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인도 카레를 먹어보러 갑시다."
"인도 카레랑 냉면이랑 무슨 상관인데요?"
"상관없지만 상관있게 만드는 것이 바로 요리사의 능력이겠죠. 제겐 경험이 필요합니다."
"좋습니다! 가죠!"
맛의 경험치를 쌓기 위해 두 사람은 파리의 고급 레스토랑을 닥치는 대로 습격했다.
더위 조심하시고 항상 좋은 일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초밥과 인도 카레를 즐긴 두 사람은 에린의 아파트로 돌아왔다.
지금부터는 사놓은 요리 재료들로 여러 가지 요리를 만들어보며 냉면에 적용할 아이디어를 짜낼 생각이었다.'기본 방법으로 최고의 맛을 끌어낼 수도 있다고 하지만 난 아직 그 맛을 모른다.
'맛을 상상해볼 수는 있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맛을 탄생시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시간이 오래 걸리며 검증하기 위해선 최고의 맛을 아는 미식가가 동원되어야만 했다.
맛이란 문자나 영상 같은 것으로는 전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가상현실이 존재하긴 했지만 가상현실의 요리와 현실의 요리에는 차이가 분명히 존재했다.
가상현실 구현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아직 현실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재현한 수준은 아니었다.
"이제부터 냉면을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제가 황태자 전하보다 요리 경험은 더 많을지 몰라도 황실 요리사의 과외를 받은 냉면에 이길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네요."
"아! 이거 큰일이군요. 그럼 만드세요. 저는 먹겠습니다."
촬영이 계속 되는 와중에 심후는 요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자신이 아는 가장 기본적인 냉면을 만드는 것이었다.
면을 삶고 비빔양념을 만들어 비볐다.
맛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맛있는 요리를 많이 먹어 입이 고급이 된 심후와 포식의 입맛에는 그저 그런 수준이었다. 다음에는 육수를 만들어 물냉면을 만들어 보았다.
역시 그저 그런 수준이었다. 일반 가정이나 혹은 저렴한 식당에서 통할지는 몰라도 최상급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먹히지 않을 맛이었다.
'염분의 양과 그 외의 자극들을 제공해야 해.'
수많은 냉면을 만들며 초밥의 재료들을 고명으로 얹어보기도 하고 카레의 향신료 조합을 응용하여 비빔양념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모두 그냥 그런 수준이었을 뿐이었다.
'정말 막막하군.'
요리를 만들어볼수록 마음이 답답해졌다. 이것저것 만들어봤지만 딱히 감이 오는 것이 없었다.
기본으로 응수한다면 질 것만 같았다. 육수 하나만 해도 끓이는 비법이 여러 가지일 정도였다.
재료로 뭘 넣었느냐에 따라 맛은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것이 육수였다. 비빔양념도 마찬가지였다.
양념을 만드는 데 있어 재료들의 비율은 매우 중요했다. 조금만 어긋나도 균형이 깨지며 맛이 떨어지는 것이었다.
특히 유명한 미식가들은 이런 것에 굉장히 민감했다.
"이걸론 부족합니다!"
"한 그릇 더!"
밤이 깊었다. 먹다 지친 포식은 자러 갔다.
촬영진도 카메라만 세워놓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호텔로 물러났다. 주방에 홀로 남게 된 심후는 계속해서 냉면을 만들었다.
전통적인 인도 카레를 만들어 냉면을 비벼봤다. 맛? 면의 맛은 완전히 죽어 있었다.
'냉면의 맛이라곤 할 수 없군.'
냉면의 맛, 고유의 특성이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깔끔한 맛이라고 심후는 생각했다.
'먹은 뒤에 텁텁한 맛이 입에 남는다면 냉면의 맛을 제대로 살렸다고 보기 어려워. 개운함이 생명이야.'
냉면의 정체성에 대해 고심한 심후가 내린 결론은 개운함이었다.
시원하게 열기를 식혀주거나 혹은 매운맛으로 땀을 흘리게 하거나. 냉면은 원래 겨울에 먹는 음식이라 하지만 여름에 더 많이 찾는 음식이 되었다. 카레는 그런 의미에서 냉면과 어울리기 힘들었다.
카레의 맛이 무겁기 때문에 산뜻함과는 거리가 멀게만 느껴졌다.
