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거나 계속 쏴보자."
거대한 눈동자를 향해 거침없이 공격이 쏟아졌다. 보스 몬스터는 계속 아프다며 고개를 돌리며 피하기 시작했다.
"아야!"
"아파!"
"아프다고! 그만!"
"왜 이러는 거야! 내가 뭘 잘못했다고!"
보스 몬스터는 반격할 생각은 안하고 연신 보스방 안을 뛰어다니며 공격을 피했다. 머리를 이리저리 돌리며 공격을 피해보려 하는 몸짓이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보스가 뭐 이래?"
계속 공격을 하던 심후는 어이가 없었다. 허탈함에 이어 분노가 치밀었다.
"이런 개 같은 개발자가!"
농락당한 기분이었다. 99번이나 던전을 깨고 드디어 맞이한 100번째. 강력한 적을 맞이해 싸울 준비를 갖췄건만 보스는 반격도 하지 않았다.
표적은 너무 넓어서 일부러 빗맞추기 위해 공격하지 않는 이상 전부 다 적중했다.
이건 싸움이 아니었다.
즐겁지가 않았다. 너무 허탈해서 짜증이 났다. 허나 그렇다고 공략을 그만 둘 수 없어서 연신 욕을 하며 더욱 맹렬히 공격했다.
"크윽! 너희들 전부 해고야!"
보스가 쓰러지며 남긴 한 마디로 인해 깨달을 수 있었다.
"개발자가 사장한테 유감이 많았나봐."
"이런 던전을 만들어 놓다니. 거 참."
전투가 끝나자 심후와 에린은 허탈해졌다. 보스가 경험치만 잔뜩 주고 아이템은 하나도 주지 않은 것은 신경 쓰지도 않았다. 특수 보너스로 보유하고 있는 스킬 레벨이 하나씩 상승하는 보너스가 있었으나 신경 쓰지도 않았다. 그만큼 허무했다.
"다 끝났네."
"허무해."
"그러게."
뒤돌아 나오는 동안 두 사람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성취감을 강탈당한 탓이었다.
어려운 일을 해내면 사람은 성취감을 느낀다. 자신이 해낸 일이 어려웠던 만큼 자신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었다.
그럼으로써 자신감이 더욱 붙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판에 모든 것이 망가졌다.
허나, 입구에 거의 도착하는 순간 이상한 것이 보였다.
"저기 누가 서있는데?"
"응?"
가까이 다가가니 입구에 서 있던 동상이었다.
"내....... 이빨....... 내 놔........"
"뭐?"
"내 이빨 내놔아아아아아아아아아!"
가까이 다가가자 동상이 갑자기 괴성을 질렀다. 순간 주변의 모든 것이 변하더니 원형의 넓은 판 위에 서 있게 되었다.
"이건 접시 같은데?"
바닥은 하얀 접시처럼 생겼고 다른 부분은 우주였다.
"내 이빨 어디다 숨겼어? 아! 버렸어? 버렸다고? 감히 내 이빨을 버려!"
동상은 혼자 마구 지껄이더니 분노했다. 그리고 점점 몸을 변형시켰다.
"크아아아아아아아!"
동상은 드래곤으로 변신했다. 그리고 울부짖었지만 이빨이 없었다.
"다 삼켜 버리겠다!"
드래곤의 머리가 달려들자 심후와 에린은 좌우로 흩어지며 전투를 시작했다.
두 사람은 더 말하지 않았다. 동상이 거대한 드래곤으로 변한 순간 직감했다.
동상이 진정한 던전의 보스였던 것이었다.
두 사람은 연신 총을 난사했다.
아무렇게나 쏴도 빗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으니 총기의 공격은 그리 큰 데미지를 입히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폭탄!"
심후의 외침에 에린은 폭탄을 꺼내 던지기 시작했다.
입을 벌리고 달려드는 드래곤의 입 안에 폭탄을 던져 넣어줬다. 허나, 드래곤은 죽지 않았다.
입을 벌리며 속에서 일어난 불길을 살짝 뿜어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진정한 괴물이었다.
"내 이빠아아아아알! 멋진 내 이빠아아아알!"
드래곤은 연신 이빨을 외치며 공격해왔다. 심후와 에린은 개미처럼 빨빨거리며 열심히 공격을 피하며 반격하기에 바빴다.
'이대로는 안 돼.'
