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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가문의 천재는 사실 귀환자-5화 (5/141)

5화

스텟이 올라가긴 했지만 아직 부족하다.

서진은 1레벨이고 상대방은 최소 2레벨 넘는 놈들이 10명 이상 있으니까.

그렇기에 망설임 없이 주머니 속 연막탄을 투척했다.

툭.

치이이익!

“뭣..?!”

당황해하는 저들의 표정이 짙은 연기로 가려지기 시작했다.

‘최이린에게 받은 지 반나절도 안 됐는데.’

어쩌면 그녀는 이런 일을 예상하고 건네준 걸지도 모른다.

“젠장 마나가!”

뿌연 안개 건너편에서 낭패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진은 눈 한번 깜빡할 사이에 상황을 파악했다.

‘과연.’

연막탄에서 나온 안개는 단순한 시야 차단뿐만 아니라 체내 마나를 억제하는 효과까지 품고 있었다.

그런데도 만만히 보였던 걸까.

쐐액!

놈들이 안갯속을 뚫고 무기를 휘둘러 온다.

‘정면과 우측.’

서진은 공격 방향을 파악 후 좌측으로 빠지며 검을 휘둘렀다.

촤아악!

안개로 둘러싸인 흰색 풍경에 빨간 피가 비산 했다.

그리고 옆에 있던 놈의 심장에 서진의 검이 박힌 후 빠져나왔다.

두 명이 순식간에 쓰러졌다.

그러자 놈들이 망설이는 기색이 느껴진다.

시야와 마력이 제한된 상황.

하급 헌터에 속하는 이들이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거기다 지금 현장의 한서진은 기존의 소문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씨벌 얘기가 다르잖아.’

부길드장 정이환은 눈살을 찌푸렸다.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여유가 있어 보였던 한서진의 태도.

안개가 완전히 짙어지기 전, 잠깐 보였던 그의 검술.

별 볼 일 없다고 들었는데 도저히 1레벨 같진 않다.

경험상 이렇게 작전 계획과 크게 다를 경우 적지 않은 피를 보곤 했다.

‘그래 봤자 나보단 아래다.’

정이환은 마음을 다잡았다.

생각해보면 연막탄을 투척한 이유도 아이템 없이는 자신들을 상대하기 힘들어서 그랬을 터.

분위기 반전을 위해 그는 길드원에게 소리쳤다.

“저놈은 한 명이다! 그리고 앞이 안 보이고 마나가 제한된 건 마찬가지. 기세에 눌리지 마라!!”

““예!!!””

몸이 풀린 길드원들은 한서진이 있을 거라 추측되는 방향으로 덤벼들었다.

하지만 평균 2레벨인 하급 헌터들에게 안개는 치명적인 제한이다.

“아아악!”

서진은 자신을 찾아 헤매는 놈들을 하나씩 베어나갔다.

안개로 인한 시야 제한?

서진에겐 오히려 좋은 전투 환경이다.

이계에서 모든 감각이 차단된 암흑 속에서 싸웠을 때 비해 귀여운 수준이기에.

수많은 경험을 통해 본능에 각인된 서진의 전투 방식은 아이언의 길드원들에게 재앙이나 마찬가지였다.

챙.

촤악!

계속해서 들려오는 길드원의 비명.

정이환은 아랫입술을 씹었다.

‘결정을 내려야 해.’

안갯속에서 한서진을 제압하는 건 힘들어졌다.

어차피 안개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다들 안개를 벗어나! 바깥에서 싸운다!”

진작에 이랬어야 했는데 조바심에 그른 판단을 내린 것 같다.

정이환은 갑자기 튀어나올 한서진을 경계하며 안개를 빠져나왔다.

“그런데 왜 아무도 대답을...?”

말을 잇지 못한 그는 깨달았다.

자신 빼고 전멸했다는 것을.

“.....”

김대천 그놈을 데려왔어야 했는데.

3레벨 마법사가 있었으면 이 꼴이 나진 않았을 터.

애초에 한서진을 쉽게 보고 애들을 적당히 데려온 게 패착이다.

“너 하나 남았네.”

옅어지기 시작한 안개를 가르며 한서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이환은 도끼를 겨누며 말했다.

“네가 죽인 애들 수만큼 고문 종류가 다양해질 테니 각오해라.”

“지랄, 부하들 다 죽게 만든 능력 없는 새끼.”

한서진의 비아냥이 끝남과 동시에 정이환이 튀어 나갔다.

채앵!

서진은 거센 일격을 흘려냈지만 세 발자국 뒤로 밀려났다.

‘역시 만만치 않네.’

[근력이 3 상승합니다.]

