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4화 (54/64)

요리사로서 활동했던 경험 때문인지 맛 좋은 것을 앞에 두면 은연중에 맛을 보며 분석하는 습관이 있었다.

'응?'

하지만 행복은 길지 않았다.

갑자기 아랫배에서 이상한 신호가 잡혔다.

'왜?'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화장실로 직행했다.

처음에는 미미했지만 배에서 오는 신호는 점점 더 격렬해졌다. 생각보다는 행동이 더 빨랐다.

화장실로 뛰어 들어간 이후에는 사투가 벌어졌다. 고통스러운 전투로 인해 아랫배와 뒷구멍이 아팠다.

'케이크!'

길게 생각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케이크에 수작이 부려진 것이 분명했다.

화장실에서 나온 심후는 에린의 짓인가 싶어 열을 내는데 간단한 문자 연락이 왔다.

- 케이크 맛있게 드셨어요? 제가 특별히 제작 주문한 건데 마음에 드셨는지 모르겠네요. 우리 아가씨 잘 부탁해요.

문자는 제니에게서 온 것이었다.

'일단 에린은 아니군.'

심후는 에린의 짓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에린이 자신을 덮치려고 한 날에 보았던 제니의 눈빛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날 못 마땅하게 생각하더니 결국 이런 거였나?'

"큭."

생각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잠시 쉬는데 다시 신호가 왔다.

이 날, 심후는 총 15번이나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변기 위에 앉아 있어야 했다. 또한 타는 것 같은 고통이 뒷구멍에서 느껴지는 탓에 접속기를 만드는 작업은 전혀 하지 못하고 쉬어야만 했다.

'두고 보자. 꼭 돌려주마.'

당하고는 못 살겠다고 아우성치는 성질 때문에 뇌는 부지런히 회전해야만 했다.

현금은 꼬박꼬박 배달되었다. 제니가 수시로 들락거리며 1만 달러에서 10만 달러를 주고 가는 것이었다.

돈 뭉치를 받으면 기분이 좋긴 했지만 매일 같이 얼굴을 보니 당연히 신경전이 늘어났다.

"차라도 한 잔 하고 가지?"

"괜찮습니다."

돈을 건넨 제니는 제안을 거절하고는 바로 돌아갔다.

이에 심후는 혀를 찼다.

'젠장, 안 걸리네?'

인사를 할 때 '나는 네가 뭘 꾸미는지 다 알고 있다'는 눈빛이었다.

메이드가 직업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심후의 심계를 다 꿰뚫어보는 것 같았다.

결국 강력한 특제 설사약이 발라진 찻잎은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언젠가 꼭 갚아주마.'

에린과 관계가 돈독한 이상 제니에게 복수할 기회는 많으리라 생각하며 흥분을 정리했다.

돈을 받고 나서 시작한 것은 새로운 건물을 짓는 것이었다.

'해킹 머신을 위해선 아무래도 서버 센터급 전산력이 있으면 더 좋겠지.'

공사가 필요했다. 사용하던 창고 근처의 땅을 더 매입하고 건물이 짓기 시작했다.

"이거 양자 컴퓨터 서버 센터하고 구조가 똑같은데 허가 있으신 거 맞죠?"

"아, 서버 센터로 만들려는 거 아닙니다. 그냥 온도에 민감한 식물들을 키울 예정이라 그래요."

"뭐 어쨌거나 알아서 하시겠죠. 우린 설계대로만 만드는 거니까 나중에 딴소리 하셔도 소용없습니다."

건축업자는 돈을 받았으니 원하는 대로 일해주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공사에 임했다.

수상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자신이 알 바가 아니었다.

건물은 금방 지어졌다.

진짜 서버 센터처럼 거대한 것이 아닌 서버 센터를 흉내 낸 5층짜리 빌딩에 불과했다. 내부는 인간의 생활에 필요한 것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구조여서 짓는 것이 더 빨랐다.

인류의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건축기술도 꾸준히 발전했기에 복잡하지 않은 용도의 건물은 한 달도 되지 않아 뚝딱 만들어졌다.

건물이 완성되자 심후는 창고에 만들어두었던 기기들을 빌딩에 설치하기 시작했다.

완벽한 보안을 위해 다른 사람은 고용하지도 않고 모든 일을 직접 했다. 심후가 돈을 들여 만들어낸 것들은 유출 된다면 업계에 파장을 몰고 올만한 물건들인 탓이었다.

