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화 (39/64)

'뭘 보는 데 저러지?'

궁금해졌다.

뭣 때문에 게임 속에서 게임은 하지도 않고 음흉하게 웃고 있는지 궁금했다.

"뭐 봐?"

"아무 것도 아냐."

"뭔데 그렇게 웃는데. 나도 좀 보자."

"개인적인 일이거든? 신경 꺼."

개인적인 일이라니 더 대놓고 파고들기가 어려웠다. 다만 머릿속으로 알아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뿐이었다.

'네가 뭘 보는지 몰라도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고. 내가 못 알아낼 것 같아?'

꼭 알아내겠다고 다짐한 에린은 총을 꺼냈다.

"뭔지 몰라도 다 봤으면 한 판 하지? 기다려 준 사람 입장도 생각해줘야 하는 거 아냐?"

"그래, 싸우자."

기분이 좋아진 심후는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승낙한 다음에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앗차! 정면으로 싸우긴 힘들 텐데.'

은신을 해도 위치를 파악하고 범위 공격을 하는 스킬을 가진 에린이었다.

전체적인 능력을 보면 심후가 완벽한 열세였다. 지금까지 버텨온 것은 은신 덕이 컸는데 이젠 그것도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뭔가 수를 생각해내야 하는데.'

이대로 계속 시간이 흐른다면 에린의 밥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가자."

시간을 좀 더 끌어보고 싶었지만 에린이 먼저 나가니 심후는 도시 밖으로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에는 그냥 싸우자. 어쩔 수 없지.'

뾰족한 수가 없었다. 최선을 다해 싸우는 수밖에 없음을 안 심후는 성문을 앞에 두고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갑자기 떠오른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도시 밖으로 한 걸음 뗀 상태에서 더 움직이지 않았다.

"뭐해? 안 나오고?"

"지금 도시 밖이거든?"

"장난해?"

"아닌데. 난 심각한데. 여기가 내가 죽지 않고 너하고 싸울 수 있는 최고의 장소거든."

맞는 말이었다. 안전구역인 도시로 들어가는 순간 데미지는 모두 무효화되기 때문이었다. 

"겁먹었냐?"

"응, 겁나. 은신해도 찾아내는데 내가 뭐 잘났다고 버티겠어? 난 용기와 만용 정도는 구분할 줄 아는 지성인이야. 그러니까 더 이상의 도발은 거부한다."

"하!"

갑자기 겁쟁이 같은 모습을 보이자 실망감이 밀려들었다. 

'여기까지인가?'

그 동안 정말 즐겁게 싸우며 즐겼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강한 적을 보아도 굽히지 않는 그런 강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서 가까이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며 뒤로 물러서니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밀려오는 실망감으로 인해 슬픔이 차올랐다.

"젠장."

욕을 하며 바닥을 툭 찼다. 그런데 그 순간 세상이 빙글 돌았다, 이어서 들려오는 총성의 여운.

"내 앞에서 한 눈 파냐?"

바닥에 엎어져 고개를 들어보니 심후가 총을 겨누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역시 넌 멀었어."

말이 끝나자 총성이 울렸다.

시야가 검게 변했다. 다시 눈을 떠보니 도시의 광장이었다.

"크크크크크크."

마음의 허점을 찌른 일격이 실망을 산뜻하게 날려주었다. 미치도록 웃은 에린은 추적 스킬을 이용해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문을 나서는 바로 앞에서 우뚝 멈췄다.

추적 스킬에 의하면 심후는 바로 성문 옆에 붙어 있었다.'나가면 맞는다.

'기뻤다. 역시 강한 마음의 소유자라는 것이 확인 되어서 기뻤다.

가끔 페이크를 써서 헷갈리지만 결과는 같았다. 

'그래, 싸우자!'

에린은 즐거운 마음으로 서브머신건을 들고 성문 밖으로 몸을 날렸다.

낮게 구르며 심후가 숨었을 방향으로 총을 겨누며 방아쇠를 당겼다. 은신으로 몸을 숨기고 있던 심후는 이번엔 정확히 자신을 향해 조준하는 총구를 벽을 차며 펄쩍 뛰어올랐다.

허공을 가르는 한 마리 고양이처럼 공중에서 우아하게 자세를 잡고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둘 다 급하게 움직이는 상황이었기에 조준은 그리 정확하지 않았다.