정이환을 도발해 투기를 흡수한 건 좋았지만 상대하기가 벅차다.

자신은 아직 1레벨이고 상대는 아마 4레벨.

4레벨은 중급 헌터로 분류되기에 격차는 작지 않다.

아무리 경험이 있다 한들 레벨에 따른 스텟 차이는 육체가 버티지 못한다.

‘이제 약발이 좋은지 시험해 봐야겠군.’

안개에서 벗어나 마나를 쓸 수 있게 된 건 정이환뿐만 아니라 서진도 마찬가지.

단전에 위치한 마나가 팔과 다리로 뻗어 나간다.

혈액이 체내의 혈관을 통해 운반되듯이 마나도 길이 존재한다.

그리고 마나는 길을 통해 최대한 빠르게 끌어올릴수록 유리하다.

여기서 마광병의 장점이 빛을 발한다.

그의 마나 운용 속도는 남들보다 빠르다.

4레벨 정이환보다 1레벨 서진의 검에서 먼저 마나가 발현될 정도로.

서진의 검이 정이환을 겨눔과 동시에 스파크가 튀어 오른다.

흑룡검술 제3식 뇌격포(雷擊砲)

콰아앙!

청색빛이 나는 번개가 폭음을 내며 곧게 뻗어 나갔다.

“크아아악!”

자비 없는 푸른 번개가 순식간에 정이환의 신체 일부를 날려버렸다.

파지직.

서진은 사라진 그의 왼팔을 보며 혀를 찼다.

‘목을 노렸는데.’

1레벨이 4레벨을 상대로 장기전으로 가면 극히 위험하다.

그래서 약간의 방심이 남아있을 때 끝내려 했다.

단전의 마나를 전부 끌어모은 급속한 일격으로.

결국 실패했지만 말이다.

정이환의 반응 속도가 서진의 예상을 웃돌았다.

찰나의 시간에 몸을 틀어서 즉사를 면할 줄이야.

[개방되지 않은 능력을 사용했습니다.]

[과부하로 인해 90분간 전 스텟이 일시적으로 하락합니다.]

검을 쥔 서진의 오른팔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젠장.’

흑룡검술은 2식까지만 뚫어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이계에서 숱하게 써봤고 바로 윗단계라서 가능할 것 같아 시전 했는데 생각보다 부작용이 크다.

1,2식만으론 장기전이 예상되어 도박 수를 던졌는데 되려 목줄을 조이게 됐다.

역시 도박은 안 좋나 보다.

“그륵, 크흐으.”

그 사이 정이환은 짐승 같은 소리를 내며 허리를 펴고 일어났다.

피를 철철 흘리는 것 같은데 저 정도면 과다출혈로 죽어야 하는 거 아닌가.

역시 저래 보여도 4레벨은 만만치 않군.

“한서지인!!”

정이환은 안광을 번득이며 땅을 박찼다.

그가 디딘 시멘트 바닥이 살짝 패일 정도.

기세는 흉흉하지만 피하기는 쉽다.

흥분한 덕분에 서진에겐 공격이 훤히 보인다.

쾅! 쾅!

두꺼운 도끼날로 도로를 찍어대는 정이환.

스텟 하락만 없었어도 반격을 했을 텐데 누더기가 된 신체는 회피만으로 벅차다.

‘이대로 회피하면서 스텟을 올려 반격 타이밍을 잡을까.’

....그건 안 되겠군.

정이환의 표정과 공격은 점점 차분해지고 있다.

냉정을 되찾는 순간 승기는 없어진다고 봐야겠지.

[근력이 1 상승합니다.]

물론 이 와중에 분노한 정이환에게서 얻는 투기는 짭짤하니 좋긴 하다.

그렇지만 타개책을 얼른 생각해야...

[마력이 1 상승합니다.]

[마력 수치가 20을 초과하였습니다.]

[Lv.2가 되었습니다.]

[마나가 회복됩니다.]

[상태 이상 ‘일시적 스텟 하락’이 사라집니다.]

채앵!

갑자기 달라진 서진의 움직임.

마나가 연료라면 마력은 엔진이라 할 수 있다.

바닥났던 연료가 채워지고 한층 더 강해진 엔진이 이전보다 수월하게 마나를 끌어낸다.

파지직!

흑룡검술 제1식 섬아(䃸牙)

푸른 전류가 검신을 타고 흐르며 적에게 달려들어 물어뜯는다.

응집된 번개는 자의를 가진 것처럼 다리를 향해 움직였다.

“아아악!”

정이환은 허벅지에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하지만 오히려 방금 입은 상처로 인해 흥분을 가까스로 앉혔다.

