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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가문의 천재는 사실 귀환자-3화 (3/141)

3화

“안녕하십니까. 오늘부터 한서진 님을 모시게 된 설하윤이라고 합니다.”

이제야 생각이 났다.

가문의 후계자들에겐 각자 수행비서가 붙는다.

호칭은 비서지만 경호도 겸한다.

그리고 후계자의 능력에 따라 인원이 많아지기도 한다.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기에 완전히 잊고 있었다.

뭐 없는 것보다 있는 게 편하긴 하다.

“반갑습니다.”

“호오.”

옆에서 흥미롭다는 듯 보는 정선.

서진은 뭔가 있나 싶어 물어봤다.

“아는 분입니까.”

“흐, 당연히 알지 이놈아. 내가 약제원의 부원주인데 가문 소속 헌터를 모를 리가 있겠냐. 흑룡대 2팀 소속 맞지?”

설하윤은 공손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오늘부로 보직이 변경되었습니다.”

가문에는 3개의 무력부대가 있다.

흑룡대(黑龍隊), 자호대(紫虎隊), 백랑대(白狼隊)

백랑대는 저레벨 헌터를 훈련시키기 위한 곳이지만 앞의 두 부대는 다르다.

그중에서 흑룡대는 가문을 대표하는 공략대이기에 이곳 출신이면 특출 난 인재로 어디를 가든 인정받는다.

1,2팀으로 나뉘어 있고 2팀이 비교적 약하긴 하지만 그곳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최소 조건이 중급 헌터라 불리는 레벨5부터니까.

설하윤은 아마 속으로 욕하고 있지 않을까.

한창 유망한 헌터를 여기에 보냈으니.

사실 겉으로 나타난 상황만 놓고 보면 좌천이나 마찬가지다.

그것도 불모지 수준의 환경으로.

서진이야 가주가 될 자신이 있으니 상관없다만 전혀 모르는 설하윤의 입장은 아주 다르겠지.

“혹시 싫으면 지금 말하세요. 제가 책임지고 다시 바꿔드리겠습니다.”

“야.”

정선은 놀라며 서진을 쳐다봤다.

당사자인 그녀는 의외로 놀라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마지막으로 확인할게요. 정말 괜찮은 건가요?”

“네.”

그녀의 단호한 어조에 서진은 다른 질문을 건넸다.

“그런데 감기 걸렸나요? 왜 마스크를?”

설하윤은 얼굴의 반 이상을 가리는 흑색의 가죽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지구에 돌아오고 나서 저렇게 눈매만 드러내고 있는 사람은 처음이다.

“얼굴 아래쪽이 화상 흉터가 심하게 남아서 그렇습니다.”

괜한 걸 물어봤다.

설하윤은 서진의 표정을 보고 선수를 쳤다.

“괜찮습니다. 그보다 말을 편하게 해 주십시오.”

“아니요. 방금 제가 실수하기도 했고 당분간 이대로 갈게요.”

천 년 동안, 무술에는 통달했을지 몰라도 인간관계에 대해선 백지가 되어버렸다.

서진은 말하면서도 잘하고 있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가주는 경지를 초월한 괴물이었기에 오히려 대하기 더 편했던 감이 있었는데.

“어쨌든 반갑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네.”

*

다음 날 서진은 설하윤과 차를 타고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천년만의 귀환이라 창밖의 모든 것이 볼거리였다.

마치 놀이동산에 처음 온 아이처럼.

‘정말 돌아왔구나.’

인외마경에서 푹 절여졌던 서진에겐 현대 문명이 새삼 낯설면서 기꺼웠다.

서진은 조수석에서 바깥의 풍경을 보며 어젯밤 대화를 떠올렸다.

어제 저녁, 정선은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서진아, 병은 어떻게 할 거냐.”

솔직히 마광병은 서진도 살짝 난감했다.

이계에선 초반에 인외종의 도움을 받아서 억눌렀고 시간이 지나 환골탈태를 하면서 없어졌으니까.

그런데 지구에 돌아와 보니 이계에서 썼던 몸과는 별개인지, 없어졌던 마광병이 남아있었다.

확실한 건 환골탈태를 하면 완치가 되는데 문제는 10레벨이 되어야 한다는 점.

참고로 흑룡가주의 경지가 10레벨이다.

마광병은 마력을 쓰면 쓸수록 침식 속도가 빨라지는데 그걸 아무런 도움 없이 견디는 건 불가능하다.

