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0화 (40/64)

'파리로 간 사이에 문 따고 들어올 수도 있어.'

그렇기 때문에 이사해야만 했다.

접속기만 사는 방법으로는 의심을 피할 순 없었다. 그리고 집에 정말 슬쩍 들어와 살펴보지 말란 법도 없었다. 감시하기 위해 몰래 카메라를 설치할 수도 있었다.

물론 그렇게까지 하겠느냐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방심할 순 없었다.'이사는 바밥바 근처로 간다.

'돈은 있었다. 현재 거주하고 있는 오피스텔만 팔아도 큰돈을 만들 수 있었다.

'바밥바 근처로 이사 간다면 의심은 못하겠지.'

촬영 일정과 요리사로서의 생활 같은 것을 고려한다면 의심할 요소는 보이지 않았다. 네트워크에 집을 판다고 올리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문의자가 나타났다.

공격적인 부동산 투자자들은 좋은 매물이 나오면 누구보다 빠르게 접근했다. 거대 부동산 회사들은 좋은 부동산을 사서 그것을 임대해 막대한 임대 수익을 올리기도 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만큼 조상님인 종우가 남겨준 부동산은 매력적인 것이었다.

심후는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이사 갈 곳을 살 수 있었다.

부동산 회사에서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던 곳 하나와 맞교환하자고 한 것이었다. 이사 가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일주일이 지나기도 전에 이사 갈 수 있게 되었다. 접속기는 포장했다.

모든 시스템을 다운하고 열쇠가 없으면 열어보지 못하게 했다. 아울러 접속기에 저장되어 있던 설계도를 보고 자폭장치도 만들었다.

열쇠를 가지지 못한 사람이 억지로 열려고 할 경우 모아두었던 전류를 한꺼번에 폭발시켜 모든 것을 파괴하는 장치였다.

새로운 접속기도 구매해서 설치하고 종우가 남겨준 접속기는 포장을 뜯지 않은 상태로 그대로 두었다.

이사하고서도 귀찮아서 짐을 그대로 두는 사람은 많기 때문에 이상해 보일 이유는 전혀 없었다. 

'젠장.'

이사를 마치고 난 소감은 귀찮다는 것뿐이었다.

성질 같아선 접속기를 완전히 박살내주고 싶었으나 그렇게 되면 나중에 자신이 직접 접속기를 만들어야만 했다. 만드는 것은 문제없었다.

설계도와 제작 과정에 관한 것은 모두 기억에 담겨 있었으니까. 그러나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만약 에린이 자신을 정말 감시하고 있다면 부품을 사서 가상현실접속기를 조립한 자신을 가만 놔두지는 않을 것 같았다.

요리사가 어느 날 갑자기 공학도가 되어 가상현실접속기를 조립한다면 누구나 이상하게 생각할 일이었다. 때문에 접속기를 폐기하지 못했다.

아직 무공을 완벽하게 익힌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접속기가 없어도 무공은 익힐 수 있었으나 접속기 안에서 배우는 것의 편리함과 바꾸는 것은 어려웠다.

'날 귀찮게 하다니.'

나중에 걸린다면 철저히 괴롭혀주겠다고 생각하며 심후는 짐을 쌌다. 파리 촬영 일자가 잡혔기 때문이었다.

심후는 연신 투덜거리며 짐을 쌌다. 기분 좋게 파리로 여행을 가야 했지만 접속기가 걱정되어 제대로 즐기기 어려웠다.

============================ 작품 후기 ============================

재미있으셨는지 모르겠네요. 읽어주신 분, 추천 주신분, 댓글 달아주신 분, 쿠폰 주신분 모두 감사합니다.

심후는 연신 투덜거리며 짐을 쌌다.

기분 좋게 파리로 여행을 가야 했지만 접속기가 걱정되어 제대로 즐기기 어려웠다.

============================ 작품 후기 ============================

재미있으셨는지 모르겠네요. 읽어주신 분, 추천 주신분, 댓글 달아주신 분, 쿠폰 주신분 모두 감사합니다.

파리는 굉장히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대도시였다. 세계 패션의 중심지의 하나로 유명하며 수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관광도시이기도 했다.

물가는 살인적이었고 부동산은 비쌌다. 문명이 발달한 도시의 모습과는 전혀 동 떨어진 오히려 과거로 회귀하는 것과 같은 모습을 간직한 대도시, 파리였다.

