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화 (25/64)

잠을 제대로 못 잤더니 피곤하네요. 여러분은 편히 주무세요.

감사합니다.

해가 떠오르며 세상에 빛이 되돌아오는 시각, 심후는 깨어났다. 

'뻐근하네.'

준비를 단단히 하긴 했지만 역시 노숙은 좋지 않았다.

잠자리로 만든다고 했지만 많은 체온을 앗아갔고 그로 인해 몸이 조금 굳은 상태였다. 

"흐읍! 하아! 흐읍!"

심호흡을 하며 기를 돌리자 몸에 활기가 돌아왔다.

일찍 일어난 심후는 주변을 둘러보고는 슬금슬금 움직였다. 목표는 스텝들의 텐트 옆에 세워져 있는 밥차였다.

'아직 많이 남았군.'

많은 양을 배달 시켰기에 아직 남은 음식이 많았다. 심후는 남은 음식 중 스파게티와 케이크를 챙겼다.

'일단 먹고 보자.'

해선 안 되는 행동이긴 했지만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목격자라고 할 만한 존재는 말하지 못하는 고정 카메라뿐이었다.

"쩝쩝쩝쩝쩝."

들키기 전에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먹는 속도가 무척 빨랐다. 바닷가에 앉아 밀려오는 파도를 벗 삼아 먹는 아침 식사는 금방 끝났다.

2분도 되지 않아 스파게티 도시락 하나를 뚝딱 해치우고는 케이크를 덥석 물었다. 케이크 조각 하나가 1분도 되지 않아 사라졌다.

분 만에 모든 것을 해치우고는 용기는 스텝들이 쓰레기를 버리는 곳에 버려 증거를 인멸했다. 아직 동이 제대로 트지도 않은 시각에 벌어진 범죄였다. 하지만 아주 중요한 증거인 카메라는 어쩔 수 없었다.

'뭐 이것도 알아서 잘 써먹겠지.'

식사를 끝내고 나서 시작한 일은 몸을 푸는 일이었다. 생각 같아선 무공이라도 연마해보고 싶었으나 무공에 대한 것은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면 숨기고 싶었다.

때문에 간단한 체조 동작을 하며 몸을 풀고는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스텝 중 한 명이 일어난 것은 그때였다.

"어? 일찍 일어나셨네요."

"네, 배고파서요."

"아, 정말 힘드시겠어요. 뭐라도 드리고 싶지만 피디님이 금지하셔서 어쩔 수 없네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럼 전 조개나 캐러 가볼게요."

"잠깐만요. 카메라맨 데리고 가야죠. 야! 얼른 일어나!"

스텝은 심후를 담당한 카메라맨을 깨워 붙여주었다. 

"물이 차가울 텐데요?"

"그래도 캐야죠. 그래야 사람들도 뭐 좀 먹죠. 아침 안 줄 거잖아요."

"정말 착하시네요."

착하다? 아침에 혼자 몰래 밥을 먹었던 것을 봤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말이었다. 나중에 영상을 확인하고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 하며 심후는 바닷가에 도착했다.

물에 들어가기 위해 웃통을 벗자 카메라맨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전신을 찍기 바빴다. 조각 같은 몸매였기 때문에 그림이 아주 좋았다.

아침 하늘을 배경으로 탄탄한 몸매의 남자가 서 있으니 절로 예술혼이 불타오른 것이었다. 잠시 몸을 풀며 카메라맨이 찍기를 기다리던 심후는 물로 향했다.

물은 차가웠으나 충분히 몸을 푼 상태라 문제는 없었다. 더구나 일반인과는 전혀 다른 신체였기에 크게 문제 될 것도 없었다. 

'음, 근처에는 별로 없나?'

목까지 물이 닿는 곳에서 발로 땅을 헤집어 봤지만 나오는 조개는 별로 없었다.

"흐읍!"

크게 숨을 들이쉬고 잠수를 시작했다. 점점 깊은 곳으로 내려가자 조금씩 잡히는 것들이 있었다.

"푸하!"

조개를 캐다 숨이 차자 결국 위로 올라와야만 했다. 이건 아무리 무공을 익혔어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일반인보다 숨을 오래 참을 수 있지만 사람인 이상 호흡은 해야만 했다. 심후는 부지런히 조개를 캤다.

가끔 보이는 소라도 잡았다. 망이 가득 찰 때까지 쉬지 않고 잡았다. 그리고 물 밖으로 나왔을 때 기다리고 있던 포식에게 칭찬을 들었다.

"이야! 완전 해남이네!"

조개와 소라로 가득한 망은 물 밖으로 나오자 바위처럼 무거워졌다. 

