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3화 (43/64)

"시작해주세요!"

포식의 외침과 동시에 심후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늘 심후가 만들 것은 비빔냉면이었다. 하지만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12가지 비빔냉면을 만들어 그것을 한 입 먹을 정도로 모아 12가지를 한 접시에 담아낼 생각이었다. 처음 파리에서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코스 요리를 맛보며 깨달은 것과 일식집에서 초밥을 먹을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해낸 것이었다.

'12가지 맛. 이것에 승부를 건다!'

12가지 맛을 내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12가지의 냉면을 만들어야만 했다. 12가지를 만들지만 요리를 낼 때는 한 번에 내니 순서 또한 정확해야 했다.

요리라는 것은 만들고 나서 먹기 좋은 가장 좋은 시간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맞추는 것도 하나의 일이었다. 하나도 아니고 12가지나 되는 냉면을 최고의 맛을 느낄 수 있는 타이밍에 동시에 완성해야 한다는 난관이 있었으나 이미 연습해 본 일이기에 심후는 어렵지 않게 만들었다.

막힘없이 빠르게 움직이면서도 부드러웠다.

심후의 움직임에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다들 감탄했다.

요리의 맛은 몰라도 몸놀림 하나만큼은 프로 중에서도 최상급이라고 할 만 했다. 반면, 강운의 움직임은 굉장히 느렸다.

육수는 미리 만들어져 있었다. 과정은 이미 촬영되어 강운이 직접 만들었다는 보증이 있었다.

황실 요리사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해 만든 육수와 면이었다. 강운은 그것을 들고 왔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이미 만들어진 상태. 이제는 '조립'하는 과정만 남은 상태였다.

면을 삶고 육수를 붓고 준비된 고명을 얹었다.

이것이 전부였다. 정말 너무나 허망하다고 할 수 있었다.

"먼저 맛보죠."

심사위원들은 일단 강운의 물냉면을 맛보기로 했다. 총 9명의 심사위원들에게 한 그릇씩 물냉면이 주어졌다.

심사위원들은 다들 감탄했다.

"깔끔하면서도 진한 여운이 남는 맛입니다.

"가슴에 스며드는 군요."

"시원해요!"

극찬이 잇따랐다. 요리사와 미식가들은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단 한 사람이 불평을 털어놓았다.

"이거 맨날 먹던 거잖아."

불평을 털어놓은 단 한 사람은 바로 강운의 누나 한정연이었다. 토니 R의 약혼녀이기도 한 황녀는 한 입 먹더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뭐가 문젠데?"

"어제도 먹었던 거니까. 그냥 그러네."

"그래서 맛없어?"

"맛은 있는데 또 먹으니까 질린다는 거지."

강운은 토니를 슬쩍 찾아봤지만 토니는 모습을 감춘 상태였다. 

'제길.'

정연이 심사위원으로 마지막에 바뀐 것은 강운도 의외였다. 하지만 이내 자신감을 되찾았다.

'맨날 먹던 거라고 했으니 황실의 냉면을 능가하지 못한다면 이기는 건 나다!'

강운은 슬쩍 심후를 바라봤다. 심후는 아직도 바쁘게 조리중이었다.

잠시 후, 심후의 냉면도 완성되었다. 

"이게 냉면이라고요?"

"네, 12가지 맛입니다. 시계 방향으로 1시부터 차례로 드시면 됩니다."

소주잔보다 약간 큰 작은 컵에 딱 한 입 먹을 정도의 냉면이 담겨있었다. 총 12개의 작은 컵은 모두 다른 것을 담고 있었다. 

"재미있는 발상이네요. 그냥 들고 마시면 될 것 같네요."

"그러셔도 됩니다."

심사위원들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1시부터 시식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전채의 느낌을 주는 간단한 비빔냉면이었다. 맵지도 않고 약간 시큼하면서 식욕을 돋우는 느낌의 맛이었다.

이후 하나씩 먹을 때마다 표정은 점점 밝아졌다. 먹는 방법도 복잡하지 않아 좋았다.

고명으로 캐비아를 이용하기도 하고 푸아그라를 이용하기도 했다. 최고급은 물론 금가루도 솔솔 뿌려서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음식으로 만들어 허영심을 만족시키는 면도 있었다.

"이건......."

마지막 12시 방향에 남은 컵을 들며 한 심사위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비빔냉면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몇몇 심사위원들은 신기한 육수의 향기에 바로 먹지 않고 관찰하기 시작했다. 반면 황녀 한정연은 재미있다는 표정을 짓더니 단숨에 들이켰다.

