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화 (31/64)

오늘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즐거운 시간 보내셨길 바랍니다.

비닐에 눌어붙은 초콜릿, 푸석푸석한 모래, 뜨거운 열기, 갈증, 허기, 피로. 행군의 과정에서 겪은 기억들은 베이스캠프를 만나는 순간의 기쁨을 더욱 높여주는 역할을 했다. 미리 도착한 스텝들이 만들어 놓은 천막 아래 들어서자 사람들은 느낄 수 있었다.

"아, 좋다."

별 거 아니었다. 고작 천막이 만들어준 그늘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늘에 들어선 순간 피부는 뜨거운 태양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온도 차이가 느껴질 정도였다. 더구나 아이스박스에서 꺼낸 시원한 물통은 하나의 축복이었다.

지윤도 정신없이 물을 마셨다.

뜨거워진 몸을 식히기 위해 몸에 물을 뿌리기도 했다. 촉촉한 물기가 피부에 닿자 살 것 같았다.

물의 소중함이 느껴졌다. 아마 앞으로 물을 더럽히는 인간을 보면 화가 날지도 모를 정도로 물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출연자들은 물을 마신 이후에 모두 쓰러져 잠들었다. 먹은 것은 별로 없지만 열량은 문제 없었다.

초콜릿을 먹었기 때문이었다. 덩치는 작지만 열량은 많은 음식은 에너지 공급에 충실했다.

무엇보다 출연자들은 현재 무엇인가 먹고 싶은 욕망보다는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몸이 뜨거워졌기에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과열된 몸은 열을 식히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신호를 계속 보내왔다. 이것은 식욕감퇴로 이어졌다.

무엇인가 하기 보다는 휴식을 통해 몸을 식히는 것이 우선인 것이었다. 때문에 하나둘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제대로 된 잠자리도 아니건만 그늘 아래 누웠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출연자들은 잠들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단 한 명. 초인 같은 의지를 보여주는 요리사 한심후는 짐을 내려놓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 피곤하세요?"

촬영팀과 함께 온 피디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행여나 심후가 무리하다 쓰러지진 않을까 고민되었다.

다른 이들의 경우 의료진이 계속 따라다니며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큰 무리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사막에서 휴식을 취해야 할 때 쉬지 않고 움직이다보면 일사병에 걸릴 수 있었다. 더운 나라 사람들이 괜히 낮잠을 자는 것이 아니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활동하다보면 일사병에 걸리기 쉽기 때문에 이를 피하는 생활의 지혜가 담긴 문화인 것이었다. 문명의 발달로 탄생한 에어컨으로 인해 낮에도 몸을 식힐 수단이 생겼기에 낮에 활동하는 인구가 늘어났지만 에어컨이 없다면 활동량이 저하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게으르기 때문에 낮잠을 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취한 선택이었고 그것이 하나의 문화로 발전해온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심후에게 필요 없는 일이었다.

"괜찮아요. 그보다 일어나면 다들 배고플 테니 준비해야죠."

"피곤하면 쉬세요.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네, 고맙습니다."

일부러 약한 미소를 지으며 심후는 천막을 벗어났다.

사실 심후의 상태는 쌩쌩했다. 행군 중에 지친 척 목마른 척하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려웠다.

'자, 그럼 식사 준비를 해볼까?'

사막에서의 식사. 베이스캠프가 있다고는 하지만 음식재료는 현지조달 해야 한다는 조건을 포식을 통해 피디에게 전달했다. 따라서 출연자들은 심후가 잡아온 것을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뱀뱀 도마뱀. 몸에 좋은 도마뱀."

감각을 개방하자 무수히 많은 것들이 느껴졌다.

바닥에 찰싹 붙어 돌멩이 흉내를 내는 작은 도마뱀들도 찾아 낼 수 있었다. 캠프 장소 자체를 섭외할 때 도마뱀이 자주 나오는 지역을 찾아달라고 했었다.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집게로 도마뱀을 잡아 준비한 자루에 넣었다. 능숙한 땅꾼의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어이쿠! 큰 놈이네?"

큰 도마뱀을 발견하자 심후의 몸이 바람처럼 움직였다. 도마뱀의 목을 따는 마음은 흥겨움으로 가득했다.

혼잣말을 하며 움직일 정도로 즐거웠다. 친구 따윈 없지만 즐거웠다.

사막이 친구였다. 사람들을 함께 괴롭게 해주는 사막이 더 없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너는 나의 친구! 친구! 친구!"

뜨거운 모래바람이 호응해왔다. 눈부신 햇살과 메마른 대지를 가슴에 가득 품은 심후는 마음 한구석에 자리했던 외로움이 치유되는 것을 느꼈다.

사막을 보면 거리감이 없었다. 보는 순간 반했다. 사람이 살기 어려운 척박한 환경은 자신의 마음과 같았다. 그래서 더욱 사랑스러웠다.

유치한 노래는 계속 흘러나왔다. 모조리 카메라에 담기고 있었다.

이를 보던 피디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사막에 오더니 더욱 활발해진 까닭이다.

'대체 정신구조가 어떻게 된 걸까?'

포식과 죽이 척척 맞을 때부터 심상치 않다고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이런 정도일 줄은 몰랐다.

'사람에겐 누구나 광기가 존재한다더니.'

고개를 흔들면서도 카메라맨을 한 명 더 붙여 심후의 모습을 더욱 자세히 담도록 하는 피디였다.