에린의 폭탄도 그리 큰 효용이 없음을 알게 된 심후는 무기를 바꿨다. 총을 집어넣고 검을 꺼낸 후 블링크를 이용해 드래곤의 몸에 접근해 칼질을 시작했다.
이를 본 에린도 똑같이 검을 꺼내 합공하기 시작했다.
"안 돼! 이빨에 이어 비늘까지 빼가려고? 나쁜 자식들! 도둑놈들!"
심후는 계속 같은 곳만 칼질해 비늘 하나를 떼어내는 것에 성공했다. 그러자 드래곤이 높이 날아오르더니 꼬리를 휘둘러왔다.
빠르게 휘둘러진 꼬리는 심후를 강타하는가 싶었지만 블링크를 이용해 피해낸 심후는 어느새 꼬리를 잡고 드래곤의 등 위에 올라섰다.
"어딜 올라와!"
등 위에 적이 올라선 것을 감지한 드래곤은 비늘을 세우더니 전류를 흘리기 시작했다.
"크윽!"
예상치 못한 공격에 당한 심후는 몸이 마비가 되어 움직일 수 없었다. 이어 꼬리가 날아와 심후를 때리려 할 때 에린이 달려와 심후를 낚아챘다.
"이제 어떻게 해?"
"몰라! 그냥 쏴!"
심후와 에린은 다시 접시 위에 올라서서 총을 꺼내 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주 길고 긴 전투가 이어졌다. 드래곤은 꼬리를 쓰고 불길을 토하고 몸통으로 돌진까지 해봤지만 두 사람은 이리저리 빠져나가 잡히지 않았다.
"총알이 없어!"
"권총 써!"
총을 얼마나 쐈는지 준비했던 탄약이 모두 떨어졌다. 결국 예비 겸 폼으로 준비해 놓은 권총을 뽑아들고 한 발씩 쏴야할 지경에 이르렀다.
"더럽게 안 죽네!"
"죽어! 죽어!"
"내 이빠아아아아아알!"
권총도 결국 사용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남은 것은 오로지 검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결국 검을 들고 난도질을 해야만 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전투는 결국 끝을 맞이했다.
장장 8시간에 걸친 사투 끝에 드래곤이 쓰러진 것이었다.
"내....... 이빨....... 아름....... 다....... 운....... 내........"
마지막 말을 남긴 드래곤은 결국 쓰러졌다.
"수고했어."
육체적으로도 힘들 정도로 긴 전투였다. 화장실 가고 싶은 것도 꾹 참고 싸우다 결국 착용한 기저귀에 해결하고 싸워야했다.
기저귀에 싸고 싸운다는 생각에 기분이 몹시 더러웠다. 밥도 먹지 못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 히든 보스가 튀어나왔기에 준비도 제대로 하지 못했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정말 깨지 못할 난이도였다.
심후와 에린은 멍하니 쓰러진 드래곤의 사체를 바라보았다. 줄기차게 울린 메시지를 확인할 생각도 안 하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만큼 피곤했다.
"깼다."
"응."
두 사람은 서로를 꼭 끌어안고는 드래곤의 사체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이어서 살짝 입술이 붙었다 떨어졌다.
"그럼 보상이나 확인해볼까?"
휴식 뒤에 확인한 보상은 많지는 않았지만 달콤했다. 보유한 스킬을 전부 2레벨 상승시켜주는 것은 물론 하나의 스킬북과 아이템이 두 사람을 웃게 했다.
하나는 '아스트랄 바디'라는 레전드급 스킬이었다. 모든 상태이상과 마법으로부터 보호해주는 힘을 가진 패시브 스킬이었다.
스킬 레벨이 오르면 보호력이 더욱 상승하는 기능이 있었다. 아울러 레벨이 상승할 때마다 모든 공격을 15% 상승 시켜주었다.
모든 레벨을 올린다면 보너스로 150%의 두 배인 300% 상승이 이뤄진다는 설명이 덧붙여져 있었다. 에린은 당연하게도 스킬을 심후에게 양보했다. 그리고 아이템은 자신이 가졌다.
"이건 내가 쓸게."
심후는 미련없이 아이템을 양보했다. 아이템은 별 것 아니었다.
반투명한 색으로 빛나는 이빨이었다. 에린이 아이템을 사용하자 이빨이 장착되었다.
"어때?"
이빨을 드러내며 웃자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예뻐."
"히히!"
