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화 (15/64)

내일하고 모레는 여행 때문에 올리지 못하게 될 것 같습니다.

모두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늦은 새벽, 아이돌이 주방에 찾아가 요리사에게 먹을 것을 구걸하다 거절당했다. 아이돌은 육탄 돌격을 시도했으나 우월한 기럭지를 지닌 요리사의 요리에 손을 대는 것은 불가능했다.

- 꼭 먹고야 말겠다!

거대한 자막이 화면을 꽉 채운 이후 오기로 빛나는 아이돌의 눈빛이 화면에 떠올랐다. 그냥 나타난 것이 아니다.

한반도 동쪽에 있는 동해의 일출 장면에서 태양 대신 아이돌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윤과 심후가 주방에서 벌인 일은 편집되어 방송되었다.

사람들은 재미있다며 호응했고 시청률이 또 올라갔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정규 방송하고 싸울 수도 있어!"

"김지윤의 돌발행동이긴 한데 반응이 좋아요! 또 보내는 게 어떨까요?"

"한 번 간 사람 또 보내지 말고 다른 사람은 어떨까요?"

시청률이 오르자 포식과 피디는 대박을 외쳤다. 지윤의 돌발행동으로 인해 녹화된 상황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다른 출연자들 또한 이러한 반응을 알기에 다음에는 자기네들이 가겠다며 아우성이었다.

"아무나 가면 안 됩니다.

자연스러워야죠. 우리는 리얼 요리 예능 아닙니까? 오버하는 건 저 하나로 족합니다."

"형! 내가 당면이잖아. 당면이니까 가서 보조하면 안 될까?"

"당면이 보조라면 소고기는 메인으로 갈게요."

당면과 소고기라는 예명을 가진 포식라인의 개그맨들은 안달을 했다. 이들도 깨달은 것이었다.

심후 옆에서 잘만하면 방송분량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인지도를 높여 스타 개그맨이 될 수도 있었다. 예능이란 것은 참 요상한 것이다.

웃기고 싶다고 아무리 발악해도 안 웃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웃기려고 하지 않는데도 웃기는 사람도 있다. 수많은 방송사들이 프로그램을 제작하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아무리 인기 많고 대단했던 사람들과 함께하더라도 실패하는가 하면 별 것도 아닌 거 가지고 유행을 만들어내는 것은 물론 롱런하며 대박을 이어가기도 했다. 심후가 프로에 참여한 이후 계속해서 꿈틀거리는 시청률은 인기에 민감한 출연자들을 자극했다.

별 것 없는 에피소드에 불과했지만 카메라에 찍힌 영상은 리얼했다. 가상현실이 판치는 세상, 특히 방송이라는 꾸며진 연극을 보는 시청자들을 몰입하게 만드는 것은 그것이 얼마나 리얼한가에 달려있었다.

즉, 그럴싸해 보여야 보는 재미가 있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그저 출연자들끼리 신나게 웃고 떠드는 남의 잔치일 뿐이었다.

포식의 '먹어봐'가 죽지 않고 꾸준히 시청률을 유지한 것도 여기에 기인했다.

엽기적이지만 최소한 거짓이 없었다. 거짓 없이 현실적인 자극을 안겨줬기에 거기에 중독된 시청자들이 매번 확인하듯이 보는 것이었다.

여기에 심후라는 자연스러운 캐릭터가 더해지니 시청률이 꿈틀거린 것이었다.

"당면과 소고기. 그래. 너희들이라면 좀 더 웃길 수는 있겠지. 하지만 안 돼. 좀 가식적으로 변질될 수가 있어. 오프닝과 엔딩은 리얼해야해. 진실을 담고 있어야 하지. 그러니까 두 사람은 안 돼. 너희들의 자리는 여기, 스튜디오다.

"형!"

"안 된다면 안 돼. 이건 우리의 미래가 걸린 문제다. 여기서 뜨면 우리 모두 다 대박 나는 거고. 망가지면 이대로 빌빌 거리는 거고."

"알았어요."

당면과 소고기는 물러났다. 

"그럼 이번에는 제가 가 볼가요?"

당면과 소고기가 물러난 자리를 미남 배우가 채우려했으나 이도 거절당했다.

"안 됩니다. 아무도 가면 안 됩니다."

"네? 하지만 다른 출연자들과 이어질 좋은 기회인데요?"