'한 방만!'

심후는 정확히 겨냥하기 보단 연속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빠른 연사라면 머신건이 더 낫지만 파괴력이라면 저격총이 더 강하기에 바꿀 수 없었다. 때문에 적당히 조준을 하고 계속 방아쇠를 당기는 방법을 쓴 것이었다.

좀처럼 맞지 않았다. 심후는 미친 메뚜기처럼 이리저리 불규칙적으로 뛰고 구르고 폴짝거렸다.

덕분에 에린의 조준은 모두 빗나갔고 심후는 맞지 않았다. 에린 또한 심후의 저격을 피하느라 정확히 노리지 못한 것도 있었다.

그러나 딱 15초간의 공방 끝에 승기를 잡은 것은 역시 심후였다.

허벅지에 총을 맞은 에린의 균형이 무너지며 움직임이 뚝 멈췄다.

그 순간 연속으로 날아온 연사에 복구 가슴 어깨에 이어 머리까지 총알이 박혔다. '후우, 힘들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진짬 나는 승부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짜낸 한판 승부였다.

거기다 운도 따라주었다. 누가 이겨도 이상할 것 없는 대결의 승자가 된 심후는 피로를 느꼈다.

"오늘은 여기까지."

성문까지 급하게 달려온 에린에게 한 마디 건넨 심후는 도시 안에서 로그아웃했다.

"정말 제멋대로라니까."

투덜거리는 에린은 그래도 웃고 있었다.

오늘도 제대로 싸울 수 있었기에 즐거운 하루가 되었다. 

============================ 작품 후기 ============================

정말 오랜만에 해보는 12시땡 연재네요. 

"정말 제멋대로라니까."

투덜거리는 에린은 그래도 웃고 있었다. 오늘도 제대로 싸울 수 있었기에 즐거운 하루가 되었다.

============================ 작품 후기 ============================

정말 오랜만에 해보는 12시땡 연재네요. 모두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영수와 차영이 헤어지게 되는 것은 필수였다.

과정은 물론 순탄치 않았다. 수동에게 얻어터진 영수는 차영에 대한 험담을 퍼트렸다. 그러자 차영 또한 영수에 대한 험담을 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싸우는 가운데 두 사람의 지인들도 패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양쪽으로 계속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가는 좋은 소리 못 듣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 쪽에 붙는 사람보다 두 사람 다 관계를 끊어버리는 사람이 더 많은 편이었다.

두 사람 다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

차영의 경우에는 그 동안 영수의 옆자리를 노리고 있던 여자들이 반기를 들었다.

그 동안 무리에서 영수가 대장 노릇을 했기에 차영 또한 대장 노릇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수와 헤어지게 되니 차영을 우습게보고 도발하는 여자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이때 수동이 확실히 차기 리더로 자리매김했다면 차영의 자리는 견고했겠지만 수동은 절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영수도 사정이 좋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 저 길드 탈퇴할게요.

- 저도요.

하나 둘 길드를 탈퇴하는 사람들이 생긴 것이었다.

- 대체 이유가 뭐냐?

- 그냥 형 게임도 못하는 것 같고. 우린 수동이랑 같이 하려고요. 아이템 다 맞춰준다고 했어요. - 뭐?

- 어쨌든 죄송해요. - 야! 너 이렇게 나가면 돈 안 준다!

길드를 만들며 받았던 길드 가입비는 꽤 많은 액수였다. 하지만 탈퇴하는 길드원들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 와, 치사하게 나오네. 네, 그냥 다 드세요. 그거 몇 푼 가지고 협박하나. 나 참. - 뭐?

- 그 돈 수동이가 다 준다고 했거든요? 형이 쳐 먹든 말든 알아서 하시고 다신 연락하지 마 이 새끼야.

곱게 나오던 말이 어느새 험악해졌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차단당한 것이었다. 

"으아아아아아아!"

괴성을 지르며 수동을 향해 저주를 퍼부었으나 가슴 속의 응어리는 풀리지 않았다.

"개새끼."

수동이 따로 길드를 만들어 길드원들을 빼간 것이었다. 게임으로 돈 벌겠다며 친한 사람들과 함께 길드를 만들었는데 그게 허사가 된 것이었다.

직장도 그만두고 해볼 생각으로 많은 자금을 투자했다. 접속방 하나와 장기 계약을 맺기까지 했다.