'아스트랄 치아'라고 불린 이빨은 상점 거래시 50%의 할인을 받게 해주는 기능이 있었다. 더불어 유저를 죽여도 PK 카운트가 올라가지 않았다. 즉, 아무리 유저를 죽여도 감옥에 가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시험해 봐야지?"
"응!"
"시험해 봐야지?"
"응!"
던전을 나온 두 사람은 바로 필드에 나가 유저들을 학살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어느새 한주가 훌쩍 지나고 금요일이 됐네요.
모두 즐거운 금요일 보내시고 더위 조심하세요.
오늘 하루도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자식이 지금 뭐하는 거지?'
올라이프에 뿌려놓은 감시자들로부터 보고를 받은 강운은 인상을 찌푸렸다. 3개월의 시간을 달라고 해서 줬건만 심후가 게임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수련은 하지 않고 게임을 해? 날 놀린 건가?'
분노가 치밀었다. 농락당한 것이라면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화가 난 강운은 바로 게임에 접속했다. - 너 지금 뭐하는 거냐?
- 게임 중.
- 무공 수련은?
- 하고 있어.
- 게임이 무공 수련이냐?
- 게임하면서 구결 암기 중.
대충 대답하는 것이 느껴졌다.
강운은 화가 났다. 매우 화가 났다. 너무 화가 나서 당장에 달려가 패대기를 치고 싶었다.
- 너 죽었어.
- 화났어?
- 너라면 화 안 나겠냐?
- 그럼 이렇게 하자. 게임에서 나랑 싸워서 이기면 난 게임 안 하고 무공 수련하러 갈게. 대신 내가 이기면 가만히 있기.
- 계속 도망 다니면 싸움 자체가 성립이 안 되지.
강운은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았다. 지금까지 분석한 바에 의하면 심후의 주요 전투 스타일은 멀리서 저격하는 것이었다.
근접전을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에게 비한다면 어림 없는 실력이었다.
- 근접전으로 하자고. 일정 거리 이상 벗어나지 않을게. 콜? 그런데 웬일로 심후는 강운이 원하는 것을 먼저 말했다.
- 좋아 지금 당장 내가 거기로 간다.
"황태자랑 싸우게?"
"응, 너무 무시하면 원한 사니까."
"그런데 괜찮겠어?"
"걱정 마. 다른 스킬 다 마스터 찍었어. 새로 익힌 것만 조금 더 수련하면 돼."
이빨 던전을 깨면서 익히고 있던 스킬 레벨이 모두 마스터가 되었다. 100번에 걸쳐 던전을 공략하며 수없이 많은 몬스터들과 싸우며 스킬 숙련도를 올렸고 마지막에 3레벨이나 무조건 올려주는 보상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심후는 숫자가 많아서 막판에는 스킬 레벨을 올리기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지만 막강한 보상 덕분에 스킬 레벨업이 쉬워졌다. 새로 얻은 레전드급 스킬인 아스트랄 바디는 열심히 사냥한 덕분에 조금만 더 숙련도를 쌓으면 2레벨로 올라설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총 30%의 공격력 향상이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심후는 자신 있었다. 이빨 던전에 비하면 강운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강운이 도착한 것은 심후의 아스트랄 바디 스킬이 2레벨에 올랐을 때였다. 스킬을 많이 배웠기 때문에 스킬 레벨을 하나 올리는 것만 해도 상당히 격한 전투를 벌여야만 했다.
스킬 레벨업을 위해 에린과 메이드들이 쉬지도 못하고 몬스터를 몰아와야만 했다. 그리고 심후는 몬스터들 사이에서 기계처럼 싸웠다.
이제 싸움은 익숙했다.
사방이 온통 몬스터 천지였지만 당황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강력해진 캐릭터의 힘으로 스킬을 연신 쓰며 전투에 점점 더 익숙해졌다.
"그만하지?"
"지금 덤벼도 돼."
몬스터를 사냥하는 와중에 덤벼도 좋다는 말은 분명한 도발이었다. 강운의 심장은 분노로 폭주하는 중이었지만 머리만큼은 차가워지고 있었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강운의 신형이 고무줄처럼 늘어나는가 싶더니 심후의 목에 검이 닿으려 했다.
예고도 없는 번개 같은 움직임에 목이 떨어지는가 싶었지만 심후도 만만치 않았다. 블링크로 피해버리자 강운의 검은 잔상을 베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두 사람의 전투에 기합은 없었다. 격돌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힘들었다.