"그렇긴 하지만 이 프로는 요리 프로! 심후씨는 예능인이 아니라 요리사로서 우리와 함께 해야 합니다. 진짜 요리사가 아니라 하더라도 이미지만큼은 요리사여야 하죠."

포식은 심후의 캐릭터를 일찌감치 파악했다.

요리사로서 이미지가 굳어가고 있는 것이 훤히 보였다. 여기에 어설픈 예능을 너무 접목하면 요리사라는 캐릭터가 죽어버릴 위험이 있었다.

"요리사는 요리사다워야 우리 프로가 삽니다."

순간 모든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리사가 요리사답지 못한 프로가 바로 '먹어봐'였다. 제대로 된 요리가 나오기 힘든 게임을 해야 했다.

실제로 최악의 맛을 가진 요리들은 먹을 때마다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방송만 아니었으면 거들떠도 보지 않을 쓰레기 같은 음식도 꾹 참고 입에 넣었다. 하지만 출연자들도 사람이었다.

'맛있는 것이 먹고 싶다.'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맛있는 것을 먹으며 방송하고 싶었다.

포식이 중간에 훼방을 놓긴 하지만 지난번에 가져왔던 만두는 맛있었다. 포식의 함정을 피해 맛보았던 만두들은 정말 제대로 된 것들이었다.

그때 너무 감동해서 몇몇 출연자들은 눈물을 찔끔 흘렸다. 눈물이 흐를 정도의 맛은 분명 아니었다. 하지만 극악한 요리들에 비하면 천상의 요리였다.

"우린 요리 프로입니다. 그러니 본분은 지켜야 합니다. 본질이 흐려질 때, 그때가 바로 프로의 폐지가 결정되는 때입니다. 그러니 심후씨는 그냥 내버려두고 어떻게 해야 우리끼리 좀 더 새로운 모습을 보일 수 있을지 연구해봅시다.

지금까지는 포식이 홀로 아이디어를 짜냈지만 여유가 생기자 포식은 다른 출연자들을 끌어들였다. 심후의 가세로 인해 시청률이 꿈틀거리자 자신의 한계를 깨달은 것이었다.

홀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것은 너무나 어렵지만 다른 이와 함께 나눈다면 의외로 일이 쉽게 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체감한 덕분이었다.

포식과 피디, 그리고 한물가서 시간이 남아도는 출연자들은 마라톤 회의를 했다.

회의 끝에 도착한 곳은 어느 술집의 테이블이었다.

심후는 여전히 요리 수행에 열중했다.

계약 문제가 있어 피자를 계속 만들어야 했지만 문제는 없었다. 아직까지 만들어보지 않은 피자가 많기에 최소한 한 달 동안 매일 찍어도 만들 수 있는 것은 많았다.

'이번에는 탕수육이나 해볼까?'

지금까지는 계속 이탈리안 요리를 하다 갑자기 중국 요리로 방향을 틀었다.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싶을 때 마음대로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기름에 튀겨지는 탕수육 소리가 콧노래와 함께 하모니를 이루었다. 재료가 전부 있으니 완성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더구나 어렵게 새로운 요리로 업그레이드 시키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 들어있는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비법대로 만든 것뿐이었다.

하지만 막상 먹으려니 고민하는 심후였다.

'부어 먹을까? 찍어 먹을까?'

대부분 별로 신경 쓰지 않기도 하지만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을 찾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고민했을 문제를 심후는 다시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내 피식 웃고 말았다.

'둘 다 하면 되지.'

바삭하게 튀겨진 탕수육을 소스에 일단 찍었다. 바삭한 튀김옷에 탕수육 소스가 살짝 묻었다.

'음.'

금방 튀겨낸 탕수육의 바삭함이 입 안 가득 느껴졌다. 고기가 씹히는 식감도 훌륭했다.

'역시 최고급 돼지고기.'

맛이 아주 좋았다. 바삭바삭한 가운데 고기가 살살 녹았다. 더구나 살짝 찍은 소스의 맛이 함께 어우러져 감동을 증폭시켰다.

'이번에는 살짝 부어볼까?'

한쪽에 살짝 소스를 부어 완전히 소스에 잠겼던 탕수육을 꺼내보았다. 바삭함은 사라지고 소스를 잔뜩 빨아먹어 늘어질 것만 같았다.

