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화 (22/64)

항상 함께 해주시는 분들에게는 감사하고 있습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셨으면 좋겠네요.

복수를 위한 준비는 척척 진행되고 있었다. 영수는 자신의 주변에 드리워진 복수의 그림자를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보고를 받을 때마다 심후는 웃었다. 

'오늘은 뭘 만들어 볼까?'

마음이 즐거워지니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다.

뭘 해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샘솟았다. 푸릇푸릇한 봄날의 새싹처럼 싱그러운 미소가 입가에 피어올랐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음악을 틀었다. 음악이 실내를 가득 채우자 신이 난 심후는 주방으로 향했다.

냉장고를 열자 느껴지는 서늘함이 좋았다. 환한 불빛 아래 자태를 드러낸 식재료들이 좋았다.

배가 고파졌다. 맛있는 것을 왕창 먹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고기를 꺼냈다.

"뭐니뭐니뭐니해도고기고기고기."

엉터리 노래를 흥얼거리며 즉흥적으로 고기를 다듬었다.

무엇을 만들고자 하는 이미지는 없었다. 수없이 요리를 하며 다듬어진 감각에 의지해 움직일 뿐이었다.

고기가 얇게 썰어졌다. 사이에 모짜렐라 치즈를 끼우고는 겉을 다시 고기로 감쌌다.

준비된 치즈고기 덩어리를 오븐에서 로스트비프처럼 익혔다. 

"음!"

치즈와 고기는 궁합이 잘 맞았다.

육즙과 치즈, 고기의 식감이 한데 어우러지니 자꾸 입안에 넣게 되었다. 손이 점점 빨라지더니 결국 양 볼에 빵빵하게 찰 때까지 입에 음식을 넣었다.

햄스터처럼 빵빵한 볼을 하고 음식을 씹는 심후는 눈을 감았다. 정말 기분이 좋은 일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었다.

식사를 끝내고 나서 바로 게임에 접속했다. 이제는 다시 움직일 시간이었다.

열심히 마력 포션을 빨아대며 도플갱어의 육신을 마스터 레벨까지 올렸다. 죽어도 숙련도가 떨어지지 않는 상태가 된 것이었다.

도플갱어의 육신: 플래티넘, 마스터 저장한 이미지 1/10 지속시간 무제한 쿨타임 1분필요 마력: 100더욱 좋은 것은 바로 지속시간이 무제한이라는 것이었다. 이제는 변신이 풀릴까 조마조마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이번에는 은신이다.'

은신: 실버, 레벨 0

(0%)

지속 시간 1분.

쿨타임 1분.

필요 마력: 20심후는 올라이프 49에서 가지고 넘어온 스킬 '은신'을 익혔다.

처음부터 익히려고 한 것은 바로 은신이었다. 암살자가 되어 유저들을 마구 사냥하기 위해선 꼭 필요했다.

'이제 암살을 해도 PK 카운트가 안 올라간다.'

가장 좋은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몬스터로 변신 한 뒤에 은신으로 숨어 저격하면 발각이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PK 카운트가 올라가지 않으니 감옥에 갈 필요도 없었다.

지속시간이 있어 무제한으로 숨을 수는 없지만 상관없었다. 1분 안에 한 명 잡고 1분 쉬는 식으로 하면 문제없었다.

- 마스터했어?

새로운 스킬을 익히고 움직이려는 찰나, 에린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 얘랑도 놀아줘야지.'

귀찮기는 했지만 받아먹은 게 있으니 놀아줄 생각이었다.

덕분에 플래티넘급 스킬 하나를 빠르게 마스터 할 수 있었으니 약간 고마운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슬며시 입가에 미소가 어리는 순간 고개를 세차게 털었다.

'약해지지 말자.'

(情)

.

두 번 다시 품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정이 살짝 고개를 들었기에 다시 짓밟아야만 했다.

'제길.'

몹시 좋았던 기분이 순식간에 바닥을 쳤다.

높은 곳에서 떨어진 계란처럼 부서졌다. '게임이나 하자'꿀꿀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게임을 택했다.

게임에 몰입하면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는 순간이 오기 때문이었다. - 했다.

- 싸우자.

- 켈보그에서 보자.

이제는 시작점을 떠날 때가 되었다. 많은 유저들이 아직도 있기는 했지만 많은 유저들이 쭉쭉 치고 나가고 있었다.

'돈 많은 것들을 잡아야지.'

초보 지역에서 100명 잡는 것보다 고수 지역에서 1명 잡는 것이 더 이득이었다. 켈보그까지 움직이는데 걸린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외딴 지역에서부터는 좀비로 변신을 하고 유저가 근처에 있을 땐 은신을 써서 피해갔기 때문이었다. 싸우지 않고 이동하기에 낭비되는 시간은 하나도 없었다.

"드디어 싸우는 구나."

켈보그의 광장에서 만난 에린은 예전보다 더 화려해진 모습이었다. 

'젠장, 완전 초호화네.'

특히 압권은 손에 든 서브머신건이었다.

"그거 손에 든 거 레어 아이템?"

