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1화 (51/64)

결국 심후는 포기하고 나가려 했다. 

'대체 이빨 목걸이가 왜 나오는 거야?'

보스가 죽고 준 보상은 상당량의 돈과 이빨 목걸이였다.

이빨 목걸이는 언데드를 다루는 기술을 익힌 사람에게만 지능을 1 올려주는 효과가 있을 뿐이었다.

던전의 난이도는 중견급 유저 4명이 모이면 딱 알맞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보상은 어이가 없었다.

이빨 목걸이 수준의 장신구는 상점에서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더 좋은 것을 구하는 것도 가능했다.

던전을 돌아 나오는 길에 걸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입구에 도달한 심후는 시간 낭비했다는 생각에 입구 옆에 서 있는 석상을 발로 찼다.

"에이, 부서지지도 않네."

부서지라고 몇 번 더 거세게 찼지만 석상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응?"

화가 나서 총을 꺼내 석상의 머리를 겨누는데 뭔가 이상한 것이 보였다.

총을 쏘려던 심후는 석상의 얼굴 가까이에 다가가 살펴보더니 다시 뒤로 떨어져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왜 그래?"

에린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심후는 이빨 목걸이를 꺼내서는 줄을 뚝 끊었다.

가죽으로 된 낡은 끈은 쉽게 끊어졌다. 줄에서 빠진 이빨은 심후의 손에 의해 석상의 입부분에 끼워졌다.

"역시."

이빨은 제자리를 찾은 것처럼 딱 들어맞았다. 서둘러 이빨을 모조리 끼우자 던전의 입구가 은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다시 가자."

다시 들어간 순간 나오는 것들은 스켈레톤이 아닌 늑대인간들이었다.

"다시 가자."

다시 들어간 순간 나오는 것들은 스켈레톤이 아닌 늑대인간들이었다.

============================ 작품 후기 ============================

응원 감사합니다.

요즘 더워서 자꾸 늘어지는데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있어 버티고 있습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시고 좋은 일 가득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다시 가자."

다시 들어간 순간 나오는 것들은 스켈레톤이 아닌 늑대인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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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아아앙!"

한 늑대인간이 입을 벌리고 달려드는 순간 심후의 모습이 사라졌다. 눈 깜빡 하는 순간 늑대인간의 뒤에 나타난 심후는 목에 검을 꽂아 넣은 후 바로 바닥을 구르며 권총을 사용했다.

총알은 심후를 덮치려고 하던 늑대인간의 눈에 박혔다. 눈알이 파괴되며 피가 튀었지만 늑대인간은 멈추지 않고 심후를 쫓으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서브머신건을 갈기는 에린에 의해 온몸에 구멍이 뚫리며 쓰러졌다.

에린과 심후는 처절한 사투를 벌였다. 던전을 꽉 채운 늑대인간들은 쉬지 않고 계속 나타났다.

횃불이 일정 간격으로 불타고 있었지만 통로는 여전히 어둠컴컴했다. 횃불과 총구의 불빛에 의해 보이는 늑대인간들의 그림자는 통로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쉬지 않고 꾸역꾸역 밀려들며 두 사람을 공격했다.

"폭탄 없어?"

"없어!"

얼마나 많이 죽였는지 심후는 세는 것을 포기했다. 폭탄으로 시원하게 전부 날려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에린이 가지고 있는 폭탄은 없었다.

결국 남은 방법은 싸우는 것뿐. 되돌아가는 선택지가 남아있긴 했지만 투쟁심이 극에 달한 두 사람은 돌아간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어떤 고난과 역경이 있어도 이겨내고 말겠다는 의지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뒤!"

에린이 외치는 순간 심후는 뛰어오르며 팽이처럼 몸을 회전시키며 검을 뻗었다. 검 끝에 걸린 것은 늑대인간의 목. 치솟은 피 분수는 시야를 잠시 가렸으나 전투에 방해가 되진 않았다.

심후는 이미 블링크를 이용해 다른 방향에서 늑대를 상대하는 중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적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두 사람의 호흡은 척척 맞아 떨어졌다.

- 한손 검술 마스터리를 익히시겠습니까?

얼마나 싸웠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기계적으로 베고 쏘고 피하는 것을 계속 반복하던 심후는 알림음에 정신을 차리고는 승낙했다.

실버급의 스킬이 생성된 것이었다. 하나의 무기를 오랫동안 사용하면서 숨겨진 무기 경험치를 쌓게 되자 자동으로 생성된 것이었다.

