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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가문의 천재는 사실 귀환자-6화 (6/141)

6화

설하윤은 그렇게 속으로 작은 목표를 세운 다음 입을 열었다.

“서진 님 혹시 다치신 곳 있습니까?”

“아니요, 저보다 하윤 씨 모습이 더 안 좋아 보이는데요.”

“아, 괜찮으니 다가오진 말아 주십시오.”

설하윤의 몸에서 다홍색의 기(氣)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서진은 대충 눈치챘다.

“스킬 사용의 후유증 같은 겁니까?”

“네. 시간이 지나면 사라집니다. 그때까지만 거리를 잠시.”

“무시하고 하윤 씨에게 가까이 가면 어떻게 됩니까.”

“감각이, 예민한 상태고 육체의 통제권이 오롯이 저에게..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위험합니다.”

“피아 구분이 없는 영(靈)이 강림한 상태 같군요.”

“예, 대충 그런 느낌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 바닥에서 독특한 능력을 보유한 헌터는 적지 않다.

저렇게 능력 사용 후 후유증이 나타나는 경우는 평범한 축에 속한다.

서진도 이해하고 가만히 놔두고 싶지만 상황이 너그럽지 않다.

아까 정이환은 3레벨 마법사를 못 데려와서 아쉽다고 했었지.

이 습격에 모든 길드원을 데려오진 않았을 테니 잔여 세력이 있을 터.

놈들이 이곳에 올지 안 올진 미지수다.

서진은 그런 불확실한 확률에 기댈 생각이 없었다.

“여기 계속 있기엔 위험한데 얼마나 기다려야 됩니까.”

“15분 정도 남았습니다.”

그녀의 후유증 범위는 생각보다 넓어서 같이 차를 타는 건 무리다.

그렇다고 두발로 움직이기엔 우리 둘 다 너무 지쳤다.

“15분은 좀 긴데...”

서진은 설하윤의 기운을 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언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혹시.’

서진은 남은 마나를 전부 이용해 투신공을 최대한 활성화했다.

이러면 흡수 가능한 투기의 종류와 상한선이 올라간다.

물론 가성비가 좋은 운용법은 아니다.

마력이 낮아 투신공의 성취가 2성에 머물러있는 지금은 더더욱.

그럼에도 지금은 할만한 가치가 있다.

‘예상이 맞았네.’

흡수 가능한 투기의 종류가 늘어나자 알 수 있었다.

설하윤의 저 기운도 흡수할 수 있다는 것을.

서진은 입꼬리를 올리며 그녀의 기운을 끌어들였다.

[대상과의 거리가 멀어 실패했습니다.]

서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역시 일반적인 투기와 다르군’

한번 거절을 당했지만 이럴 때 대처법도 알고 있다.

이계에서 여러 종족의 투기를 흡수한 경험이 차고 넘친다.

서진의 발걸음이 망설임 없이 설하윤에게 향했다.

“서진 님! 가까이 오시면 안됩...”

그녀의 눈동자가 커졌다.

여태껏 기운의 영역에 발을 디딘 사람들은 누구든지 공격을 받았다.

자신의 의사와 상관이 없었기에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경고를 해도 호기심에 영역에 들어온 사람이 죽을뻔한 적도 여럿 있었다.

설마 한서진도 그런 부류인가 싶어서 뒷걸음을 쳤지만 그의 발이 들어오는 속도가 더 빨랐다.

한서진이라면 목숨을 걸고 경거망동한 행동을 하진 않을 거라 생각했다.

자신이 안일했다고 후회하려는 순간.

“어?”

그녀의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처음 겪는 일에 당황해하는 사이, 서진이 지척까지 도달했다.

그는 설하윤의 뒤에 서서 그녀가 입고 있는 웃옷을 끌어내렸다.

“잠깐, 지금 뭐 하시는.”

설하윤은 뒤늦게 놀라며 몸을 꿈틀거렸다.

서진은 침착하게 내뱉었다.

“가만히 있어 봐요.”

“네?”

서진의 손이 그녀의 등에 닿자 변화가 일어났다.

주변에 흘러넘치던 붉은 아지랑이가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서진의 손바닥으로 흡수되고 있었다.

“서진 님? 이게 도대체...”

“이상한 거 아니에요. 그냥 기운만 없애주려는 거니까.”

설하윤의 눈앞에 있는 반투명한 시스템 창도 그의 말을 증명하고 있었다.

