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화 (17/64)

늦어서 죄송합니다. 지윤은 집에 돌아왔다.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얼굴 좀 반반하다고 남자들이 대접해줘야 한단 착각은 버리세요.'

심후의 말이 메아리가 되어 마음을 울렸다.

잊으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더 강하게 각인되었다. 덫에 걸린 짐승이 발버둥 칠수록 더 상처가 깊어지는 것과 같았다.

지윤의 마음은 피를 흘리는 중이었다.

'나쁜 새끼.'

이쯤 되면 좋게 넘어가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악소문을 퍼트릴 수도 없었다.

심후는 지윤에게 꼭 필요한 남자였다. 지금 현재 고정 출연하고 있는 프로는 인기가 점점 올라가는 중이었다.

심후가 가세한 이후에 나타난 현상이었다. 만약 심후에게 나쁜 이미지가 생겨 추락하게 된다면 프로도 같이 추락할 위험이 컸다.

그리되면 지윤이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기회도 더욱 줄어들 뿐이었다.

하지만 소문이란 것이 꼭 나쁜 쪽으로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그렇게 우습게 보여?'

지윤은 소속사에 심후에 대한 것들을 조사해달라고 부탁했다. 

"왜 관심 있어서 그러냐?"

매니저의 의심 섞인 질문에 지윤은 피식 웃었다.

"이용할 건 이용해야죠. 우리 프로의 기둥이 될 사람이니까. 잘 보여 두면 편하잖아요. 그리고 혹시 알아요? 스타로 될 자질이 있으면 미리 계약해놓는 것도 좋죠."

"알았다. 정말 다른 건 없지?"

"사실 있어요. 노이즈 좀 만들어볼까 해서요."

"노이즈? 너까지 그러면 진짜 그룹 해체된다."

포포걸스는 정말 힘든 시기에 놓여 있었다.

막강한 남자 아이돌 그룹과의 스캔들의 여파는 무시무시했다. 팬들의 이탈 현상은 계속 가속화되고 있는 중이었다.

후속 조치가 미흡한 것도 원인 중 하나였지만 가장 큰 문제는 상대 아이돌 그룹의 소속사에서 계속 이것을 이용해먹고 있다는 것이었다. 

"해체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솔직히 걔랑 더 얼굴 보고 싶지도 않아요. 누군 토해가면서 일하는데 연애질이나 하면서 스캔들이나 뿌리고."

조직력도 최악이었다.

지윤의 말에 매니저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알았다.

실장님한테 말은 해볼 테니까."

통화를 마친 지윤은 콧노래를 부르며 아껴두었던 와인을 꺼냈다.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하지만 곧 이어 심후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자 심후가 했던 말이 뒤통수를 때렸다.

'얼굴 좀 반반하다고 남자들이 대접해줘야 한단 착각은 버리세요.'

"아아아아악!"

비수가 된 말은 점점 더 깊게 박히는 중이었다.

한편, 집에 돌아온 심후는 수면을 취하기 위해 침대에 눕지 않고 가상현실접속기에 들어갔다.

정신적으로 계속 깨어 있게 되면 피곤할 수 있으나 무공으로 인해 몸이 변화한 심후는 정신적인 피로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저, 저기요!"

게임에 접속하자마자 갑자기 들려오는 소리에 심후는 경계했다.

에린과 싸운 이후 게임을 하지 않아서 로그인한 장소가 여전히 빌딩 위였다. 보통 유저들이 오지 않는 곳인데 사람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거니 당연히 경계했다.

"뭡니까?"

"저 싸우자는 게 아니고요. 우리 친구하면 안 돼요?"

"네?"

"제발요. 우리 친구해요. 네?"

여성 유저는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며 애원했다. 그러나 그런 것이 통할 심후가 아니었다. 

"됐고. 꺼져."

심후가 거칠게 말하자 여성 유저는 갑자기 총을 겨누었다.

"수, 순순히 친구가 되세요. 안 그러면 쏩니다."

여성 유저, 에린의 메이드인 제니가 들고 있는 것은 총이 아닌 바주카였다.

'이건 뭐야?'

친구하자는 것도 황당한데 갑자기 무기를 겨누니 심상치 않아 보였다. 싸우는 것이야 언제든지 할 수 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의문을 느꼈다.

"내가 댁하고 왜 친구 해야 하는데?"

"그건 우리 통성명하면 알려드릴게요."

"아이디 까자고? 싫은데?"

"정체를 알려주시면 공격하지 않아요."

대화가 제대로 되지 않음을 느낀 심후는 싸우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혼자인 거 같네.'

판단이 서자마자 심후는 스킬을 발동해 좀비로 변했다.