"응, 멋지지? '브레슬리스 서브머신건'이야."

브레슬리스 서브머신건의 성능은 무시무시했다. 총알 하나하나가 베이직 저격총과 같은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현재의 심후로서는 도저히 당해낼 수 없었다.

'무조건 거리를 벌려야겠군.'

에린을 상대할 방법을 계속 생각하던 심후는 에린을 먼저 내보냈다.

예전처럼 심후가 뒤치기를 하지 못하도록 제니가 심후를 지켰다. 

"북쪽 폐허에 도착하셨다고 했어요."

"이제 내가 알아서 갈게."

"중간에 딴 데로 가면 안돼요."

'쳇.'

가장 좋은 선택지가 막혔다. 에린이 북쪽 폐허에서 심후를 기다리는 동안 심후는 딴 데서 사냥이나 하면서 시간을 보낼 셈이었다.

"알았어. 간다."

천천히 북쪽을 향해 걷던 심후는 안전구역을 벗어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북쪽 폐허라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폐허에는 제대로 서 있는 건물이 없었다.

대부분 무너지고 부서져있었다. 단층짜리 건물도 꼭 어딘가 망가져 있는 상태였다.

유저가 지나가면 건물의 잔해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와 습격하는 곳이 바로 북쪽 폐허였다.

- 도착했음.

- 보인다.

- 앞으로 1시간만 놀아주겠음. 그 이상은 나도 바쁨.

- 그래.

메시지를 주고받던 심후는 근처의 몬스터 이미지를 복사해 변신했다. 악어의 가죽과 같은 피부를 지닌 좀비의 모습이었다.

이름은 좀비게이터, 가까이 다가가면 악어처럼 순식간에 달려들어 물어뜯는 좀비였다.

심후가 좀비게이터로 변신했을 때 에린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도망칠 수는 없었다. 에린에게 돈을 받은 이후 레벨 올리는 것도 멈춘 상태여서 심후의 캐릭터는 굉장히 약한 상태였다.

마력은 넘쳐나지만 힘과 민첩은 초보자와 같았다. 생명력도 얼마 되지 않아서 에린의 새 무기인 브레슬리스 서브머신건에 걸리면 사망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변신한 심후는 뒤돌아 뛰었다. 건물 모퉁이를 돌아 은신을 시전했다.

스킬 발동과 동시에 투명해지더니 완전히 사라졌다. 심후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은신 상태에서는 원래 빨리 움직일 수 없었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에린을 피하는 것이었다.

잠시 뒤, 건물 모퉁이에서 에린이 튀어나왔다. 

"어?"

달리던 에린은 조금 달리다 멈추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디로 간 거지?'

에린이 알기론 심후는 민첩을 별로 올리지 않았었다. 때문에 한 순간에 멀리 도망치는 것은 무리였다.

길 위에서 심후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어딘가에 숨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에린은 더 이상 뛰지 않고 어딘가에 숨었을 심후를 찾기로 했다.

반면, 모퉁이를 돌자마자 은신을 시전한 심후는 모퉁이에 바짝 붙어 있었다. 때문에 에린이 모퉁이를 돌아 앞으로 나간 시점에서 심후는 에린의 등 뒤에 서게 된 것이었다.

총을 꺼내 쏜다면 뒤통수는 확실히 날려 줄 수 있는 포지션이었다. 그렇지만 심후는 바로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장비가 심상치 않아.'

무기만 화려한 것이 아니었다.

몸에 걸치고 있는 장비들도 심상치 않아 보였다. 방어력을 높여주는 방탄조끼도 입고 있었기에 어쩌면 베이직 소총 한 방으로는 부족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린이 들고 있는 브레슬리스 서브머신건의 화력이 엄청나니 근거리에서 저격했다가 행여나 반격을 당하면 심후도 무사하기 힘들었다.

은신은 곧 풀렸다.

익힌 지 얼마 되지 않아 지속시간이 짧은 탓이었다. 하지만 에린은 엉뚱한 곳에서 심후를 찾는 중이었다. 심후는 폐허에서 가장 높은 건물을 찾아 올라갔다.

아직 완전히 무너지지 않은 건물은 옥상까지 올라가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웠다. 계단이 끊겨 있고 문이 뒤틀려 열리지 않기도 했다.

심후는 천천히 시간을 들여 옥상까지 기어 올라갔다. 

'잘 보이네.'

무너진 부분을 피해 옥상 난간에 서자 천천히 주변을 뒤지는 에린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저격총을 꺼낸 에린의 머리를 조준했다. 

'굿 바이! 베이비!'

조용히 속으로 인사를 하며 방아쇠를 당기니 총탄은 익숙한 뒤통수에 박혔다.

뒤통수에 총알 박는 것도 여러 번 하다 보니 어떻게 움직이게 될지 예측이 가능했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과거에는 그냥 충격에 의해 날아가던 에린이 이제는 서브머신건을 난사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근처에 있었다면 심후가 오히려 당할 수 있었다.

'넌 아직 나한테 안 돼.'

빠른 연사에 에린은 결국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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