[남은 시간 : 10분 11초]

원래 15분이었던 잔여 경계 시간이 벌써 3분의 2로 줄었다.

설하윤은 또 의문이 들었다.

11명을 처치한 것도 아직 완전히 납득을 못 했는데 이건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그녀가 혼란스러워하는 사이에 서진은 흡수에 몰두했다.

사실 맨살에 손을 대면 더 빨리 끝낼 수 있지만 그건 무리 같으니까.

3분이 채 지나기 전에 서진은 손을 뗐다.

“끝났어요.”

서진은 기분이 좋았다.

‘의외의 소득이었어.’

그녀의 투기를 흡수해서 얻은 스탯이 짭짤했다.

❴한서진❵

【레벨】2

【특성】투신전[잠금]

【스텟】근력18 체력16 민첩15

마력23 지력19

【스킬】흑룡검술(2성) 투신공(2성)

【상태】마광병 19.2% 진행

헌터의 강함을 증명하는 레벨은 스텟 수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스텟 중에 아무거나 하나만 일정 수치 이상 올리면 된다.

서진의 경우 마력이 제일 먼저 20을 돌파했기에 2레벨이 되었다.

다음 3레벨의 조건은 스탯 40.

본래 이렇게 스탯 상승 속도가 빠르지 않으나 투신공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무공이다.

스륵.

서진이 상태창을 보는 동안, 설하윤은 재킷을 다시 올려 입었다.

그녀는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서진을 바라봤다.

“서진님 능력이 혹시 치유계이십니까?”

궁금증에 내뱉고도 스스로 어이가 없었다.

단신으로 4레벨을 포함한 11명을 도륙 낸 사람보고 치유계라니.

“그럴 리가요.”

역시나 부정하는 대답이 들려왔다.

탐지계도 아닌데 자신보다 일찍 매복을 알아채고 치유계도 아닌데 후유증을 없애버리다니.

도대체 정체가 무엇일까.

‘어쩌면 그 과거의 약속이 아니어도.’

이 남자를 따를만한 새로운 이유를 발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줄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진 님, 이제 차에 타시죠. 저 때문에 지체됐으니 빨리 가문으로 복귀하겠습니다.”

그녀는 운전석 문을 열었다.

서진은 혹시나 해서 물었다.

“괜찮겠어요?.”

“네, 문제없습니다.”

서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차에 탔다.

어차피 자신은 무면허였으니까.

**

한서진과 설하윤이 아이언 길드원들과 싸우기 시작했을 때.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

백야 3대 길드 중 하나인 ‘천궁’.

천궁의 정보부 소속 헌터 김성환은 눈에 힘을 주고 있었다.

‘이놈의 백리안(百里眼)은 좋긴 한데 안구 건조증이 문제야.’

그래도 어쩌겠는가.

쓸만한 눈깔 능력으로 먹고살려면 감수해야지.

전투가 발생한 저 도로는 천궁의 영역으로 통행하는 길목 중 하나다.

그러니 김성환은 눈을 부릅뜨고 밥값을 하는 중이었다.

한서진을 습격한 놈들은 딱 봐도 알 수 있었다.

“질 떨어지는 아이언 길드구만.”

지저분한 길드인데 길드장이랑 부길드장, 마법사 이렇게 셋은 무력 면에서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한서진은 보나 마나고 저 여자가 얼마나 강할지가 관건인데.”

여자 쪽에 나름 쓸만한 4명이 붙었고 한서진쪽은 부길드장과 나머지 10명.

아무리 봐도 아이언 길드 측의 우세로 보인다.

“안 도와줘도 되나?”

분명 길드 윗선에 정보가 갔을 텐데 별다른 언질이 없었다.

“그만큼 한서진이 가치가 없다는 말이구만.”

김성환은 혀를 찼다.

소수가 다수를 상대로 무기력하게 당하는 모습은 그의 기준에서 유쾌한 장면이 아니다.

하지만 연막탄이 터지고 나서 전투 상황은 그의 예상과 정반대로 흐르기 시작했다.

안갯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른다.

김성환의 능력 ‘백리안’은 그저 멀리 볼뿐이기에.

그러나 안개가 걷히고 아이언의 부길드장과 한서진이 일대일로 싸우는 장면은 입을 벌어지게 했다.

한서진의 검술은 문외한이 보기에도 군더더기가 없어 보였으며 일종의 아름다움마저 느껴졌다.

“그렇지, 거기서 베어야지!”

그는 자신도 모르게 몰입해서 관람했고 그것은 업무에 큰 지장을 초래했다.