'이제 빵빵하게 뒤져볼 수 있겠군.'

모든 것이 완성되자 심후는 센터 앞에 자신이 거주할 아주 작은 집을 만들고는 접속기에 들어갔다. - 새로운 무공 프로그램을 시작하시겠습니까?

다시 만든 접속기에는 자동 무공 수련 기능이 있었다.

뇌전공은 이미 마스터한 상태이기 때문에 굳이 실행할 이유가 없었다. 때문에 아직 다 익히지 못한 천명심법만을 다시 등록하고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하나 더 설치했다.

- 능력 고정 패키지를 설치하시겠습니까?

능력 고정 패키지란 것은 가상현실에서 자신의 신체 능력만을 사용하게 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예를 들자면 게임을 해서 게임 캐릭터가 성장해도 유저에게 반영이 되지 않게 해주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돈 낭비로 보이지만 의외로 자신만의 능력으로 가상현실에서 살아남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의 수가 꽤 됐다. 능력 고정 패키지를 설치하자 올라이프 50에도 적용되었다는 메시지가 떴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를 설치했는데 무기 훈련 프로그램과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설치했다. 모두 대부분 첩보와 시스템에 관한 것들이었다.

'이제 슬슬 시작하면 되겠군.'

게임에 다시 들어간 심후는 가지고 있던 스킬들을 모두 봉인하는 아이템을 구매해 사용했다. 이어서 교육 프로그램을 동시에 실행하고는 진짜 무기의 분해와 조립을 연습했다.

그런 다음에는 해킹 머신을 이용해 다른 유저의 정보를 해킹하는 것부터 연습했다.

'조금만 기다려. 내가 찾아 갈 테니까.'

============================ 작품 후기 ============================

더운데 월요일이라니. 치명적인 데미지가 들어오네요.

내일은 중복이군요. 모두 몸보신 잘 하시고 건강하세요.

오늘도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금만 기다려. 내가 찾아 갈 테니까.'

============================ 작품 후기 ============================

더운데 월요일이라니. 치명적인 데미지가 들어오네요.

내일은 중복이군요. 모두 몸보신 잘 하시고 건강하세요.

오늘도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체 뭐하는 놈이지?'

보고서를 받고 살펴보던 강운은 인상을 찌푸렸다.

심후에 대한 감시를 지시해놨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이상한 이야기가 보고되었다.

'전자 제품들은 왜?'

수많은 접속기를 구입하질 않나 요리사가 평생 만져볼 일이 없는 원자재와 기계들을 구입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압권은 서버 센터로 보이는 건물을 지은 후 직접 내부에 무엇인가 설치했다는 것이었다.

부하 중 하나가 혹시 테러범이 아닐까 의심하며 조사해보겠다고 한 것을 강운은 말렸다.

"진짜 테러범이면 결혼식장에서 날려버렸겠지."

심후는 두 번이나 황족들은 물론 귀빈들을 싹 날려버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진짜 테러리스트라면 놓치기 아까운 기회였다.

때문에 심후에게 수상한 점은 있어도 테러의 용의선상에서는 배제했다. 여기에는 에린을 돕고 있는 정연도 있었기에 의심은 의심으로 끝났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감시가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더 강화되었다.

'정체가 뭐야?'

강운은 강력한 호기심을 느꼈다. 요리와 게임에 있어서 맞수라고 생각했더니 그게 전부가 아니었던 것이었다.

'인생의 호적수인가?'

심장이 두근거렸다. 라이벌로 인정한 남자가 계속 능력을 드러내니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논리적인 판단은 아니었다. 자신보다 더 높은 곳에 오른 자를 보자니 투쟁심이 들끓었다.

두근거리는 심장은 심후를 이기면 더 높은 곳에 갈 수 있다며 고함을 질렀다. 

'나를 더 강하게 만들어줄 존재.'

강운은 심후를 그렇게 규정했다.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들어줄 존재. 이겨야할 존재. 정복해야 할 산.

'재미있군.'

감정과 생각을 관조하다보니 즐거움이 느껴졌다. 평생에 걸쳐서 경쟁해야 할 상대가 나타났다는 사실이 즐거웠다.

지루하게 자극을 찾아 방황할 필요가 없어졌다. 

