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마력이 1 상승합니다.]
[마력이 60에 도달하였습니다.]
[Lv.4가 되었습니다.]
[마나가 회복됩니다.]
서진은 목표대로 4레벨을 달성했다.
레벨이 올라간다는 것은 단순히 숫자만 변하는 게 아니다.
육체에 축적 가능한 마나량이 증가하며 스킬의 습득 한계가 늘어난다.
제한이 없는 특성과 다르게 스킬은 레벨이 올라야 제한이 풀린다.
서진은 4레벨이니 흑룡검술을 제외한 3개의 기술을 추가로 습득할 수 있는 것이다.
투신공은 직접 창안한 것이라 습득 제한에 포함되지 않는다,
‘가문으로 돌아가면 스킬을 늘려야겠어.’
검술 하나로는 벅찬 상황이 분명히 올 테니까.
“서진 님! 발견했습니다!”
설하윤이 던전의 핵을 발견했는지 멀리서 소리쳤다.
“그래요?”
서진은 고블린 로드에 꽂혀있던 검을 뽑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벽 중앙에서 툭 튀어나온 돌이 영롱한 붉은빛을 내뿜고 있다.
“핵 맞네요.”
서진은 자연스레 지친 한숨이 나왔다.
설하윤은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저보단 하윤 씨가 고생 많았죠. 어서 부숩시다.”
“예.”
우웅.
설하윤은 검에 마나를 덧씌우고 위에서 아래로 내리쳤다.
콰앙!
던전의 핵이 빛을 잃으며 부서지고 포탈이 나타났다.
서진과 설하윤은 냉큼 그곳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공간이 뒤틀리는 감각과 함께 무사히 밖으로 나왔다.
“완전히 한밤이네요.”
“하윤 씨 지금 몇 시죠?”
“새벽 3시 10분입니다.”
“하.”
서진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던전 등급을 제대로 알려줬으면 이런 개고생은 하지 않았을 터.
그나마 좋은 점이라면 마석을 상당량 얻어서 돈을 꽤 벌었다는 것 정도.
“서진 님, 마석 정산하고 오겠습니다.”
임시로 세워진 던전관리소에는 당직을 서는 직원 한 명이 있었다.
그마저도 졸고 있지만.
설하윤은 직원을 깨워 일을 마친 후 돌아왔다.
“이제 늦기 전에 돌아갑시다.”
흑룡가주와 내기했던 대련.
그게 열리는 날이 오늘이며 시간은 오전 8시.
여유 부릴 시간이 없다.
설하윤은 차의 시동을 걸며 말했다.
“최대한 빨리 가겠습니다.”
**
오전 7시 50분.
흑룡검가의 대연무장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간만에 재밌는 구경 하게 생겼네.”
“그런가? 난 금방 끝날 것 같은데.”
“그럴지도 모르지. 근데 그런 말 하면서 왜 보러 왔냐.”
“뭐, 한방에 쓰러져도 그거 나름대로 재밌을 것 같아서.”
“큭, 그것도 웃기긴 하겠어.”
최악의 둔재인 한서진과 백랑대원이 붙는다는 내기는 가문 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의 궁금증은 이거다.
과연 한서진이 무슨 자신감으로 내기를 수락했는가.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알 텐데 말이다.
“그런데 이제 5분밖에 안 남았는데 아직 한서진이 안 보이는데?”
“8시 땡하면 나오려는 생각이겠지.”
“그런 것치곤 저어기 앉아있는 백랑대장은 당황한 눈치 같기도 하고.”
“혹시 무서워서 도망쳤나.”
“에이 설마... 아 저기 한서진 아닌가?”
8시가 거의 다 되었을 무렵에서야 한서진은 모습을 드러냈다.
동시에 수많은 이가 그를 향해 소리쳤다.
“오 나왔다!!”
“무능력자는 꺼져!!”
“안 나오는 줄 알았다 새끼야!”
“난 너한테 걸었다. 믿는다!!”
서진은 가지각색의 반응을 들으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자 흑룡가주를 비롯해 가문 내 핵심 인사들이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서진이 대연무장의 중앙까지 걸어 나가자 백랑대장이 다가왔다.