"우와. 이걸 혼자 다 잡은 거에요?"

"진짜 착하다."

"오늘 아침도 조개?"

어느새 일어난 사람들은 심후에게 다가왔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심후가 잡은 조개에 접근했다. 하지만 일어나지 못한 사람들도 많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주저앉아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이었다.

'이건 아니야.'

하늘을 보며 자고 일어났더니 몸이 뻣뻣했다. 더구나 몇몇은 머리가 아팠다.

감기였다. 

"저는 돌아갈게요."

결국 포기하는 사람이 나왔다.

한 여성이 떠나자 많은 여자들이 뒤를 따라 움직였다. 여성 출연자들은 대부분 떠났다.

여기에 몇몇 남성 출연자도 함께 했다.

구운 조개로 아침을 먹은 사람들은 스텝들의 지시에 조를 짜야만 했다.

무엇을 시키려는지 말도 안 하고 갑자기 조를 짜라니 모두 불안한 눈치였다. 전날 함께 조를 짰던 사람들과 경쟁하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조 내부에서 경쟁하게 된다면 강한 사람은 약한 사람을 영입하는 것이 유리했다. 반면 약한 사람들은 강한 사람을 배제하고 만만한 사람들끼리 뭉쳐야 했다.

눈치를 보는 사람들과 달리 심후의 조는 금방 만들어졌다. 찰거머리처럼 심후에게 달라붙는 지윤과 방송 분량을 늘리고 싶은 남자 당면은 재빠르게 심후를 선택했다.

사람들은 머리를 굴려가며 토론을 벌였다. 한참 후에 서로 결론을 내리고 조를 짜는 것에 성공하자 피디가 나섰다.

"이번에는 보물찾기입니다."

출연자들은 보물찾기에 동원 되었다.

스텝들이 숨겨 놓은 쪽지를 찾으면 쪽지에 적힌 물품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대부분 조원들과의 경쟁을 생각해 최대한 약하거나 혹은 만만한 사람을 골랐는데 전혀 다른 일을 시키니 허탈해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시작하세요! 제한 시간은 1시간! 보물은 딱 2개!"

딱 2개라는 말에 사람들은 달리기 시작했다. 전날 먹은 것과 아침에 먹은 조개의 열량은 그렇게 소모되었다.

1시간 뒤, 승자는 포식의 조와 소고기의 조가 되었다. 포식과 소고기가 보물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이야, 맛있다!"

승자가 된 포식의 조는 뜨끈한 해물탕을 아침으로 먹을 수 있었다. 한편, 소고기의 조는 커피와 도넛으로 배를 채울 수 있었다.

물론 두 사람이 승자가 된 것에는 비리가 숨겨져 있었다. 이들은 미리 어디에 보물이 있는지 피디로부터 들었던 것이었다.

원래는 포식과 심후가 보물을 찾게 되는 시나리오였지만 심후가 거절했다.

"제가 계속 잘 나가면 재미없잖아요. 전 괜찮아요."

방송을 위해? 아니었다.

순전히 자신과 짝을 이룰 지윤을 골탕 먹이기 위해서였다. 지윤이 보물을 찾는다면 그것은 그녀의 복이었지만 심후는 절대 지윤을 편하게 해줄 생각이 없었다.

1시간 동안 휴식 시간 동안 사람들은 점심 준비를 위해 움직여야 했다. 점심은 알아서 해 먹으라는 말에 움직인 것이었다.

포식과 소고기와 함께 조를 이룬 사람들은 활동에 큰 지장이 없었으나 나머지 사람들은 고통스러워했다. 야외에서 노숙을 한 여파로 피로가 제대로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아침으로 약간의 조개구이만 먹고 열심히 뛰어다닌 결과였다.

슬슬 배가 고파 활동하기가 힘들어지는데 다시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움직여야 하니 고통스러웠던 것이었다. 

"아! 진짜 먹을 것 찾는 게 일이구나."

"그래, 알고 보면 우리가 하는 일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지."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긍정적이진 않았다.

고통을 이겨내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 둘 포기를 선언하고 떠나기 시작했다.

여성스러운 미모로 한 때 여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연약한 꽃미남 아이돌, 나이 많은 가수, 그리고 체력이 약한 사람들이 떠났다. 점심에도 조개구이였다.

이후 또 게임이 있었다. 이번에도 심후의 조는 아무 것도 찾지 못했다.

아무 것도 찾지 못한 조는 저녁에도 조개구이를 먹어야 했다.

"내일이면 끝이구나."

해가 저물자 모닥불 앞에 모여 앉은 이들은 두런두런 얘기를 나눴다.