새로 지어지는 빌딩들은 전부 옛날 양식에 맞춰 지어졌다. 내부는 최첨단으로 하더라도 외부는 절대 과거 왕국이던 시절의 모습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모든 건축물의 디자인은 시에서 승인받지 못하면 쓰지도 못했다. 새롭게 지어지는 빌딩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과거의 모습을 도시와 융합하는 디자인과 모든 것을 뛰어넘어 감동을 안겨줄 수 있는 예술성이 담긴 디자인, 이 두 가지만이 유일하게 시에서 허락하는 건축물 디자인이었다.

이로 인해 부동산 가격은 더욱 뛰었다.

오랜 세월이 흐르며 계속 이어진 예술성에 대한 집착은 도시 자체를 하나의 예술품으로 만들었다. 역사와 예술이 살아 숨쉬는 도시.

돈 좀 있다는 부자라면 파리에 거처 하나쯤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때문에 파리의 물가는 살인적이었다. 일반 서민은 감당하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

"지금 우리가 향하는 곳은 바로 전철역입니다. 파리에는 서민이 안 살아요. 다 외곽에 살면서 전철로 출퇴근하죠."

부자는 땅 위에서 서민은 땅 속에서 움직였다.

잠들지 않는 예술과 향락의 도시는 24시간 가동되었다.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서민들은 땅 속의 전철을 통해 계속 움직였다.

서민의 거처는 도시 밖의 주거지. 도시 내에 생활하는 서민들이 있긴 하지만 극소수였다. 생활비가 너무 비싸기 때문에 직장에서 얻어주는 숙소가 없다면 생활이 불가능했다.

전철을 타고 가면서 포식은 연신 이러한 것들에 대해 떠들었다.

"그럼, 일단 진짜 맛있는 것을 먹기 전에 파리에서 파는 서민의 맛을 느껴보도록 하죠."

전철역에서 내려 찾아간 곳은 바로 카페였다.

"커피 그리고 빵이군요. 저는 이렇게 먹겠습니다."

포식의 선택은 시나몬 롤, 크림치즈빵, 그리고 치즈 스콘에 카푸치노였다.

반면 심후는 간단하게 바게트와 에스프레소만 시켰다. 

"그렇게 먹고 되겠어요? 더 드셔야죠?"

"너무 많이 먹으면 나중에 못 먹지 않겠어요?"

"이야, 만만치 않네요. 하지만 많이 먹기 위해서는 쫄쫄 굶는 것보다 위장의 크기를 늘리는 것이 더 효율적이죠. 평소에 많이 먹어둔 사람의 위는 잘 늘어납니다. 그래서 푸드파이터들은 훈련할 때 물을 엄청나게 많이 마시죠. 물론 물을 너무 많이 마시다보면 물중독으로 사망에 이를 수도 있으니 시청자 여러분은 따라하지 마세요."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 얘기를 요약하자만 포식은 이미 촬영하기 전부터 전문 푸드파이터의 지도하에 트레이닝을 받았기에 심후보다 더 많이 먹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지금 먹는 정도는 그저 입가심일 뿐이란 소리였다. 은근히 먹는 것으로 자신의 대단함을 어필하려는 포식이었다.

"먹는 걸로 절 이겨도 뭐 나오는 건 없을 텐데요?"

"이기는 데 의의를 두는 거죠. 요리도 못하고 외모도 안 되고 그러니 먹는 걸로라도 이겨야죠."

포식은 주절주절 떠들면서 열심히 자신의 몫을 먹고 마셨다. 심후는 잘라진 바게트에 버터를 발랐다. 버터가 부드럽게 퍼지며 빵에 발라졌다. 겉은 바삭하지만 속은 부드러운 바게트와 짭짤한 버터의 맛이 어우러지며 기쁨을 선사했다.

이어서 먹은 쓰디쓴 에스프레소에 정신이 확 깨는 느낌이었다. '각성'이란 단어가 어울리는 에스프레소였다.

"자, 그럼 간단한 아침 식사가 끝났으니 가볼까요? 일단 시장부터 가보죠!"

파리에도 시장이 있긴 했다. 사람이 먹고 사는 곳이니 없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서민들이 살지 않는 곳의 시장은 달라도 뭔가 달랐다.

