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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가문의 천재는 사실 귀환자-7화 (7/141)

7화

1팀에 도착하니 직원 한 명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상관은 없다.

꼭 팀장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니까.

설하윤은 직원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아, 안녕하세요.”

직원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설하윤은 파티션 위에 있는 직원의 이름을 힐긋 보았다.

‘박명규.’

이름을 머릿속에 넣으며 입을 열었다.

“던전 가야 할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설하윤은 5일간의 E급 던전 입장권이 필요함을 밝히며 날마다 던전에 머무를 시간도 말해주었다.

“으음...”

직원은 느릿하게 펜대를 돌렸다.

설하윤은 그의 미적지근한 반응이 거슬렸다.

E급 던전의 5일 입장권이 뭐가 어렵다고 저런 반응을 보인단 말인가.

그녀가 무언의 압박을 보내자 박명규가 입을 열었다.

“실은 말이죠, 최근에 저등급 던전의 수요가 늘어나서 갑자기 와서 해달라고 하시니 이게 쉽지 않네요.”

“2명 들어갈 자리마저 없단 말입니까?”

“네, 안타깝게도요...”

“한번 제가 확인해볼 수 있습니까.”

설하윤은 어쩔 수 없다고 해서 순순히 물러날 만큼 말랑한 성격이 아니었다.

“어.... 지금 그 말은 저를 못 믿으신다는 말로 받아들여지는데요?”

박명규의 대응 또한 까칠했다.

사실 그는 다소 귀찮은 상태였다.

어제 광원이라는 중소 길드에게 접대를 받고 나서 숙취로 피곤한데 오늘따라 업무량도 많았다.

이 상황에서 한서진의 비서가 와서 뭘 요청하니 듣기가 싫었다.

다른 후계자였으면 엄두도 못 낼 태도였지만 한서진은 무시해도 괜찮을 사람이었다.

이런 식으로 대해도 탈이 안 날 만큼 약한 인물.

5년 전에도 그랬으니까.

박명규에겐 한서진은 그런 존재였다.

지이잉.

설하윤의 눈매가 더 날카로워지려 할 때, 전화가 울렸다.

발신자를 보니 한서진이다.

“네, 서진 님.”

“던전 신청했나요?”

“실은.”

그녀는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러자 전화 건너편에서 미약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요? 있어 봐요, 저도 곧 갈 테니까.”

뚝.

지켜보고 있던 박명규가 한마디 했다.

“뭐래요?”

“직접 오신다고 합니다.”

그의 한쪽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와 봤자 할 수 있는 것도 없을 텐데.”

들릴 듯 안 들릴 듯 작게 뱉은 박명규의 혼잣말.

아까부터 계속 신경을 긁어대는 그에게 설하윤은 한 발짝 나섰다.

“박명규 씨, 말을 가려서 하시죠.”

“뭐가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

한 대 칠까?

충동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참을 수밖에 없다.

자신이 함부로 행동하면 그 대가는 한서진에게 씌워진다.

그건 스스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미묘한 대치 상황이 이어진 지 몇 분.

둘만 있던 공간에 새로운 인물이 나타났다.

한서진이었다.

화가 났을 거란 예상과 달리 그는 차분해 보였다.

서진은 설하윤을 뒤로 물리고 박명규와 마주 섰다.

“반갑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뵙네요.”

“네. 그러네요.”

서진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정말 안 되는 거 맞습니까? 확인 좀 해보죠. 제 요청까지 거절하진 않겠죠?”

“죄송합니다. 이게 함부로 공개해도 되는 정보가 아니라서요. 저도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군요.”

박명규는 속으로 웃었다.

5년 전 한서진의 유약한 성격으로 미루어보면 이제 시무룩해져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그는 간과한 게 있었다.

한서진이 이전과 같은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박명규 씨는 가문의 법령을 귓구멍에 처박지 않았나 봐요? 직계 가족은 1급으로 분류된 정보를 제외한 2,3급 정보는 언제든지 열람할 수 있다. 던전 관리 정보는 2급에 해당하니 당신은 당장 보여줘야 한다는 말이죠.”

“....!!”

박명규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가문의 법령을 몰라서가 아니다.

예전의 한서진은 자신의 권리조차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한 호구였다.

남들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줄 알고 넘어갔던 순한 놈.