'뭐냐? 새로운 능력은? 뭘 하려는 거냐?'

어느새 테러범에 대한 것은 까맣게 잊고 있는 강운이었다.

'유저 정보.'

게임에 접속한 채로 해킹 툴을 사용하는 심후는 스쳐지나가는 유저들의 정보를 확인하는 것부터 연습하기 시작했다.

'겉만 번지르르한 초보군. 돈을 많이 썼어.'

예전이라면 군침 도는 사냥감이었다. 그러나 현재 심후는 돈을 벌거나 즐거움을 위해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개인 정보는........'

개인 정보를 알아내는 것은 물론 주소까지 알아내자 관련된 기관을 따라갔다. 이윽고 유저의 금융 상태를 파악하는 것은 물론 통신 내역까지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애인이 없어서 고민이군.'

게임 캐릭터에 잔뜩 돈을 쓴 것이 이해가 갔다. 현실에서 사귀기 힘드니 게임 속에서라도 한 명 구해보고자 한 것이 틀림없었다.

'다음.'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한 심후는 계속해서 무작위로 유저를 골라 정보를 해킹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용의주도하게 자신이 추적당하고 있는지 확인했다. 또한 방어 시스템의 능력을 시험해보며 자신만의 해킹 시스템을 더욱 보완해나갔다. 한참을 해킹 시스템을 구축하며 연구하던 심후는 제니의 연락을 받았다.

- 심후씨, 할 얘기가 있습니다.

- 뭔데?

- 제국 황실에서 심후씨에 대한 감시를 강화했습니다.

아가씨의 뜻이 아니니 오해하지 마십시오.

- 알았어. 또 할 말은?

- 필요한 것 있습니까?

- 그것보다 매번 수고하니까 식사 대접 한 번 하고 싶은데.

- 감사 받을 일이 아닙니다. 감사는 아가씨에게 해주시길.

틈나는 대로 제니를 불러서 복수할 기회를 엿보고 있지만 제니는 만만치 않았다.

무엇을 노리는지 다 아는 투였다.

'그냥 먹을 걸 선물로 줘봐? 하지만 그걸 직접 먹는다는 보장이 없으니.'

제니 먹으라고 줬는데 강운 같은 인물에게 전해달라고 부탁 받은 것이라고 하면서 줘버리면 곤란했다.

강운의 성격상 복수하겠다며 피곤하게 굴 것이 뻔했다. 

'나중에 기회가 오겠지.'

잠시 머리를 굴려보다 이내 포기하고 다시 작업에 열중하던 심후는 1시간 뒤 작업을 멈추고는 무기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무기는 모두 현실에서 구할 수 있는 모델들이었다. 게임에서 구현된 것들이지만 모두 유료 서비스였다.

'일단 저격부터 시험해보자.'

인벤토리에서 꺼낸 검은 가방 속에는 저격총이 분해되어 들어 있었다. 잠시 호흡을 고른 심후는 빠르게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품들이 철컥거리며 맞물리는 소리가 이어지자 점점 총의 형태로 완성되었다. '59초. 아직 느리다.

'테러범들에게 보복하기 위해서 굳이 총을 들 필요는 없었다. 적을 발견하면 다른 사람을 보내 말살 시키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심후는 직접 무기 사용법을 익히기로 했다.

'쓸 줄 알면서 안 쓰는 것과 쓸 줄 몰라서 못 쓰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세상 사는데 꼭 필요한 능력이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능력을 드러내며 복수를 하다보면 필요하게 될 지도 모르기에 미리 대비하는 것이었다.

열심히 총기를 조립하며 분해하길 100여 차례. 시간은 계속 단축되어 30초까지 줄어들었다. 다음은 어둠 속에서 총기를 조립하는 것을 연습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총기를 조립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총기에 대한 완벽한 이해는 물론 부품의 위치까지 기억하고 있어야만 했다.

시간이 좀 걸렸지만 이마저도 능숙하게 해냈다.'좋아, 이번에는 모의 전투다.

'저격의 모의 전투를 위해 심후는 일단 좀비를 잡기로 했다. '여기가 적당하겠군.'허름한 빌딩의 옥상에 올라선 심후는 길에 널린 좀비들을 보며 목표를 정했다.

