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고루 익히면 무적이 된다.'
재빠른 유저들은 이미 게임 속에서 달리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원하는 스킬을 익히기 위해 다른 문명으로 넘어가려고 하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판타지나 무협 문명의 유저들이 총을 얻기 위해 과학 문명에 넘어왔지만 이젠 반대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또한 경매장에 올라온 다른 문명의 스킬북들의 가치가 엄청나게 치솟았다.
"친구들? 봤지? 이게 내 솜씨야."
학살을 끝마친 심후가 웃으며 말하자 몇몇 유저들은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마지막 마무리는 내 친구가 해줄 거야."
순간 영상의 시야가 변했다. 거대한 메트로 타워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었다.
잠시 뒤, 심후가 영상에 다시 등장했다. 거리가 꽤 먼 곳인데 어느 새 건물을 빠져 나온 것이었다.
게임 좀 하는 사람들은 심후의 이동 속도에 전율을 느꼈다.
"시작하지?"
신호와 함께 빌딩에서 폭발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맨 아래에서부터 차례대로 위로 한 층씩 터져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폭발과 함께 흙먼지가 날아다니더니 거대한 빌딩이 주저앉기 시작했다.
처음은 느렸다. 허나 무너지기 시작하자 가속이 붙더니 한 순간에 주저앉아버렸다.
이후 거대한 먼지가 피어올라 잘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우리가 했다하면 이 정도야. 앞으로 잘 부탁해. 안녕 친구들."
영상이 꺼지는 순간 게임 게시판에선 난리가 났다.
============================ 작품 후기 ============================
주말 시작한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정신 차리고 보니 일요일 저녁이네요.
시간 참 빠릅니다.
모두 남은 일요일 즐겁게 보내시고 더위 조심하세요.
오늘도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작품 후기 ============================
주말 시작한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정신 차리고 보니 일요일 저녁이네요.
시간 참 빠릅니다.
모두 남은 일요일 즐겁게 보내시고 더위 조심하세요.
오늘도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ps. 소설 올리고 확인하려는데 1화 내용이 보여서 깜짝 놀랐었습니다. 계속 고치려고 하는데 없는 편수라는 메시지도 보였다가 이상하네요. 어쨌든 한 편 더 올렸던 것은 같은 내용 반복이었습니다.
'대단하네.'
에린은 심후의 유저 학살 영상을 보며 감탄했다. 자신이 종종 하던 플레이를 심후가 해낸 것이었다.
심후는 에린과 달리 민첩이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플레이를 해낸 것이었다.
물론 여러 가지 상황이 겹쳐져서 만들어낸 운도 무시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심후가 해낸 일을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하고 싶지 않은 에린이었다.
게시판을 확인해보니 보통 난리가 아니었다.
올라이프 유저들은 자신들의 문명 밖으로 뛰쳐나가야 함을 깨달았다. 하나의 문명에만 심취하는 것은 뒤쳐질 수 있는 위험이 크다는 것을 느꼈다.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기 전에 뛰쳐나가야만 한다는 위기의식이 유저들을 덮쳤다. 잠시 뒤, 게시판은 조용해졌다.
저마다 게임하러 간다며 사라진 것이었다. 몇몇 사람들이 끈질기게 남아있긴 했다.
이들은 대부분 심후를 욕했다.
- 아니 지가 오리진인지 뭔지 인증한다고 해놓고 이게 뭐야?
- 잘 싸우면 오리진인가? 하여간 사기꾼 새끼.
욕이 마구 난무했다.
허나 그 순간 아직 나가지 않고 동영상을 감상하던 느긋한 유저들이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 지금 나온 유저가 오리진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때. 좋은 구경 했으면 됐지.
- 잘 싸우는 놈이 짱 먹는 거지 뭐. 별 거 있나?
- 에휴, 욕질할 놈들은 해라.
난 마법이나 익히러 갈란다.
대부분의 유저들은 인증에 대해 신경 쓰지도 않았다.