정신 차리지 못한 박명규의 귀에 한서진의 목소리가 이어서 박혔다.

“이제 던전 스케줄을 확인해보면 박명규 씨가 말한 사유가 진짜인지 거짓인지 알겠네요. 만약 거짓말한 거면 징계감인 거 알죠?”

그리고 한서진은 폰은 들었다.

“여기 녹음해서 증거도 있으니까.”

박명규는 징계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1팀장이 위로 올라가고 나면 차기 팀장은 자신이었다.

징계를 받으면 그 자리가 위태로워질 가능성이 크다.

어서 조치를 취해야 되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다른 후계자였다면 무릎을 꿇든 엎드리든 했을 테지만 호구로 봐왔던 한서진이어서 그런 걸까.

박명규는 핸드폰을 뺏기 위해 팔을 뻗었다.

사무직이긴 하나 이래 봬도 2레벨이었다.

전투에 적성이 안 맞고 재능이 없어서 이 일을 하는 거지.

퇴원한 지 며칠도 안 된 녀석쯤이야 가뿐할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헛된 생각임을 깨닫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탁.

서진은 그의 팔목을 잡고 끌어당겼다.

바로 자세가 무너진 박명규.

서진의 발차기가 무방비한 옆구리를 타격했다.

퍼억!

콰다당.

책상을 비롯해 온갖 사무용품이 나뒹굴며 박명규가 쓰러졌다.

“끄으, 씨발.”

그는 한 대는 버틸 만했는지 일어섰다.

한서진은 발로 장애물을 치우며 박명규에게 다가갔다.

“그러니까 좋게 말할 때 듣지.”

서진은 그의 목을 잡고 다시 땅바닥에 내리꽂았다.

쿵!

“커헉!”

“일어나 새끼야, 아직 안 끝났어. 마지막으로 한 대만 더 맞자.”

서진은 멱살을 잡고 일으켜 단전이 있는 곳에 주먹을 강타했다.

퍽!

둔중한 소리와 함께 박명규의 입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단전이 파괴되어 두 번 다시 마나는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물론 이 상태라면 사무직도 힘들겠지만.

단 세 번의 공격으로 박명규는 의식을 잃었다.

마나를 쓸 필요도 없었다.

움직임이 느리고 훤히 보였던 데다 전투 경험의 격차가 까마득했으니까.

스텟에 의한 신체 능력만으로 충분했다.

“서진 님.”

어느새 다가온 설하윤이 우려스러운 눈빛을 보낸다.

“이 일이 퍼지면 과한 손속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과한 손속이라니? 이 정도면 많이 봐준 건데?”

서진은 그게 뭔 개소리냐는 듯 되물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인외마경에서 천년을 지낸 그에겐 시비 걸면 죽여버리는 게 기본적인 행동방식이다.

다만 여긴 지구이니, 수위를 낮추어서 이 정도로 끝냈건만.

“내가 과했던 겁니까?”

서진은 이에 대한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본 설하윤은 판단을 뒤집었다.

“아뇨, 아마 괜찮으실 겁니다.”

“왜죠?”

“우선, 서진 님도 명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일은 가주님까지 보고가 올라갈 테고 그분이라면 사건에 대한 처분을 미뤘다가 대련의 결과에 따라서 모든 걸 결정하려고 할 겁니다.”

일리가 있는 얘기였다.

“다만 문제는 대련에서...”

“내가 못하면 안 된다는 거죠?”

“..네”

서진은 입꼬리를 올렸다.

“그건 걱정 안 해도 됩니다.”

**

던전기획실 2팀에 근무 중인 정유혜.

갑자기 그녀에게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방향은 위층.

‘위층이면 1팀 사무실인데.’

같은 층의 다른 직원들은 살짝 위를 쳐다보고 말거나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다.

평소 호기심을 주체 못하는 그녀는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화장실 가는 척하면서 확인해보자.’

정유혜는 자리에서 일어나 위층으로 올라갔다.

제일 먼저 목격한 광경은 꽤 충격적이었다.

“세상에!”

바닥에 쓰러진 남직원과 널브러진 물건들.

다른 1팀 직원은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바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떻게 된....어?”

사무실 안에는 미처 못 봤던 사람이 두 명 있었다.

“마침 잘 왔네요.”

서진은 타이밍 좋게 나타난 여직원에게 말했다.