'맛의 이미지를 떠올려보자.'
수많은 요리를 먹고 만드는 방법을 보았다.
산뜻함, 개운함을 떠올리니 수많은 식재료가 조리방법과 함께 떠올랐다.
'식초, 지방 제거, 육수, 면발.'
산뜻한 맛을 살리는 것들을 떠올리며 점점 완성되는 이미지는 한 그릇의 시원한 물냉면이었다. 하지만 심후는 만족하지 못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육수로 승부를 봐야하는 물냉면을 만든다면 내가 진다.'
육수는 제대로 된 방법을 모르면 한 순간에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었다.
끓이는 것도 시간이 오래 걸리기에 실험하기가 애매했다. 또한 재료마다 어떤 온도에서 얼마만큼 육수를 우려냈느냐에 따라서도 맛이 달라지기도 했다. 남은 시간이 며칠 안 되는데 건드리기에는 위험이 너무 컸다.
'물냉에 지지 않을 비냉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비냉은 영역을 넓히다보면 끝이 없었다.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소스를 떠올리며 조합을 생각해보았다. 냉면과 어울릴 수 있는 조합. 거부감 없을 식감. 하지만 모두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어 상상에 그치고 있었다.
정말 세계는 넓고 먹을 건 많았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도 그것이 최고의 맛인지 스스로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후우......."
잠도 자지 않고 계속 냉면만 만들었더니 정신적으로 피곤해졌다. 무공으로 단련된 육체는 아직도 쌩쌩했지만 정신적인 피로는 어찌할 수 없었다.
에린이 주방으로 들어선 것은 그때였다.
"아직도 안 잤어요?"
"네, 기왕 싸우는 거 이겨야죠."
"미안해요."
"네?"
"저 때문에 이렇게 됐잖아요. 미안해요."
사과하는 에린을 보며 심후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대체 무슨 속셈이지? 황태자는 날 좋아한다고 했는데 그건 황태자가 뭘 몰라서 한 소리고.'
심후의 의심은 굉장히 깊었다.
황태자의 말을 듣고도 에린이 자신을 정말 좋아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분명 좋아하는 척 하는 걸 거야.'
차영에게 당한 것이 있는 심후는 여자의 호의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들었다.
차영과 사귀면서 심후는 그녀가 정말 자신을 좋아한다고 여겼었다. 가끔씩 보여주는 차영의 행동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다.
후일 배신당하고 나서야 겨우 알아챘을 정도였다. 차영과 같은 여자가 평균이라고 친다면 에린 또한 속을 알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속이면 속였지 속고 싶진 않아.'
이것이 정확한 심후의 속내였다. 여자를 믿느니 그냥 사기 당하고 말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여자의 감정을 불신했다.
배신으로 인한 상처는 사람을 불신하도록 만들었다. 좋은 감정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자신에게 현재 가장 소중한 가상현실접속기에 무단으로 접속한 혐의를 가진 인물을 좋게 봐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때문에 심후는 황태자의 말을 듣고도 에린에 대한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사람을 함부로 믿는 것처럼 멍청한 일은 없어.'
남의 말만 믿고 판단하는 것은 더더욱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이렇게 야밤에 자신이 있는 주방에 찾아온 것도 어떤 목적이 있어 보였다.
'뭘 캐내려는 거냐? 너?'
"괜찮아요. 딱히 크게 불편한 일이 생긴 것도 아니니까요. 저야 레스토랑 하나 공짜로 생기니까 좋은 일이죠."
황태자가 귀찮게 굴긴 했지만 공짜로 최고급 레스토랑 하나를 차려주겠다는데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심후가 원래부터 명성이 드높은 요리사였다고 해도 받아들였을 터였다. 최고급 레스토랑이란 장소에서부터 건물, 실내장식, 직원, 설비까지 모두 최상급으로 차려준다는 소리였다.
여기에 쉽게 구하지 못할 명주들도 챙겨줘야지만 진정으로 최고급 레스토랑을 줬다고 말할 수 있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해서 달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그렇게 생각하신다니 다행이네요."
에린의 묘정은 미묘했다. 안도와 슬픔이 공존하는 미소였다.