심후가 원래부터 깨끗한 인물이 아니었기에 사람들은 기대하지도 않았다. 최초의 도플갱어 유저는 그냥 막 나가는 PK범에 불과했다.
때문에 누군가 사칭하거나 사기를 쳐도 이미지 손상 같은 것이 생길 리가 없었다.
이미지는 원래부터 바닥이었다.
게임 유저들은 그저 새로운 플레이에 자극 받은 것뿐이었다. 악당이건 정의의 용사건 혼자서 다수를 상대로 전투를 벌여 이기는 모습은 흥분을 안겨주었다.
에린은 유저들이 심후를 욕하는 것을 보면서도 동요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에 일일이 신경 쓰는 것은 시간 낭비였기 때문이었다.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면 그냥 무시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더 이로웠다.
게시판 창을 닫고 조용히 차를 마시던 에린은 눈을 감고 심후의 모습을 떠올렸다.
'무공 덕분이라면 나보다 훨씬 뛰어난 게 분명해.'
항상 평범한 인간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자신을 철저히 숨기고 있었던 것이었다. 사회 밑바닥에서 위로 올라가기 위해 자신을 숨기는 일은 사실 쉬워 보여도 어려웠다.
뛰어난 능력을 갖게 되면 사람은 그것을 시험해보고 싶어서 안달이 나는 것이 보통이었다. 더구나 심후는 상류층 인간들만 익힌다는 무공을 익혔다. 어른이라고 해도 사용해보고 싶은 강렬한 유혹을 느낄만한 힘이었다.
심후는 그것을 통제했다. 정말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만약 심후가 계속 입을 다물었다면 자신이 먼저 알진 못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도 날 믿어줬어.'
시험한다고 했지만 기분 나쁘지 않았다.
믿어보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시험하는 것이었다. 마음에 들지도 못했다면 시험 받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에린은 거울을 들어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테러로 인해 입은 상처가 아직도 선명히 남아있었다.
화상으로 일그러진 피부는 보기 흉했다.
"제니, 피부는 언제 준비된다고?"
"일주일 후에 완성된다고 합니다. 수술 날짜도 잡혔습니다."
"차질 없게 잘 부탁해."
"네, 아가씨."
거울을 내려놓은 에린은 투자 보고서를 들고 살펴보기 시작했다.
'돈이나 더 벌어놔야지.'
사랑하는 심후와 같이 게임을 하고 식사를 하고 산책도 하고 싶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품에 안기고 싶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언제나 예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에린을 병원에 잡아두었다. 심후와 민성은 열심히 돌아다녔다.
그냥 돌아다니는 것은 아니었다. 좀 잘 나가는 길드마다 찾아가서 시비를 걸고 학살하기 시작했다.
과학문명은 이로 인해 초토화 되었다. 직접 학살의 대상이 되지 않은 유저들도 피해를 입기 시작했다.
부자 길드의 존재가 있고 길드간의 다툼이 있기 때문에 아이템 소모율이 올라가는 법이었다. 그런데 다툼이 사라졌다. 싸워야 할 길드들이 새로운 스킬을 익히겠다고 모조리 다른 문명으로 이동한 것이었다.
당하지 않은 길드들도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였다. 뒤쳐진다면 후일 자신들이 당하리란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도태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은 과학 문명을 썰렁하게 만들었다. 거대 길드들의 잠깐 동안의 이탈이 큰 공백이 되어 돌아온 것이었다.
아이템을 팔지 못한 유저들도 투덜거리긴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자금을 따라 이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더 큰 성공을 원한다면 다른 문명과의 교류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었다.
날이 갈수록 비어버리는 과학 문명의 도시를 돌아다니며 심후와 민성은 웃었다.
"굉장해. 혼자서는 꿈도 못 꿀 일이었는데."
"좋다!"
현재 서 있는 도시에는 아무도 없었다. 도시에 존재하는 모든 유저들을 죽이고, 죽이고, 또 죽였다.