"이게 시장입니까? 아니면 백화점입니까?"

시장이라고 생각하며 들어간 곳은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시끄럽지도 않았다.

여기저기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소란스럽지 않았다. 조용한 음악이 실내 공기를 진동시켰다.

물건을 구경하는 사람들은 느긋한 음악의 박자에 맞춰 발걸음이 느릿느릿했다. 차분한 얼굴로 물건을 꼼꼼히 살피는 모습이었다.

"굉장하군요. 여유가 넘쳐흐릅니다."

물건을 살펴보니 하나같이 쉽게 찾아보기 힘든 고급품들이었다.

전 세계에서 최상급 식재료만 모아놓은 것 같았다.

"엇, 여기 세계 3대 진미의 하나인 푸아그라가 있네요."

"만지면 사야 합니다. 만지지 마세요."

포식이 푸아그라 하나를 들려고 하는데 일하던 종업원이 막았다.

종업원의 행동에 말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잠깐 멈춘 포식은 통역이 전하는 말을 듣고는 웃었다.

"거기 스폰서님, 들었죠? 준비 되셨나요?"

스폰서 역할로 파견된 것은 에린의 비서 중 하나였다.

에린의 비서는 여유롭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 여러분! 이 동네는 만지면 사야한다는 규칙이 있나 봅니다! 오늘 제 돈 쓰는 것도 아닌데 실컷 쇼핑을 해보겠습니다!"

푸아그라를 만졌다.

에린의 비서는 바로 결제해주었다. 카드를 받은 종업원은 갑자기 정중하게 변했다.

카드에도 급이 있었다. 특히 부자들이 사는 파리에선 별 희귀한 카드를 다 볼 수 있었다.

덕분에 종업원은 카드만 보고서도 그 사람의 재력을 어느 정도 파악할 정도였다. 친절해진 종업원은 포식이 시선이 가는 곳에 있는 식재료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부자 손님이었다. 카메라가 있었다. 그리고 굉장한 카드로 바로바로 결제하는 스폰서가 있었다.

이쯤 되면 그야말로 봉이라고 할 수 있었다. 

'꼭 잡자!'

기본급여 외에도 영업 실적에 따라 보너스가 주어지기 때문에 종업원은 친절했다.

처음 포식의 모습을 보고 약간 무시하는 감정이 들었지만 카메라의 존재를 눈치 채고 그나마 정중하게 대한 것이 행운이었다.

푸아그라 이후에는 송로버섯이었다.

비싸기는 엄청나게 비싼 버섯이었다. 이건 포식도 겁이 나서 마음대로 건들지 못했다.

가격이 금값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이게 음식입니까? 귀금속입니까? 이 말도 안 되는 가격을 좀 보시죠!"

계산서에 찍힌 가격을 보여주며 연신 거품을 물던 포식은 송로버섯이 담긴 포장을 꼭 끌어안았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바로 철갑상어의 알, 캐비아였다. 

"이건 금수저로 먹어야 한다고 하는 군요."

포식은 준비되어 있는 금수저로 한 입 떠서 먹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톡톡 터지는 발랄한 맛이로군요. 아름다운 맛입니다."

이후 수많은 식재료들을 둘러보았다.

3대 진미뿐만 아니라 온갖 희귀한 것들이 다 있었다.

많은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요리 지식이 쑥쑥 늘었다.

설마 먹는 건가 싶은 것들도 있었기에 맛에 대한 상상력은 계속 증가하였다. 상당히 많은 양의 식재료를 사서 넘기자 에린의 비서가 사람을 시켜 보관하도록 했다.

"그럼 이제 레스토랑으로 가보겠습니다. 지금 갈 레스토랑은......."

시장 구경이 끝나자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할 차례가 왔다.

"정말 대단한 곳이죠. 촬영 거부될 뻔 했으니까요."

"대신 최소한의 인원만 데리고 들어가는 것은 허락 받았습니다. 방해하면 안 된다는 조건이지만요."

고급 레스토랑이니 카메라가 여기저기 찍어대고 출연자들이 떠들어대면 다른 손님에게 피해가 간다는 이유로 거부될 뻔했다.

허나, 조금 이른 시각에 한쪽 구석에서 먹는 것만 조용히 찍겠다고 했기에 허가가 떨어졌다. 