심후는 정면으로 공격을 받아내지 않고 모조리 피했다.
'정면 공격을 받으면 내가 밀릴 게 뻔해.'
강운의 스킬 중에 방어 무시라는 스킬이 있다면 데미지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회피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심후는 강운의 공격을 회피하며 슬쩍슬쩍 공격을 성공시켰다. 모두 자잘한 공격이라 큰 데미지는 들어가지 않았으나 심후는 침착하게 계속 싸웠다.
장기전으로 갈 속셈인 것이었다.
'한 방에 죽일 수 없다면 공격보다는 회피지.'
강운은 공격당해도 무시하고 한 방 치겠다는 방식으로 전투를 이끌어가려 했지만 심후는 계속 피했다. 또한 몬스터를 잡고 있던 상황이라 다른 몬스터들을 장애물로 이용하기도 했다.
"젠장!"
심후를 한 방도 때릴 수 없게 되자 강운은 욕을 내뱉었다. 어찌 된 것이 공격이 닿을 것 같으면서도 닿질 않았다.
아슬아슬한 줄타기와 같은 공방이 이어졌다. 한 걸음만 더 다가가면 맞을 것 같은데 한 걸음을 줄이는 것이 불가능했다.
반면 심후는 처음에는 검만 사용하더니 남은 한 손에 서브 머신건을 꺼내 들고 난사를 시작했다. 방어력이 강력한 강운에겐 1 정도 밖에 뜨지 않는 데미지지만 연사하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계속 맞다 보면 평타 한 번 맞은 정도의 효과가 나타났다.
계속해서 검을 써도 맞지 않자 강운은 급기야 비밀 무기를 꺼내들었다. 바로 권총이었다.
척 보기에도 육중한 권총의 총구는 일반 권총에 비해 훨씬 길고 굵었다.'맞으면 좋지 않을지도'권총을 본 순간 심후는 더욱 속도를 높였다.
지금까지는 강운이 어떤 수를 쓸지 모르기에 탐색하는 의미로 일부러 조금 느리게 달렸었다.
'또 뭔가 숨겼을 지도 모르지만.'
심후 또한 비장의 수라면 맞았다.
우선 트롤의 심장과 오크의 끈기를 마스터했기 때문에 한 방에 즉사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죽지 않은 상황에서 몇 초만 피해도 생명력을 모두 회복할 수 있었다. 더구나 오거의 피부로 물리 데미지는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었다.
강운의 리볼버가 불을 연신 뿜으며 심후를 노렸지만 심후는 맞지 않았다. 그러나 권총이 더해진 것만으로 대결은 더욱 살벌해졌다.
떨어지면 서로를 향해 총을 난사하며 미친 메뚜기처럼 이리 저리 뛰는가 하면 가까이 붙이면 어김없이 칼질이 이어졌다. 하지만 언제나 타격에 성공하는 것은 심후였다.
강운의 보법 스킬이 대단하긴 했지만 근접전에서 블링크를 당해낼 정도는 아니었다.
사용자의 컨트롤만 뒷받침해준다면 보법보다 훨씬 월등한 효율을 보일 수 있는 것이었다.
'제기랄.'
강운은 절망했다.
벌써 1시간 가까이 싸웠지만 손도 대지 못했다.
'금강불괴를 쓸 수도 없고.'
금강불괴라는 최고의 방어이자 공격 스킬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제한 시간이 있는데다가 아직 마스터 하지 못해 후유증이 남는 스킬이었다.
강운은 버티고 또 버텨보았다. 한 시간이 더 지나자 생명력이 10% 깎여나갔다.
전투는 지루한 장기전으로 돌입한 것이었다.
한 번도 장시간 집중하며 전투를 치러본 적이 없는 강운은 정신적인 피로를 느꼈다.
짜증이 샘솟았고 점점 무리한 공격을 시도하며 빈틈이 커졌다. 밤새도록 도박을 하다가 새벽이 되어 체력이 떨어지고 판단력이 저하된 도박중독자가 갑자기 크게 배팅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망하려면 도박하라고 말이 있었다. 그리고 강운은 결국 도박의 거미줄에 걸린 한 마리 파리나 마찬가지인 신세였다.
'슬슬 집중력이 떨어지는 군.'
전투 시간이 5시간에 이르자 강운은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죽어! 죽어!"
쓰지 않으려 했던 금강불괴에 금강부동신법까지 사용했다. 허나 심후는 잡히지 않았다.