맛은 괜찮았다. 바삭함은 약해졌지만 대신 소스의 맛이 강하게 느껴졌다.

'나중에는 다른 소스를 써봐야지.'

달콤한 맛에 빠져있으면서도 머리는 새로운 요리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다. 

"심후씨! 뭘 먹는 겁니까?"

요리의 맛을 감상하는 와중에 찾아온 불청객은 포식과 촬영스텝들이었다.

"탕수육이요."

문을 갑자기 열며 쳐들어왔지만 심후는 절대 놀라지 않았다. 민감한 오감은 이미 문밖의 손잡이에 사람이 손을 댄 순간 문이 열릴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마음의 준비가 끝났으니 놀랄 이유가 없었다.

"저도 좀 주세요."

"네."

심후는 너무나 쉽게 허락했다. 지윤을 거절할 때와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어? 지윤씨는 거절했잖아요."

"싫음 먹지 마세요."

"아뇨,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한 포식은 식사전선에 뛰어들어 탕수육을 무참히 씹어 먹었다. 

"그런데 어쩐 일이에요?"

"미션이 있습니다."

"미션이요?"

"네, 미션이요. 내일은 출장을 가야 합니다. 언제까지나 여기서 수련만 쌓아서는 안 되잖아요. 요리사라면 자신의 요리를 먹은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봐야죠."

"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미션은 바로 피자 배달!"

"피자 배달이요?"

"네, 내일 오후 1시까지 피자 20판을 스튜디오까지 직접 배달해야 합니다. 물론 종류는 전부 달라야 하고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미션은 바로 피자 배달!"

"피자 배달이요?"

"네, 내일 오후 1시까지 피자 20판을 스튜디오까지 직접 배달해야 합니다. 물론 종류는 전부 달라야 하고요."

"간단하네요."

"그렇죠? 그럼 내일 스튜디오에서 봅시다."

포식이 돌아가고 나자 심후는 때가 되었음을 느꼈다.

'드디어 메인이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미션은 바로 피자 배달!"

"피자 배달이요?"

"네, 내일 오후 1시까지 피자 20판을 스튜디오까지 직접 배달해야 합니다. 물론 종류는 전부 달라야 하고요."

"간단하네요."

"그렇죠? 그럼 내일 스튜디오에서 봅시다."

포식이 돌아가고 나자 심후는 때가 되었음을 느꼈다.

'드디어 메인이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미션은 바로 피자 배달!"

"피자 배달이요?"

"네, 내일 오후 1시까지 피자 20판을 스튜디오까지 직접 배달해야 합니다. 물론 종류는 전부 달라야 하고요."

"간단하네요."

"그렇죠? 그럼 내일 스튜디오에서 봅시다."

포식이 돌아가고 나자 심후는 때가 되었음을 느꼈다.'드디어 메인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세트장이 보였다. 여기저기 설치된 카메라와 기기들. 조명이 집중된 세트장에 비해 다른 곳은 약간 어두운 느낌이었다.

허나 촬영 스텝들은 아무런 문제도 없는지 복잡한 곳을 바람처럼 지나다녔다. 

"심후씨! 어서 와요!"

피디와 함께 얘기를 주고받던 포식이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빨리 식재료하고 조리장 확인해 봐요. 부족한 거 있으면 말하고요."

프로의 성공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인지 심후는 톱스타급 대접을 받고 있었다. 

"여기 피자요."

"흐흐흐, 지금 먹고 싶지만 참아야겠네요."

"포식씨, 얼른 시작하죠. 식기 전에 해야 먹을 수 있잖아요."

피디의 말에 포식은 얼른 세트장 위로 뛰어갔다. 이어서 다른 출연자들도 자리를 잡았다.

"후읍!"

녹화방송이기에 실수해도 상관없지만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동안 바밥바의 주방에서 일하며 카메라에 노출된 경험이 있지만 스튜디오에서의 촬영은 처음이기에 긴장 되었다.

"시작합니다! 4! 3! 2!"

촬영이 시작되자 포식과 출연자들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 마냥 웃고 떠들기 시작했다. 밖에서 보던 심후에게는 너무나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축 쳐져있던 사람들이 표정을 가다듬더니 카운트가 끝나자 초롱초롱하게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모두 포식을 바라보며 관심 많다는 표정을 지었다.