다른 때라면 승낙하지 않았겠지만 이번에는 수락했다.

'숨겨진 한 수를 더 준비하는 것도 좋겠지.'

은신과 저격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깨달은 심후였다.

기술의 폭이 좁다는 것은 공격 수단이 제한되어 상대에게 간파당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에린에게 계속 시달림을 당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었다. 또한 스킬은 조금 키워보다가 영 아닌 것 같으면 지울 수도 있었다.

돈을 쓸 필요가 전혀 없는 공짜이기에 부담감 없이 한손 검술 마스터리를 익혔다. 그러자 공격력이 증가하며 전투가 보다 편해졌다.

"와라!"

사투 끝에 도착한 곳은 보스방 앞이었다.

장시간의 처절한 전투 끝에 겨우 보스방에 도달한 것이었다. 

"준비 됐어?"

"잠깐, 좀 쉬었다가."

대답하던 에린은 바닥에 앉아 숨을 돌렸다.

장시간에 걸친 전투로 인해 정신이 상당히 피로해진 상태였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버티지도 못했을 전투였다.

무공을 익힌 에린과 심후였기에 가까스로 집중력을 유지하며 끝까지 온 것이었다.

'정말 대단해.'

에린의 눈에 심후는 게임을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보였다.

무공을 익혔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기에 하는 착각이었다. 

"뭘 그렇게 봐?"

침묵 속에 느껴지는 시선이 살짝 부담스러웠던 심후는 입을 열어 침묵을 깼다.

"그냥 대단해서."

"뭐가?"

"전혀 피곤해 보이지 않아서. 그렇게 싸웠는데 안 피곤해?"

"피곤해."

안 피곤했다. 하지만 피곤하다고 대답했다. 아직 심후는 에린을 완전히 믿지 못했다.

때문에 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 숨기고 대하는 것이었다.

"그래?"

에린은 더 추궁하지 않았다.

추궁은 오히려 거리를 더욱 벌릴 뿐이란 것을 가슴 졸이는 경험으로 인해 확실히 배웠다. 다시 침묵이 맴돌았다.

에린은 멍하니 심후를 바라볼 뿐이었다. 모든 정신적 피로는 심후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입안의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럽게 녹았다.

'어깨에 기대보고 싶다.'

으쓱한 던전, 어둑한 실내, 단 둘 만의 공간. 현재 상황이 스치고 지나가자 에린의 마음속에 은근한 욕구가 피어올랐다.

자리에서 일어난 에린은 심후가 일어서려고 하기도 전에 옆에 다가가 앉으며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일어서려고 힘을 주는 순간 어깨를 누르는 힘에 의해 심후는 일어나지 못했다.

정말 바람 같은 움직임이었다. 

"뭐야?"

"그냥, 어깨 좀 빌려줘."

고민이 이어졌다. 머리를 밀쳐내고 일어날지 아니면 그냥 가만히 있을지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오락가락했다.

경계심 많은 이성은 밀어내라 말하고 있었지만 같이 게임을 즐긴 정과 방금 전까지 호흡이 딱딱 맞는 전투를 하며 생성된 친밀감은 조금만 봐주자고 말했다. 

'그래, 기회를 주자고 했으니까.'

바짝 밀착한 두 사람 사이에 은근한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대부분 에린이 발산하는 기세였지만 심후도 그리 싫은 표정은 짓지 않았다. 분위기를 탄 에린은 슬쩍 심후의 손을 잡았다.

심후는 다시 고민했지만 명분은 이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손을 뿌리지치 않고 가만히 있자 에린은 더욱 대담해졌다.

이젠 심후의 가슴에 손을 얹으며 볼을 기댔다. 게임 캐릭터기에 심장 소리가 들릴 리가 없지만 에린은 심장 소리가 들리는 척 했다.

'아, 여기서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들렸으면.'

하지만 세포 시뮬레이션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완성되지 않는 이상 어려운 일이었다. 현재는 몬스터와 NPC, 그리고 게임 속의 각종 생물들을 중심으로 시험하는 중이었다.

유저에게 직접 적용하기 어려운 이유는 세포 시뮬레이션을 통해 만들어진 가상 세포의 신호와 유저의 신호 사이에서 혼란이 일어날 경우 문제가 발생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게임 플레이가 원활히 되지 않거나 버그가 발생하면 그것은 곧 게임사의 손해로 이어지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단계적으로 실험을 하는 중이었다.

잠시 하던 딴 생각은 금방 멈췄다. 비록 게임 캐릭터이긴 하지만 스킨쉽을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는 것은 중요한 문제였다.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말고 즐겨야지.'