수없이 많은 격전을 치른 심후는 풍부한 전투 경험으로 강운의 공격을 예측하는 경지에 이른 것이었다. 그야말로 3초 앞을 내다보는 예지 능력자처럼 행동했다.
중간에 가끔 강운의 공격이 아주 약하게 스치는 일은 벌어졌지만 큰 데미지는 들어오지 않았다.
"으아아아아아아!"
미쳐 날뛰는 강운을 보면서도 심후는 서두르지 않았다.
맹수를 사냥할 때 조심해야 하는 순간 중 하나가 바로 상처 입고 날뛰는 순간이었다. 이때는 예측 불가능한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기에 방심하다가는 골로 갈 수 있었다.
심후는 오히려 더 거리를 벌리며 무기를 바꿨다. 거리에 따라 무기를 자유자재로 바꾸며 싸우는 것이 물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저격총을 꺼내든 심후는 미쳐 날뛰며 멧돼지처럼 돌진해오는 강운을 근거리에서 저격했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거리에서 이뤄진 사격이기에 강운은 그대로 맞았다.
강운은 총을 베어내기 위해 검을 휘둘렀지만 쏘자마자 뒤로 빼는 통에 허공만 베었다. 때문에 권총을 사용했지만 그때 심후는 이미 블링크를 통해 다른 쪽으로 이동한 상태였다.
블링크를 오래 하는 것을 보았지만 전혀 패턴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장시간 싸우면서 강운은 이를 파악할 수 없었다.
계속 등 뒤로만 순간 이동했다면 오히려 함정을 파고 잡을 수도 있었겠지만 심후는 그런 짓은 하지 않았다. 어쩔 땐 그냥 조금 더 뒤로 빠지는 정도에서 멈추기도 했다.
전투 시간이 9시간에 달하자 강운은 매우 단순해졌다. 하지만 생명력 저하에 따른 버프가 올라와서 그런지 공격은 더욱 매서웠다.
심후는 더욱 몸을 웅크렸다. 그리고 지금까지 쓰지 않았던 스킬을 사용했다.
"헉!"
일루젼 스킬이 사용되자 여러 명의 심후가 나타났다. 미친 듯이 돌격하던 강운이 주춤하는 동안 심후는 블링크를 사용했다. 그러자 심후의 환영들도 블링크를 사용하며 주변으로 흩어지는 것이었다.
블링크와 일루젼을 마스터하며 생긴 효과였다. 강운은 한 놈씩 잡기 위해 움직였지만 허상을 잡고 말았다.
그때 등 뒤로 몰래 접근한 심후가 갑자기 등에 폭탄을 붙이고는 도망쳤다.
"엇!"
깜짝 놀란 강운은 폭탄을 떼어내려고 했지만 특수 제작된 폭탄이었다.
잠시 뒤 폭탄이 터지자 강운의 생명력이 1%가 줄었다.
"크으."
10%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1%는 매우 컸다.
'이대로 있으면 진다!'
위기감이 심해진 강운은 품에서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그것은 심후도 한 번 본 적이 있는 무기였다.
핵폭탄.
핵 연료봉이라는 희귀한 제작 아이템을 입수하지 않으면 만들 수 없는 최악의 무기였다.
'미친!'
심후는 미친 듯이 뒤로 달렸다.
자칫 잘못하면 9시간 동안의 노동이 모두 허사가 될 판이었다. 믿는 구석이 있지만 핵폭탄은 무서웠다.
"같이 죽자!"
허나 강운은 심후를 곱게 놔주지 않고 쫓아갔다. 잠시 뒤 폭탄이 터졌을 때 사망한 것은 강운 혼자였다.
최후의 순간 오크의 끈기가 심후를 살린 것이었다.
남은 생명력은 딱 1 이었다.
============================ 작품 후기 ============================
늦어서 죄송합니다.
주말이라고 신나게 달렸더니 후유증이 장난 아니네요. 날씨도 더운데 피로가 겹치니 정말 손가락이 거북이처럼 기어가는 기분이었습니다.
기다려주신 분들에게는 정말 죄송합니다.
이제 곧 복날이라 그런지 날씨가 무척 덥네요. 오전에 비가 왔다고 했는데 시원하긴 커녕 끈적끈적 합니다.
모두 더위 조심하시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오늘도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승부라고 생각했다. 같이 죽었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현실은 잔혹했다.