황태자와의 대화에서 심후가 자신을 경계하며 멀리하려는 것이 확실히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나한테 아무런 감정도 없는 거야. 그냥 귀찮은 거겠지.'
마음이 아프긴 했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에린이었다.
'어차피 지나갈 추억에 불과한 시간이니까.'
때문에 황태자가 더욱 싫었다. 추억을 남길 시간을 방해했기 때문이었다.
감정이 더 깊어지기 전에 추억을 만들고 더는 보지 않으려 하기에 심후가 대결에 열중하는 시간이 아깝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제가 뭐 도울 건 없어요? 저도 돕고 싶어요."
"괜찮습니다."
"그러지 말고 돕게 해주세요. 네?"
즐거운 추억은 남기지 못해도 주방에서 서로 얘기하며 음식을 나눠먹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아 하는 제의였다.
"그럼 맛이나 봐주세요. 고급 요리는 많이 먹어봤을 테니 심사위원의 눈으로 봐주면 되겠습니다."
"좋아요."
거절을 할까 망설였지만 심후는 결국 허락했다. 대단한 배경을 가진 에린이니 최고급 요리도 상당히 많이 접했을 터였다.
시식을 하며 조언을 하는 것은 포식보다는 에린이 오히려 더 뛰어나다고 해도 무방했다.
'일단 받을 건 받자. 여기서 계속 경계하면 나도 모르는 방법을 써올지 모르니 눈앞에 두는 거야.'
'아, 재미있겠네. 야밤의 로맨틱한 주방이 되면 더 좋겠지만.......'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동안 냉면 한 그릇이 뚝딱 만들어졌다.
'아, 재미있겠네. 야밤의 로맨틱한 주방이 되면 더 좋겠지만.......'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동안 냉면 한 그릇이 뚝딱 만들어졌다.
============================ 작품 후기 ============================
쿠폰 주신 분, 추천하신 분, 선작하신 분, 읽어주신 분 모두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시고 더위 조심하세요.
'아, 재미있겠네. 야밤의 로맨틱한 주방이 되면 더 좋겠지만.......'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동안 냉면 한 그릇이 뚝딱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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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주말 보내시고 더위 조심하세요.
처음에는 즐거웠다.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이 만든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과하면 좋지 않은 것이 많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먹는 것이었다.
한 그릇, 두 그릇. 모두 한 입씩만 먹고 옆으로 치웠지만 그릇 수가 쌓이다보니 결국 위장의 한계에 도달하게 되었다. 소화는 되지 않았는데 냉면을 계속 먹어야 했다.
맛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니 크게 미각이 괴로울 일은 없었다. 하지만 밤을 새워 맛봐야 했던 냉면이 100그릇이 넘어가니 슬슬 한계가 오기 시작했다.
'이제 더 못 먹을 것 같은데.'
요리를 하는 동안 별 다른 얘기는 하지 않았다.
대화의 주제는 오로지 냉면에 한정 되어 있어서 무척이나 조용했다. 마치 냉면 장인과 조수가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다.
에린은 그래도 좋다고 계속 옆에 붙어있었다. 이것도 추억이었기 때문이었다.
먼 훗날 접어야 했던 첫사랑의 감정을 냉면 한 그릇을 보며 추억할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을 것만 같았다.
사람은 없어도 냉면은 먹을 수 있으니까.
둘이 함께 하며 개발하게 된 최고의 냉면을 먹으면 추억이 다시 되살아날 테니까. 보통 사람이라면 지루해했을 시간이 모두 소중한 추억의 하나가 된다고 생각하니 소홀한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조각이 하나라도 없으면 완성되지 않을 직소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매 순간 정신을 집중하며 심후를 가슴에 담았다.
"벌써 아침이네요."
"피곤하시면 쉬세요."
"우리 차 한 잔 하는 건 어때요? 저 소화도 시켜야 할 것 같고."
"저는 괜......."
소중한 부분을 건드린 에린에 대해 경계를 풀지 않은 심후는 거절하려 했으나 절묘하게 자르고 들어오는 존재가 있었다.
"차 준비 되었습니다.
메이드들이 차를 가지고 안으로 들어와 세팅하기 시작했다. 테이블이 없던 주방에 작은 테이블과 의자가 놓이고 찻잔과 다과가 놓였다.
