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화 (29/64)

재미있게 봐주시는 분들이 있어 힘이 납니다.

감사합니다.

시간이 흘러 이번에는 사막으로 떠나게 되었다.

바닷가에서 난파를 빙자한 시험을 통과한 출연자들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사막이라며? 내 피부는 소중한데."

남자 연예인이라고 피부가 소중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태양은 피부 노화의 적이었다. 피부가 타고 주름이 생기면 늙어 보이는 것이었다.

같은 나이라고 해도 태양에 노출되는 작업을 오래한 사람이 더 늙어 보이는 것은 바로 태양으로부터 한 없이 쏟아지는 자외선 때문이었다. 적당한 태양광은 사람을 건강하게 하지만 지나치면 늙어보이게 했다.

사막이라면 태양의 무자비함에 생물이 살기가 어려워진 환경이었다. 자칫하다가는 일사병에 걸릴 수도 있고 여러 모로 문제가 많았다. 그런데 촬영 일지를 보니 무자비했다.

"행군이라니."

눈을 가리고 사막에 간 다음 사막 한 복판에서 나침반과 지도를 가지고 베이스캠프를 찾는 것으로부터 시작이었다. 행군 거리는 약 40km. 마라톤 풀코스보다 약간 짧은 거리였다.

천천히 걷는다면 하루 안에 도달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조건이 문제였다.

"그래도 물하고 약간의 음식을 챙겨갈 수 있으니 다행이죠."

"아아, 그래도 사막에서 40킬로미터를 걸어야 한다니 끔찍하다."

"밤에 가면 돼. 밤에 가면."

"그럼 하루를 꼬박 사막 한복판에서 움직이지 말고 있자고?"

모두가 침묵했다. 뜨거운 사막 한복판에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을 상상했더니 소름이 돋았다. 

"싫다."

"그만 둘까?"

출연자 2명이 시작하기도 전에 그만뒀다. 방송 출연도 좋지만 건강도 중요하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다. 남은 사람들은 이제 별로 없었다.

"힘내자고요. 할 수 있어요. 이 고난을 이겨냅시다!"

"오우!"

기합과 함께 결의를 다지며 향한 곳은 근처의 편의점이었다.

"물을 챙겨야 해. 소금도."

"미네랄 워터도."

"초콜렛도 가져 갈 수 있어요! 열량이 필요함!"

사람들은 저마다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챙겼다. 최대 가져 갈 수 있는 짐은 배낭 하나. 문제는 음식의 경우 양 손으로 쥘 수 있는만큼만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는 안 됩니까?"

당면이 과자 봉지의 윗부분만 여러 개를 잡고 보여주자 피디는 고개를 흔들더니 과자 봉지를 탁 쳐버렸다.

"안 돼요."

냉정한 말과 함께 비산하는 과자 봉지들. 이를 본 편의점 알바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터트렸으니 구매하셔야 합니다, 고객님."

한쪽에서 어수선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심후는 주의 깊게 물품들을 살피다가 커다란 초콜릿 한 봉지와 소금을 집었다.

"심후씨, 소금은 왜 집었습니까?"

"요리할 때 필요해서요."

"그런데 특이하시네요. 생수가 아니고 이온음료를 택하시다니."

"사막에서는 이온음료가 더 좋을 것 같아서요."

심후의 선택에 지켜보던 출연자들은 모두 심후를 따라했다. 단지 다른 점이라면 소금 대신 먹을 것 하나를 더 집었다는 정도였다. 지윤은 초콜릿과 함께 육포를 집고는 심후에게 다가갔다.

"오빠, 우리 이거 나눠먹어요."

"고마워요."

육포를 살랑살랑 흔들자 심후는 살짝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미소만으로 지윤은 정말 행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카메라를 바라보며 지은 것이었다. 이를 보는 심후는 가소롭게 생각했다.

'아직도 버릇 못 고쳤네? 두고 보자고.'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곳은 사우디 아라비아였다. 비행기 문이 열리고 내리는 순간 뜨거운 열기가 호흡기를 덮쳤다.

불시에 습격당한 호흡기는 깜짝 놀라 숨이 턱 막혔다. 답답함이 느껴졌다.

'이게 사망의 공기.'

심후 또한 사막의 공기가 맛이 다름을 느꼈다. 뜨겁고 답답했다.

통로를 지나 공항 내부로 들어서자 이번에는 서늘했다. 

"뭐야 이거."

출연자 중 하나가 적응이 안 되는지 투덜거렸다.

뜨거운 공기를 들이 마신 뒤에 갑자기 닭살이 돋을 정도의 냉기를 접하니 몸이 놀라고 있는 중이었다.

문제는 차를 타기 위해 건물을 나선 순간 더 심해졌다.

"아, 짜증!"

내부의 공기와 달리 외부의 공기는 무척이나 뜨거웠다. 또 다시 온도차를 겪으니 몸이 절로 떨렸다.