"심후씨, 준비되면 아무 때나 치고 들어가요."

포식이 소개를 하는 게 아니었다. 배달이었기 때문에 심후가 좋을 때라면 아무 때나 들어가면 된다는 얘기였다.

피자 20판을 들자 상자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카트에 담아가면 쉽게 해결될 문제지만 심후는 일부러 피자를 들었다.

'그냥 발 걸린 척 해봐?'

진짜 배달부에게는 악몽과 같은 일을 아무렇지도 상상하는 심후는 배달부의 자질이 없음이 증명되었다. 

'아냐, 피자를 땅에 뿌리면 배달은 실패했다면 다시 만들어오라고 할 수도 있어. 그리고 캐릭터에도 맞지 않아.'

다른 것은 몰라도 요리에 관해서는 진지한 사람을 캐릭터로 삼았다.

때문에 피자를 장난으로라도 땅에 버리는 모습을 보인다면 캐릭터에 안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었다.

'대신 약간의 위기는 양념이 되겠지.'

생각을 정리한 심후는 크게 숨을 들이키더니 소리를 질렀다.

"피자 배달하신 분!"

"어?"

심후가 소리를 지르며 안으로 들어서자 출연자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3! 2! 지금!'

"어! 어! 어!"

약간 휘청하자 높게 쌓아올린 피자 상자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사람들은 높은 피자의 탑이 기울어지자 입을 벌리며 놀랐다. 포식이 한 발 앞으로 내딛는 동안 당면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존재가 있었으니 소고기였다.

소고기는 맹렬하게 달려와 휘청거리는 심후를 도와주었다. 피자 10판을 나눠들자 부담은 없었다.

"이야, 소고기씨. 먹을 것을 보니 동작이 소가 아니고 호랑이네."

포식이 다가오며 한 마디 툭 던졌다. 피자는 한쪽에 있는 테이블에 놓여졌다.

"심후씨, 어서 오세요. 일단 저기 카메라 보이시죠? 저기 보시고 자기소개 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요리사지망생 한심후입니다."

예의바른 청년이 되어 허리를 숙여 인사하자 출연자들이 박수쳤다. 

"네, 지금 확인해보니 전부 다른 피자 20판 맞네요. 미션 성공입니다!"

"이제 먹어도 되죠?"

"이건 내꺼야!"

당면이 보채자 먹을 것에 민감한 표정을 보이는 소고기가 피자 3판을 들고는 외쳤다. 이때 포식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어허. 찬물도 위아래가 있지! 내가 고르지 않았는데 어디서 감히."

오만한 말이었으나 스튜디오에서 포식의 캐릭터는 오버하는 왕이었다. 그리고 당면과 소고기는 포식의 부하였다. 포식은 배부르게 먹는다는 뜻에서 지은 예명이고 당면과 소고기는 식재료니 그냥 보기에도 상하관계가 뚜렷한 예명들이었다.

"오빠! 지윤이는 이거 먹고 시퍼요!"

아이돌 지윤은 이때다 싶어 치고 들어왔다. 예쁜 여자의 애교에 포식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지윤이는 예쁘니까 골라 먹어."

피자 한 판 든 지윤은 심후를 한 번 흘겨보고는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맛있네. 쳇.'

지윤은 피자를 먹으면서 속으로는 투덜거렸다.

'그때 그건 무슨 맛이었을까?'

맛있는 피자를 입에 물고도 끝끝내 먹지 못했던 라쟈냐를 잊지 못했다. 어떤 사람은 가진 것을 뒤돌아보기보다 가지지 못한 것에 미련을 가지는데 지윤이 딱 그 짝이었다.

'한 번 못 먹은 것은 영원히 못 먹은 거야.'

물론 나중에 먹어보면 될 일이지만 그때, 그 순간에 못 먹은 것은 못 먹은 것이다.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못 먹은 기억은 영원하다.

지윤은 사람들과 인사하며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는 심후를 보며 눈을 빛냈다.

'흥, 나한테 꼭 넘어오게 만들어주지.'

다짐을 하면서 심후가 자신을 위해 늙어서까지 요리를 만들어 바치는 상상을 했다.

그랬더니 서운한 마음이 조금 가셨다. 한편, 심후는 적응을 위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피자를 설명하기 바빴다.