단체로 장기 계약을 하면 할인도 받을 수 있고 자리 구하기 위해 기다릴 필요도 없기 때문이었다. 1년 계약을 맺었다.

통 크게. 이것을 위해 모아둔 돈 대부분을 썼다. 선불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접속방 입장에서는 당연했다. 후불로 했다가 돈을 못 받게 되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돈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얼마 되지는 않았다. 길드원들을 받으면서 생활비로 쓰기 위해 받은 돈이 남아 있었다.

여럿이 쓴다면 몇 개월 못 버티지만 혼자 다 쓴다면 그래도 1년은 훨씬 넘게 버틸 수 있는 금액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다들 놀러 간 건가?"

화가 나서 홀로 분을 삭이는데 접속방 사장님이 다가와 음료수 하나를 건넸다.

"그게 길드원들이 다 떠나서요."

"저런. 싸운 건가?"

"뭐 그렇죠."

"쯧쯧쯧. 뭔지 몰라도 잘 하지 그랬어."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네요."

속이 부글부글하지만 접속방 사장에게 함부로 대들지는 않았다. 서로 사장과 손님이라는 거래 관계에 있을 뿐이지만 접속방 사장을 화나게 해서 좋을 것은 별로 없었다.

좀 더 좋은 서비스를 받으려면 조금 잘 보이는 처세도 필요한 것이었다.

"혼자서 게임하기 힘들면 말해. 내가 게임 좋아하는 녀석들 소개해줄 테니."

순간 영수의 뇌리에 한 가지 생각이 번뜩였다.

'그래, 너희들 없다고 내가 못 일어설 줄 아냐? 나도 작업장 돌리면 돼!'

잠시 생각에 빠져있던 영수는 작업장을 돌리기로 했다. 

"그래요? 잘 됐네요. 그런데 제가 작업장처럼 할 건데 하려고 할까요?"

"괜찮아. 내가 연락해보지 뭐."

대답을 하며 돌아서는 사장의 입가에는 썩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아직 영수에 대한 복수는 끝난 것이 아니었다.

한편, 차영은 새로운 일자리를 얻기 위해서 알아보다가 바밥바에서 구인을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지원했다. 심후가 가세한 후 무섭게 장사가 잘 되자 서빙을 해줄 종업원이 많이 피요하게 된 것이었다.

예전과 같은 숫자로는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지도 못하니 사람을 더 뽑아야만 했다. 

'이렇게 가까워지면 되지 뭘.'

바밥바에서 면접은 단번에 통과 되었다.

물론 심후가 바밥바의 사장에게 미리 언질을 준 것도 한몫했다. 자신이 아는 동생이 꼭 좀 부탁한다고 해서 한 명 받아주면 어떻겠냐고 한 것이었다.

사장 입장에서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 흔쾌히 들어주었다. 그렇게 수동을 통해 차영의 모든 것을 전해들은 심후는 또 다른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하지만 순조롭게 진행되는 일이 있는가 하면 좋지 않은 일도 있었다.

- 삐빅. 허락되지 않은 접근이 감지되었습니다.

게임을 하던 심후는 갑작스럽게 들린 경고음에 깜짝 놀랐다.

'무슨 일이지?'

경고와 함께 뜬 정보 분석창을 보니 누군가 외부에서 심후의 접속기를 해킹하려고 시도한 것이 드러났다.

'누구지?'

잠시 뒤 자동으로 접속자를 추적한 방어 시스템은 상대가 미국에 사는 해커임을 밝혀냈다.

'전혀 모르는 사람.'

모를 수밖에 없었다. 상대는 태어나서 한 번도 미국을 벗어난 일이 없고 언론에 공개된 적도 없었다. 다만 에린에게 고용된 해커일 뿐이었다.

에린은 심후가 무엇인가 혼자 본 것을 알고 그게 궁금하여 해커를 고용한 것 뿐이었다.

- 더미 시스템 접속. 해커를 더미로 쓰는 시스템으로 유도했다.

그와 동시에 심후의 몸을 자동으로 단련시켜주는 자동 무공 수련 프로그램은 중지되었다. 행여나 방어벽이 뚫릴 경우 시스템을 자동 종료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게임하고 있을 때가 아니군.'