동전 크기만 한 알록달록한 마카롱과 주방의 공기를 순식간에 점령해버린 차향은 심후의 관심을 끌었다.
'무슨 차향이.......'
처음 맡아보는 향기였다.
호기심이 조금 생기자 '차 한 잔 정도 같이 하는 거야 나쁘지 않겠지'라는 생각이 고개를 쳐들었다. 경계심은 무른 생각이라며 악을 썼지만 차향에 대한 호기심을 이길 수 없었다.
향긋하면서도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향기가 칼날을 숨기고 있는 경계심을 재우는데 성공한 것이었다. 자리를 잡고 앉은 에린의 앞에 조용히 앉은 심후는 살짝 차를 맛보았다.
'이런 차가 어떻게?'
무공으로 예민해진 감각은 차에 대한 모든 것을 몸에 새기는 중이었다. 코로 들이마셔 향기를, 입으로 마셔 맛을, 입술에 닿는 온도를, 그리고 세 가지가 어우러져 몸 안에 일어나는 변화를 맛보게 되었다.
'보통 차가 아니다!'
한 번도 맛 본 적이 없는 차였다. 몸 안에 존재하는 세포들이 하나하나가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소파에 늘어진 게으름뱅이가 되어가는 것이 확연히 느껴졌다.
"마음에 들어요?"
에린은 심후가 하려던 말을 알고 있었다. 분명 거절하려고 말을 꺼내는 중이었다.
만약 말이 그대로 나왔다면 대화는 단절되었고 에린은 더 이상 심후의 옆에 있을 구실을 찾기 어려웠을지도 몰랐다. 한 번 정도는 어떻게 옆에 붙어 있는다 해도 계속 핑계를 대면서 주변을 맴돈다면 미움 받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고마워, 제니.'
명령하지도 않았지만 적절한 때에 도움을 준 제니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이 생겼다.
"이 차 이름이 뭐죠?"
심후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질문을 하는 것을 보며 에린의 마음은 기쁨으로 물들었다.
"은성
(誾星)
차라고 해요. 조부님께서 개발한 작물로 만든 차죠."
차분한 설명이 이어졌다. 은성차라는 것은 인삼과 녹차를 결합해서 탄생한 차삼으로 만든 차였다.
무려 100년이나 이어져 내려온 연구 끝에 탄생한 것으로 조부의 가문에서 연구하던 것이라고 했다.
"상당히 귀한 것 같군요."
"자랑하는 것 같지만 그래요. 돈 받고는 안파니까요."
다른 사람이 훔쳐가서 재배한다고 해도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팔수는 없었다. 작물 특허가 등록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특허를 가진 사람이 유통을 안 했는데 누군가 사고판다면 불법이었다. 이 때문에 희소가치는 엄청나게 높았고 오직 알 만한 사람만 아는 차가 된 것이었다.
'돈 주고도 못 먹는 거군.'
시중에 내놓는다면 돈을 긁어모을 것 같지만 돈이 궁하지 않은 사람이 특허를 가지고 있으니 그럴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은성차가 탄생한 계기가 웃겼다.
에린의 조부 가문은 처음에는 졸부라고 놀림을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시작하게 된 연구가 바로 고급스러운 차에 대한 연구였다고 했다. 세상 사람들이 마시고 싶어서 안달이 날만큼 대단한 차를 만들어서 자손대대로 다른 부자를 놀려먹겠다는 마음에서 만들기 시작한 것이라고 했다.
가문을 이어받은 후계자들은 이러한 마음을 계승하였다. 취미 생활이 차 연구가 될 만큼 차에 미쳐서 살기를 100년, 유전적으로도 이상이 없는 완벽하게 자연에 순응하는 차삼을 만들어냈을 때엔 이들은 이미 명문가가 되었다.
"우스개 소리로 하는 말이 떠돌지만 R가문에서 우리 아빠를 받아들인 이유가 이 차를 맛보기 위해서였다는 소리도 있어요."
차의 재배에서부터 모든 것이 다 기밀이었다. 오로지 가문에 종속된 이들에게만 살짝 알려진 기밀이었다.
얘기를 들은 심후는 속으로 실소했다.
'정말 잘 사는 양반들은 재미있게 사는 구나.'