질려버린 유저들은 도시를 떠났다.
두 사람은 그렇게 도시를 점령해버렸다.
도시의 유일한 시민은 NPC와 좀비들 밖에 없었다. 텅 비어버린 도시의 도로 위에 서자 고요를 깨는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먼지를 담은 지저분한 바람은 거리에 쓸쓸함을 더했다.
사람이 없는 거리를 보는 심후는 삭막함 속에 평화를 느꼈다.
과거 사막에 섰을 때 느낀 감각이 되돌아 온 것이었다.
마음이 치유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마냥 즐길 수만은 없었다.
'저 자식.'
바로 옆에 서서 자신과 같이 비어버린 도시의 쓸쓸함을 느끼는 민성 때문이었다.
'이제 슬슬 시작해볼까?'
유저를 함께 학살하며 꽤 친해졌다 싶은 심후는 작업을 할 때가 왔음을 느끼곤 행동으로 옮겼다.
"그런데 넌 왜 이런 플레이를 하는 거야? 돈 많은 유저나 길드를 집중적으로 노리던데 무슨 일 있었어?"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게임 플레이에 대한 것을 꺼내자 민성의 두 눈이 번뜩였다.
"돈 많은 놈을 보면 짜증이 나. 돈 좀 있다고 사람을 개 취급하잖아. 그런 새끼들은 다 죽어야해."
살기와 광기가 번뜩이는 눈빛이었다.
소름끼치도록 차가운 눈빛은 물리적인 힘을 가질 수 있다면 사람을 얼마든지 베어버릴 것 같았다.
'조사한 대로 원한이 심하군.'
현재 보이는 모습만 놓고 본다면 진짜 테러라도 할 기세였다.
"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래?"
말문이 트이자 민성은 이성을 잃고 주절주절 자신의 과거 얘기를 했다. 애인이 있었는데 애인이 직장 상사와 바람이 난 것이었다.
문제는 애인이 그것을 계속 숨기고 양다리를 걸친 것. 나중에 사실을 안 민성이 직장 상사를 찾아가 따지려는데 역으로 폭행을 당한 것이었다.
"그런데 애인이 찌질하게 군다고 헤어지자고 하네. 그리곤 그 놈하고."
문제는 그 뒤였다.
헤어진 애인은 남자에게 달라붙어 키스를 하는 둥 애정 표현을 하기에 바빴다. 직장 상사는 바닥에 쓰러진 민성이 보는 앞에서 애인의 은밀한 부위를 쓰다듬으며 자존심에 상처를 주었다.
충격을 받은 민성은 넋이 나갔다. 여기에 다시 충격을 준 것은 애인의 직장 상사는 여자가 많았다는 것과 민성의 애인도 그 사실을 알면서도 달라붙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 들은 것이었다.
"돈이 많으면 다 되더라고. 빌어먹을 세상이지. 신뢰? 애정? 그딴 게 다 무슨 소용이야? 돈만 있으면 되잖아!"
민성은 다시 한 번 절규하더니 폭탄을 꺼내 빌딩을 향해 던졌다.10초가 지나자 폭탄이 터졌고 빌딩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상에는 돈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는 걸 알았지. 그건 사람이야. 히히히."
민성은 더 이상 중요한 것은 말하지 않았다. 심후는 더 듣지 않아도 민성이 숨기고서 즐거워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래, 사람이 더 무섭고 중요한 거지. 돈도 결국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니까.'
공감이 안 가는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공감이 간다고 해서 용서할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았다.
'그리고 넌 날 건드렸지.'
속으론 이를 뿌드득 갈면서도 겉으로는 태연한 척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런데 넌 왜 그래? 싸이코패스는 아닌 것 같은데 유저들하고 어울리는 것 같지도 않고."
다시 소소한 대화를 이어나가던 중 민성이 물어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하는 심후였다.
"사실은 나도......."
