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화 (19/64)

늦어서 죄송합니다. 바쁘다 보니 자꾸 거르게 되네요.

'귀찮게.'

세 여자로부터 도망친 이후 계속해서 연락이 왔다. 도망치지 말고 한 번 더 붙자는 얘기였다.

도주하는 과정에서 심후의 정체는 발각되었다. 하지만 심후는 아랑곳하지 않고 안전 구역에서 로그아웃했다. 

'다음에는 채널도 바꿔서 접속해야지.'

한동안 철저하게 세 여자를 피할 생각이었다.

돈이 많은 것인지 실력이 좋은 것인지 몰라도 세 여자가 사용하는 장비는 심후가 한 번도 보지 못한 것들이 많았다. 정면에서 싸운다면 승률이 현저하게 낮아질 것 같아 심후는 철저하게 피한 것이었다.

가상현실접속기에서 나와 샤워를 하자 뱃속에서 밥벌레들이 밥을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애인을 쓰다듬듯 배를 만져준 후 향한 곳은 주방이었다.

냉장고를 여니 방송국에서 챙겨온 식재료들이 반갑다고 인사했다. 

'스테이크!'

챙긴 식재료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 것이 바로 질 좋은 소고기였다.

먹기 좋게 썰어 프라이팬에 버터를 두르고는 굽기 시작했다. 

"으음!"

고기 익는 소리가 은은하게 주방에 울렸다.

맛있는 멜로디라고 생각하며 심후는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고기 고기 소고기, 맛이 좋아 소고기, 살이 찐다 소고기."

가사를 붙여보았다.

유치했지만 입에 착 감겼다. 심후는 고기가 다 익을 때까지 계속해서 노래를 불렀다.

고기는 살짝 익혔다. 육회로 만들어서 먹어도 될 정도로 신선한 것이었기에 살짝 익히기만 해도 문제는 없었다.

다 익은 고기를 접시에 올려졌다. 자리에 앉은 심후는 고기로부터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아름답게 익은 고기의 자태에 넋이 나갈 정도였다. 

'이게 내 작품이야.'

자아도취에 빠져 잠시 고기를 감상하다가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프라이팬에 익힌 고기는 그릴에 익힌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방대한 양의 레시피를 모두 기억하고 있는 심후는 조리 도구에 따른 요리 방법도 기억하고 있었다. 때문에 고기를 잘못 익히는 우를 범하는 일은 없었다.

나이프가 고기에 닿자 고기는 힘없이 잘려나갔다. 너무나 연약한 것이 소녀 같았다.

몸이 갈라진 고기는 육즙을 흘렸다. 붉은 속살이 그대로 보이자 심후의 눈은 붉게 충혈되었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결국 포크로 찔렀다. 이어서 입에 넣고 씹었다.

버터의 향과 함께 입 안에 퍼지는 육즙, 그리고 속살의 감촉에 심후는 황홀해졌다. 

"으으으음!"

혀에 착착 감기는 맛은 인간의 삼대 욕구 중 하나를 완벽하게 충족시켜 주었다.

손이 더욱 빨라지며 고기는 빠르게 작아졌다. 점점 작아지는 고기를 보면서 심후는 아쉬움을 느꼈다.

고기가 다 사라지자 심후는 심한 허기를 느꼈다.  '부족하다.

'허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고기 한 덩이만으로는 무공으로 인해 발달한 심후의 몸을 만족시켜 줄 수 없었다.

몸이 근육질로 변한 만큼 필요한 영양분과 에너지도 더 많아졌다. 참지 않았다.

참을 이유가 없었다.

고기를 또 다시 꺼내 노래를 불렀다.

같은 노래였으나 좀 더 강렬했다. 헤드뱅잉까지 하며 불렀다.

소고기송의 락 버전이었다. 

"고기이이이이!"

마지막에는 미친 고음을 질러대며 스테이크를 접시에 옮겼다. 그리고 다시 바쁘게 먹기 시작했다.

지방과 단백질의 조화는 심후를 유토피아로 이끌었다.

피자 배달편이 방송되었다.

이때, 전국의 소고기 소비량이 소량 급증했다. 스테이크를 파는 식당들은 대부분 손님들이 밀려와 아주 잠깐이나마 호황을 맞이했다. 하지만 진짜 대박을 맞이한 곳은 바로 바밥바였다.

"계약하자."

출근하니 바밥바의 사장은 단숨에 심후에게 제안했다. 식당 이익을 나누자며 손을 내민 것이었다.

방송 출연하는 동안 뭔가 만들었다 하면 대박을 터트리니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싫은데요."

허나 심후는 단호했다.

어딘가의 요리사로 머문다면 최소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요리를 취급하는 레스토랑의 요리사가 되고 싶었다. 유명 요리사가 되어 명예와 돈을 한꺼번에 쥐는 것이 심후의 일차 목표였다.

바밥바는 괜찮은 곳이긴 했지만 심후가 원하는 것을 주기에는 너무나 작았다.

"왜?"

"돈 좀 벌면 저도 제 사업해야죠."

사장은 앓는 소리를 냈다. 심후가 근처에 식당이라도 차린다면 바밥바가 위험했다. 지금은 잠깐 잘 나가고 있지만 모두 심후 덕이었다. 만약 심후가 경쟁자로 나선다면 바밥바는 위태로워질 수 있었다.

"이 근처에 식당 낼 거냐?"

"그럴 수야 없죠. 그래도 사장님하고 인연이 있는데."

"그래, 고맙다."

다시 일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스테이크를 굽느라 바빴다.

물론 피자도 만들어야 했다. 영업이 끝날 때까지 심후는 쉬기 어려웠다.