총알을 장전하고 목표를 조준한 후 호흡을 조정했다. 호흡이 안정되며 조준이 확실해지자 지체하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강력한 반동이 느껴졌다. 조준이 순식간에 흐트러졌다.

목표를 확인하니 맞추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사격이 튄 것이었다.

'젠장.'

게임을 할 때와는 딴판이었다.

'이제 와서 캐릭터 능력을 보정하는 것도 그렇고.'

화약의 폭발이 이뤄지며 총알이 총구를 빠져나가기 전까지는 확실히 총을 고정해줘야만 했다. 

'좀 더 비싼 총으로 바꿀까?'

반동을 줄여주는 저격용 소총이 현실에서도 존재하긴 했다. 하지만 굉장한 고가의 총기였다.

'그냥 하자.'

만약을 대비해서 해두는 훈련이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을 위한 무기만 사용할 줄 알게 되면 막상 위기에 닥쳤을 때 쓸모가 없게 되는 수가 있었다.

'무기에 익숙해지는 거야.'

현실에서 사용하게 되면 또 다른 느낌이라 적응하기 힘들어질 수 있겠지만 그땐 비장의 수가 존재했다. 무공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적응이 더 빨라질 것을 염두에 두고 가상현실 속에서 훈련을 시작한 것이었다.

저격용 소총 다음에는 여러 가지 유명 메이커사의 총기들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저렴하고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총기들을 하나하나 다루면서 총기에 대한 이해가 더욱 늘어났고 사용에 익숙해졌다.

심후는 사람을 죽이는 무기를 다루는 일에 집중했다. 가끔가다가 차량 테러로 인해 파괴된 가게가 생각나면 더욱 불타올랐다.

거대한 파괴력 앞에 삶의 터전이 파괴된 것을 목격하는 것은 사람의 가치관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세상은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스스로 지켜야만 해.'

그런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그리고 복수해야만 했다. 뉴스에서는 가진 자의 것을 빼앗기 위해 벌인 테러라는 식으로 몰아가는 중이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상류사회의 다툼은 중산층이나 서민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살벌하다는 의미였다. 그런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자 한 이상 자신을 지킬 힘을 가져야만 했다.

자신을 뒷받침해줄 세력이 없는 심후는 스스로를 보호할 힘을 가지고자 했다. 아울러 자신을 건드리는 자들에게 보복할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도 느꼈다.

'만만해 보이면 건드리는 거지. 약한 모습 보이면 끝장이다.'

당하고도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또 건드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동네북이 될 뿐이었다.

최소한 짜증날 정도로 저항을 할 필요가 있었다. 건드려봐야 귀찮은 일만 잔뜩 생긴다면 여간해서는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총기 사용을 모두 숙지하는데 걸린 시간은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다음은 모의 전투다.

'만만해 보이면 건드리는 거지. 약한 모습 보이면 끝장이다.'

당하고도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또 건드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동네북이 될 뿐이었다.

최소한 짜증날 정도로 저항을 할 필요가 있었다. 건드려봐야 귀찮은 일만 잔뜩 생긴다면 여간해서는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총기 사용을 모두 숙지하는데 걸린 시간은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다음은 모의 전투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모두 밀리터리 매니아들이었다.

올라이프 50이 나오고 과학 문명이 추가되자 가장 환호한 것은 바로 밀리터리 매니아들이었다. 이들은 전원 현실에서 사용되는 무기 아이템들을 현금을 주고 구입했다.

가상현실이지만 간절히 바라고 원하던 무기들을 마음껏 사용해 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니 즐거운 것이었다. 물론 밀리터리 게임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올라이프 50에서 사용하는 것은 색다른 맛이 있었다.

특히 몬스터를 잡는 것은 마치 외계인이 침공한 상황을 떠올라 즐거웠고 좀비를 잡을 때는 영화의 한 장면과 유사했기에 더욱 신이 났다. 철저하게 현실성을 추구하는 이들은 게임 스킬은 전부 배제하고 오로지 본신의 능력과 집단 전술에 의지한 사냥을 할 뿐이었다. 또한 패를 갈라 집단 전투를 수시로 벌이기도 했다.

심후는 이들 커뮤니티에 가입한 것이었다.

"무크님, 반갑습니다.

총이 참 멋지네요."

"감사합니다. 구루님 총도 만만치 않은데요?"

"하하, 알아보시다니 대단하신데요?"