이제부턴 개그를 하며 웃길 시간이었다. 서로 경쟁적으로 웃긴 얘기를 하며 분위기를 띄워보려고 했으나 분위기에 동조하는 것은 보물을 한 번이라도 찾았던 이들이었다.

한 번도 보물 쪽지에 적힌 음식을 먹지 못한 이들은 기운이 별로 없었다.

"오늘은 이벤트 게임 없나요?"

"없습니다."

피디는 냉정하게 잘라냈다.  

"아, 정말 힘드네요."

"그나저나 오늘은 불침번 정해야죠."

불침번도 조를 짜서 조장이 뽑는 것으로 정했다. 각 조별로 시간대를 맞추고 각자의 시간대에서 조원들이 알아서 순번을 정하는 것이었다.

물론 한 명이 계속 불침번을 서고 나머지 두 사람이 계속 자는 방법도 있었다.

심후는 딱 중간 시간대를 뽑았다.

불침번을 서기에 가장 안 좋은 시간대였다. 조금 자다가 중간에 일어나 불침번을 서고 다시 잔다는 것은 말이 쉽지 해보면 굉장히 짜증나는 일이었다.

"우리 가위바위보 해서 진 사람이 계속 불침번 서는 것으로 해요."

"좋아요!"

심후의 제안에 당면이 냉큼 대답했다. 지윤도 거스르지는 못했다. 그리고 지윤은 패자가 되어 홀로 계속 불침번을 서야했다.

'재수 없어.'

지윤은 속으로 불평하면서도 내색은 하지 못했다. 그런 지윤을 보며 심후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날 따라다니는 동안에는 계속 그럴 거다. 언제까지 달라붙나 보자.'

"그럼 어서 자죠. 조금이라도 더 자야 덜 피곤해요. 내일이면 다 끝나도 저녁때까지는 촬영 안 끝난다고 했어요."

다음 날도 지윤의 고난은 계속 이어졌다.

허나 지윤은 악착 같이 버텨냈다. 여성 출연자들은 모두 포기하고 떠난 가운데 지윤 홀로 남게 되자 지윤의 소속사에서는 언론 플레이를 했다.

- 이것이 사랑의 힘입니다.

'날 따라다니는 동안에는 계속 그럴 거다. 언제까지 달라붙나 보자.'

"그럼 어서 자죠. 조금이라도 더 자야 덜 피곤해요. 내일이면 다 끝나도 저녁때까지는 촬영 안 끝난다고 했어요."

다음 날도 지윤의 고난은 계속 이어졌다.

허나 지윤은 악착 같이 버텨냈다. 여성 출연자들은 모두 포기하고 떠난 가운데 지윤 홀로 남게 되자 지윤의 소속사에서는 언론 플레이를 했다.

- 이것이 사랑의 힘입니다. '먹어봐: 세계를 먹자'에서 심후의 모습을 본 에린은 흐뭇하게 웃었다.

'귀엽단 말이야.'

아침 일찍 일어나 몰래 음식을 훔쳐서 먹는 모습에 에린은 같이 훔쳐 먹는 상상을 했다. 

'그랬다면 더 재미있었을 텐데.'

도둑질은 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애초에 부족한 것이 없던 에린은 훔칠 이유가 없었다. 갖고 싶은 것은 자신의 능력으로 빼앗아 왔다.

훔친다는 것은 빼앗을 힘이 없기 때문에 하는 행동이었다. 어린 아이가 엄마가 숨겨놓은 과자를 먹는 것처럼 귀여운 모습에 에린은 몇 번이고 반복재생해서 보았다.

재생이 반복되는 만큼 뇌는 심후의 이미지에 더욱 익숙해졌으며 이는 곧 가까운 사이라는 착각이 일어나게 만들었다.

"어머!"

수영복만 입고 있는 모습을 본 순간 무의식 속에 잠자고 있던 흥분 버튼이 눌러졌다.

호감이 가는 상대의 멋진 몸을 보니 관심이 생겼다. 

"모델 뺨치네?"

게임 친구가 현실에서도 멋지다는 것은 굉장히 기분 좋은 일이었다.

에린이 심후에게 호감을 가졌든 방송을 본 수많은 여성 시청자들은 심후의 야성에 빠져드는 중이었다. 방송이 모두 보자 에린은 반응을 살피기 시작했다.

자신과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상당히 많았다. 훈남 요리사라는 반응이 압도적이었으며 심후가 아침을 챙겨주면 참 로맨틱 할 것 같다고 호소하는 여자들이 많았다.

새로운 시도에 대한 이야기도 많았다. 상당히 엽기적이었지만 나름 재미있었다는 평가였다.