조금 전까지 비실거리던 한서진의 기세가 바뀌었다.

마나도 거의 없었는데 말이다.

‘설마 이 타이밍에 레벨이 올라간 건가.’

이성을 완전히 되찾은 정이환은 한 손으로 도낏자루를 꽉 쥐었다.

우우우웅!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소리가 도끼에서 울려 퍼진다.

괜한 자존심에, 끝내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 때문에 쓰지 않았던 기술.

정이환은 이제야 마지막 한 수를 꺼냈다.

그의 도끼날에 마나가 휘감기고 있었다.

서진은 그것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태산도법의 파(波)인가.”

“알아보는군.”

“뭐, 흔한 도법이니까.”

가문이나 상위 길드에 들어가지 못한 헌터는 시중에 풀린 무공을 익힐 수밖에 없다.

그중에 태산도법은 돈 주면 구할 수 있는 축에 속했다.

태산도법에 애착이 있는 정이환은 서진의 말에 열이 살짝 올랐다.

“그럼 오늘 그 흔한 것에 네 목이 날아가겠군.”

부우웅!!

흉흉한 기세를 뿜는 도끼가 서진이 있던 곳을 훑고 지나간다.

방금 공격을 시작으로 파도처럼 도끼가 몰아친다.

부웅, 쾅!

‘쉽진 않네.’

자존심을 버린, 4레벨의 기량을 최대한 발휘한 정이환은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이길 수 없진 않다.

서진이 어렸을 때, 처참한 재능에 저항하기 위해 많은 무공에 문어발처럼 손을 댔던 적이 있다.

당연히 태산도법도 포함되어 있다.

태산도법의 3단계인 ‘파’는 한번 공격을 시작하면 멈추기 힘들다는 특징이 있다.

‘파’를 완벽히 익히면 상대를 곤죽으로 만들어버리지만 그게 아니라면 빈틈이 생긴다.

파직!

서진의 검이 도끼의 파도를 뚫고 허리를 베어낼 만큼의 큰 빈틈이.

“커헉!”

푸른 번개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두 번째 공격으로 이어졌다.

서진의 검이 그의 몸을 무너뜨리고 목을 꿰뚫었다.

쿠웅.

힘을 잃은 도끼가 바닥에 떨어진다.

정이환은 단말마의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숨이 끊어졌다.

“후우...”

아직 끝이 아니다.

설하윤의 상황이 어떤지 파악해야 한다.

그런데 서진이 움직이기 직전.

터벅터벅.

등 뒤에서 들리는 발소리.

서진은 바로 몸을 돌렸다.

돌아보니 익숙한 실루엣이다.

“하윤씨.”

검은 가죽 상의부터 반바지와 스타킹까지 이곳저곳 찢겨서 부상을 당한 부분이 한눈에 보였다.

항상 위로 올려서 묶고 다녔던 뒷머리도 풀어 헤쳐진 상태.

그녀가 죽인 놈들을 보니 그럴만했다.

한 놈은 설하윤과 비슷한 경지였고 다른 시체 4구는 3,4레벨은 돼 보였으니까.

‘대단하군.’

평범한 5레벨 헌터였다면 일찌감치 시체가 되었을 터.

그 와중에 얼굴은 끝까지 지켰는지 마스크는 멀쩡했다.

설하윤은 검을 지팡이 삼아 서진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믿기 힘들다는 듯 주변을 둘러봤다.

“서진 님이 다 처리하신 겁니까?”

“네.”

“어떻게...”

그녀는 눈앞의 적에 몰두하느라 그의 전투 과정을 보지 못했다.

“연막탄 덕분이죠, 뭐.”

설하윤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시체를 보면 1레벨이었던 한서진은 11명을 죽였다.

물론 대부분이 1,2레벨이긴 하나 상식적으로 이게 말이 되나 싶었다.

아이템 하나 썼다고 10배가 넘는 인원을 상대로 이기다니.

심지어 그중에 한 명은 4레벨 헌터.

만약 사지 하나가 잘렸다면 어찌 납득했을 수도 있다.

설하윤은 그가 저렇게 멀쩡한 상태로 전부 죽였다는 사실이 쉽게 믿어지지 않았다.

그간 들렸던 한서진에 대한 세간의 이야기들.

그것을 100%는 아니라도 어느 정도 믿고 있던 그녀였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하지만 설하윤은 남이 말하는 것보다 직접 본 것을 훨씬 신뢰한다.

우선 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선입견을 버린다.

그리고 한서진에 대한 인식을 새로 구축할 필요성을 느꼈다.

‘하지만 어떻게 이겼는지는 못 봤어.’

아직은 미심쩍지만 그건 옆에 계속 있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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