"물론이죠. 존슨사에서 만든 SJ-19이잖아요. 천재 과학자라고 알려졌던 사라 존슨의 딸이 부모님의 이니셜을 붙인 총기 시리즈잖아요. 당시에는 총기의 혁명이라고 불렸잖습니까. 오래전에 만든 거지만 아직도 현장에서 쓸 수 있다는 평을 받고 있으니 정말 대단한 물건이죠."

"크크크. 골동품이긴 하지만 정말 심플한 매커니즘이 황홀할 정도죠."

"하긴 디자인 자체가 예술적인 총이기도 하죠."

두 사람은 쑥덕거리며 대화를 나눴다. 주 소재는 물론 총기였다.

심후는 밀리터리 매니아는 아니었지만 평범한 인간을 월등히 뛰어넘어 초인의 경지에 이른 기억력은 총기에 대한 지식을 모두 흡수했다. 덕분에 대화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었다.

"아, 곧 시작하나 봅니다. 오늘은 우리가 공격조네요."

"목표 사살이라. 재미있네요."

"저쪽 호위로 있는 분 중 한 분이 머신건을 좋아하니까 조심해야 합니다."

"물론이죠."

전원 위치로 들어가자 메시지창은 침묵했다. 현실성을 중요시하는 밀리터리 매니아들은 메시지창을 이용해 정보를 주고받는 짓은 절대 하지 않았다.

이기면 기분 좋은 것이지만 이들은 밀리터리 매니아들이었다. 작전들을 직접 실험해보고 문제점을 파악하는 것이 이들에게는 더 중요했다.

전투가 시작되자 전투를 위한 공간에 침묵이 감돌았다. 대화는 모두 수신호로 이뤄졌다.

발자국 소리만이 조용히 사방으로 퍼져나갈 뿐이었다.

심후도 작전을 위해 자신의 위치에서 움직이며 상황 분석에 들어갔다.

사기적인 기억력은 상황 분석에 큰 도움을 주었다. 

'왼쪽 빌딩 5층에 저격수.'

아주 잠깐 본 것뿐이지만 저격수의 위치를 발견한 심후는 자신의 위치에서 잘못 움직이면 당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대로 그냥 움직인다면 당한다. 그렇다고 내가 지정된 위치로 가지 않으면 허점이 생긴다.'

잠시 갈등이 생겼다.

돌아가느냐 돌파하느냐를 두고 고민하던 심후는 작전을 일부 변경해 임기응변에 맡겨야 할 필요를 느꼈다. 중간에 임의로 작전을 변경하면 작전을 짠 사람은 좋아하지는 않지만 대부분 작전 변경의 이유가 타당하다 생각되면 별 말은 하지 않았다.

전투라는 것이 항상 톱니바퀴 맞물리듯 돌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만약의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작전을 짜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논리였다.

과학 실험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타인의 행동과 판단이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보고 배우는 것도 중요했다.

'처리한다.'

심후는 자리에서 이탈해 몸을 가려주던 빌딩의 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창밖을 내다보니 저격수의 위치가 잘 보였다.

심호흡을 하며 정신을 집중했다. 거리는 멀었지만 항상 연습했던 사정거리 안이었다.

'3, 2, 1!'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반동이 일어났지만 꽉 눌러 총을 잡아주었다. 스코프에는 적이 가슴에 총을 맞고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심후는 바로 자리를 이탈했다. 

'전부 돌격 중이군.'

총성에 의해 전투가 시작되자 상황이 급하게 돌아갔다.

지정된 위치에 지정된 시각에 동시에 타격하기로 약속이 되어있는데 깨졌기 때문이었다.

몇몇은 작전 상황을 그대로 속행하기 위해 서둘렀지만 오히려 작전을 따르지 않고 개별 행동에 들어가는 이들도 있었다.

심후도 개별 행동에 들어간 사람 중에 하나였다.

"무크! 같이 가!"

구루가 외치며 심후의 옆에 붙었다.

평소에는 존대를 하면서 대화하지만 전투에서는 무조건 반말이었다. 말을 길게 할 시간이 없었다.

전투 중에는 무조건 효율이 우선이었다.

"난 왼쪽!"

"난 오른쪽!"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두 사람은 순식간에 자신이 외친 방향을 견제했다.

'계단! 복도!'