차영과 영수 때문에 겪은 일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게임 속에서 복수하기 위해 열심히 실력을 쌓아 죽였다는 얘기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정도 뿐이더라고."
많은 진실을 숨겼지만 드러난 진실만으로도 충분했다.
"에이, 빌어먹을 세상. 믿을 놈이 왜 이렇게 없냐?"
민성은 투덜거리며 심후를 위로했다.
배신이란 아픔을 짊어진 두 사람은 빠르게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월요일이지만 모두 즐거운 시간 보내시고 더위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민성은 투덜거리며 심후를 위로했다. 배신이란 아픔을 짊어진 두 사람은 빠르게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월요일이지만 모두 즐거운 시간 보내시고 더위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민성은 투덜거리며 심후를 위로했다.
배신이란 아픔을 짊어진 두 사람은 빠르게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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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린은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예전과 같은 아름다운 모습이 재현되어있었다.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피부 이식은 성공이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퇴원을 서두르지 않고 좀 더 경과를 지켜보았다.
"아무 문제없습니다. 다만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변화는 어떻게 될 지 예측하기가 어려우니 양해해주십시오."
병원장이 직접 나서서 에린에게 양해를 구했다. 에린도 잘 알고 있는 문제였기에 까다롭게 굴지 않았다.
"문제가 생기면 그때 또 부탁드릴게요."
"물론입니다.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병원을 나서는 에린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가벼웠다.
"심후씨는?"
"현재 거처에서 게임 중입니다."
"연락해. 바로 갈 거니까."
"모시겠습니다."
연락을 받은 심후는 게임을 하다 말고 나왔다.
에린이 퇴원해 방문한다니 얼굴을 보기 위해서였다. 샤워를 하고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초인종이 울렸다.
"어서 와요."
심후가 현관문을 열자 들이닥친 에린은 바로 품에 안겼다.
"보고 싶었어요."
부드러운 몸에서 풍기는 여인의 향기에 정신이 아찔했다.
몸 한 가운데에 있는 남자의 상징은 돌처럼 단단해졌다. 그것을 느낀 에린은 좀 더 몸을 밀착하며 팔에 힘을 주었다.
"일단 들어와요."
에린은 떨어지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힘으로는 심후를 이길 수가 없었다.
"밥은 먹었어요?"
"아뇨."
"그럼 같이 먹어요. 조금만 기다려요."
묘하게 두근거리는 기대를 안은 심장은 조금씩 흥분을 흘리는 중이었다. 심후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채워지는 기분이 들자 에린은 깨달았다.
'나 정말 사랑하고 있어.'
틀림없는 사랑이었다. 사랑하는 남자가 자신을 소파에 앉혀두고는 요리를 하고 있었다.
아주 간단한 볶음밥이었다. 계란과 간장, 그리고 버터만 사용한 간단한 볶음밥을 만드는데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피클과 함께 계란 볶음밥으로 차린 식탁에 초대된 에린은 기쁜 표정을 지었다. 사랑하는 남자가 만들어준 음식이었다.
그것도 단 둘만의 식사.
아주 간단한 볼품없는 요리지만 에린에게는 성찬이었다.
'음!'
입안에 들어간 볶음밥은 버터와 간장향을 머금고 있었다.
씹히는 밥을 감싼 계란과 버터, 그리고 간장의 조화로 탄생한 감칠맛은 혀를 꽁꽁 묶어 포로로 만들었다.
서둘러 두 수저를 먹고 살짝 느끼함이 느껴질 때 앞에 피클이 다가왔다.
"밥만 먹으면 느끼하니까 피클도 먹어요."
심후가 내민 피클을 본 순간 에린의 심장은 흥분해 터지는 줄 알았다.
'이것은 애인끼리 먹여주기!'
심후가 피클을 뒤로 뺄까 싶은 에린의 입은 피클을 덥썩 물었다.
먹이를 놓치지 않고 달려드는 암사자와 같은 날렵함이었다.