이미 유저 시점은 물론 제3의 시점에서도 영상을 녹화하는 에린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심후에게 더욱 달라붙었다. 기분 좋은 순간의 끝이 오자 아쉬움이 밀려왔으나 에린은 잠자코 일어났다.

'이제 보스를 잡으면 언제 또 이렇게 붙어 볼까?'

과감한 움직임으로 분위기를 잡아 성공한 스킨쉽을 현실에서도 똑같이 재현해볼까 했지만 두려웠다. 심후는 게임과 현실에서 에린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에린으 아직 현실에서 직접 달라붙을 생각은 하지 못하고 게임에서 더 많은 기회를 얻길 원했다.

한 번 성공했으니 또 한 번 더 달콤한 과실을 맛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처음에는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지만 점점 거리가 좁혀지니 더 강렬한 것을 원하게 되었다.

'그냥 실패해버려?'

실패한 심후가 다시 던전에 도전하게 되면 또 길고 긴 전투를 해야 했다.

그리되면 또 다시 옆에서 쉴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 몰랐다. 그러나 만약 심후가 에린의 행동을 눈치 채면 화를 낼 수도 있었다.

'아아! 깨고 싶지 않아!'

하지만 깨야만 했다.

아쉬움을 잔뜩 느끼는 동안 문이 열리고 보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웨어울프 킹.

보스의 이름이었다.

웨어울프 친위대와 함께 보스방을 가득 채운 것을 보며 심후는 머신건을 꺼냈다.

"작전은 빙글빙글이야."

"응."

심후가 먼저 뛰어들자 에린도 뛰어들며 보스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공격하기 시작했다.

넓직한 보스방에 웨어울프 킹과 친위대의 괴성이 메아리쳤다.

분노를 폭발시키며 두 사람을 잡으려 했지만 심후의 방어는 견고했고 에린은 잡히질 않았다.

빙글빙글 돌면서 머신건을 계속 쏘니 가장 먼저 쓰러진 것은 친위대들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웨어울프킹도 쓰러지고야 말았다.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두 사람에게는 오히려 공략이 쉬웠다. 

"그냥 큰 거 말고는 볼 게 없네."

"그리고 보상도 거지같지."

에린의 말에 대답하는 심후는 보상을 주워들었다.

그것은 빨간색으로 빛나는 이빨 목걸이였다.

아이템을 확인한 에린은 활짝 웃고 말았다.

============================ 작품 후기 ============================

더워서 그런지 어질어질해서 쓰는데 좀 고생했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오늘도 함께 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더운 여름 더위 조심하시고 즐거운 일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그것은 빨간색으로 빛나는 이빨 목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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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겠다."

에린과 심후는 빨간 이빨을 동상의 입안에 박아 넣고 다시 한 번 더 던전을 클리어했다.

이번에 나타난 것들은 뱀파이어들이었다. 직접 공격을 하는 비율이 높은 늑대인간과는 달리 뱀파이어들은 환영과 그림자, 그리고 분신을 효율적으로 이용해 미치도록 싸워야 했다. 그렇게 고생 끝에 보스인 뱀파이어 프린스를 잡았는데 나온 것은 파란 이빨 목걸이였다.

"정말 흥미로운 던전이네."

"흥미롭긴."

처음에는 그냥 이빨이었다. 두 번째는 빨간 이빨이었다.

그걸 깨니 나온 것이 파란 이빨 목걸이였다.

'이거 깨면 또 이빨 목걸이 나오는 거 아냐?'

던전의 출입구에 선 석상의 입을 노려보던 심후는 살아있는 존재라면 이빨을 다 뽑아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 피식 웃었다.

'그래, 그런 마음으로 이런 열쇠를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던전을 디자인한 개발자들의 장난인지도 몰랐다.

가끔 그런 장난이 있었다. 보상은 별로 좋지 않은데 도전 의욕만 잔뜩 불러일으키는 개발자들의 농간. 게임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과정에 도전하는 것 자체가 보상이지만 뭔가 물질적인 보상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시간낭비인 그런 것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에린과 인사를 하고 접속기에서 몸을 일으킨 심후는 부엌으로 향했다.

냉장고 속에는 먹다 남은 치킨과 맥주가 있었다.

꺼내진 치킨은 전자레인지에 간단하게 데워졌다. 냉장고 속에 있었던 것이라 바삭함은 많이 죽었지만 치킨의 맛은 아직 남아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허벅지 살은 이미 다 먹고 가슴살만 남았지만 소스에 찍어먹으니 먹을 만했다.