“다른 1팀 직원 빨리 오라고 해요. 급합니다”

던전 예약해야 하는데 예상치 못한 일에 시간을 허비했다.

물론 가문의 백업 없이 서진이 직접 던전 입장권을 구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돈과 시간 때문이다.

약값을 위해 돈을 아끼고 싶거니와 원하는 등급과 시간대에 맞는 던전을 빠르게 구하려면 가문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 최선이다.

“네? 네!”

여직원은 당황하면서도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서진은 그 모습을 보면서 설하윤에게 물었다.

“1팀은 제가 개판을 쳐놨으니 2팀에게 해달라고 할까요?”

“직계 분들은 1팀에서 맡는 게 관례이지 않습니까. 이런 일로 관례를 깨면 집법당(執法堂)에서 잡음이 나올 것 같습니다.”

“하긴 그 인간들이 뭐라 하겠군요.”

그리고 의자에 앉아 기다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1팀 소속으로 보이는 마른 인상의 여직원이 나타났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에요?”

“저도 뭐가 뭔지 잘...”

그녀는 정유혜에게 물어봤지만 모르는 건 마찬가지였다.

시선은 정유혜를 벗어나 서진에게 닿았다.

“누구시죠?”

“한서진입니다. 던전 때문에 왔으니 빨리 처리해줬으면 좋겠네요.”

“네? 아하...그..”

직원은 이름을 듣고선 눈빛이 바뀌었다.

경계심에서 무시하는 쪽으로.

“그전에 왜 저 사람이 쓰러져있고 사무실은 이런 꼴이 된 거죠?”

“그렇게 궁금하면 던전 일정 먼저 잡아주시죠.”

“아니 저기요. 그딴 말로 넘어갈 만한 일이...!”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설하윤이 중간에 말을 끊고 나섰다.

이대로 가면 또 한서진의 심기를 건드릴지도 모르기에.

“한번 해보세요.”

여직원은 무슨 일인지 듣고 판단하겠다는 듯 팔짱을 꼈다.

설하윤은 간결하고 명료하게 사건을 말해주었다.

설명이 끝나자 여직원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저 사람이 이렇게 만들었다는 거네요?”

사정을 파악하고도 이런 반응을 보이다니.

설하윤은 불안해졌다.

당연하게도 여직원은 그런 걱정은 알지 못한 채 말을 이었다.

“일단 사무실부터 원상복구 해야겠어요. 치울 것도 치우고. 거기 당신도 일어나서 청소하세요. 뭐 잘했다고 앉아있어요?”

그 말을 들은 한서진은 선선히 일어났다.

물론 청소를 도와주려 일어난 게 아니었다.

서진의 발걸음은 여직원에게 향했다.

“저한테 오지 말고 저거나 치우라고요.”

“어지간히 만만해 보였나 보네.”

“뭐래는거야.”

서진은 화가 나기보단 기존의 편견을 부숴나갈 생각을 하니 오히려 즐거웠다.

여직원 앞에 도달한 서진은 그녀의 목을 움켜잡았다.

“커억.”

그녀가 몸부림을 쳤으나 서진의 팔은 끄떡없었다.

헌터도 아닌 사람이 서진의 근력을 못 이기는 건 당연했다.

“참 재밌어. 자신보다 더 강한 줄 알면서 왜 그따위 태도를 보이는 걸까. 답은 하나야. 상대방이 자신을 못 때릴 걸 아니까. 선을 넘지 못할 거라 생각하니 안심하고 막 나가는 거지.”

서진은 손에 힘을 더 주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너 못 팰 것 같아? 아니 못 죽일 것 같냐?”

정작 그의 눈빛엔 살기 한 톨 담기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래서 더 무서웠다.

아무렇지 않게 죽일 것 같아서.

그녀는 온 힘을 짜내 겨우겨우 한 마디 뱉었다.

“죄, 죄송...”

털썩!

서진은 그녀의 목을 놓아주었다.

애초에 죽일 생각은 없었으니까.

“흐억, 쿨럭 쿨럭.”

“이제 잘 하실거죠?”

“네, 네. 죄송합니다.”

눈물 콧물을 흘리던 그녀가 진정된 이후론 일사천리였다.

박명규가 고작 이런 일로 그렇게 뻗댔었나 싶을 정도로 빠르게 처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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