'의 시청률이 상승하며 광고 단가도 올라간 덕분이었다. 무엇보다 얼마 전에 꽤 규모가 큰 피자 체인점 하나가 프로 시작 전후로 광고 계약을 맺었다.
물론 조건이 하나 있었는데 가끔 심후가 만든 새로운 피자를 선보여주길 원한다는 것이었다. 조건만 들어주면 심후가 필요한 재료는 물론 방송에 필요한 재료들도 모두 공급하겠다고 했다.
제작진은 좀 더 많은 요리를 만들 기틀이 마련되는 계약이라 수용했다. 심후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요리 재료를 공짜로 공급 받을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았다. 피자 몇 판 만들어주는 거야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콧노래를 부르며 재료들을 살펴보았다. 재료들은 모두 신선한 것들이었다.
'지난번에는 만두를 했으니 오늘은 면 요리로 가볼까?'
국적은 이탈리아로 정했다. 피자를 만들어왔으니 기왕이면 이탈리안 요리에 숙달되도록 할 생각이었다.
'라쟈냐가 적당하겠네.'
라쟈냐 면을 만들었다. 라쟈냐 면은 일반 파스타와 달리 크고 넓적했다.
'속에 넣을 것으로는 좀 색다르게 해물로 해볼까? 소스는 고추장과 토마토소스를 섞어 써보자.'
색다른 방법으로 조리한다는 것은 실패의 위험이 커지는 것을 의미했다. 특히 서로 국적이 다른 양념들을 조합하는 것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는 일이었다.
한 가지 요리에서 효과를 보았다고 다른 요리에서도 같은 비율을 쓰다가는 낭패를 볼 수도 있었다. 심후는 끊임없이 완성될 요리의 맛을 상상하며 비율을 맞춰보았다.
토마토소스와 섞인 고추장이 오븐 속에 들어가 다른 재료들과 함께 익으면서 어떤 맛을 낼지는 직접 만들어봐야 확실해지지만 피자를 만들면서 쌓인 경험이 어느 정도 상상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좋아. 여기에 소금 그리고 오레가노와 후추도.'
라쟈냐에 쓸 소스가 완성되자 해물들은 끓는 물에 살짝 데쳤다.
새우와 가리비가 잘게 썰려 고기를 대신하게 되었다. 면을 넣고 소스와 함께 해물을 넣은 후 치즈를 올렸다. 그리고 다시 넓적한 면으로 덮으며 작업을 반복했다.
'흐흐흐. 맛있게 되라!'
마음속으로 명령을 내린다고 해결 될 문제는 아니었지만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은 행복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손으로 맛있는 요리를 만든다는 것은 행복을 만든다는 것과 동일했다. 때문에 심후는 요리를 만드는 것을 즐길 수 있었다.
맛있는 것을 직접 만들어서 남들 안 주고 몽땅 먹을 때는 행복을 느꼈다.
나머지는 모두 오븐에 맡긴 심후는 이번에는 여러 종류의 파스타를 만들어보았다.
각종 야채즙을 이용해 색깔을 낸 것부터 여러 가지 재료를 혼합해 만들어보았다. 모양도 각양각색이었다.
파스타를 만드는데 사용하는 기구들도 다 구비된 상태여서 만드는 데 문제는 하나도 없었다.
한참 파스타를 만드는 일에 빠져서 시간을 보내는데 갑자기 벨이 울렸다.
식재료를 들여오는 후문에 설치된 벨에서 나는 소리였다.
'누구지?'
의아해하며 가보니 전혀 의외의 인물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 같은 프로에 출연하는 김지윤인데 아시죠?"
"아, 예."
얼결에 인사를 받아준 심후의 머리는 고속회전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 여자가 여긴 무슨 일이지? 포식이 보냈나? 하지만 촬영 스텝은 없는데?'
"갑자기 찾아와서 놀라셨죠?"
"네, 조금."
"그냥 궁금해서요. 오늘은 뭘 만드시나 하고."
심후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눈치를 보던 지윤은 설명을 이어나갔다.
"사실 스튜디오에서 심후씨 요리하는 거 볼 때 꼭 먹어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얼마 전에 포식 오빠가 요리를 가져왔더라고요."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가져온 만두의 반은 지뢰밭이나 마찬가지였다.
겨자는 물론 냄새가 독한 것들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래서 아무 걱정 없이 먹어보고 싶어서요. 괜찮죠?"
마치 자신이 부탁하면 들어줄 거라는 확신을 가진 표정을 보자 심후는 배알이 뒤틀렸다.
"싫은데요."
"네?"
"저 먹을 것도 부족해요."
거절당하자 지윤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어려서부터 아이돌로 활동해온 지윤에게 이런 일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남자라면 누구나 지윤에게 호감을 보였었다.