"지다니."
심후는 자신이 대결에서 이겼다는 것을 인증했다. 장장 9시간이 넘어가는 혈투 끝에 겨우 승리한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심후가 생명력을 1 남기고 살아남았다는 것이었다.
"고작 1 포인트 차이?"
헛웃음이 마구 쏟아졌다. 1 포인트의 차이는 굉장히 근접한 것 같지만 결국 그 1 포인트 차이로 한 명은 살고 한 명은 죽었다.
게임에서, 그것도 자신있어하는 근접전에서 제대로 잡지 못하고 심후에게 농락당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화끈하게 정면충돌을 했다면 물론 승자는 강운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싸움에 있어, 특히 게임에서는 정정당당이라는 것은 무의미한 얘기였다. 이기는 놈이 장땡인 곳이 바로 게임이었다.
그나마 심후가 많이 양보하여 근접전에 응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이기지 못하자 자존심이 상했다. 심후의 행동은 마치 강운이 다른 사람들의 특기 분야에 도전하여 승리를 챙취하던 것과 비슷했다.
'오만. 나의 오만이 패배의 원인이다.'
자존심을 접고 권총을 들긴 했지만 적극적으로 스킬을 익히지는 않았다. 대부분 무협 관련 스킬로 도배해 놓고 그저 견제용으로 과학 문명의 스킬을 익혔을 뿐이었다. 반면 심후는 여러 문명의 스킬과 아이템을 골고루 사용해 조화를 이루었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창조해낸 것이었다. 그 결과 근접전에선 적수를 찾아보기 힘들었던 강운은 미치기 일보직전에 자폭했고 상대가 숨긴 비장의 수에 결국 패배했다. 이성은 상황을 분석하고 이해했다. 하지만 감성은 아직 진정되질 않았다. 패배로 인해 폭발한 뜨거운 심장은 식을 줄 몰랐다.
'다음에는 꼭!'
이기고 말겠다는 필승을 각오하는 다짐으로 분노를 달랬다. 분노란 것은 굉장한 에너지였다. 끔찍한 일도 저지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허나 분노를 다스릴 줄 아는 강운은 이를 억누르거나 하지 않았다.
바로 연무장으로 뛰어들어가 무공을 수련하는데 사용했다.
약속한 무공 대결 하루 전.
"대단해."
에린은 연무장에서 무공을 펼치는 심후를 보며 연신 감탄하는 중이었다. 흑웅권은 물론 뇌전보마저 능숙하게 펼치고 있었다. 지금까지 계속 함께 게임을 해왔었기에 에린은 알 수 있었다.
"정말 대단해."
접속기를 이용해 자동으로 무공을 수련한 것이 다시 한 번 증명되었다. 아주 약간만 되도 호들갑을 떨 일인데 숙련된 수련자의 모습이었다. 이 정도면 접속기의 존재를 세상에 선보이는 것이 두려울 지경이었다. 전 세계의 상류층 인간들이 접속기를 노리고 덤빈다면 에린이라 해도 막을 수 없었다. 에린은 보안에 특별히 더 신경을 썼다. 이미 주문한 벙커는 완성되었다. 생필품과 함께 접속기는 벙커에 모셔두었다. 심후와 에린이 아니면 어느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보안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은행 금고보다 더 철저한 보안을 갖추고 있었다.
"어때?"
"대단해. 하지만 조심하는 게 좋아."
"왜?"
"황태자는 한 번도 한계까지 무공을 사용한 적이 없어. 황실에 전해져온다는 최고의 무공은 빛을 보지도 못했고."
"뭔지는 알아?"
"풍신류라는 건데......."
에린의 설명을 들은 심후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설명에 의하면 굉장히 무서운 위력을 가진 무공이었다.
'과연 능가할 수 있을까?'
심후는 고민했다. 사실 뇌전보를 익히며 살짝 손 본 부분이 있었다. 뇌전공이라는 외가기공을 먼저 익혔기에 이에 착안하여 뇌전보를 손 본 것이었다. 종우가 남긴 심공론을 익혔기에 뇌전보의 위력을 더 높이는 것에 성공한 것이었다.
하지만 풍신류와 비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으니 뭐라고 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복잡해지는 생각을 정리했다. 할 수 있는 것을 다 한 상황에서 더 걱정해봐야 소용없었다. 상대의 전력에 대해 아는 사람은 전무했다.
'날 믿고 부딪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