아삭한 식감과 함께 퍼지는 짭짤한 염분과 달콤하면서도 시큼한 맛이 입안에 퍼진 기름기를 다스려주며 또 다시 볶음밥을 원하게 만들었다.
에린의 손이 점점 빨라지며 볶음밥과 피클을 오가기 시작했다.
식사 시작 5분 만에 그릇이 다 비워졌다.
에린은 약간 아쉬운 표정을 하고는 접시를 바라보았다.
"그만 먹어요."
에린을 관찰하던 심후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귀엽네.'
식사하는 모습을 보며 느낀 솔직한 감상이었다. 부잣집 따님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음식이었으나 가리지 않고 먹는 모습에 가식은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기쁘게 먹고 있었다. 다시 만난 에린은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고 있었다.
숨기는 것도 없었다. 앞으로 굉장히 즐거워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지만 심후는 내색하지 않았다.
에린이 어느 정도 마음에 든 것은 사실이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선 아직 깊이 신뢰하는 마음이 생기질 않았다.
"일단 할 말이 있어요."
심후는 자신이 하려는 일을 얘기했다.
이야기가 길어지자 에린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질문을 던졌다.
"직접 접촉하는 것은 위험해요. 대역을 써요."
"역시 그렇겠죠? 하지만 대역이 잘못하면 모두 숨어버릴 수 있어요."
"그쪽으로 전문인 사람들이 있어요. 걱정 말아요."
심후가 민성과 친분을 다진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민성을 통해 테러를 배후에서 조직한 이들에게 접근하려는 것이었다.
허나, 에린은 반대했다. 심후가 유명 인물이기 때문에 자칫하면 역으로 꼬리를 끊기 위해 심후를 죽이려 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심후는 바밥바를 잃은 상황이었다. 상대의 입장에선 심후가 수사에 협조하고 있는 것으로 볼 여지는 충분했다.
심후도 이를 알고 있기 때문에 고집 부리지 않았다. 민성과 테러 조직이 믿을만한 거짓말을 만들어낼 준비를 하긴 했지만 너무나 위험성이 큰일이기에 망설여지기도 했었다.
'거짓말이 안 통하면 큰일이지.'
상대는 대화가 안 통하는 존재라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해야 했다. 암살을 위해 폭탄 테러를 하는 인간들이었다.
결국 에린과 심후는 대역을 써서 민성에게 접근시키기로 했다.
"대역은 우리 가문에서 준비할 테니까 심후씨는 확실하게 정보를 담당해줘요."
"날 믿는 건가요? 가문에서 직접 정보팀을 동원하면 될 텐데요?"
"심후씨를 믿어요. 가문에서도 정보팀을 동원하겠지만 심후씨가 도와준다면 더 확실할 테니까요. 그나저나 부탁이 있어요."
"뭔데요?"
"저도 여기서 살면 안돼요?"
"같이요?"
"네, 매일 보고 싶어요."
살며시 손을 잡아오는 에린의 눈을 본 심후는 고민했다. 가까이 둔다는 것은 자신을 계속 지켜보게 내버려둔다는 뜻이었다.
'믿을 수 있나?'
제니가 자신을 감시할까봐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했었다. 하지만 에린이 직접 부탁하니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맹렬하게 부딪쳐오는 솔직한 감정의 해일은 마음의 장벽을 계속 넘어 가슴에 스며드는 중이었다.
"날 지켜보려고요?"
"아뇨, 그냥 같이 있고 싶어서요. 부담스럽다면 거절해도 되요. 그냥 매일 아침 심후씨를 보고 싶은 것뿐이니까."
흔들림 없는 눈동자였다. 거짓이라고는 하나도 담겨있지 않았다. 목소리에서도, 심장박동도, 눈빛도 모두 진실을 말하는 자의 것이었다.
"날 배신하는 일은 없었으면 해요."
"죽어도 그런 일은 없어요."