물론 도움이 받았다 해도 마광병에 걸린 헌터가 10레벨에 도달한 전례는 없다.

정선은 침묵하는 서진을 보며 말을 이었다.

“너도 알다시피 마광병은 불치병이다. 아직 발생 이유조차 알아내지 못했지.”

원인에 대한 학술 자료는 많지만 무엇도 확신을 심어주진 못 하고 있다.

마력이라는 신에너지의 탄생으로 인해 생긴 변화를 현대의학이 따라가기엔 너무 벅찼던 것이다.

“진행속도를 늦출 순 있지만 말이다.”

문제가 생긴 곳에서 답이 있다는 말처럼.

마력과 함께 등장한 것들.

몬스터가 죽고 남기는 부산물 등에서 실마리를 찾은 것이다.

덕분에 침식 속도를 억제하는 약을 만들 수 있었다.

“아저씨 입장에선 네가 힘든 길 걷지 말고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구나.”

정선은 그런 말을 하며 하드케이스 가방을 꺼내 탁자에 올려놓았다.

“잔소리는 여기까지 했으니 됐고, 밤에 찾아온 이유는 이거다. 네가 5년 전에 의식 잃었을 때, 다른 놈들이 가져가 버릴까 봐 내가 보관하고 있었다.”

서진도 가방을 보자 떠올랐다.

부모님이 남겨놓은 유산.

세월이 그만큼 지났음에도 서진의 마음속에 파동이 일어났다.

“이제 정신을 차렸으니 주인이 가지고 있어야지. 손은 안 댔다?”

장난스레 말하는 정선의 모습에 서진은 웃었다.

이 가방은 주인으로 지정된 사용자가 아니면 열 수 없게 만들어졌다.

만약 주인이 아닌 자가 억지로 열면 즉시 폭발한다.

“감사합니다. 아저씨.”

정선이 챙기지 않았다면 가문의 다른 혈족들이 없애버렸겠지.

“그럼 가방 간수 잘하고. 난 이만 간다.”

정선이 나가고, 서진은 가방을 열었다.

가방 안의 물건 중 명함 하나를 발견한 그는 눈을 빛냈다.

「항마제 판매처」

끼익!

서진은 갑작스러운 급정거에 어제의 기억에서 벗어났다.

차량 앞을 보니 바리케이드가 있으며 주위에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천천히 포위하듯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손에 들고 있는 무기와 복장을 보면 일반인은 아니다.

“저건 무슨...”

“네임리스입니다.”

“그 말로만 듣던?”

“예. 협회에 미등록된 상태로 지저분한 짓을 하는 놈들입니다.”

서진은 즉시 투신공을 운용했다.

양아치 같은 놈들이라도 투기는 있기 마련.

‘적의’를 드러내고 있기에 짙은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서진은 조수석에 앉은 채로 투기를 먹어치웠다.

[근력이 3 상승합니다.]

[체력이 2 상승합니다.]

[민첩이 3 상승합니다.]

설하윤은 차 내부에 있던 검을 챙기며 문을 열었다.

“잠시 차 안에 기다려주십시오. 금방 정리하겠습니다.”

그녀의 말대로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5명을 30초가 지나기 전에 기절시켰다.

굉장히 빠른 속도지만 서진의 눈엔 개선해야 할 점이 많이 보였다.

말해줄까 고민하다 그냥 안 하기로 했다.

조언의 설득력이 없을 테니.

설하윤은 4명을 결박한 뒤 협회에 신고를 마치고 운전석에 앉았다.

“도시 바깥이라 저런 부랑자들이 있습니다. 안으로 진입하면 괜찮습니다만, 혹시 모르니 조심하십시오.”

서진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던전과 몬스터, 각성자의 등장 이후 각국의 치안은 급격히 하락했다.

한국도 마찬가지.

물론 시간이 흘러 치안을 회복되긴 했지만 예외인 도시들도 있었다.

오늘 갈 곳이 그중 하나인 도시 ‘백야’

“하윤 씨는 와본 경험이 있나요?”

“예. 몇 번 들렀던 적이 있습니다.”

“그럼 ‘한약방’도?”

“거긴 갈 일이 없었기에 오늘이 처음입니다.”

대화가 잠시 끊긴 후 다시 설하윤이 입을 열었다.

“한서진님.”

“응?”