처음 만들었던 검은 올리브 피자부터 파인애플이 듬뿍 들어간 하와이안, 페퍼로니를 듬뿍 쓴 페퍼로니 피자, 치즈가 쭉쭉 늘어나는 치즈피자, 닭고기를 잔뜩 쓴 치킨 피자까지 하나의 토핑을 아낌없이 얹은 것들이 있는가 하면 여러 가지를 합친 것들도 있었다.

출연자들은 전부 자신의 취향에 맞는 피자를 골라 먹기에 여념이 없었다.

'불쌍해 보이네.'

사람들에게 설명을 하던 심후는 문득 카메라가 있는 방향을 보다 쓴 웃음을 지었다. 촬영 스텝들이 모두 배고픈 표정이었다.

피디는 꿀꺽 삼키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심후는 피자를 이리저리 담기 시작했다. 그러자 종류별로 피자를 쌓아놓고 열심히 먹던 포식이 고개를 들었다.

"뭐하세요?"

"저분들도 드셔야죠."

심후는 종류별로 피자를 담아 피디에게 다가갔다. 

"좀 드세요."

"고맙습니다."

피디는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카메라맨은 심후의 선행을 아름답게 카메라에 담았다.

조명 담당도 최대한 심후의 얼굴에 그림자가 지지 않게 하기 위해 확실히 움직였다. 순간 모든 빛이 집중되며 심후는 반짝였다.

이를 본 지윤의 가슴에는 불이 붙었다.

'누군 챙겨주고!'

방송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거절당했던 기억은 이성을 날려버렸다.

심통에 불이 붙었다. 지윤은 다시 세트 위로 돌아오는 심후를 맞이했다.

"오빠!"

지윤이 22살이고 심후가 23살이니 오빠가 맞았다.

"네?"

"오빠라고 불러도 되죠? 오빠?"

애교. 허나 심후는 반갑지 않았다.

'이 여자가 또 왜 이래?'

여성이란 존재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바라보다보니 많은 것이 보였다.

심후는 지윤이 뭔가 노리고 자신에게 접근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여자라면 일단 호감을 갖고 보던 시절에는 절대 느끼지 못한 것이었다.

"아뇨."

단호한 말에 지윤은 멍한 표정이 되었다.

"제가 그렇게 싫어요?"

"아뇨."

"그럼 왜 그러시는데요?"

"감이요."

"네?"

"제 감이 지윤씨를 멀리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완벽한 차별대우. 이유 따윈 없었다.

그냥 싫어서 멀리한다. 그런 소리였다. 

'나한테 감히!'

지윤의 마음속에 핀 오기는 대기권을 뚫고 우주로 향하는 인공위성이 되었다.

빙글빙글 지구 위를 돌며 지윤에게 

'저 인간을 꼭 굴복시켜!'

라는 내용의 전파를 쏘아 보냈다.

꼭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입술도 떨렸다. 눈에 너무 힘을 주다보니 눈은 독하게 빛났다.

살짝 건드리기만 하면 주먹을 휘두를 기세였다. 

"피자 드세요."

심후는 지윤을 무시하고는 다른 여성 출연자에게 피자를 권했다.

"저기! 근데 궁금한게 있는데요!"

지윤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찰거머리처럼 자신을 무시하며 멀어지려는 심후에게 달라붙었다.

"네?"

"아까 들어오실 때 

'피자 배달하신 분!'

이라고 외쳤죠?"

"제가 그랬어요?"

"네!"

좋게 말해선 접근하기 힘드니 일단 기를 꺾기 위해 말꼬리를 잡는 지윤이었다.

"기억에 없는데요?"

"언니, 아까 분명 들었죠?"

지윤은 심후에게 피자를 받아먹고 있는 여배우에게 물었다.

"응, 듣긴 했어."

"거봐요."

"아, 제가 첫 방송이라 떨려서 그랬어요."

심후는 변명했다. 사실 실수한 것도 아니었다. 일부러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방송의 재미를 위해 미끼를 던진 것이었다. 

"그래도 그렇죠."

지윤이 물고 늘어졌지만 여배우가 중간에 말렸다.

"에이, 그럴 수도 있지 뭐. 처음에는 나도 실수 많이 했어."

여배우가 놀리는데 동참하지 않고 심후를 편들었다. 결국 지윤만 나쁜 사람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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