심후가 한 요리가 조개구이밖에 나오지 않은 것을 두고 반응이 엇갈렸다. 한쪽에서는 그래도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멋진 요리를 만들었어야 했다고 말했지만 반대편에서는 열악한 환경에서 갑자기 고급 요리가 나온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이상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어쨌거나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으며 새로운 시도는 성공을 거둘 것으로 보였다. 투자를 한 만큼 반응도 좋으니 광고효과도 누릴 수 있겠다는 생각에 콧노래가 절로 흘러나왔다.

헌데 갑자기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게시물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사랑의 힘?'

지윤의 소속사에서 펼치는 언론 플레이가 굉장히 거슬렸다.

'척 봐도 그냥 엉겨 붙는 수준이던데.'

사랑의 힘으로 극복했다기보다는 그냥 심후의 옆에 묻어가는 걸로만 보였다. 물론 고생하는 모습을 보았기에 별다른 제지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래, 계속 그렇게 고생해라. 이번에는 어디로 보내줄까? 사막이 좋겠지?'

에린은 먹어봐의 스폰서였다.

스폰서가 후원으로 사막에서 한 번 찍으라고 하면 찍을 수밖에 없는 것이 영세한 인터넷 방송국의 현실이었다. 현재 각종 광고를 통해 많은 돈을 벌고 있다고 하지만 세계적인 재벌 일가의 일원인 에린 앞에선 고개를 들기 힘들었다.

물론 해당 방송국 사장은 에린의 제안을 거절할 생각 따윈 추호도 없었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돈을 쉽게 벌 수 있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사막행이 결정되었다.

한편, 방송을 본 차영은 기분이 조금 나빠졌다. 심후와 다시 끊어진 인연을 이어볼까 궁리하고 있는데 지윤이 계속 방해를 하고 있는 느낌이어서였다.

특히 네트워크에 퍼지는 소문은 심후와 지윤이 어쩌면 사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여자가 예쁘게 하고 있어야지. 하여간 꼬리치는 것 하고는.'

심후에게 찰싹 붙어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은 눈에 거슬렸다.

중간에 고생하는 모습이 나오지 않았다면 계속 보지도 않았다. 심후와 가까이 있는 것은 보기 싫었지만 고생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즐거웠다.

'그 자린 원래 내꺼였어.'

수영복을 입은 심후의 모습을 보니 후회가 해일처럼 밀려들어왔다. 

'언제 저렇게.......'

아까웠다.

자신과 함께 있을 때는 멋진 모습을 하나도 못 보여주더니 헤어지고 나서야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안타까웠다. 마치 자신하고 헤어진 뒤에 열심히 노력한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어쩌면 날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

자기중심적인 생각이 사고를 지배하니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려워졌다.

차영은 글을 올렸다. 일단 자신의 것이었던 심후의 옆에 달라붙은 진드기를 떼어내기 위해서였다.

- 사랑의 힘이라니 황당하네요. 그냥 인기 얻으려고 옆에 붙어서 방송분량 만드는 거 아닌가요? 심후는 관심 없어 보이는데 혼자 계속 옆에 붙어서 저러는 거 솔직히 부담스러울 것 같네요.

- 그러게요. 참 독하네요. 그 놈의 인기가 뭔지.

- 포포걸스 멤버들 다 독하던데. 쟤도 어쩔 수 없는 듯.

글 하나를 올리자 사람들이 반응을 보였다. 포포걸스에 악감정을 가지고 있던 여성들은 포포걸스의 멤버인 지윤이 조금 인지도를 얻자 물어뜯기 바빴다. 그러자 사람들이 둘을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가 조금 생겼다.

언론이 계속 주입할 땐 관심 없는 부류는 대부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아무도 반론을 하지 않으면 그냥 사실로 굳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반대 여론이 생기면 언론의 얘기대로만 흘러가지 않았다.

네트워크가 상당히 발달한 사회이기 때문에 이런 일은 비일비재했다.

"누나 뭐해?"

글을 올리고 반응을 살피는데 수동이 찾아왔다.

"왔어?"

"응, 누나 이거 먹어."

차영에게 작업을 걸고 있는 수동은 맨손으로 찾아오지 않았다. 손에는 심후가 광고한 피자 한 판이 들려있었다.

"고마워. 맛있겠다."

"고맙긴. 그런데 영수 형은?"

"응, 게임하러 간다고 갔어."

요즘 들어서 차영과 영수의 사이는 조금씩 벌어지고 있었다. 예전에는 꼭 함께 게임을 했었지만 이젠 따로 움직이는 날도 많았다.