 심후는 게임 접속을 종료했다. 장보도의 정보를 분석해 보물을 찾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으나 지금은 게임의 보물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딴 놈에게 발각되면 부숴버린다.'

해커가 만약 해킹에 성공할 경우 접속기는 자동으로 꺼질 터였다.

그리되면 심후는 접속기에 저장된 모든 자료들을 삭제하고 접속기를 분해할 생각이었다. 이미 심공론이나 다른 무공 비급은 전부 외우고 있는 상태이기에 문제가 없었다.

수많은 레시피를 기억하는 완전 기억 능력은 무공 비급을 외우는 것에도 유용했다. 접속기가 있어 자동으로 무공을 익히지 못하게 된다면 상당히 아쉬운 일이지만 더 이상 자신의 것을 남에게 빼앗기는 것은 사양이었다.

해커는 심후의 접속기를 둘러보고는 금방 접속을 종료했다. 의뢰받은 영상 같은 것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해커가 본 심후의 접속기 내부는 그저 요리에 관련된 프로그램과 전자서적으로 가득할 뿐이었다. 

"뭔지 몰라도 다른 영상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그래? 수고했어."

에린은 성공보수를 지불하고는 생각에 잠겼다.

'벌써 다 지운 걸까?'

심후가 보던 것이 무엇인지 에린은 몰랐다. 다만 영상이라고 생각되는 정도였다. 하지만 접속기를 살펴봐도 의심되는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고 보고서에 나왔다.

'야한 것도 안 보고. 이상한 것도 없고. 그냥 요리만 잔뜩?'

평범한 남자의 접속기였다면 이상하다고 생각될 법도 했다. 하지만 심후는 평범한 남자는 분명 아니었다. 굉장한 요리 솜씨를 가진 남자였다.

평소에 보여주는 요리 실력을 생각한다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하나도 없었다.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인생을 바치는 것은 에린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다.

때문에 이상하게 생각되지는 않았다. 다만 열심히 사는 심후의 모습에 살짝 감탄했다.

'그나저나 그럼 그땐 왜 그런 표정을 지은 걸까?'

잠시 딴 곳으로 흐르던 생각의 흐름을 바로잡았다.

에린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뚫어져라 보던 눈빛과 음침하게 웃던 모습은 지워지지 않았다.

'뭘 보고 있던 걸까?'

사소한 일이라면 사소한 일이었다. 그냥 넘어가도 사는데 아무런 지장은 없었다. 그런데 자꾸 신경 쓰였다.

'게임 기능 중에 하나였을까? 그쪽은 프로그램자체가 코드화 되었으니 해커라도 쉽게 뚫지는 못하지.'

잠시 생각하던 에린은 수화기를 들고 올라이프 50의 게임사의 대표에게 직접 전화했다.

게임사와 함께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기 위한 프로젝트인 세포 시뮬레이션 프로젝트였다. 프로젝트 투자자인 에린이 부탁한다면 한 유저의 계정 정보쯤이야 얼마든지 열람할 수 있었다.

법적으로는 불법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외부로 밝혀졌을 때의 이야기였다. 에린 정도의 힘을 가지게 되면 소리 나지 않게 원하는 사람의 감시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했다.

'이상하게 신경 쓰이네.'

자신이 하는 짓이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멈출 수 없는 에린이었다. 

============================ 작품 후기 ============================

모두 즐거운 일요일 보내세요.

'이상하게 신경 쓰이네.'

자신이 하는 짓이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멈출 수 없는 에린이었다. 

============================ 작품 후기 ============================

모두 즐거운 일요일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이상하게 신경 쓰이네.'

자신이 하는 짓이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멈출 수 없는 에린이었다. 

============================ 작품 후기 ============================

모두 즐거운 일요일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이상하게 신경 쓰이네.'

자신이 하는 짓이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멈출 수 없는 에린이었다. 

============================ 작품 후기 ============================

모두 즐거운 일요일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아무 것도 없어?'

게임사에 직접 연락해 게임 로그를 살피도록 했다. 발견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평범하게 게임을 즐기고 있는 유저의 기록만이 있었다. 심후의 접속기에는 자동 방어 기능이 있기 때문에 외부에서 들어오는 강제적 접속은 모두 준비된 더미 데이터만을 보게 되어 있었다.

이로 인해 대충 들여다보는 것으로는 안에 숨겨진 내용을 절대 알 수 없었다. 

