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화 (24/64)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하늘은 푸르고 햇살을 따스했다.

싱그러운 바다의 향기가 살랑거리는 바람을 타고 스며들었다. 여기에 남자와 여자가 바닷가를 함께 거닐었다.

"오빠. 그만 돌아가면 안 돼요?"

"아직 많이 남았잖아요. 이것 좀 들어줘요."

지윤의 애원은 깔끔하게 무시되었다. 두 사람이 잔뜩 든 짐만 아니었다면 굉장히 로맨틱한 산책이 될 수 있었다.

심후는 당연히 로맨스를 원하지 않았다. 

'고생이다! 고생 끝에 고생 온다! 죽도록 고생해라!'

짐은 심후가 더 많이 들고 있었다.

전부 무거운 짐이었다. 하지만 심후는 무공으로 단련된 몸이었다. 이제는 평범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상태였다.

거대한 가방을 앞뒤로 맨 것도 모자라 양손에 들고 있었다. 무게가 상당했지만 심후는 별로 힘들어하지 않았다.

겉보기에도 탄탄한 심후의 몸이었기에 사람들은 심후가 힘이 굉장히 세다고만 생각했다. 반면 지윤은 연약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되도록 가벼운 짐만 들려줬지만 지윤에겐 그것마저도 버거웠다.

가벼운 짐이 여러 개가 되니 점점 무거워졌다. 더구나 장시간 계속 들고 걷다보니 손은 물론 팔도 아팠고 허리에도 조금씩 무리가 오기 시작했다.

결국 지윤은 더 못가고 주저앉았다.

"오빠, 나 더 못 가요. 미안해요."

"그럼 거기서 쉬다가 돌아가요. 난 좀 더 돌아보다 돌아갈게요."

거침없이 등을 돌리고 걷는 심후의 모습에 지윤은 울상을 지었다. 허나 곧 고개를 숙이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뭐야. 남자가.'

지윤이 보기에 배려가 별로 없는 모습이었다.

뒤따라 다니는 카메라맨은 못 느꼈을지도 모르지만 지윤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일부러 짐을 들게 했어.'

물론 심후가 더 무거운 것을 많이 들었다. 그러나 항상 일정 분량 지윤도 들게 만들었다.

배려가 없다고는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항상 대접 받고 살던 지윤에게는 매너 없는 행동으로 비춰질 뿐이었다.

'팔 아파.'

카메라가 찍고 있었기 때문에 내색도 할 수 없었다.

만약 여기서 나쁜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 동안 보여주었던 모습이 전부 가식이란 것이 탄로 날 뿐이었다. 교묘하게 인내를 시험하는 심후의 행동에 지윤은 열 받았지만 달리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잠시 휴식을 취한 지윤은 낑낑거리며 짐을 들고 홀로 돌아갔다. 두 사람이 걸어와서 한 사람만 돌아간 바닷가에는 파도만 오락가락했다.

반면 혼로 움직이게 된 심후는 천천히 둘러보며 짐을 조금 더 챙기고는 베이스캠프로 정한 곳으로 돌아갔다. 

"이야, 힘이 장사야."

"햄버거 만들 때부터 봤지만 역시 대단해. 운동선수 해도 되겠어."

출연자들은 한 마디씩 하며 수고했다고 격려했다. 지윤이 같이 가서 혼자만 짐을 들고 돌아와 조금 안 좋게 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심후가 든 짐을 보고는 그런 생각 따윈 저 멀리 날아갔다.

자신들은 하나만 들어도 무거워 할 정도로 큰 등산가방이었다. 그런 것을 몇 개씩 들고 다니는데 지윤이 든 것까지 챙겨주지 않아서 매너 없다고 하는 것은 개념 없는 짓이었다.

"조개는 찾았어요?"

"응, 있긴 있더라. 그런데 이거 우리가 잡아도 되는 건가?"

과거 일반인들의 무분별한 채취로 바닷가의 조개 같은 것들이 많이 사라졌다. 하여 법으로 정해 허가를 받은 이들만 채취할 수 있도록 했다.

출연자들이 걱정하는 것은 바로 이 점이었다.

"걱정 말아요. 허가는 받아놨으니까. 촬영한다고 협조도 약속 받았고 조합에 사용료도 냈으니 마음껏 잡아요."

피디의 말에 출연자들이 안심했다.

이어 시선은 전부 심후가 들고 온 짐에 집중 되었다.

"일단 뒤집시다.

뭐가 나오든 쓸모 있는 것이 있으면 앞으로 2박3일이 편해져요."

"그러죠."