그 순간, 제니의 바주카에서 포탄이 발사되었다. 심후의 몸의 색깔이 변하자마자 바로 발사한 것이었다.

'날 안다!'

정체를 알고 노리고 있지 않았다면 미리 준비하고 대기할 수 없었다. 뭔가 떠오를 것 같았지만 전투중이기에 길게 생각이 이어지지 않았다.

최대한 몸을 낮춰 바닥을 구르자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의 여파로 인해 몸이 날아가며 생명력이 줄어드는 것이 보였다.

'제길, 한 방만 스치면 죽는다.'

위급한 상황이었다.

심후는 구르면서 제니에게 총을 겨누고는 방아쇠를 당겼다. 총성이 빌딩 위에 울렸지만 심후의 시야는 검게 변했다.

심후가 총을 쐈을 때 제니도 바주카를 쏜 것이었다. 결국 심후는 사망 판정을 받았다.

안전구역의 광장에서 부활한 심후는 인벤토리와 상태를 확인하고는 혀를 찼다. 어렵게 올린 스킬의 숙련도가 대폭 하락한 것이었다.

'가만 안 둔다!'

분노한 심후는 피할 생각 따윈 하지 않았다. 싸우기 위해서 여러 가지 무기를 구매했다.

돈은 충분했다. 상당량의 돈을 빼앗기긴 했지만 에린을 여러 번 잡으면서 거금을 손에 넣었기에 금전상의 문제는 별로 없었다.

'그런데 그냥 한 번만 죽이고 끝낼 순 없잖아?'

복수하고 싶다. 죽이고, 죽이고 또 죽이고 싶었다. 그런데 한 번 죽고 다시 덤비지 않으면 두 번 죽일 수 없다.

'일단 가보자.'

친구 추가를 하자더니 바주카를 겨눴던 제니를 떠올리니 의문이 계속 피어올랐다.

'그런데 날 알고 있었어.'

제니의 행동을 되새겨보니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이 느껴진 심후였다.

보자마자 친구 하자는 것도 그렇고 변신하려하자 바주카를 쏴버린 것도 그랬다.  

'마치 내가 도플갱어 유저라는 것을 아는 느낌이었어.'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빌딩 옥상에서 계속 자신에게 덤비던 부자 유저였다. 

'설마 날 잡으려고?'

가능성이 아주 없는 얘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자니까 사람 시켜서 지키고 있었을지도 몰라.'

재미있다고 생각이 들자 웃음이 나왔다.

"크크크크크."

실성한 놈처럼 웃던 심후는 달리기 시작했다. 가끔 좀비들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모두 무시하고 빌딩으로 달렸다.

'예상대로라면 날 기다리고 있다!'

예상은 적중했다. 제니는 바주카를 들고 심후를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 추가 하죠?"

"그 전에 하나만 물어봅시다."

"뭔데요?"

"다른 사람이 시킨 일이죠?"

"네, 맞아요."

"친구 추가해봐야 알 수 있는 건 접속 여부 정도일 텐데요?"

"하지만 무전기를 구입하면 통신 가능하죠."

올라이프 50은 이상하게도 채팅을 지원하지 않았다. 때문에 불편한 점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유저들이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없는 것도 아니었다.

게임 자체가 다른 프로그램을 사용하면서 즐길 수 있게 되어 있기 때문에 게임에서 지원하지 않아도 채팅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그만이었다. 물론 이 경우에는 서로 연락처를 따고 주고받았을 경우에만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나랑 싸우고 싶어서 그런 건가요?"

"네, 우리 아가씨는 바쁘거든요."

"좋아요. 하죠. 대신 그 바주카는 좀 치우죠?"

친구 추가는 금방 이뤄졌다. 무기를 모두 집어넣은 상태에서 악수를 하지 않으면 친구 추가는 되지 않았다.

제니와 심후가 악수하며 친구 추가를 했다. 올라이프 50을 시작하고 처음 추가한 친구였다.

큰 의미는 없었다. 진짜 친구도 아니고 그저 결투를 할 때 쉽게 연락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참, 이거 받으세요."

"이메일 주소요. 무크씨도 가르쳐주세요."

두 사람은 이메일 주소까지 교환했다. 제니는 시험 삼아 이메일을 교환하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이제 됐어요. 그럼 나중에 봐요."

"잘 가요."

"앗!"

제니가 인사하는 순간 심후는 제니의 이마에 총알을 박았다. 근거리에서 헤드샷을 당한 제니는 그대로 사망했다.

"이제 됐어요. 그럼 나중에 봐요."

"잘 가요."

"앗!"

제니가 인사하는 순간 심후는 제니의 이마에 총알을 박았다. 근거리에서 헤드샷을 당한 제니는 그대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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