“마광병 약을 왜 병원이나 가문의 약제원이 아닌 다른 루트로 구매하시는지 여쭤봐도 됩니까.”

“흑룡가 약제원은 항마제 안 만들어요. 몰랐나 봐요?”

“아..네. 몰랐습니다.”

정선 아저씨가 부원주 자리를 지키곤 있지만 실권은 약제원주가 쥐고 있다.

그리고 약제원주는 한정후의 사람이다.

거기다 마광병 신약 개발은 선두주자들이 꿰차고 있어서 후발주자가 따라잡기에 힘들고 가성비도 안 나오는 사업이다.

“그리고 병원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약만 주거든요. 마력을 쓰면서 버틸 정도의 양은 못 얻어요.”

설하윤은 설마 싶은 눈으로 서진을 힐끔 쳐다봤다.

“앞으로 마력을 쓰실 생각이십니까?”

“네.”

그녀는 입술을 몇 번 달싹이다 말았다.

차 안은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도시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부우웅.

신기하다.

백야 시내를 본 서진의 순수한 소감이었다.

무법도시라는 이명을 가졌지만 도로와 주변 경관은 매우 깨끗했다.

물론 현재 운전 중인 곳은 2구역이라 그렇다.

여기를 벗어나 4,5구역으로 내려가면 무법, 아니 불법이 판을 친다고 한다.

서진은 5구역을 구경해보고 싶지만 그곳을 구경하는 건 아직 이르다.

다음을 기약하며 지금은 창밖의 풍경에 만족하는 수밖에.

철저한 격자형 도로망을 구축한 ‘백야’는 난개발 된 타 도시와 비교해 차별화된 장점이 느껴졌다.

구역 전반이 깔끔해 보이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 든다.

어제 대충 알아본 바로는 3대 길드가 구역을 나눠서 담당하고 있다고 하던데 그 묘한 줄다리기가 언제까지 갈는지.

여태까지는 상관없는 도시의 사정이었건만.

앞으로는 달라질지도 모른다.

“곧 도착할 예정입니다.”

그녀는 몇 번 와봤다는 말을 증명하듯 헤매는 기색 없이 운전 중이었다.

시내 중심도로를 지나 우측으로 꺾어서 5분 정도 지나자 블록 모퉁이에 6층짜리 건물이 보였다.

한약방.

건물 크기에 맞지 않게 소박하고 심플한 간판이다.

주차를 완료한 설하윤과 서진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모습은 이 도시에 자리 잡고 있는 각 조직의 수장들에게 전달되었다.

**

몬스터가 처음 나와 지구 전체를 혼란과 피로 뒤덮은 날.

마나라는 낯선 에너지도 함께 등장하였다.

그것은 각성자라는 신 인류를 탄생시켰고, 이들은 곧 헌터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대지를 뒤엎거나 불을 내뿜는 등의 이적을 행하는 헌터들이지만 그들도 사회적인 동물.

새로운 형태를 갖춘 조직의 등장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그런 조직들은 각자 수많은 지역에 뿌리를 내려 자리 잡았고 칠흑 도시에 있는 ‘아이언’이라는 길드도 그중 하나였다.

“형님.”

빡빡머리를 한 남자가 급하게 길드장실의 문을 열어젖혔다.

“야 이 새끼야 노크 좀 하고 들어오라니까.”

형님이라 불린 길드장은 손에 쥐고 있던 손톱깎기를 집어던졌다.

“죄송합니다. 중요한 정보가 들어와서.”

“뭔데.”

“한서진이 도시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설마 그 한민후 아들놈 말하는 거냐?”

“예.”

길드장 이찬민은 잊고 싶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수년 전, 아이언 길드 초창기.

세를 확장하기 위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손대던 시기였다.

그중엔 중고 무기 거래를 통한 사기도 쳤었는데 피해자 한 명이 한민후의 친구였던 것이다.

결국 길드장 이찬민을 비롯해 길드원 전체가 한민후에게 비 오는 날 먼지가 나게 처맞았다.

이찬민은 그날의 치욕을 잊지 못하고 그저 묻고 살 수밖에 없었다.

복수를 위해 흑룡검가 장남을 건드리는 건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이었기에.

하지만 세월이 변하며 상황이 달라졌다.

한민후 그 자식은 몇 년 전에 죽었고 그 아들은 가문의 쭉정이 신세.

남은 응어리를 아들에게 풀어낼 좋은 기회다.

“이건 놓칠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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