가슴 살 한 쪽을 다 먹고 나선 맥주로 입가심했다.

시원한 맥주가 목을 살살 긁어주며 뱃속에 들어가 자리를 잡자 행복한 기분이 밀려왔다. 먹다 남겨 놓은 치킨과 싸구려 맥주를 먹어도 행복의 크기가 더 작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 어디 끝까지 깨보지 뭐.'

행복한 기분은 좀 더 너그러운 마음을 품게 도와주었다. 다른 유저들의 뒤통수를 까는 것도 즐겁지만 던전을 깨는 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혼자였다면 무척이나 지루했을지도 몰랐지만 함께 하는 사람이 있어 그런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심후는 치킨을 씹고 맥주를 마셨다.

"크으!"

캔을 다 비우자 또 하나 더 꺼내서 마셨다.

분명 쌉쌀한 것이 맥주의 맛인데 기분은 달다고 느끼는 중이었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강운은 게임에 접속했으나 심후와 싸울 수 없었다.

심후는 에린과 함께 던전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싸우자는 겁니까?"

나중에 던전에서 나올 때 기습을 하기 위해 사람들을 끌고 와 포위망을 만드려는 찰나, 제니가 메이드들과 함께 나타났다.

"그렇다. 모두 죽여주마."

"이게 뭔지 아시면서도 그런 말 할 수 있을까요?"

제니가 손짓하자 메이드들이 똑같은 디자인의 상자를 꺼내들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사람들은 주춤거리며 강운의 눈치를 보았다. 강운은 상자들을 보는 순간 이미 한 걸음 뒤로 물러난 상태였다. 

"건드리면 다 같이 죽는 겁니다."

"핵폭탄이 그렇게 많을 리가 없잖아!"

발작하듯 누군가 소리쳤지만 제니의 입가에서 미소는 지워지지 않았다.

"못 믿겠다면 지금 터트릴까요?"

"해봐!"

물러서지 않는 강운을 향해 메이드 하나가 달려들었다. 그 순간 제니와 다른 메이드들은 던전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컥!"

누군가 쏜 화살이 메이드의 목에 박혔다. 그러나 메이드는 금방 죽지 않았다.

툭. 선물 상자가 땅에 떨어지며 소리를 내는 순간이었다.

강렬한 빛이 사방으로 퍼지며 시각 장애를 일으켰다. 그것이 유저들이 인지하는 모든 것이었다.

강운을 비롯한 유저들은 사망했다.

핵폭탄은 아니었지만 폭탄 제조 스킬의 레벨을 올리고도 다른 폭탄 관련 스킬을 계속 올린 메이드에 의해 만들어진 폭탄은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을 발휘했다.

핵폭탄 정도는 아니지만 미니 핵폭탄이라고 말하기에는 충분한 위력이었다.

제니와 메이드들은 사망한 메이드의 연락을 받고 던전에서 나왔다.

잠시 뒤, 죽었던 메이드는 돌아왔지만 강운과 그를 따르는 무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시간이 흘렀다.

정력 요리를 예약한 손님들을 위해 만들어 파는 나날을 보냈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무공 수련을 하며 공부를 하곤 게임을 시작했다.

게임 속에서는 '이빨 던전'이라고 새롭게 부르기 시작한 곳을 에린과 함께 돌파하는 것이 일이었다. 

"쉬자!"

이번에 깨는 던전은 알파벳 'A' 이빨을 넣고 들어오게 된 던전이었다.

뱀파이어와 늑대인간, 그리고 무공강시가 함께 등장하는 난이도가 높은 던전이었다.

하지만 심후와 에린은 모든 시련을 이겨냈다.

생각을 비우고 오직 전투만 하는 전투기계가 된 심후와 에린 앞에 몬스터들은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전투가 모두 끝나고 보스방에 들어가기 전에는 항상 의식처럼 긴 휴식이 찾아왔다.

돗자리를 깐 에린은 피크닉이라도 온 기분을 내는 건지 와인과 햄을 꺼내 자리를 만들었다. 

"앉아."

분위기를 내던 에린은 심후를 앉혀놓고 와인을 따르곤 햄을 살짝 썰어서 안주로 준비 했다.

두 사람은 묵묵히 와인과 햄을 즐기며 게임 캐릭터의 공복을 해결했다. 

"나 잠깐 쉴게."

식사가 끝나자 에린은 대뜸 심후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빠르게 다리를 치운다면 머리를 땅에 떨어트리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었으나 꾹 참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깨야 할까?"