사실 영수는 게임으로 돈을 벌겠다며 사람을 모아 날뛰는 중이었다. 차영의 미묘한 변화에서 마음이 차갑게 식은 영수는 차영을 이용해 수동을 부려먹는 중이었다.

인간관계에 있어선 어수룩한 모습을 보이는 수동이 항상 좋은 아이템을 영수와 차영에게 양보하기 때문이었다. 과거 심후를 똑같은 방식으로 이용해 먹었지만 수동에게는 과거의 심후와 다른 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아이템의 가치였다. 수동이 물어다주는 아이템은 심후가 주었던 것들보다 훨씬 고가였다.

물론 자주 고가 아이템이 나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심후 보다는 훨씬 수입이 좋았다. 더구나 수동은 게임 센스도 좋아 전투도 잘했다. 특히 PK는 판타지 문명에서도 최강의 반열에 속했다.

너무 많은 유저를 사냥하다보니 수동은 도시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수동은 영수의 말이라면 뭐든지 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다시 예전에 심후를 이용해 먹은 것과 똑같이 하고 있었다.

다만 차이라면 차영은 더 이상 영수에게 애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얘는 어떨까?'

눈이 마주치자 수동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보기 좋게 휘어지는 눈매에 차영은 몸의 중심이 짜릿해졌다.

신호가 오자 심장이 조금씩 빨리 뛰어 더워졌다. 

'한 번쯤 놀아도 괜찮겠지?'

심후를 목표로 하고 있었으나 그렇다고 조신하게 지낼 생각은 전혀 없는 차영이었다.

괜찮은 남자가 있다면 얼마든지 갈아탈 수 있었다. 무엇보다 현재 심후는 옆에 없었고 수동만 입을 굳게 다문다면 소문이 날 이유도 없다는 것이 차영의 계산이었다.

끈적끈적한 욕망에 길들여진 차영은 마음을 굳혔다. 

"아, 덥다.

"네?"

순진한 수동의 대답에 차영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옷을 갈아입는다며 일어났다. 잠시 후 돌아왔을 땐 굉장히 짧은 치마에 착 달라붙는 나시만 입은 상태였다.

수동은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순진하긴.'

수동의 진짜 모습을 모르는 차영은 웃으며 수동을 유혹했다.

이윽고 두 사람은 바짝 붙었다. 키스가 이어지고 순식간에 알몸이 되어 서로를 탐하기 시작했다.

수동은 여자를 만족 시킬 방법을 아주 잘 알고 있었으나 일부러 서툴게 행동했다.

'여기서 선수인 게 들키면 안 돼.'

컨셉이 순진한 남자였으니 능숙하게 행동하지 않았다.

대신 순진해서 거칠게 여자를 탐하는 순진한 남자를 연기했다. 두 사람은 뱀처럼 뒤엉키며 오랫동안 떨어지지 않았다.

바밥바에서 일을 하고 돌아온 심후는 녹화한 방송을 보았다. 편집은 정말 대단했다.

심후와 지윤을 연인처럼 나오게 한 것은 물론 자신이 몰래 음식을 훔쳐 먹던 것도 익살스럽게 꾸몄다. 

'잘 나왔네.'

자신의 캐릭터가 점점 살아나는 것을 느끼며 심후는 다음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구상했다.

현재 포기한 출연자들은 스튜디오에서 인터뷰를 하고 가끔 스튜디오 촬영 이외에 거인의 주방을 찍을 때만 나오기로 했다. 첫 여행에서 일부러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앞으로 힘든 촬영을 하게 되는데 출연자들의 형편을 계속 봐주는 것보다는 가능성이 있는 고정 멤버를 뽑아 가는 것이 좋다는 의견 때문이었다.

인원수가 많으면 찍을 수 있는 것이 많으나 자칫하면 산만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수가 적으면 관심이 집중되기에 부담도 늘지만 더욱 깊게 파고들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사랑의 힘이라니. 웃기네.'

심후도 지윤과의 이야기가 엉뚱한 쪽으로 불붙는 것을 보며 비웃었다. 하지만 지윤이 끝까지 버틴 것은 의외이긴 했다.

'독한 구석이 있다니까.'

지윤의 고집이 굉장하다는 것을 알았다. 

'더 굴릴 수 있으니 나야 좋지.'

티 나지 않게 괴롭히는 것이 은근히 즐거웠다.

좋아해서 괴롭히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그럼 게임이나 좀 해볼까?'

'그럼 게임이나 좀 해볼까?'

세상은 넓고 괴롭힐 존재는 많았다. 게임 속에 들어간 심후는 중간에 걸리는 몇몇 유저들의 뒤통수에 총알을 박아주며 무협 문명을 향해 열심히 달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