'뭘까? 뭐가 있는 거야?'

아주 작은 불씨가 산을 태워버리는 산불로 커져가듯 에린의 호기심도 무섭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뭔가 있는 것만은 확실한데.'

과도한 집착이라는 것을 알지만 호기심을 멈출 수가 없었다. 자신을 즐겁게 해준 대상이 보고 즐기던 것은 과연 무엇일까? 

'야동? 스토킹? 뭘까?'

온갖 해괴망측한 상상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가씨, 초콜릿 도마뱀입니다."

상념에 잠겨 고민하고 있을 때, 충성스런 메이드인 제니가 요리를 내왔다.

접시 위에 달라붙어 있는 것은 바로 심후가 사막에서 만들어 먹은 초콜릿 도마뱀이었다. 일부러 바밥바에까지 파견 나간 일류 요리사들이 교육을 받은 후 정성을 다해 심후가 만든 것과 똑같이 만들어낸 요리였다.

생각들을 뒤로 한 채 도마뱀을 들었다. 이 하나의 도마뱀을 만들기 위해 요리사들은 잠을 못자고 연습해야만 했다.

모두 제대로 된 초콜릿 도마뱀을 먹어본 적이 없으니 어떤 맛이 심후가 만든 맛인지 알 수 없었다. 조리법을 따라한다고 해도 완벽하게 100% 똑같이 만드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였다. 하지만 원래 어떤 맛이 나야 한다는 것을 안다면 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때문에 요리사들은 심후가 만든 초콜릿 도마뱀을 먹어봐야 했다. 또한 심후의 지도아래 합격점을 받을 때까지 계속 연습했다. 

"음......."

맛있었다.

사막에서의 고행이란 양념이 없으면 제대로 된 맛을 낼 수 없다고 하지만 고행과 배고픔이야말로 세계 최고의 양념이었다. 똑같은 음식이라도 배고플 때 먹는 것과 배부를 때 먹는 것에 느끼는 만족도가 다른 법이었다.

허기는 그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심후의 요리는 무엇인가 달랐다. 

'맛없을 줄 알았는데.'

맛있었다.

볼품없는 외양은 식욕을 돋우지는 못했다. 향기도 별로 나지 않았다. 하지만 식감과 혀에 퍼지는 맛은 뇌를 심하게 자극했다.

어느새 하나를 뚝딱 해치운 에린은 만족감을 표했다. 

"만족했다고 전해줘."

"알겠습니다, 아가씨."

이것으로 심후와 포식은 파리로 가서 9박 10일간 신나게 먹을 수 있었다. 잠시 먹을 것에 휘둘렸던 에린은 심후에 대한 생각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한다? 직접 물어보면 대답 안 할 것 같고. 그냥 넘어가기에는 너무 궁금하고.'

지금까지는 비교적 간단한 조사였다. 하지만 더 강도 높은 조사를 하게 되면 권력자들에게 부탁해야 했다. 이것이 문제였다.

권력을 휘두를 위치에 서지 않은 사람이 권력을 이용하게 되면 그만한 보수를 지불해야만 하는 법이었다. 이것은 아무리 높은 위치에 있다 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법칙이었다.

대기업 사장이 아르바이트생을 무보수로 부려먹다가는 원한을 사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잠시 고민하던 에린은 조사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더 이상의 조사는 실익이 없어 보였다. 심후에게 뭔가 있어 보이긴 했지만 막대한 자금을 들여서 조사해야 할 가치를 찾을 수가 없었다.

간단하게 집으로 사람을 보내 도둑으로 위장해 모든 물건을 털어와 조사를 시키는 방법도 있었으나 그 방법은 쓰고 싶지 않았다. 감성은 인정사정 봐주지 말고 계속 파보라고 시키지만 이성은 낭비라고 말하며 적당히 거리를 두라고 했다.

감성과 이성의 충돌로 가슴이 답답할 지경이었으나 감정을 컨트롤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은 낭비야.'

허나, 그 순간 정리되던 감정에 또 다른 불씨가 떨어졌다.

"오빠, 아!"

녹화한 '먹어봐'의 스튜디오 방송분을 재생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지윤이 심후의 입에 먹을 것을 넣어주는 장면이 나왔다. 단순한 방송이었고 다분히 보여주기 위해 찍었다는 느낌이었는데 에린의 가슴에 불길이 일었다.