남자들은 물론 여자들도 짐을 뒤지기 시작했다. 

"휴지다! 휴지!"

"이리 줘!"

비닐로 포장된 휴지가 발견되자 몇몇 사람들이 난리치면서 빼앗았다. 휴지를 잡자마자 급하게 외진 곳으로 달리는 폼이 심상치 않았다.

카메라맨들이 얼른 쫓아가려고 하자 한 명이 외쳤다.

"똥 싸러 간다! 따라 오지 마!"

존대가 아닌 막말이 거칠게 튀어나오는 것으로 보아 꾹 참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이어서 사람들은 계속 짐을 뒤졌다. 

"복숭아 통조림이다.

"이건 파인애플."

통조림이 몇 개 나오자 사람들은 환호했다. 하지만 인원수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밥 먹고 입가심으로 한 입씩만 먹어도 전부 없어질만큼 적은 양이었다.

"볼펜, 유리병, 자켓, 휴지, 비누, 라이터."

포식이 대표로 물품들을 하나씩 보기 좋게 나열했다. 먹을 것은 별로 없었다.

과일 통조림 이외에는 사탕 한 봉지와 약간의 초콜릿이 전부였다. 나머지는 그냥 어딘가에 쓰면 유용할 것 같은 것들뿐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게 냄비랑 식기구가 들어있다는 거네요."

"맞아. 안 그러면 나무 깎아서 젓가락 만들어야 했을 걸?"

"에이, 설마요?"

당면이 설마하자 포식이 버럭 소리쳤다. 

"넌 나무젓가락 써! 내 말에 토를 달다니!"

"아, 형님 왜 이러세요? 네?"

당면이 포식과 썰렁한 개그를 하는 동안 나머지 일행은 분주히 움직이며 자신이 갖고 싶은 물건을 챙겼다. 그 중에는 심후도 있었다.

'일단 잘 때 따뜻해야 하니까 비니 모자를 챙기자.'

잘 때 머리가 차가우면 감기에 걸리기 쉬웠다. 심후는 비니 모자를 챙기고는 자켓을 하나 집었다.

자켓은 방수가 되는 재질이어서 나쁘지 않았다. 이후 볼 일 볼 때 필요한 휴지와 라이터, 그리고 남자 수영복을 챙기고는 물러섰다.

물건을 나누는 것이 끝나자 또 다시 역할이 분담되었다. 잠자리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 의욕 안 생겨."

"그러게요."

당면과 소고기의 불평에 다른 이들도 공감했다. 경계선 근처에는 촬영 스텝들을 위한 텐트가 쳐져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스텝들은 밥차에서 밥을 타서 맛있게 먹는 중이었다.

텐트도 없고 먹을 것도 별로 없는 캠프에서 2박3일을 보내야 하는 출연자들은 당연히 의욕이 저하되었다.

"나 넘어가고 싶어. 스텝 할래."

"몇 시간이나 됐다고 벌써 그래요. 참아요. 조금 있으면 심후씨가 맛있는 걸 해줄 겁니다."

"정말 그럴까?"

출연자들은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는 심후도 어쩔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지금 당장 조개 구워 먹고 싶은데."

"참아요. 흙 빼야죠."

조개를 잡았다고 바로 조리해서 먹으면 모래 같은 것도 같이 먹게 된다. 때문에 흙 빼기는 필수였다.

"배고파."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먹을 것을 구할 수 있는 풍족한 문명사회에서 벗어나 자연에 나온 도시인은 쉽게 배고픔을 느끼고는 절망했다. 1박2일이라면 그냥 단식하는 셈 치고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2박3일은 약간 달랐다.

하루 자고 나도 다음 날 하루 종일 고생해야 한다는 심리적인 압박감이 느껴졌다.

압박을 느끼는 것은 지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더욱 심후에게 달라붙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요리사 옆에 붙어있다 보면 먹을 것 하나라도 더 먹을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심후는 요리하지 않았다. 

"바람을 막아야 하니까 모래를 좀 쌓아보죠. 잘 때 바닷바람 맞으면서 자면 감기 걸립니다.

아주 간단한 잠자리를 만드는 것도 노동이었다. 마실 물을 구하는 것도 노동이었다.

"피디님, 우리 거래 합시다. 적어도 물은 그냥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참아보세요. 있다가 밤에 게임 할 겁니다. 그때를 노리세요."

"아, 정말."

배고픈 것이야 촬영 시작 전에 먹은 것들이 있어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목마름은 문제가 달랐다. 물을 마시지 못하게 되자 점점 신경이 예민해졌다.