예쁜 입술이 오물거리더니 목젖이 움직이더니 모든 것을 삼켰다. 

"하아! 좋다!"

정연은 무척이나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컵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나머지 심사위원들도 모두 단숨에 들이켰고 모두 정연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이건 진짜 심오하군요."

"그렇습니다. 하나의 코스 요리를 먹은 기분입니다."

"한 접시에 담긴 코스. 그것도 전부 냉면으로 만들어낸 발상이 좋네요."

"정말 대단합니다."

극찬이 이어졌다. 이후 채점에서는 심후가 전원에게서 만점을 받았고 강운은 딱 하나의 9점을 받았다.

"누나, 설마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이렇게 점수를 준 거라면 정말 실망이야."

강운은 만점을 주지 않은 사람이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런 건 아냐. 솔직히 같은 냉면을 전날 먹은 것도 영향이 있긴 한데 심후씨 냉면이 조금 더 맛있었을 뿐이야."

"난 못 믿겠어."

"그럼 먹어봐."

납득하지 못한 황태자를 위해 심후는 다시 냉면을 만들어야 했다. 번거롭긴 했지만 못할 건 아니었다.

패배를 납득 시킬 수 있다면 얼마든지 만들어줄 의향이 있었다.

냉면이 만들어지자 강운은 서둘러 먹기 시작했다.

1시 방향에서 차례로 먹을 때마다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맛이 없기 때문이 아니었다.

자신이 상상했던 맛을 초월했기 때문이었다. 

"이건?"

마지막 12번째 컵에 담긴 냉면을 맛 본 순간 일그러진 표정은 놀람으로 변했다.

"놀랍지? 그거 은성차로 만든 육수야. 정말 깔끔한 맛이야."

심후가 마지막에 내놓은 것은 바로 에린에게서 대접 받은 은성차를 이용해 만든 물냉면이었다. 이를 만들기 위해 많은 은성차가 소모되었지만 에린은 아까워하지 않고 지원해주었다.

오히려 더 좋아했다. 그야말로 추억 속에 탄생하는 새로운 맛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에린의 가문에서 허락하지 않으면 아무도 함부로 맛 볼 수도 없고 만들어 먹지도 못하는 그런 냉면이었다.

은성차의 차삼은 오로지 에린의 가문에서만 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졌다.

강운은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 날 순 없다. 다음에 또 붙자."

그리고 다시 도전했다.

============================ 작품 후기 ============================

항상 함께 해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분들에게는 감사하고 있습니다.

모두 더위 조심하시고 즐거운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여행이 끝나고 집에 돌아왔다. 아무도 반겨주는 이 없는 썰렁한 공간에 들어서며 제일 먼저 한 일은 침입의 흔적을 찾는 것이었다.

'아무도 안 왔네.'

영화에서 본 트릭들과 집안 곳곳에 숨겨둔 카메라를 확인해본 결과 침입자는 없었다. 침범 당하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찾아들자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앉았다.

이제야 겨우 쉴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이어지는 상념에 쉬기가 어려웠다.

'귀찮은 인간이 또 하나 붙었어.'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항상 좋은 사람만 만나기가 어려웠다. 싫은 사람이 달라붙는 경우도 있었다.

멀리하고 싶어도 멀리 할 수 없는 상황이 존재했다.

'그냥 다 때려치우고 무공이나 수련해?'

황태자는 또 다시 대결을 요구했다.

한 번만 하고 끝날 줄 알았는데 끈질겼다. 자존심을 거들먹거리며 한 번의 패배로 모든 것을 납득하고 물러 설 수 없다며 고집을 부리니 말릴 사람이 없었다.

강운의 누나인 황녀 정연도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고 하니 나설 수도 없었다. 심후는 당연히 거절했다. 또 대결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냉면 대결에서도 심후가 이긴 것은 운이었다. 심사위원으로 나온 황녀가 전날 똑같은 냉면을 먹었던 것이 이유였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동점이 되어 무승부로 끝났을 터였다. '아슬아슬했다.

'강운이 만든 물냉면을 맛보았을 때 심후는 감탄했다. 마지막으로 모든 재료를 결합할 때는 무척이나 쉬워보였지만 육수의 맛이나 면의 식감 등 모든 것은 완벽에 가까웠다.

한 가지 요리를 개발하고 개발해서 완벽에 가깝게 냉면의 맛을 완성시킨 것이었다. 심후가 개발한 냉면이 높은 점수를 받은 이유는 맛도 있지만 기발함 때문이었다.