잡은 도마뱀은 깔끔하게 손질했다. 먹어야 하니까 손질은 당연했다. 하지만 토막 내서 원형을 알 수 없게 된 것은 큰 도마뱀뿐이었다.

손가락 길이만한 작은 것들은 원형을 유지했다. 지글지글 피워놓은 모닥불에 도마뱀들이 구워지기 시작했다.

넓적한 돌을 주워 다가 깨끗이 씻었다. 이후 돌을 쌓아 화덕처럼 만든 후 아래 불을 피웠다.

원조 돌판구이였다. 

'여기다 삼겹살을 익히는 것도 괜찮을 텐데.'

하지만 돼지고기는 구할 수 없었다.

아랍국가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선 소고기를 흔히 먹을 수는 있어도 돼지고기는 구경하기 어려웠다. 종교적인 이유로 술과 마찬가지로 전면 금지되어 있었다.

입맛을 다시며 구워지는 도마뱀 위에 소금을 살짝 뿌렸다. 적지도 많지도 않은 양이 허공에 흩날리며 익어가는 도마뱀 살코기에 안착했다.

허공을 가르는 우아한 손짓은 발레리아의 연기처럼 우아했다.

"이제 깨워주세요. 식기 전에 먹어야 하니까."

피디는 얼른 사람들을 시켜 출연자들을 깨우기 시작했다.

남자들은 하나둘 일어나 요리하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돌판 위에 구워지는 도마뱀을 보며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이게 식사입니까?"

"네."

냉정한 대답에 분위기가 얼었다. 

"배고픈데 뭘 가려요? 먹읍시다.

포식이 가장 먼저 나서서 작은 도마뱀 한 마리를 들었다. 다 익은 도마뱀은 수분을 잃어 뻣뻣하기만 했다.

포식은 약간 혐오감이 일었지만 눈을 꾹 감고 도마뱀을 물어뜯었다. 먹어봐의 보스인 자신이 도마뱀 따위를 못 먹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항상 괴롭히는 입장이었다면 오늘은 괴롭힘 당하는 것도 나름 반전이었다. 때문에 포식은 과감해졌다.

'으음, 이것 참.'

도마뱀을 뜯고 씹으니 퍼석함이 느껴졌다. 허나 씹으면 씹을수록 뭔가 오묘했다.

짭짤한 맛과 도마뱀 고기의 맛이 의외로 맛있게 느껴졌다. 정신적으로 자신이 먹는 식재료가 혐오스럽다 생각한 도마뱀만 아니었어도 감동은 더 클 것 같았다.

출연자들은 포식이 먹자 모든 것을 포기했다. 

'저 인간이 먹었으니 다른 건 못 먹겠군.'

자신이 도마뱀을 먹었는데 다른 출연자들이 뭔가 맛있는 것을 따로 먹게 내버려 둘 인간이 아니었다.

특히 행군 도중에 했던 말은 아직도 기억났다.

- 이거 왜 이래? 나 한포식이야! 내가 나중에 가만히 있을 것 같아?

독기 서린 음성이었다.

'그냥 곱게 먹는 것이 좋다. 안 먹는다고 어쩌고 하면 어떻게 나올지 몰라.

'출연자들은 서로 눈짓으로 뜻을 교환하고는 자리를 잡았다. 이윽고 심후가 건네는 도마뱀 고기를 하나씩 들고 뜯기 시작했다.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먹는 수밖에 없었다. 이미 '먹어봐'에 길들여진 출연자들에게는 익숙한 일이었다.

'먹자. 먹고 아프면 이 지긋지긋한 사막을 떠나 병원에 데려다 주겠지.'

하지만 마지막 한 명, 지윤만은 도마뱀을 들고 울상을 하고 있었다.

"왜 안 먹어요?"

"오빠......."

"얼른 드세요. 먹어야 힘내죠. 이거 안 먹으면 오늘 저녁에는 굶어야 해요."

게임? 할 수 있다. 얼마든지 게임을 통해 더 맛있는 음식을 대령할 수 있다.

지금도 촬영팀을 쫓아다니는 차 안에는 수많은 식재료가 실려 있었다. 하지만 피디를 비롯한 촬영팀은 포식의 사인이 없으면 음식을 내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그런 포식을 현재 조종하고 있는 것이 심후였다.

즉, 심후의 허락 없이 맛있는 것을 먹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윤은 굶어야 한다는 말에 두 눈을 감았다.

'먹어야 해.'

먹지 않으면 힘이 없고 힘이 없으면 신경이 예민해져서 스트레스를 쉽게 받고 그렇게 되면 원래 성격이 나올 수 있었다.

카메라가 있는 곳에서 그럴 순 없었다. 먹고 살기 위해, 이미지를 위해, 미래를 위해 지윤은 도마뱀을 물어뜯었다.

'윽!'

심후는 원형 그대로 구워진 작은 도마뱀 고기를 주었다. 때문에 그것을 입에 물었다고 생각한 지윤은 인상을 썼다.

기분이 몹시 나빠진 것이었다.

허나, 도마뱀 고기를 입으로 뜯어씹었다.

씹고, 씹고 씹었는데 삼키질 못하는 것은 역시 기분 탓이었다.

결국 지윤은 도마뱀 고기를 먹지 못하고 뱉었다. 하지만 다른 출연자들은 달랐다.

"오! 이거 맛있는데요? 하나 더!"

심후는 사람들에게 고기를 더 나눠주며 미소 지었다.

'네가 파충류 싫어하는 건 내가 잘 알지.'

도마뱀이 식사 메뉴로 선정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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