"와, 이거 진짜 금일까요?"

자리에 앉자 포식은 호들갑을 떨었다.

식기가 황금색으로 번쩍거리고 있었다. 

"이거 정말 훔쳐가고 싶을 정도로 아름답네요."

포식과 심후는 떠들면서 요리를 기다렸다.

주문은 복잡하게 하지 않았다. 그저 요리장의 추천 코스를 시킨 것이 전부였다.

모든 것을 맡긴다는 말 한 마디에 웨이터가 여러 가지 질문을 던져 기호와 혹시 먹지 못하는 것에 대해 물은 것 외에는 별 다른 말이 오가지 않았다. 이것이 진정한 '아무거나'였다.

굉장히 심술궂은 주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최고의 요리사라면 이걸 극복해야 했다. 누가 먹어도 맛있다고 느낄 수 있는 요리를 만들 자신이 없다면 이런 곳에서는 일하기 어려웠다.

돈을 많이 받는 만큼 실력이 요구되는 냉혹한 세계이기도 했다.

웨이터의 대응, 등장하는 소믈리에의 와인 선택, 그리고 이어져 나온 전채까지 심후는 하나도 빼놓지 않고 보았다.

'과연 어떤 전개를 보여줄까?'

동양의 식사는 모든 것이 한꺼번에 나오는 것이 보통이었다. 특히 한제국에서는 모든 것은 바로 식사의 중심인 '밥'을 맛있게 먹기 위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많은 요리들은 밥과 함께 먹어야 의미가 있었으며 맛이 완성되는 것이었다. 예를 들자면 간장게장을 들 수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밥도둑이란 별명을 지닌 간장게장은 밥 없이 먹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새로 생긴 퓨전 요리가 아닌 전통 요리의 경우 이러한 경향이 더욱 강했다.

반면 서양 요리는 접시에 담긴 요리 자체가 하나의 완성품이었다. 다른 것과 같이 먹지 않고 그것만 먹는 것으로 충분했다.

전체적인 조화를 중요시하는 동양의 식탁과 하나의 가치에 집중하는 서양의 식탁을 두고 비교하다보면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문화가 그대로 식탁에 표현되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때문에 심후는 모든 과정에 집중하며 하나도 빼놓지 않고 기억에 담았다.

전채는 산뜻하고 가벼웠다. 배부르게 먹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양이었지만 지금 먹고 있는 것은 풀코스의 시작일 뿐이었다.

처음부터 배부르게 먹으면 나중에 메인을 못 먹는 불행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었다.

전채에 이어 위를 자극하는 향기로운 스프가 나왔다. 그리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요리의 향연에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하나하나가 모두 예술과 같았다. 그리고 그러한 예술품들이 조화를 이루며 다음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먹는 동안에 포식과 연신 가벼운 농담을 하며 요리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식사가 진행되며 점점 고조되는 분위기에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화려하면서도 웅장한 레스토랑 안의 분위기와 천상의 맛을 내는 요리들을 즐기는 동안 마치 자신이 대단한 존재가 된 느낌을 받았다.

"정말 구름위의 신이라도 된 기분입니다."

심후의 한 마디에 포식도 공감했다. 최고급 서비스가 무엇인지 확실히 느낀 것이었다.

사람에 따라선 대접 받기보다 편안한 분위기를 즐기기도 하겠지만 사람이 불편해하지 않도록 하며 중요한 인물이라는 느끼게 해주는 서비스에는 당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요리의 맛만으로는 최고가 될 수 없구나.'

사막을 거쳐 파리에까지 온 심후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요리만 맛있다고 해서 최고가 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배고픔 자체가 최고의 양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이어 최고의 접대 또한 색다른 양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서 배운 것이 있었다.

'정신적인 것이 요리의 맛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이젠 어느 정도 요리를 할 줄 안다고 자부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깨달은 심후였다.

============================ 작품 후기 ============================

'정신적인 것이 요리의 맛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이젠 어느 정도 요리를 할 줄 안다고 자부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깨달은 심후였다.

============================ 작품 후기 ============================

쓰고 나니까 무척 배고파지네요.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정신적인 것이 요리의 맛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이젠 어느 정도 요리를 할 줄 안다고 자부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깨달은 심후였다. 