주방은 전쟁이 터진 것처럼 시끄러웠다. 끊임없이 주문이 밀려오고 주방 사람들은 주문을 처치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요리했다.

"으아, 매일 이러면 진짜 몸살 나겠어요."

"이 정도로 앓아누울 정도면 이 일 때려치워야지."

고참의 말에 일하기 시작한지 1년이 된 요리사는 입을 다물었다. 요리사는 몸으로 먹고 사는 직업이었다.

몸이 편해서는 쉽게 돈 벌기 어려운 직업이기도 했다. 바쁘지 않은 요리사가 많으면 식당이 잘 안 된다는 소리였다.

최고급 레스토랑의 경우라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적어도 서민을 상대로 하는 식당에서는 진리로 통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런데 저 녀석은 몸이 무쇠로 됐나. 팔팔하네요."

심후를 보고 한 마디 하자 고참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건 몰라도 체력 하나만큼은 최고다."

요리사에게 필요한 자질 중 체력 부분에 있어서 심후는 단연 으뜸이었다.

바쁘게 일하고 나서 남은 재료로 빠르게 요리를 하고는 배를 채우고 있었다. 

"먹는 것도 만만치 않네요."

"그래, 저렇게 먹는데 배가 안 나오니 정말 대단하네."

주방 사람들은 모두 심후를 보고 감탄했다. 하지만 마냥 감탄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사장님, 이대로라면 우리 얼마 안 가 쓰러집니다."

"맞아요. 사람 좀 더 구해요."

종업원들의 요구에 사장은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심후가 언제까지 우리랑 같이 일하는지도 모르는데 더 늘리면 안 돼."

하루 이틀 장사하고 말 것도 아닌데 좀 바쁘다고 사람 구했다가 손님이 줄어들면 고용한 만큼 사장에게는 손해였다.

종업원들이야 같이 일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일감이 줄어드니 더욱 좋았지만 사장의 입장에서는 비용지출로 이어지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러다가 쓰러질 것 같은데요. 이런 추세로 일주일만 지나도 아마 여럿 몸살 납니다.

"으음."

홀에서의 서빙 같은 경우에는 얼마든지 아르바이트를 구할 수 있었다. 서빙이란 것이 그다지 전문적인 일은 아니었기에 약간의 교육만으로도 충분히 한 사람 몫을 하도록 만들기 쉬웠다. 하지만 주방 일은 조금 달랐다.

우선 요리를 할 줄 알아야 했다. 양파 써는 것도 제대로 못하는 인간을 주방에 넣어봐야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었다.

주방에 들어간다는 것은 그만큼 공간을 차지한다는 이야기인데 다른 사람들과 호흡을 맞춰서 일하지 못하면 오히려 거치적거릴 뿐이었다. 바쁜 상황에서 길을 가로 막는 장애물로 변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주방에 사람을 들이는 일은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사람만 많이 데려다 놓는다고 주방의 효율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한 명 더 고용하세요. 아무리 보너스 받고 그래도 몸이 버티질 못합니다."

주방장이 강력하게 나오자 사장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지."

사장은 결국 요리사를 한 명 더 채용하기로 했다. 대신 나중에 심후가 그만두고 식당 수입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면 다시 자르기로 한 것은 말하지 않았다.

언제가 할지 모를 일을 벌써부터 떠벌려 종업원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은 사장으로서 할 일이 아니었다.

사장과 주방 사람들이 줄다리기를 하는 동안 심후는 요리에 대해 고민했다.

'다음 요리는 뭐로 해볼까?'

자신으로 인해 시청률이 꾸준히 올라가는 것은 심후도 알고 있었다. 

'지금부터가 중요해.'

인기가 올라가고 있을 때가 가장 중요했다.

조금 잘나간다고 노력을 게을리하다보면 도태되기 십상이었다. 

'뭔가 신기한 걸 해봐야 할 텐데.'

열심히 요리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좋지만 방송에 내보내기 위해서는 뭔가 눈길을 끄는 것이 필요했다.

그런 면에서 피자는 확실히 좋은 소재였다. 피자 반죽을 펴는 과정에서 보여줄 수 있는 묘기가 있기 때문이었다.

'묘기를 부릴 수 있는 요리만 하는 것은 좋지 않아. 눈길을 끌만한 요리를 생각해보자.'

잘못하면 요리하는 것이 장난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만 했다. 어디까지나 열정이 가득한 요리사로서 알려지고 싶은 것이지 재주 부리는 기인으로 알려지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기억 속에 저장된 레시피를 살펴보던 심후는 적당한 요리를 찾고는 미소 지었다. 

'간단하지만 임팩트가 있는 것!'

심후가 고른 것은 바로 초대형 햄버거였다.

맛 자체는 작은 햄버거나 큰 햄버거나 별 차이가 없을지 몰라도 대형 햄버거는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풍족하게 해주는 임팩트가 있었다. 이윽고 심후는 반죽을 시작했다.

초대형 햄버거를 만들기 위해선 빵이 중요했다. 빵이 작으면 햄버거도 작을 수밖에 없었다.

'오븐이 작네.'

주방의 오븐으로는 생각했던 크기의 빵을 구울 수 없었다.

"피디님, 제가 아주 큰 대형 오븐이 필요한데 구할 수 있나요?"

전화를 받은 피디는 사정을 듣자마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건 또 다른 대박이다.'

"얼마나 커야 하는데요?"

"최대한요. 크면 클수록 좋아요."

"그럼 화덕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요? 임시로라도 만들면 아주 크게 가능하지 않나요?"

"그렇긴 하죠. 그런데 그렇게 만들고 안 쓰게 되면 돈 아깝잖아요."

"기다려보세요. 제가 알아볼게요."

며칠 후, 가로 5미터, 세로 5미터의 화덕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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