시야가 확보된 곳에는 적들이 총구를 내밀고 기다리고 있었다.

심후는 보자마자 전광석화처럼 총을 들고 쐈다. 저격을 할 때처럼 조심스럽게 정밀 조준을 하지도 않았다.

가만히 있으면 당한다는 생각에 무조건 반격을 한 것이었다.

빠른 연사는 불가능했다.

총기의 반동을 현실에 맞춘 캐릭터가 빠르게 전부 해소하지 못한 까닭이었다. 때문에 적의 반격을 허용했다. 하지만 운이 좋았는지 총에 맞지 않았다.

계단의 적을 처리한 심후는 바로 움직이며 적을 향해 총을 발사했다. 

"큭!"

운이 좋았는지 적의 어깨를 맞출 수 있었고 계속된 사격으로 잡는 것에 성공했다. 하지만 곧이어 다리에 충격이 전해지며 균형을 잃었다.

"어?"

 그리고 시야가 새까맣게 변하며 죽었다는 메시지가 떴다. 오른쪽을 담당했던 구루가 적에게 당했고 살아남은 적들이 심후를 등 뒤에서 노렸기에 어쩔 수 없었다.

건물 안에 들어가고 1분도 되지 않아 심후는 사망했다.

전투가 모두 끝났다.

승리는 공격조의 몫이었다. 심후는 끝까지 살아남지는 못했지만 사람들이 연신 칭찬했다.

"이야, 역시 전투는 작전도 중요하지만 개인 전투력을 무시 못 한다니까요."

"그러게요. 무크씨 정말 잘 싸우던데요."

"저격수를 처리한 것은 올바른 판단이었습니다. 다만 건물 진입에서 너무 서두른 것 같네요."

혼자서 3명을 사망시켰으니 대단하다면 대단한 결과였다. 특히 건물 입구에서 번개처럼 2명을 잡아낸 것을 분석하던 사람들은 연신 전투력을 칭찬했다.

"이거 우리도 좀 더 훈련해야겠어요. 개인 전투력에 따라 쓸 수 있는 작전이 더 많아지는 것은 확실한 거니까요."

"다음에는 무기를 통일해서 한 번 써보죠. 각자 개인 취향에 맞춘 화기만 쓰니 안 맞는 부분도 좀 있습니다."

전투의 분석을 들으며 심후는 생생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현실과 완벽히 똑같지는 않지만 유사한 전투 경험을 쌓는 것은 지금의 심후에게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일이었다. '전투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다.

'게임을 즐길 때와는 딴판이었다. 게임에서는 스킬을 잘만 쓰면 혼자서 휩쓸고 다니는 것이 가능했지만 현실은 아니었다.

총기를 이용하는 전투, 특히 집단 전투에선 함께 움직이는 것이 굉장히 중요했다.  '다음에는 꼭 끝까지 살아남는다.

'만약 방금 전투가 현실에서 진짜로 일어난 일이었다면 심후는 죽은 목숨이었다.'

작전의 성공보다는 생존을 우선하자.'집단의 입장에서보자면 비겁한 결심이었다. 하지만 현실을 염두에 두고 경험을 축적하는 심후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목표는 생존이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익히는 것이었다.

살아남지 못한다면 무의미했다.

심후의 일을 계속 보고 받고 있던 강운은 점점 의문에 휩싸였다.

'설마 총 들고 가서 복수라도 하려는 건가?'

게임 속에서 밀리터리 매니아들과 함께 현실과 최대한 똑같은 조건 속에서 모의 전투를 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올라이프 50에서도 꽤 유명한 사람들이었다.

이들 중에는 전역한 특수 부대의 대원도 포함되어 있다고 했다.

'좋지 않은데.'

라이벌이 엉뚱한 길로 빠진 것 같아 강운은 기분이 몹시 좋지 않았다.

"나갈 준비 해."

직접 만나서 물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강운은 외출을 준비했다.

"저 건물은 뭐냐?"

"사생활입니다."

"듣자하니 서버 센터 지었다면서?"

"감시한 겁니까?"

"물론."

감시를 했다는 말은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이미 각오한 것이기에 특별히 화내거나 하지 않았다. 현재 적은 테러범들이었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 전체가 아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마구잡이로 싸우다보면 사방이 적으로 가득하게 될 뿐임을 알고 있는 심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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