특히, 피부를 걱정하는 여성들은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고 뭔가 시키면 화부터 내기 시작했다.

완벽한 분열이었다.

허나, 이 상황 속에서도 웃는 자들은 있었다.

바로 심후와 포식, 그리고 피디였다.

심후는 지윤이 고생하는 모습을 보며 웃는 것이었다. 반면 포식은 앞으로 벌어질 상황에 대한 예측 때문에 웃었다.

부족한 것이 많은 만큼 출연자들은 나중에 있을 게임에 혈안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피디는 극한의 상황에서 출연자들이 보여줄 또 다른 모습 때문에 기대를 하고 있었다. 출연자들이 보통 때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색다른 흥미를 유발 할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었다.

물론 해당 연예인들의 이미지는 무너지겠지만 그것은 피디가 알 바가 아니었다.

"자, 그럼 이제부터 요리를 하겠습니다.

"구이! 조개 구이!"

먹는 얘기가 나오자 몇몇 사람들이 외쳤다. 사실 조개 구이가 가장 하기 쉬운 것은 맞았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조개가 너무 부족한데요. 이 정도로는 배불리 먹기 힘들어요."

심후의 말에 요리 할 줄 모르는 출연자가 이유를 물었다.

"껍질 때문에 묵직하고 양이 많이 보이지만 까서 익히면 정말 얼마 안돼요. 보세요."

심후가 조개 하나를 까서 보여주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더 구해야 할 것 같은데요."

"구할 땐 구하더라도 일단 먹고 움직이죠."

캐온 조개들이 구워졌다. 껍질 채 구워지는 모습을 보며 모두 침을 삼켰다.

"으! 못 참겠다!"

한 명이 참지 못하고 얼른 하나를 집었다가 놓쳤다. 뜨거웠기 때문이었다.

"뭐야! 이 아까운 걸!"

땅바닥에 떨어진 조개는 흙이 묻어 먹기 어려워보였다. 

"지금 떨어트린 건 먹은 것으로 치겠습니다.

사람이 많았기에 모두 공평하게 나누려면 어쩔 수 없었다. 

"아, 눈물 나."

조개를 딱 세 개씩 받게 된 출연진은 모두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런 양념도 하지 않고 그냥 구웠을 뿐인 조개는 정말 맛있었다. 원래 심후의 실력이 좋기 때문인지 배고픔 때문인지 알 길은 없었다. 하지만 먹고 난 뒤에 찾아오는 허탈함은 서서히 생존 본능을 깨우기 시작했다.

'부족해! 이걸론 부족해!'

출연자들의 눈에 광기가 서서히 맺히기 시작했다. 

"아, 눈물 나."

조개를 딱 세 개씩 받게 된 출연진은 모두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런 양념도 하지 않고 그냥 구웠을 뿐인 조개는 정말 맛있었다. 원래 심후의 실력이 좋기 때문인지 배고픔 때문인지 알 길은 없었다. 하지만 먹고 난 뒤에 찾아오는 허탈함은 서서히 생존 본능을 깨우기 시작했다.

'부족해! 이걸론 부족해!'

출연자들의 눈에 광기가 서서히 맺히기 시작했다.

저물어가는 태양에 찔린 하늘은 피로 물들었다.

온통 붉은 하늘은 시간이 지남과 함께 점점 검게 죽어갔다. 출연자들의 마음도 그랬다.

우습게 생각했던 것이 실수였다.

또한 이해되지 않는 것도 있었다.

이상하리만치 자신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 같았다. 

'이게 다 저 포식이랑 피디 때문이야!'

프로그램의 기획이 전부 포식과 피디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알기에 원망은 두 사람에게 향했다.

'그만둘까?'

몇몇 출연자들은 포기할 마음을 품었다. 가슴 속에서 부화하는 불만은 연신 불평을 삐약거렸다.

"자! 그럼 이제부터 게임을 시작하겠습니다. 날도 슬슬 저물어가고 사람들의 피로도도 상당히 올라갔으니 여기서 여러분의 마음을 즐겁게 해드릴 게임 이벤트를 열겠습니다.

우선 이쪽을 봐주세요."

간이 테이블이 하나 놓여 있었다. 위에는 여러 종류의 물건들이 말 그대로 쌓여 있었다.

"게임의 승자는 여기서 물건 하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오오오오!"

고생 끝에 낙이 오는 것일까? 출연자들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간이 테이블 위에 진열 된 것들은 음식들과 각종 물품이었다.