돈이 많으면 좋은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 떠넘기고 하고 싶은 일은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재미있는 얘기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어렵게 살았던 순간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왜 그러세요? 어디 불편해요?"
"아뇨, 그냥 옛날 생각나서요. 괜찮습니다."
씁쓸함을 달래기 위해 마카롱을 하나 집어 먹었다.
바삭하고 부서지더니 부드럽게 달콤한 딸기향이 입 안 가득 퍼졌다.
'이것도 최고급이네.'
마카롱도 심상치 않았다.
최고의 장인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다는 것이 느껴지는 맛이었다.
"그런데 냉면은 어떤 걸로 하실 건가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비빔냉면으로 해야겠다고만 생각하고 있어서요."
"우리 집 요리사가 있는데 한 번 불러드릴까요?"
"아뇨, 괜찮습니다."
에린의 말에 심후는 다시 잠들었던 경계심을 깨우며 거리를 두었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같이 있지만 앞으로 더 엮이고 싶지는 않았다.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 말하세요. 도와드릴게요."
"네."
대화는 중단되었다. 차를 마시는 홀짝임이 침묵을 겨우 막아낼 뿐이었다.
'차가 좋긴 좋네.'
차에 대해 연심 감탄하던 심후는 다시 신경을 냉면으로 쏟았다. 에린이 굉장히 거슬리긴 하지만 계속 경계하느라 할 일을 못 하는 것도 싫었다.
그런 면에서 말 없는 침묵은 오히려 반가운 일이었다.
반면, 에린은 안타까웠다.
제니가 만들어준 대화의 기회가 이렇게 흘러가버리는 것이 아쉬웠다.
'그냥 꿈이라고 생각하면 될까?'
좋아하는 마음을 내보이고 싶어도 상대가 별로 관심 없어 하니 내보이는 것이 두려웠다.
아무리 돈이 많고 무공을 익혀 강하고 외모가 아름다워 만인이 우러러 본다 하여도 좋아하는 사람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 있는 법이었다.
미움 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 자신을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무관심한 상태라는 것을 알고 싶지 않은 마음이 겹쳐 결국 마음을 드러내는 것은 포기하고 말았다.
자신의 행동에 실수가 있었음을 알지 못하는 에린은 심후의 무관심이 야속할 뿐이었다. 시간이 흘렀다.
낮에는 최고급 요리로 배를 채우며 밤에는 요리를 연구하는 강행군이 계속 이어졌다.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등 수많은 유럽의 요리는 물론 아프리카, 중국, 미국, 한제국의 요리까지 두루 섭렵했다.
먹지 않은 것은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발전하지 않고 여전히 맛없다고 알려진 영국 요리 뿐이었다. 수많은 요리를 먹고 사색하며 끊임없이 만들었다.
한 그릇 냉면을 만들기 위해 소모된 식재료의 액수는 평범한 사람이 들었다면 미친 돈지랄이란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하루하루, 무수히 많은 돈을 쏟아부으며 연구한 끝에 심후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이거라면 승산이 있다!'
냉면의 완성품은 포식도 보지 못했다. 무수히 많은 냉면을 만들던 어느 날, 갑자기 준비가 끝났다고 한 것이었다.
파리에서의 9박10일 일정이 끝나는 마지막 날이 밝아오며 황태자와 심후의 요리 대결이 시작되었다.
'이거라면 승산이 있다!'
냉면의 완성품은 포식도 보지 못했다.
무수히 많은 냉면을 만들던 어느 날, 갑자기 준비가 끝났다고 한 것이었다.
파리에서의 9박10일 일정이 끝나는 마지막 날이 밝아오며 황태자와 심후의 요리 대결이 시작되었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시고 더위 조심하세요.
'이거라면 승산이 있다!'
냉면의 완성품은 포식도 보지 못했다.
무수히 많은 냉면을 만들던 어느 날, 갑자기 준비가 끝났다고 한 것이었다.
파리에서의 9박10일 일정이 끝나는 마지막 날이 밝아오며 황태자와 심후의 요리 대결이 시작되었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시고 더위 조심하세요.
결전의 날이 밝았다. 몽마르트 언덕이 내려다보이는 아담한 주택 같은 호텔은 요리 대결을 위한 결투 장소로 탈바꿈했다.