"음, 그거야 알 수 없지."

"알아보지 않았어?"

"응. 하지 않았어."

에린의 대답에 심후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에린이 마음만 먹으면 던전에 대한 정보 하나를 빼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일부러 알아보지 않았다.

'즐거운 것은 오래오래 즐겨야지.'

언제 어떻게 던전을 공략할 수 있게 되는지 안다면 끝까지 즐기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때문에 침묵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즐기려는 것이었다.

단단한 허벅지 위에 놓인 머리를 움직여 심후의 배꼽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심후는 별 다른 반응이 없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좋았어.'

가만히 있다는 것은 거부하지 않는다는 것. 조금씩 거리를 좁혀 이제는 대담한 행동을 조금씩 해도 심후는 받아주었다. 처음에는 경직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익숙해진 것처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중이었다.

적지를 침입해 들어가는 스파이처럼 에린은 그렇게 심후가 펼쳐놓은 경계선 안으로 침투해들어갔다.

'이젠 슬슬 작업을 걸어야지.'

에린의 손이 꼬물거리더니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뭐야?"

"단단해 보여서. 궁금했어."

에린의 손은 좀 더 대담해졌다. 허벅지를 더듬던 손은 허리에 닿았다.

"간지럼!"

그리고 발동한 스킬은 바로 오늘을 위해 준비한 간지럼 스킬. 정말 전투에선 쓸 데 없는 쓰레기라고 알려진 최하 등급의 스킬이었다. 

"하하하하하! 그만해!"

심후는 몸을 뒤틀며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게임 캐릭터의 힘 수치는 에린이 훨씬 높았다.

아울러 간지럼 스킬은 공격이 아닌 일상생활 스킬로 분류되기 때문에 방어력하고는 상관없이 적용되는 부분이 있었다.

몸부림치던 심후가 다리를 움직여 에린의 머리를 떨어트리려 한 순간 에린의 머리가 국부쪽으로 미끄러지더니 배꼽 바로 앞에서 멈췄다.

굉장히 야릇한 상황이 되자 두 사람의 동작이 일시에 멈췄다. 심후는 당혹스러운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그때 에린은 나른한 눈빛으로 배꼽 부근에 입맞춤을 했다.

순간 야릇한 감정이 치솟아 오른 심후는 조용히 에린의 어깨를 잡고 일으켰다.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았다. 대화는 없었다. 서로 눈을 마주한 채 계속 바라볼 뿐이었다.

'뭐가 부족해서 나한테 이러는 걸까?'

야릇한 감정이 불러온 것은 호기심이었다. 잠시 생각해봤지만 답을 알 수 없었다.

"오늘 시간 있어?"

"응?"

"이따가 진짜 와인이나 한 잔 하자고. 안주는 그쪽이 준비하고."

처음으로 먼저 만나자고 말을 하는 심후를 에린은 꼭 끌어안았다. 

이성을 만나기 위해 준비하는 것은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샤워를 하고 피부 상태를 꼼꼼히 점검하고 인형을 꾸미는 것처럼 하나하나 세팅해 나갔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다지 두근거리지는 않네.'

아주 잠깐 솟아났던 야릇한 감정은 그렇게 오래 불타지 못했다. 게임이 아닌 현실로 돌아와 직접 만날 생각을 하니 냉철한 이성이 찬물을 끼얹어버렸다.

'방심하지 말자.'

그래도 치장하는 것은 멈추지는 않았다. 이성도 여기에는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적어도 상대는 자신에게 호감을 가진 것으로 보이니 인간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양보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오늘은 심후가 먼저 만나자고 했었다.

'나도 모르겠다.'

준비를 하는 동안 마음이 식어버려 혼란스러웠지만 이미 약속을 한 것이니 지켜야만 했다.

바밥바의 와인 창고에 들려 적당한 와인을 골라 에린의 집으로 향했다.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집에 도착하자 메이드인 제니가 심후를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정중하지만 어딘가 딱딱한 느낌이 드는 목소리였다. 

'날 싫어하나?'

증오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호감이라고는 별로 보이지 않았다.

평범한 사람은 전혀 모르고 넘어갔겠지만 감각이 발달한 심후는 제니의 눈을 통해 자신을 좋지 않게 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유가 궁금했지만 넘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미리 생각해봐야 사람의 속마음이 어떤지 행동으로 먼저 보여주기 전에는 알기 어려운 일이었다. 물어본다 해도 솔직히 답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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