작은 컵안에 든 한 입 정도의 냉면들이 모두 다르면서도 하나씩 더해질 때마다 맛의 상승 작용을 일으켰다. 12가지의 맛이 상승 작용을 일으킨 것과 최초라는 신선함이 바로 심사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었다.

충격이란 것은 처음에는 크게 느껴지지만 계속 겪다보면 감소하기 마련이었다. 즉, 연속해서 계속 심후의 냉면과 황실 냉면을 번갈아 먹다보면 결국 황실 냉면에 손을 들어주게 되어있었다.

아무리 맛봐도 계속 같은 감동이 느껴지게 만드는 요리와 반짝하며 신선함을 안겨준 요리에는 격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이었다.

'바로 클래스의 차이.'

때문에 계속 강운과 요리 대결을 펼치다보면 언제 패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아 거절했지만 강운은 끈질겼다. 

"호텔은 어때? 큰 건 아니고 그냥 지방에 있는 작은 호텔인데 그거 하나 준다.

처음 레스토랑을 받겠다고 하며 시작할 땐 느껴보지 못했지만 점점 기분이 나빠졌었다. 마치 자신을 거지 취급하는 것 같아서였다.

돈 준다니 욕심이 나지 않는 건 아닌데 강운의 계속되는 행동에 마음이 상했다. 그래서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고는 바로 귀국했다.'가지고는 싶다. 하지만 받기에는 자존심이 상한다.

'처음에는 별 생각 없었으나 대결을 하고 나서 자신이 강운과 동등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자 심후의 자존심은 바벨탑처럼 하늘을 찌를 기세였다.

잠시 생각하던 심후는 결심했다.

'받지 말자.'

결심은 단단히 굳힌 심후는 포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뭐라고요?"

"하차하겠습니다."

연락을 받은 피디는 날벼락이라고 생각했다. 갑자기 심후가 하차하겠다니 이건 보통 큰일이 아니었다.

"아니, 이렇게 갑자기 그만두시면 어떻게 합니까? 이러시면 안 되죠."

"지금 당장 하차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단지 조만간 할 예정이니 대체 역을 구하시라는 거죠. 조만간 레스토랑을 받게 되면 제가 아무래도 계속 촬영하긴 어려울 것 같아서 말하는 겁니다.

피디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황태자와의 요리 대결로 대박을 치나 했더니 오히려 독이 된 것이었다.

심후의 입장에서 레스토랑을 받게 되면 사업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연예인이었다면 본업에 충실하며 레스토랑에는 다른 사람을 통해 경영할 수도 있었다.

허나, 심후는 요리사였다. 자신의 레스토랑이 생긴다면 직접 그곳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해 보였다.

요리라는 것은 재료 구입에서부터 준비까지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일이었다. 영업시간에는 쉴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고급 요리는 요리사의 실력에 의해 맛이 좌우되기에 함부로 쉴 수도 없었다.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먹어봐의 예능 촬영을 하면서 여유롭게 하기에는 문제가 많았다.

'이대로 끝나는 건가?'

아쉬운 소리를 하며 애원할 수도 있었으나 하지 않았다. 그런 말을 한다고 통할 성질의 일이 아니었다.

원래부터 요리사가 되려고 한 요리사 지망생이란 이미지를 갖고 방송에 참여한 심후였다. 딱 한 번이지만 황실 요리사의 과외를 받은 강운을 이기기까지 했으니 실력은 이미 검증됐다고 봐도 충분했다.

레스토랑까지 생겼는데 더 촬영할 이유는 사라진 것이었다. 다행이라면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할 때까지 계속 출연한다는 사실이었다.

'이 일을 어찌할꼬.'

통보를 한 심후는 바로 바밥바의 사장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사장은 뜻밖의 제의를 했다.

"동업해보지 않겠습니까?"

"네?"

"동업이요. 심후씨가 바밥바의 지분을 가지고 요리사로서 계속 일해주시길 원합니다. 새로 레스토랑을 여시는 것도 좋겠지만 레스토랑 운영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닙니다.

사업이란 위험이 따르는 법이었다. 아무리 작은 식당이라도 잘못 운영하면 망하기 십상이었다.

그런 면에서 바밥바의 사장은 일단 능력은 검증된 상태였다. 아울러 심후도 사장의 제안에 끌리는 것을 느꼈다.

'지분이라. 나쁘지는 않을 것 같네.'