뚝-

마나가 바닥나서 백리안이 끊겨버린 것이다.

“안돼!”

김성환은 곧장 일어나서 마나 물약을 찾기 시작했다.

“어디 갔냐 물약아. 꼭 이럴 때 안 보인다니까!”

항상 물약을 채워놔야 하는데 그도 사람인지라 깜빡했고, 그것이 치명적인 실수가 돼버렸다.

결국 김성환은 정보실을 벗어나 창고에서 물약을 가져왔다.

하지만 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제일 중요한 마지막 결과를 놓친 것이다.

“....망했다. 좀 이따가 보고해야 되는데.”

**

가문으로 돌아가는 차 안.

둘 다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기에 적막하기 그지없었다.

‘지금 얘기해야겠네.’

조수석에 앉아있던 서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하윤 씨가 5레벨이라고 했죠?”

“네.”

“그러면 혼자 던전에 입장해서 무리 없이 공략해야 한다면 몇 등급까지 가능한가요?”

“저 혼자라면.”

던전의 단독 공략은 위험하기에 그리 선호되지 않는다.

하지만 수익을 독차지할 수 있다는 점과 자신의 강함을 증명하기 위해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참고로 흑룡대 소속 헌터는 후자의 목적으로 한 번씩은 무조건 해야 했다.

“D급 던전을 단독 사냥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좋네요.”

보통 단독 공략은 1,2레벨로는 엄두도 못 낸다.

3레벨은 되어야 F급이 가능해진다.

그런 걸 생각하면 설하윤의 무력은 나이에 비해 아주 준수했다.

그렇지만 서진은 조건을 하나 더 붙였다.

“5일 동안 빠짐없이 던전을 돌아야 한다고 해도 홀로 D급을 감당할 수 있나요?”

“그건 체력적으로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럼 E급이 적당하겠군요.”

설하윤은 이 대화에 목적이 있음을 알아챘다.

“서진 님, 혹시 저에게 내릴 지시가 있다면 말해주십시오.”

“그러죠. 제가 백랑대의 훈련생과 대련 내기를 한 건 알고 있죠?”

“네.”

“거기서 이기려면 하윤 씨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얼마든지 괜찮습니다. 지시만 내리면 이행하겠습니다.”

“가문으로 복귀하면 던전기획실로 가서 예약을 받아놓으세요. 5일 내내 하윤 씨가 무리 없이 단독으로 공략할 수 있는 스케줄로. 물론 저도 갈 테니 2명으로요.”

“알겠습니다.”

설하윤은 아무 대꾸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진은 몬스터들의 투기로 개꿀 빨겠다는 계획으로 지시했지만 그녀는 투신공의 존재를 모른다.

‘그런데도 아무 말 없이 받아들였지.’

서진은 설하윤을 힐끗 보고 나서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

도시 ‘백야’에서 복귀한 직후.

흑룡가문의 내원당(內援堂)

이 높고 너른 건물의 1층 복도에서 설하윤은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그녀의 목적지는 던전기획실.

흑룡가문의 헌터들을 위해 던전 공략권을 매입하고 유지, 관리하는 조직. 따로 떨어져 나올만한 규모지만 여러 사정으로 인해 내원당 산하에 있는 곳.

사실 그녀는 내원당 건물이 낯설었다.

흑룡대 소속일 땐 몬스터 사냥에만 몰두하면 되었기에 올 일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젠 그의 비서가 되었으니 자주 오게 될 것이다.

설하윤은 자신의 보직이 바뀌었음을 실감하며 던전기획실 로비에 입장했다.

“어, 하윤 씨 오랜만이네요.”

안면이 있던 직원이 그녀를 맞이해준다.

“네, 반갑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무슨 일로 오셨어요?”

“던전 예약 건으로 왔습니다.”

“그걸 왜 하윤 씨가... 아, 얼마 전에 바뀌셨지. 그거라면 3층에 있는 1팀에 가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가문의 직계들은 전부 1팀에서 담당하고 있다.

알고 있었지만 예의상 감사를 표하고 위로 향했다.

던전기획실의 최준열 1팀장.

설하윤이 가문 내 정치에 관심이 없어도 그가 차남 한정후의 라인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되도록 마주치고 싶진 않은 인물.

그녀는 하루빨리 한서진의 세력이 커지길 바라면서 발을 내디뎠다.

흑룡가는 후계자의 힘에 따라 가능한 일의 범위가 굉장히 넓어지는 곳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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