많은 인파는 없었다. 심사를 보기 위한 요리사들과 관계자들, 참관을 원하는 소수, 그리고 촬영진 정도가 전부였다.
"오늘 절대 실수해선 안 된다. 알았지!"
촬영진은 바짝 긴장했다.
모이는 사람들의 면면이 범상치 않다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황태자가 출연하는 방송을 엉망으로 찍었다가는 무슨 호통을 들을지 몰랐다.
촬영진은 최대한 조심하면서 찍기 시작했다. 요리 대결이라지만 모인 사람들의 면면을 찍는 것도 중요했다.
사전에 양해를 받았기에 찍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방송에 내보낼만한 인터뷰를 하는 것은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포식은 평소와 같은 강압적이고 자유분방한 모습은 모두 내던진 아주 비굴한 모습으로 인터뷰에 임했다. 그야말로 권력에 약한 전형적인 소인배의 모습이었다.
허나 포식의 이중성이 오히려 더 빛을 발휘하는 것 같았다.
포식이 인터뷰를 하는 와중에 심후는 강운과 마주하고 있었다.
"준비 됐나?"
"됐습니다."
"오늘은 내가 이긴다. 그리고 넌 에린하고 헤어진다."
"사귄 적 없습니다."
"만나지 말라고."
"알겠습니다."
"쯧."
너무나 쉽게 담담하게 대답하는 심후를 보며 강운은 혀를 찼다.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이런 자식이 뭐가 좋다고.'
에린이 어디 가서 떠들고 다니지도 않은 것을 강운이 알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것은 바로 에린의 주변에 포진한 메이드들 중 몇 명에게 사람을 붙여놓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방식은 정보를 한 단계 거쳐야 하는 불편함이 있어 정확하지 않을 수 있지만 애초에 에린의 동향에 관한 것만 알아내면 되는 일이기에 상관없었다. 오히려 메이드를 매수하는 일이 더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시도했다가 걸리면 심각하게 대응해올 수 있는 일이었다.
'좋아하려면 좀 괜찮은 놈으로 좋아하지.'
강운은 은근히 자존심이 상했다.
자신이 한 때 좋아해서 구애했던 여자가 자신보다 못해 보이는 남자를 은근히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도 기가 막히는데 그 남자는 좋아했던 여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에 화가 났다.
'오늘 네 자존심을 박살내주마.'
강운은 속으로 이를 갈면서도 웃었다.
"그럼 열심히 발악해봐."
강운은 웃으며 악수를 청했으나 심후는 손을 잡지 않았다.
"왜 이래? 손 부끄럽게. 빨리 악수."
"잡으면 손 부러질 것 같아서요. 무공 익히셨잖아요. 손에 힘주셨다가 아차 실수 하시고 나면 저만 손해인걸요."
"내가 그럴 것 같아?"
"네."
'눈치 빠른 놈.'
다른 것은 모르지만 눈치 하나는 빠른 것 같았다.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예능을 하다보면 눈치가 늘어날 것 같았다.
"날 뭐로 보고."
"위대한 한제국의 황태자 전하시지만 좋아하는 여성 때문에 힘없는 요리사에게 요리 배틀을 건 열혈남이요."
지위와 배경에서는 꿀리지만 심후는 하고 싶은 말은 했다. 마음에 담긴 온갖 거친 말들을 다 쏟아낼 순 없지만 그렇다고 비굴해지고 싶지도 않았다.
'너나 나나 다 같은 조상의 후손이야.'
세월이 흘러 강운은 직계로서 황태자가 되었지만 심후는 황가와는 인연도 없어 보이는 방계로 태어나 거의 버려지다시피 했다. 때문에 강운에게 굽히고 싶지 않은 마음이 조금씩 자라났다.
종우를 만나지 못했다면 자신의 뿌리가 무엇인지 모르고 넘어갈 일이었다. 허나, 이렇게 대결을 펼치며 신경전을 벌이게 되니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던 사실이 자꾸 떠오르며 오기가 발동했다.
'난 고생하면서 살았는데 넌 아주 잘 먹고 잘 살면서 날 그런 눈빛으로 보는 거냐?'
심후 또한 기분이 나빠졌다. 신경전이 팽팽하게 이어지는 가운데 모든 준비가 끝나고 요리를 만들 시간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