방송에서 나왔던 이미지가 있으니 사람을 끌어 모으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레스토랑은 요리사 한 명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주방 스텝으로 실력있는 이들을 모아야 하는 것은 물론 홀 서빙도 수준에 맞는 사람들을 골라야만 했다. 아울러 재고 관리와 예약 등 경영에 신경 쓸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나쁘지 않아. 귀찮은 일은 전부 다 맡길 수 있어.'

"지분은 어떻게 주실 건가요?"

"반반으로 하죠. 대신 심후씨가 그만큼 투자해야 합니다. 저도 손해만 볼 순 없으니까요."

"좋습니다. 대신 회계 감사를 위해 제가 사람 한 명 고용해도 되죠?"

"물론이죠."

일은 일사천리로 해결되었다. 강운에게서 레스토랑을 받기로 한 것을 돈으로 달라고 한 뒤 바밥바에 투자했다.

바밥바는 근처의 작은 건물에 이주하게 되었다. 바밥바에 투자하고 남은 돈으로 심후가 빌딩을 산 것이었다.

'부동산은 어디 도망가지는 않으니까.'

바밥바에 투자하고 남은 돈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심후는 결국 부동산에 투자한 것이었다. 강운은 패배했지만 최고급 레스토랑을 주겠다고 약속한 것을 지켜 막대한 금액을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편, 제니는 심후에 대한 조사를 하던 중 특별한 것을 발견하고는 에린에게 보고했다.

"이게 사실이야?"

"네, 아가씨. 사실입니다."

제니가 조사해온 것은 바로 심후가 하고 있는 복수에 대한 일이었다.

심후의 인간 관계가 굉장히 좁고 얽힌 것이 별로 없기에 조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특히 자금 흐름을 조사해보니 수동에게 이어진 것을 쉽게 발견한 것이었다.

심후의 접속기는 뒤져봐야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지만 수동의 접속기는 너무 쉽게 접속이 가능했고 안의 내용을 살피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그때 본 것이 그럼 복수하는 영상인가.

'동영상 속에서 수동에게 한 남자가 맞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울러 한때 심후의 애인 행세를 했던 차영의 얼굴도 보았다.

문득 항상 거리를 유지하려던 심후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런 건가.

배신 때문에.'심후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되니 가슴이 아픈 에린이었다. 전후 사정을 살펴보니 사람을 믿지 못해 거리를 두려는 것이 확실해 보였다. 또한 방송에서 지윤을 처음 만났을 때 까칠하게 대했던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을 못 믿는 거겠지.'

다행스러운 것은 심후가 누군가의 유산을 상속 받는 행운을 잡았다는 것이었다. 

'고맙다고 해야 할까?'

심후를 배신한 사람들도, 또한 유산을 물려준 사람도 고맙다고 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고맙다고 해서 심후를 배신한 사람들에게 악감정이 안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미운 건 미운 거다. 

'복수를 하고 있다니 이건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야.'

에린이 복수에 나선다면 세상에서 흔적조차 남지 않도록 완전히 지워버리는 일이 가능했다. 하지만 복수를 해야할 사람은 에린이 아닌 심후였다.

복수할 대상을 남에게 빼앗기는 것은 허망한 일이기에 에린은 그저 옆에서 돕겠다고 결심했다.

'행복해야 하니까.'

비록 자신과 연인으로 지낼 수는 없다고 하지만 에린은 진심으로 심후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게임 친구로서, 그리고 짝사랑 했던 사람으로서 갖는 감정이었다.

"제니, 심후가 산 빌딩 옆에 빌딩을 하나 사. 우린 거기로 이사한다.

"네, 아가씨."

모든 것을 접고 거리를 두려 했지만 아직은 해야 할 일이 남았기에 에린은 심후에게 더욱 가까이 가고자 했다. 그리고 이런 에린의 행동은 제국의 황태자도 근처로 이사오게 만들었다.

============================ 작품 후기 ============================

심후: 난 정신 승리하겠다.

에린: 이사간다! 강운: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늘도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동은 제국의 황태자도 근처로 이사오게 만들었다.

============================ 작품 후기 ============================

심후: 난 정신 승리하겠다.

에린: 이사간다! 강운: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늘도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동은 제국의 황태자도 근처로 이사오게 만들었다.

============================ 작품 후기 ============================

심후: 난 정신 승리하겠다.