============================ 작품 후기 ============================

쓰고 나니까 무척 배고파지네요.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식사를 마치고 나자 에린의 비서가 숙소로 안내했다. 하지만 안내 받는 것은 심후 혼자였다. 

"여기서 지내시면 됩니다.

안내된 곳은 고가의 아파트였다. 유명한 건축가가 디자인한 아파트는 외형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직선이 아닌 유려한 곡선이 살아있는 형태였다. 내부로 들어가니 궁전에 들어선 느낌을 받았다.

밖에서 비치는 햇살이 복도의 창을 환하게 비추며 빛과 그림자가 어우러진 길을 만들었다. 

"정말 여기서 머물러도 되나요?"

"네, 촬영진 분들과 포식씨는 따로 준비된 호텔에서 지내시면 됩니다."

"왜 저만 여기서 지내는 거죠?"

"에린님께서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그럼."

비서가 물러나자 심후의 기분은 밑바닥을 치는 주식처럼 하한가에 도달했다.

'무슨 속셈이지?'

이미 에린을 의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어쩌면 벌써 이사한 집에 침입해 접속기에 대한 것을 파악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심후는 서둘러 폰을 꺼내보았다.

'아직 이상은 없는데.'

폰에는 가상현실접속기가 파괴되었을 경우 메시지가 전해지도록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탑재되어 있었다.  

'설마 해제하는데 성공한 걸까?'

수많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편히 기다리면 된다고 하지만 마음이 불편하니 편히 쉬기 어려웠다.'빼앗아가려 한다면 가만 놔두지 않는다.

'자살 직전까지 갔었다. 더 이상 무엇인가 빼앗기는 것은 질색이었다.

'절대 빼앗길 수 없어.'

 강한 집착은 에린에 대한 적의를 불러일으켰다. 파리에 도착한 에린은 심후가 기다리는 아파트로 향했다.

자신의 친구들이 파리에 들릴 일이 있으면 사용할 수 있도록 구입해둔 집이었다. 호텔을 이용하는 것도 좋지만 호텔보다는 집이 마음 편히 지내기에는 더 좋았기에 구입해둔 것이었다.

'과연 내가 심후를 좋아하는 걸까?'

의문은 해결해야 했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해왔다.

의문이 생기면 풀어야 했다. 특히 자신에 관한 것이라면 소홀히 해서는 안 되었다.

자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은 복권 당첨을 바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배웠다. 그래서 언제나 자신의 일은 자신이 제일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행동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가 보였다.

심후였다. 잔뜩 굳은 얼굴을 보는 순간 가슴이 답답했다.

'왜 저런 표정이지?'

화를 억누르고 있는 굳은 표정이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눈빛에 마음이 베였다.

'왜 이런 거야?'

가슴이 살짝 아려왔다. 번들거리는 눈빛을 마주하는 것이 거북했다.

적대적으로 인수합병하며 회사를 빼앗을 때 보았던 사장들이 자신을 노려볼 때도 이런 기분은 아니었다. 예전에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말도 안 돼.'

에린의 표정도 굳어졌다. 심후에 대한 반발이 아닌 자신에 대한 반발이었다.

좋아한다는 것을 넘어선 감정이란 것을 깨달아서였다. 

'이유를 알 수 없잖아?'

딱히 좋아할 이유가 있었나 생각해보면 걸리는 것은 없었다.

그냥 갑자기 그렇게 느끼는 것이었다. 이유는 없었다.

바람에게 너는 여기 왜 왔냐고 물어봐야 소용없는 것처럼.

"오랜만이네요."

"그렇군요."

썰렁한 인사가 오갔다. 에린은 속으로 당황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무슨 안 좋은 일 있어요? 표정이 굳어있네요."

"그냥 피곤해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절 보려고 하신 이유가 뭐죠?"

"그냥요. 게임 친구니까."

"아, 그런가요?"

심후는 에린이 뜸을 들인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별 말 하지 않고 에린이 용건을 말하길 기다렸다.

반면 에린은 제대로 할 말을 찾지 못해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중이었다.

'여기선 적당히 얘기하다 물러나자.'

감정은 확인되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이 심후에게 끌리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게임친구로서 호감이 있는 것은 확실했지만 그것과 이성으로써의 감정은 별개의 문제였다.