지윤과 심후가 연출하는 다정한 분위기가 굉장히 거슬렸다. 거센 감정의 흐름을 인식한 에린은 자신이 질투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냥 조금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아주 심하게 질투가 일어났다. 그냥 돈 주고 지윤이 속한 소속사를 사서 방송 출연을 못하게 하고 싶을 정도였다.

너무나 거센 감정이어서 본인조차 깜짝 놀랐다. 

'설마 내가?'

고개를 좌우로 털었다. 하지만 이성은 맞을 거라고 끄덕였다.

허락되지 않은 감정의 흐름에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이대로 계속 놔둔다면 나쁜 주름이 생길 정도였다.

"제니, 파리로 갈 준비해. 옷도 맞출 거니까 잡지사에 패션쇼 열라고 전해."

"네, 아가씨."

에린의 명령에 프랑스에 존재하는 한 유명 패션 잡지사는 갑자기 거대한 패션쇼를 기획했다. 연락을 받은 디자이너들은 모두 참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패션계의 거장들이 자신만의 패션쇼가 아닌데도 참가하겠다고 한 것이었다.

'확인해볼 필요가 있어.'

'아무래도 이사 가야겠어.'

파리로 갈 수 있다는 통보를 받은 심후는 이사를 결심했다.

영수에게 복수한 날 이후로 자신의 접속기를 탐색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더미 시스템으로 연막을 뿌렸지만 이대로 가다가 방어가 뚫리기라도 하면 접속기 안에 있는 무공이 유출될 위험이 있었다.

이 때문에 심후는 아예 접속을 끊고 게임에 접속하지도 않았다. '무공은 이제 따로 들어가서 연마한다고 쳐도 게임을 위해서 접속기를 새로 사면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몰라.

'지나친 생각일지는 몰랐지만 가진 것이 엄청나다보니 만전을 기해야만 했다. 귀찮은 일을 만든 범인으로 의심 가는 존재가 하나 있기는 했다.

'에린.'

영수나 차영이 자신의 존재를 알고 해커를 고용해 무엇인가 알아내려 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양자컴퓨터를 해킹한다는 것은 일반인들은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고난이도의 작업이었다.

우선 양자컴퓨터로 이뤄진 서버에 접속하기 위해선 특수 장비가 필요했다. 이게 장난 아니게 비쌌으며 면허가 없으면 구할 수도 없었다.

과거 인터넷이 통제도 되지 않고 해커들이 난무하던 시대가 있었다. 이때 양자컴퓨터가 등장하며 해커들이 잠시 줄어들긴 했지만 시간이 지남과 동시에 다시 생겨났다.

이런 이들을 계속 내버려두면 네트워크 산업이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고 생각한 세계 각국의 정부는 하나의 세계적인 기관을 설립했다. 세계네트워크보안기구가 바로 이것이었다.

원래는 하나의 회사에 불과했지만 모든 국가를 압도하는 기술력을 가진 회사는 정부들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서버에 접속할 수 있는 기기는 모두 면허를 가진 자만이 구입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골자였다.

법안은 어려움 없이 통과되었다. 무분별한 접속으로 인해 통제가 불가능한 것보다 훨씬 나았기 때문이었다.

차는 있는데 교통법규도 아무것도 없어서 사람들이 마음대로 마구 달리는 혼돈의 네트워크 시대는 그렇게 끝났다.

현재는 면허를 가진 자들이 자신의 면허를 걸고 해킹을 했다.

때문에 이득이 없으면 하지도 않았다. 심심풀이로, 혹은 지적 호기심 때문에 사고를 치는 이들은 많이 줄어든 것이었다.

때문에 영수나 차영하고는 관련이 없다고 봐야했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포식과 같은 방송국 사람들이거나 혹은 돈이 아주 많은 사람 정도였다.

'포식은 내가 인터넷에서 뭘 하든 관심을 가질 이유는 없으니까.'

그래서 남은 것은 에린이었다. 아는 지인 중에 돈이 가장 많은 사람은 에린 뿐이었다. 더구나 에린은 영수가 얻어터지는 동영상을 볼 때 옆에 있었다. 그리고 뭘 보고 있었냐고 캐묻기까지 했다.

'하여간 귀찮게.'

짜증났다. 하지만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이 없으니 일단 따지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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