포장된 음식들 중 몇 가지가 포장이 열린 채 진열 되어 있었다. 치킨, 피자, 햄버거, 스파게티, 튀긴 감자, 탕수육, 짜장면, 짬뽕, 비빔밥, 보쌈, 족발, 장어 덮밥, 케이크, 기타 등등 상당히 많은 음식들이 놓여 있었다. 또한 물품들은 1인용 텐트와 침낭, 휴대용 컴퓨터 등이 놓여 있었다.

"자! 그럼 3인1조로 뭉치세요! 빨리! 1분 안에! 지금 당장!"

출연자들은 멋도 모르고 뭉쳤다. 포식은 여성 출연자 2명을 잡았고 심후에게는 지윤과 당면이 붙었다.

나머지는 대충 끼리끼리 뭉쳤다. 

"그럼 이제부터 게임을 알려드리죠. 게임은 아주 단순합니다.

달리기 승부죠. 조별로 뛰어서 각 조의 1등에게 선택권을 드립니다."

"뭐야 이거!"

조별로 경쟁하는 줄 알고 뭉친 사람들은 어이없어 했다. 함께 경쟁한다면 당연히 조원이 강한 것이 좋다. 그래서 게임의 강자들은 서로 뭉쳤다.

이것이 바로 함정이었다.

강한 사람은 강한 사람끼리. 약한 사람은 약한 사람끼리 경쟁하게 된 것이었다.

어찌 보면 배려를 한 것 같지만 꼭 그렇지 않은 조도 있었다.

"너무 해요."

"맞아. 진짜 나빴어."

자신이 중요인물임을 내세워 여성 출연자 2명을 꼬신 포식은 욕을 먹으면서도 웃었다. 

"어쩔 수 없다. 내가 살아야지."

"흥!"

한편, 심후의 조에서는 색다른 상황이 펼쳐지는 중이었다.

"심후씨, 자비를!"

"오빠, 나 오빠 좋아하는 거 알지?"

당면과 지윤은 정말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승부는 정정당당해야죠. 최선을 다하세요."

"아! 제발 자비 좀!"

심후의 조에서는 심후가 이기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어쨌거나 게임은 시작되었고 허기와 피로에 하루 종일 찌들었던 이들은 기력을 짜내 달렸다.

"헉, 미치겠다."

다 달리고 나니 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더욱 피곤한 상황이 되자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기에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하지만 모두 달린 것은 아니었다.

어떤 이들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심후의 조가 달릴 차례가 되자 지윤은 이를 악물었다.

'이길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어쩌지?'

노력을 하지 않고 공주처럼 우아하게 걷는다고 심후가 따로 챙겨줄 것 같지 않았다. 애교를 부리면 먹을 것 한 입 정도는 줄지도 몰랐다. 하지만 만약 예전처럼 또 다시 거절해버린다면 낭패였다.

지윤도 하루 종일 고생한 덕에 상당히 배가 고픈 상태였다.  

'그냥 열심히 달리는 척 하자. 어차피 못 이겨.'

지윤은 인상을 쓰고 열심히 달리는 척했다.

힘을 쓰는 것 같지만 걷는 것보다 조금 빠른 정도의 속도. 반면, 당면은 정말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 그러나 역시 승자는 심후였다.

심후가 고른 것은 장어 덮밥이었다.

정력에는 그렇게 좋다고 소문난 장어를 소스를 발라 구워 밥 위에 얹은 것이었다. 도시락 5개가 한 묶음으로 되어 있어 3명이 먹기에는 충분했다.

"시, 심후씨. 한 개만."

"좋아요. 불쌍하니까 기회를 드리죠. 장기를 보여주세요."

비쩍 마른 당면은 갑자기 권법을 펼쳤다.

"뭡니까?"

"당랑권입니다. 저는 이제부터 한 마리 사마귀입니다. 슷!"

"좋아요. 잘 어울리는 모습이네요. 이거 드세요."

심후는 장어 덮밥 도시락을 하나 주었다. 당면은 정말 감격한 표정으로 빨리 먹기 시작했다.

달콤하면서도 짭짤한 소스가 듬뿍 묻은 장어와 하얀 밥의 조화는 환상적이었다. 씹으면 씹을수록 더 먹고 싶다는 마음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맛이었다.

이에 지윤도 희망을 가졌다.

'그래, 방송이니까 그런 거야.'

심후가 방송 분량을 뽑기 위해 위기감을 조장했다고만 생각한 지윤은 당면처럼 애원하고 장기 자랑을 했다.

지윤의 장기 자랑은 섹시 웨이브였다. 유혹의 춤을 추며 심후의 몸에 닿을 듯 말 듯 춤을 췄다.