에린: 이사간다! 강운: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늘도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심후와 황태자의 대결이 조금씩 방송되기 시작하자 먹어봐의 시청률은 폭발하기 시작했다. 특히 황실 냉면이 나왔을 때는 수많은 사람들이 근처의 냉면집에 배달을 시켰다고 했으며 타국에서도 한식당을 찾아가 냉면을 주문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황실 냉면은 황실 요리사의 비법으로 만든 것이기에 자세히는 알 수 없었다.

밑준비를 하는 장면이 촬영되기는 했지만 재료의 양을 공개하지 않았고 종류도 공개하지 않은 까닭이었다. 수많은 요리사들이 영상을 철저히 분석해보았지만 모두 헛수고였다.

그래서 모두 심후의 냉면을 만들어보려 했지만 모두 11가지 맛 밖에 낼 수 없었다. 마지막 12번째 맛은 에린의 가문에서 만드는 차삼이 있어야만 만들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12번째 맛까지 재현해 먹은 사람들은 모두 에린의 가문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 정도였다. 반응이 폭발하는 가운데 심후의 인기도 치솟았고 새롭게 문을 연 바밥바도 크게 성공했다.

연일 사람들이 찾아와 심후는 한동안 요리를 만드는 일에 치중해야만 했다.

"심후씨, 이렇게 떠나게 되다니 정말 아쉽네요. 하지만 역시 그냥 보내줄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차세대 요리사 지망생들을 가르쳐주세요."

심후는 천천히 하차 단계를 밟고 있었다. 하지만 완벽한 하차는 또 아니었다. 포식은 유명한 요리학교에 재학하는 두 명의 요리사를 어떻게 구했는지 데려와서 바밥바에서 심후가 했던 일을 그대로 하게 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심후는 가끔 두 사람을 지도하는 역할로 나오게 되었다.

바밥바는 매일 대박 행진을 이어갔다.

이제는 유명한 맛집이 되어 수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 된 것이었다. 하지만 대박 행진에 태클을 거는 존재가 나타났다.

"맛있었다.

종종 들리지. 참, 옆에 나도 가게 하나 차렸는데 궁금하면 먹으러 와."

강운이 바밥바 앞쪽의 건물을 사서 바밥바와 같은 성향의 식당을 차린 것이었다. 식당의 이름은 '태자바'. 유치하게도 바밥바와 유사한 형식을 취한 것이었다.

'썩을 놈.'

태자바는 금방 유명해졌다. 황태자가 가끔 와서 먹고 가는 곳이라는 소문이 퍼지자 너도나도 태자바에 들리는 것이 일이었다.

이로 인해 바밥바의 수익이 하락하기 시작했지만 지원군이 나타나 수익에 문제는 없어졌다.

"나 때문에 미안해요. 태자가 저런 건 나 때문이니까 제가 책임지고 막을게요."

에린은 그렇게 심후의 앞에 다시 나타났다.

심후는 에린을 별로 보고 싶지 않았기에 이런식으로 엮이는 것이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강운으로 인해 받게 되는 피해를 메우기 위해선 에린이 필요했기에 받아들였다. 에린이 거의 매일 같이 바밥바에서 식사를 하니 아래 직원들도 이에 따르기 시작했다.

따로 말을 할 필요도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상사와 연줄을 만들어 눈도장 한 번 더 찍어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바로 출세욕을 가진 직장인들이었다.

무엇보다 에린이 심후와 자주 만나는 모습을 보이니 직원들 뿐만 아니라 에린과 사업으로 이어진 사람들도 바밥바에 출입하며 심후에게 인사를 하고 가기 시작했다. '피곤하다.

'하지만 심후는 피곤했다.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 마주해야 하는 현실이 계속 이어지니 점점 지쳐만 갔다.

'돈을 벌려고 하다보면 더 마주쳐야겠지?'

제국의 황태자와 막대한 부를 이룩한 가문의 일원인 에린이었다. 두 사람의 눈길을 피해 사업을 벌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돈을 빨리 버는 방법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사업과 투자 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네.'

현실이 답답하게 느껴지자 잠시 잠적할 필요를 느꼈다.

'몇 년 후에도 나한테 신경 쓰진 않겠지.'

에린이나 강운이 자신의 주변을 맴도는 것은 아직 관심이 식지 않아서라고 생각하며 조용히 다른 준비를 하자고 결심한 심후였다.

'일단 접속기를 이용해 무공을 익히면서 이것저것 자격증 공부를 하자. 투자도 좀 하고.'

심후는 조금 더 길게 보기로 결심했다.

'스트레스 쌓이네.'