"냉방병 걸리기 딱 좋겠네."

"감기 조심합시다."

차에 타니 답답해서 에어컨을 틀어야만 했다.

뜨거운 태양에 의해 달궈진 차 안의 공기는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육수가 흐를 정도였다. 에어컨 바람이 조금씩 돌기 시작하자 호흡이 편해졌다.

허나, 일행은 모두 차에서 내릴 때 느껴야할 열기에 몸을 떨었다.

"어쩌라는 겨. 이놈의 열기는."

정말 적응이 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떠드는 가운데 심후는 조용히 침묵하며 눈을 감으며 한 마디 했다.

"사막 가기 전에 밥이나 먹죠. 그 정도는 해줄 거죠?"

"물론이죠."

식당에 들렀다. 전통 아랍 음식을 하는 곳이라 해서 갔더니 음식만 나왔다. 수북이 쌓인 밥은 누런색이었으며 윤기가 좔좔 흘렀다. 한쪽에는 꼬치에 끼워진 양고기가 수북했다. 

"수저는?"

"포크는?"

사람들이 묻자 피디는 한 마디 했다.

"전통 음식이니 전통 방법을 따라 먹는 겁니다.

자 이렇게."

손을 씻은 피디는 손으로 밥을 떠먹었다. 손으로 밥을 먹는 것은 굉장히 낯선 일이었다.

손에서 느껴지는 밥의 느낌도 낯설지만 입에 넣을 때 밥알이 흩어지며 자꾸 흘러내렸다. 익숙하지 않아 생기는 일이었다.

"느끼해."

"그러게요."

 또한 밥은 느끼했다. 밥을 좀 먹다 보니 밥 속에 양고기 덩어리가 숨어 있었다.

사우디 음식인 '캅사'라는 것이었다. 

"김치가 필요해."

누군가 김치의 필요성을 주장했지만 김치는 나오지 않았다.

지윤은 밥을 먹으며 난감해했다. 입맛에 전혀 맞지 않기 때문이었다.

'느끼해.'

조금 먹었을 뿐인데도 속이 느글거렸다. 그나마 먹을 만한 것은 양고기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조금 먹었을 뿐이었다.

반면 심후는 맛있게 캅사를 먹었다. 느끼한 것은 심후에게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요리사로서 성공하기 위해선 많은 요리를 먹어봐야만 했다. 맛의 이미지를 알고 있어야 새로운 맛을 창조할 때 참고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경험에 의해 몸소 익혀야 하는 지식으로써 책이나 정보만으로는 배울 수 없는 문제였다.

이 때문에 요리 공부를 하다보면 돈이 많이 나가게 된다.

소문난 음식을 골고루 먹으러 다니다보면 자연스럽게 돈을 많이 쓰게 되기 때문이었다. 9박10일 동안 프랑스 요리를 마음껏 먹어도 된다는 것에 좋아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게 아랍의 맛인가?'

손에 느껴지는 밥과 양고기의 식감은 굉장히 야릇했다. 미끌미끌하면서도 부드러웠다. 또한 밥을 먹다보면 손을 자연스럽게 빨게 되어 있었다.

'나쁘지 않아. 이게 아랍인들이 좋아하는 맛.'

심후는 다시 아랍의 맛을 속으로 되뇌며 식사를 마쳤다.

낯선 문화, 낯선 풍경, 낯선 음식.

도착한지 얼마 되지도 않는데 출연자들은 지쳐가고 있었다.

사막에 들어가기 전에 시차에 적응하라고 잠시 쉬며 돌아보라고 했지만 아무도 돌아다니지 않았다. 흥미 이전에 몸이 늘어져서 움직이기가 싫었던 것이었다.

특히 건물 안에서 밖으로 나설 때마다 느껴야 하는 뜨거운 공기는 외출에 대한 거부감을 키워주었다. 그런 와중에 심후는 포식과 단 둘이 방에서 만났다.

"다른 사람들은 뭐합니까?"

"잡니다."

"그럼 시작하죠."

호텔 테라스에 버너를 놓여졌다. 냄비에 담긴 생수는 얼마 지나지 않아 팔팔 끓여졌다.

이윽고 라면이 투하되었고 잠시 뒤 완성된 인스턴트 라면은 순식간에 두 사람의 뱃속으로 사라졌다.

카메라가 없기 때문에 두 사람만 입을 다문다면 출연진은 아무도 알 수 없는 비리의 현장이었다.

"많이 먹어두세요. 그리고 아시겠죠? 물을 빼앗아 드시는 겁니다. 실수로 안 가져갔다고 하세요."

"물론입니다. 그런데 요리 준비는?"

"열악한 환경이지만 부딪쳐 봐야죠."

비리의 현장에서 비비 꼬인 음모가 자라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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