"파리는 어때요? 즐거운가요?"

"네, 무척요."

"그래요? 어떤 점이요?"

"음식이 맛있더군요."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풀코스를 맛없다고 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좋지 않은 분위기임에도 웃음이 삐져나왔다. 

"다행이네요. 그럼 내일은 뭘 하실 거죠?"

"먹어야죠. 먹으려고 왔으니까."

"하루 종일 먹기만 하면 피곤하잖아요?"

"나머지 시간에는 소화시키면 되죠."

"그런 의미에서 패션쇼 구경은 어때요?"

"불러주시면 가겠습니다."

심후는 쉽게 허락했다. 상대의 의중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섣불리 성질을 부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일단 여기선 하자는 대로 해주지.'

접속기가 무척이나 걱정됐지만 심후는 종우를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상상을 뛰어넘는 능력을 보여줬었으니까.'

실제로 무공을 자동으로 익히게 만들어주는 접속기 자체도 말이 되지 않는 기술이었다.

때문에 아무리 에린이 부자라고 하더라도 접속기를 쉽게 해체하거나 하진 못했을 거라 자신을 다독였다. 에린이 세계 최고의 부자가문의 일원이라면 종우는 300년을 산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존재였다.

'상대해주다보면 본색을 드러내겠지.'

경계를 풀지 않은 심후는 정중하게 에린에게 인사하고는 자신에게 배정된 방으로 향했다.

"그럼 내일 봐요."

에린은 거실을 나서는 심후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가슴이 떨렸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홀로 남게 된 거실에 남아 있기가 싫어 걸으면서 생각했다.

'그냥 묻어두는 게 좋겠지?'

마음 같아선 심후의 방으로 쳐들어가 덮치고 싶었다.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사랑의 열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을 알기에 그러지 않았다.

행여나 자신 때문에 심후에게 상처를 줄까 겁이 난 것이었다.

정확히는 자신이 가진 힘이 걱정이었다. 돈만 쥐어주면 사람을 죽여주는 사람이 있는 세상이었다.

돈만 주면 사랑도 버리고 몸을 팔기도 했다. 나라를 배신하는 것은 물론 가족을 버리는 야심가들도 있었다.

돈이란 괴력을 가진 마물이라고 해도 좋았다. 에린의 자리는 그런 돈이 모이는 자리였다.

돈이란 마물에 홀린 사람들이 얻고자 치열하게 경쟁하는 자리였다. 때문에 에린의 자리가 안겨주는 권력은 그만큼 크고 무서웠다.

평범한 사람은 에린의 옆에서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휘둘리다 망가질 수 있었다. 돈의 마력 앞에 스스로 굴복해 변질될 위험도 있었다.

'멀리 하는 게 좋은데.'

하지만 멀리 하고 싶지 않았다. 아직 사랑하는 연인 사이도 아니었다.

그냥 게임 친구에 불과했다.

'헤어지기 전에 추억이나 만들어두자.'

마음을 전하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사랑을 고백하고 서로 이어진다 하더라도 펼쳐질 심후가 잘못될까 두렵기에 함께 하자고 하는 것도 무서웠다. 돈 때문에 변한 사람을 숱하게 봐왔기에 오히려 그런 면에선 심후를 믿지 못했다.

사실 믿을 만큼 심후를 잘 아는 것도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지나고 나면 좋은 추억으로 남을 거야.'

마음이 정리 되었다.

혼자 마음을 정리해버리는 것은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에 가까웠지만 애초에 고백하지도 않았으니 상관없었다. 아직 시작된 것은 없었다.

자신의 마음이 출발선에서 조금 더 앞으로 나간 것뿐이었다. 

'조금 쉬었다 되돌아가면 돼.'

거실을 벗어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시작해보지도 못한 사랑을 짊어진 어깨는 축 늘어졌다. 

'아가씨.'

한편, 에린의 행동을 지켜보던 제니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다.

'왜 그런 표정을 지으시나요?'

실연당한 여자와 같은 괴로움을 담은 표정이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심후와의 대화에서도 무엇 하나 이상한 점은 없었다. 하지만 에린 혼자 괴로워했다.

'무엇이 그렇게 아가씨를 괴롭게 하는 건가요?'

에린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제니는 더욱 열심히 보필하겠다고 생각하며 다른 메이드들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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