어렸을 때부터 미모가 뛰어나 푸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로 인해 아이돌도 어찌 보면 쉽게 됐다.
'뭐야?'
지윤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자들하고는 사이가 나쁜 적은 있었다. 그러나 남자에게 이런 대접을 받아본 기억은 전혀 없었다.
그 순간, 오븐에서 라쟈냐가 완성되었다는 소리가 울렸다. 심후는 지윤을 내려버려두고는 오븐을 열었다.
잘 익은 라쟈냐 한 판이 나왔다.
'겉은 잘 익은 것 같은데.'
라쟈냐는 겉으로 볼 때는 잘 모른다.
그릇에 담긴 상태에서는 위를 수북하게 덮은 치즈만 보일 뿐이다. 하지만 한쪽 잘라내서 접시에 놓고 보면 층진 라쟈냐 면 사이에 낀 내용물이 보인다. 모양만 놓고 본다면 그렇게 아름답지 않을 수도 있다.
허나, 맛을 아는 사람이라면 달랐다.
심후는 침을 삼키며 포크를 들었다.
포크로 찌르니 치즈가 찢어진다. 접시 위에 케이크처럼 놓여있는 라쟈냐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입에 넣었다.
"으으음!"
기대 이상의 맛이었다. 치즈와 면, 그리고 다른 내용물을 하나로 이어주는 소스의 맛이 입안에서 회오리쳤다.
손이 점점 빨라지더니 접시 위의 라쟈냐는 행방불명 상태가 되었다.
'뭐 이런 녀석이 다 있어?'
먹는 걸 지켜보던 지윤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말도 되지 않았다. 자기 먹을 것 밖에 없다고 할 때 멍해지긴 했다. 하지만 설마 진짜 안 줄까 싶었다.
한쪽에 설치된 카메라를 의식하고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심후는 정말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처음에는 접시에 덜어서 먹던 것을 이제는 아예 통째로 들고 먹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저기, 저도 한 입만 먹어보면 안돼요?"
대답 대신 견제하는 눈빛만이 돌아왔다. 눈으로 노려보면서도 연신 라쟈냐를 흡입하는 모습은 무척 얄미워보였다.
'남자가 치사하게.'
먹을 것 가지고 쪼잔하게 군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나, 심후는 지윤에게 잘 보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아울러 먹을 것을 양보하고 싶지도 않았다. 예전이라면 예쁜 여자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달라고 하지 않아도 가져다 바쳤을 것이다. 그러나 배신이 사람을 변하게 만들었다.
'잘 해줘봐야 소용없어. 헤어지면 다 끝이야. 받는 것도 없는데 가져다 바치는 호구 인생은 이제 안녕이다.'
인간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친절도 베풀고 그러면서 서로 조금씩 주고받는 과정이 필요한 법이었다.
허나, 뭔가 이득이 생기는 관계가 아닌 이상 딱히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심후는 친절을 베풀 생각이 없었다. 같이 프로에 출연하는 사이니 친해진다면 나쁠 것이 없었지만 너무 당연하다는 듯 먹을 것을 달라고 하니 가까이 하고픈 마음이 없었다.
먹는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혼자 먹기에는 많아 보이기만 하던 라쟈냐가 빠르게 사라지자 지윤은 마음이 다급해졌다.
원래 목적은 심후와 가까워지기 위해서였지만 심후가 먹는 모습을 보니 먹어보고 싶은 마음이 더욱 커졌다.
지윤은 근처에 있는 포크를 들었다.
이제 달라고 묻지도 않았다. 그냥 달려들었다. 허락이고 뭐고 필요없다는 자세였다.
허나, 경계하고 있던 심후는 슬쩍 피했다. 커다란 그릇을 들고 먹으면서도 여유 있는 몸놀림이었다.
"이익!"
약이 오른 지윤은 달려들었다. 이젠 아예 심후를 붙잡았다.
부드러운 여체가 몸에 밀착되자 심후는 움찔했으나 팔을 더 들어 올려 지윤의 포크가 라쟈냐에 닿는 것을 막았다.
"이봐요. 초면에 이래도 되요?"
"그냥 한 입만 먹어보자는 건데! 너무 치사한 거 아니에요?"
"네, 전 치사한 놈입니다."
아니라고 부정해봐야 입씨름만 더 길어지니 시원하게 인정해버리고는 마지막 한 입까지 사수했다.
"돼지."
"네, 돼지입니다. 꺼억!"
욕을 해도 통하지 않으니 지윤은 분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뭐 이런. 흥!'
흥분으로 인해 콧구멍 평수가 더 늘어났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선 묘한 감정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흥분으로 인해 콧구멍 평수가 더 늘어났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선 묘한 감정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디 앞으로 계속 그러나 두고 보자.'
오기가 발동한 지윤은 간다고 말하고는 떠났다. 모든 상황은 카메라에 녹화되었고 방송에 나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