앞일을 생각하다보니 갑자기 스트레스가 쌓였다. 이를 발산할 필요를 느낀 심후는 오랜만에 접속기에 몸을 뉘였다.

종우가 물려준 접속기가 아니라 느낌이 좀 어색했지만 심후는 이내 적응하며 게임에 접속했다.

접속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은 무기를 점검하는 것이었다.

'탄약이 많이 소모되었네.'

과학문명을 떠나올 땐 엄청나게 많은 탄약을 싸들고 왔지만 계속 이어지는 전투와 사냥에 몇 번 싸우면 바닥날 수준에 도달했다.  

'돌아가자.'

총이 없다면 별 볼 일 없는 상태였다.

생명력은 얼마 되지도 않고 마력만 빵빵한 상태. 그렇다고 제대로 된 공격 스킬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때문에 무협문명에서 더 머물 여유는 없었다.

'장보도는 나중에 쓰자.'

빠르게 결심을 굳힌 심후는 의류점과 무기점에 들려 장비를 바꿨다. 의류점에서는 평범한 마의를 사 입었고 무기점에서는 창과 검을 샀다.

검은 허리에 차고 창을 들자 그럴싸한 무협 문명의 유저로 보였다. 

'괜찮네.'

상태창에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 심후는 만족했다.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창과 검을 산 이유는 별 거 없었다.

그냥 평소의 모습을 버리고 변신해본 것뿐이었다. 단순한 기분 전환이었다.

머리를 식힐 생각으로 접속했기에 색다른 플레이를 해보고자 한 것뿐이었다. 도시 밖으로 걸어 나가자 작은 짐승들이 보였다.

토끼나 사슴 같은 것들이 도시 주변에서 쉽게 발견되었다. 초보들이 있는 도시가 아니기에 이를 잡는 유저는 하나도 없었다.

"하압!"

토끼 한 마리 근처로 다가가 창을 내질렀다. 연약한 토끼는 한 방에 죽었다.

토끼에서 사슴, 그리고 조금 외곽에 있는 여우까지 손쉽게 처리가 가능했다. 레벨을 올리면서 무기 착용에 필요한 스탯을 올린 덕분이었다.

'정말 옛날 생각나네.'

올라이프 49에서 암살을 하며 돈을 벌던 추억이 떠올랐다. 

'슬래셔도 나름 손맛이 있는데.'

슬래셔. 잔혹한 유혈극이 많은 영화나 혹은 '슬래쉬'하는 사람이란 뜻을 가진 이 단어를 들으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으니 바로 칼질 하는 살인마였다.

즐거웠던 추억이었다. 자신보다 약한 유저들을 사냥하며 돈과 즐거움을 모두 챙기던 순간의 기억은 분명 추억이었다.

사냥 효율을 따지면 화기만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추억을 생각하면 검을 들고도 싸우고 싶었다. 그러나 검 관련 스킬을 익히고 싶은 마음은 곱게 접었다. '아직 스킬들을 다 익히지 못했다.

'새로운 스킬로 근접 공격 스킬을 익혀보고 싶은 생각이 들긴 했지만 꾹 참았다. 스트레스 풀자고 삽질을 할 순 없었다.

철혈신갑이라는 다이아몬드급 스킬은 숙련도 올리지 못한 상황이었다. 한 번 사용하는데 3,000의 마력이 필요했다.

마력 포션 값을 생각하면 정말 아찔한 액수의 돈을 잡아먹는 스킬이라 할 수 있었다. 돈을 쓰지 않고 시간으로 때운다고 해도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마력이 회복되는 대로 철혈신갑만 사용하며 시간을 죽여야 했다.

'그래도 손맛은 보고 싶은데.'

암살의 추억에 빠진 심후는 칼질하는 손맛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래서 과학문명으로 돌아가지 않고 다시 무협 문명의 초보자들이 모인 도시로 되돌아갔다.

"야, 그냥 가자. 무슨 토끼를 잡겠다고."

"기다려봐. 새로 익힌 스킬 숙련 올려야 한단 말이야."

"그냥 싸우면서 올려."

"올리고 싸워야지!"

초보자 둘이 성 밖에서 떠들고 있었다. 캐릭터를 생성한지 하루도 지나지 않은 따끈따끈한 초보라는 것이 확연히 느껴지는 옷차림이었다.

"하여간 똥고집은. 그럼 나 혼자 간다."

"그러던가."

친구가 떠나고 홀로 남게 된 유저는 토끼를 향해 연신 발차기를 날리며 스킬 숙련도를 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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