밀착하는 것도 아니고 아주 떨어진 것도 아니었다. 부드러운 살이 단단한 근육을 살짝 스치고 지나가니 지윤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음에도 몸은 솔직하게 반응했다.

"다 먹어요."

심후는 순순히 남은 도시락을 다 주었다. 지윤의 매력에 홀랑 빠져서 먹을 것을 다 넘긴 것으로만 보였다.

허나, 아무도. 심지어 같이 사악한 계획을 꾸몄던 포식과 피디마저도 심후의 깊은 뜻을 간파하지 못했다.

심후는 간단하게 캐온 조개를 삶아 먹었다.

카메라맨을 꼬셔서 둘이 몰래 삶아 먹어버린 것이었다. 부정부패가 만연하는 방송용 난파현장이었다.

"아, 정말 맛있었어요."

"그렇죠?"

'배달'이라는 문명의 이기를 누린 출연자들은 다들 만족했다. 촬영이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버틸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몇몇 출연자들의 표정이 나빠졌다.

"배 아파. 나 화장실 좀."

소화력이 별로 뛰어나지 않은 사람들이 문제였다. 굶다가 갑자기 기름진 음식으로만 배를 채우니 장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었다.

특히 장어 덮밥 도시락을 혼자서 2개나 먹은 지윤은 가장 먼저 탈이 났다. 도시락 2개를 먹고 남은 도시락에선 장어만 꿀꺽했다.

한꺼번에 많은 장어를 먹은 탓이었다. 여기 저기 사람들이 사라진 이후 바람이 불었다.

인상을 찡그리게 하는 냄새가 섞인 바람이 캠프를 한 번 휘돌고 지나갔다. 유일하게 웃는 사람은 심후 뿐이었다.

정말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으며 잘 준비를 있었다.

"정말 여기서 이렇게 노숙하는 겁니까?"

"네."

"진짜요?"

"네, 아까 텐트를 골랐으면 혼자서 텐트 안에서 잘 수도 있었는데 안 그러셨잖아요."

"허......."

막상 닥치고 보니 왠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사람 심리란 것이 그랬다.

못 할 것 없다는 식으로 생각했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남자는 강인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받아들였었다.

현실과 마주 하지 않았을 때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막상 노숙에 가까운 행위를 해야 하는 순간이 되자 갈등이 생겼다. 정말 바닥까지 떨어져서 오갈 곳 없는 노숙자라면 갈등 자체가 무의미했다.

좀 더 편하게 잘 곳을 찾는 것이 정상이었다. 하지만 출연자들은 포기한다는 말 한 마디만 하면 문명의 세계로 돌아가 편히 쉴 수 있었다. 다만 조건은 앞으로 함께 여행은 못 다닌다는 것이었다. 즉, 몇 달간 중요한 일정에서 빠져야 한다는 얘기였다.

일감이 밀려들어오는 톱스타라면 고민할 필요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 모인 이들은 별로 바쁜 사람들이 아니었다. 애초에 톱스타였다면 이런 말도 안 되는 프로에 고정 출연하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설마 했는데."

게임을 하기에 잠자리도 어떤 게임이 있을 줄 알고 기대했던 이들은 실망을 금치 못했다. 

"잠자리 게임 안 해요?"

"안 해요. 얼른 자요. 쉴 수 있을 때 쉬어야 합니다. 대신 모닥불은 오늘만 스텝들이 알아서 봐준다고 하니까 걱정 마세요. 내일 밤에는 불침번 서야 합니다.

포식은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여자들을 물리치고 승자가 된 포식은 의외로 1인용 텐트를 선택했다. 그리고 밥은 다른 사람들에게 구걸해서 해결했다.

반면 심후는 그냥 적당한 곳에 누웠다. 자켓을 입고 눕자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이 보였다.

"옆에 누워도 되죠?"

"네."

단숨에 허락이 떨어지자 지윤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의외로 쉽게 허락하네요?"

"피곤하셨을 텐데 쉬세요."

옆자리는 허락했지만 대화는 거절했다. 지윤은 그나마 많이 발전했다고 생각하며 옆에 누웠다.

그때 심후가 한 마디 던졌다.

"냄새."

지윤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하지만 지윤은 싸우지 않고 곱게 누웠다.

여기서 싸움을 걸면 그 동안 해온 일이 모두 허사가 되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참자. 나중에 다 갚으면 돼.'

지윤은 누워 잠을 청했지만 쉽게 잠들 수 없었다.

'지금은 참자. 나중에 다 갚으면 돼.'

지윤은 누워 잠을 청했지만 쉽게 잠들 수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