살며시 안겨오는 에린을 품에 안은 채 심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에린의 이사는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끝났다.
가구 같은 것을 마구잡이로 들여오거나 하지도 않았다. 들여온 가구라고 해봐야 잘 때 쓸 작은 침대 하나였다.
그 외에 큰 물건은 접속기가 전부였다.
메이드들도 들어오지 않았다.
에린은 심후와 단 둘이서만 지내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메이드와 경호원들은 인근에 구입해놓은 건물에서 지내게 되었다.
"불안하니까 아예 사유지로 만듭시다."
지나가던 차량이 갑자기 돌진해서 폭발한다면 난리가 나기에 경호원들은 인근의 땅을 사들일 것은 권했고 에린은 승낙했다.
이후 빠르게 철조망이 쳐지며 인근 교통은 통제되었다. 외진 곳이라서 건물이 별로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편, 심후는 에린과 함께 게임을 하며 도플갱어 유저들을 모으게 되었다. 에린이 심후와 민성에게 합류한 이후 이들의 악명은 더욱 유명해졌다.
강운이 여기에 끼고 싶어 했지만 도플갱어의 육신 스킬이 없으면 안 된다는 말에 울부짖으며 스킬 수련하러 떠나는 해프닝도 있었다.
도플갱어 유저는 계속해서 늘어났다.
단체로 좀비의 모습을 하고는 문명을 돌아다니며 휩쓸기 시작했다. 심후의 저격, 에린의 난사, 민성의 폭탄, 그리고 그 외의 도플갱어들의 지원이 겹치자 무시무시한 위력을 발휘했다.
이들은 그야말로 과학문명에서 무적이었다. 어떤 길드도 도플갱어 앞에서는 패배했다.
제일 무서운 것은 심후였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뒤통수를 때리는 심후의 저격은 같은 편인 도플갱어 유저들에게도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계속 늘어나는 동료들로 인해 민성은 즐거움을 느꼈다. 특히 부자 유저들을 괴롭히며 계속 죽이고 죽여서 게임을 접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하는 일에 쾌감을 느꼈다.
이로 인해 심후와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졌고 급기야 현실에서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오늘도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민성은 심후의 대역으로 나선 남자와 만나며 화끈한 밤을 보냈다. 두 사람은 1차로 밥을 먹으며 술을 한 잔씩 한 이후 2차로 나이트클럽에 가서 여자들을 만나 즐긴 것이었다.
평범한 월급쟁이답지 않게 돈을 펑펑 쓰며 민성은 환심을 사려고 했다. 둘 다 여자를 끼고 고급 호텔에서 뼈와 살이 녹는 밤을 보냈다.
심후의 대역으로 나선 남자는 졸지에 미녀를 끼고 즐겁게 놀기까지 해서 기분이 좋았다. 그렇다고 실수하거나 하는 일은 절대 없었다.
뜨거운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자 두 사람은 천천히 일어나 늦은 아침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심후의 복수 얘기가 나오자 민성은 두 눈을 반짝였다.
"내가 도와줄까?"
"어떻게?"
"사실 내가 아는 사람들이 있는데 말이야."
드디어 원하던 정보가 나왔다. 정보는 매우 간단했다.
민성도 일을 벌일 때 사람들을 잠깐 만나기는 했지만 자세한 것은 알지 못했다.
정보를 얻는 순간 심후는 테러범들이 점조직을 형성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돈을 준 인간, 차를 가져다 준 사람, 계획을 알려준 사람 모두 다르다. 더구나 연락처를 알고 있는 인간은 오직 한 명. 그것도 새로운 사람을 소개시켜줄 때나 사용하라고 준 것.'
민성과 접촉한 사람들이 전부 테러범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어쩌면 역할에 맡는 사람을 돈 주고 고용했을지도 몰랐다.
민성에게도 거액을 주었으니 가능성을 부정하긴 어려웠다.
어찌 되었든 간에 추적하는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