“준비는 되셨습니까.”
서진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상대는 백랑대 중에서 한서진 님이 정할 수 있습니다. 누구로 하시겠습니까.”
“그냥 나랑 붙고 싶은 사람 나오라고 해요.”
“괜찮겠습니까.”
“얼마든지요.”
그리고 잠시 기다리자 백랑대 문장이 그려진 옷을 입은 사내가 앞으로 나왔다.
그는 서진에게 머리를 까딱이며 인사했다.
“백랑대 소속 4레벨 고연성입니다.”
“내 소개는 필요 없죠?”
그러자 고연성은 서진을 빤히 쳐다봤다.
자기소개는 오글거려서 안 하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레벨 소개를 굳이 듣고 싶은 모습이다.
이대로 넘기면 도망쳤다고 생각하겠지.
서진은 그 꼴은 보지 못하는 성격이다.
덤비는 녀석이 있다면 피하지 않고 맞대응한다.
이게 인외마경의 이계에서 지내던 서진의 행동방식이니까.
“4레벨, 한서진.”
“예?”
대답을 들은 고연성은 얼굴을 찡그렸다.
기껏해야 2레벨이라는 정보가 파다하게 퍼져있는데 4레벨을 입에 담다니?
“무슨...말도 안 되는.”
“반응을 보니 듣고 싶은 대답이 따로 있었나 보네.”
“...좋습니다. 당신의 말이 거짓말이든 뭐든 해보면 알게 되겠죠.”
그리고 심판을 맡은 백랑대장이 시작을 외쳤다.
파지직!
고연성의 검에 흑룡검술의 상징인 뇌기가 나타났다.
타앗!
그리고 빠르게 몰아치기 시작한 검격.
‘스피드가 괜찮네.’
서진은 느긋하게 품평하며 몸을 틀어 피했다.
고연성의 공격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파직!
푸른색 전류가 서진의 허점을 덮쳐왔다.
‘공격도 괜찮고.’
서진이 의도적으로 만든 허점이긴 하나 빈틈을 공략하는 검이 제법 매섭다.
서진은 고연성의 모든 공격을 한 발짝 차이로 전부 피해내고 있었다.
“후우.”
잠시 거리를 벌린 고연성이 숨을 가다듬고 노려봤다.
“언제까지 도망만 치실 겁니까.”
“가만히 안 있으면 벨 자신이 없는 건 아니고?”
고연성은 깊게 심호흡을 하고 다시 발을 움직였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그는 서진의 정면에서 사라졌다.
‘잡았다.’
보법으로 서진의 등 뒤를 점한 고연성은 검을 휘둘렀다.
지면을 향하던 검 끝이 사선으로 올라가며 서진에게 쇄도했다.
‘이건 못 피해.’
고연성은 확신했다.
콰앙!
그러나 고연성이 기대한 것과는 다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로의 뇌기가 부딪히며 나는 폭발음.
예상외의 광경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큭!”
서진의 일검을 버텨내지 못한 고연성은 한참을 뒤로 밀려났다.
그리고 놀란 건 관중석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저거 보라색 아니야?”
“맞는 것 같은데. 이게 말이 되나?”
서진의 검에 둘러진 번개는 짙은 보라빛을 띠고 있었다.
흑룡검술은 성취에 따라 번개의 색이 다르다.
1성은 백색, 4성부터는 청색, 7성부터 자색을 보인다.
그렇기에 서진의 번개는 흑룡가주의 반응을 끌어내기 충분했다.
‘아무래도 궁금하겠지.’
서진은 지긋이 쳐다보는 가주의 시선을 흘러 넘겼다.
눈앞의 똥강아지부터 조련해야 하니까.
“고연성 씨, 안 와?”
서진은 그가 덤비기 쉽게 검을 아래로 늘어뜨렸다.
고연성의 눈동자는 한껏 커진 상태였다.
“7성..?”
말문이 막힌 그가 가만히 있자 서진이 먼저 나섰다.
“안 오면 내가 간다.”
서진의 검이 곧바로 고연성의 심장을 향했다.
타앙!
고연성은 가까스로 막아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정신 차리기 힘들 정도의 검격이 그에게 연쇄적으로 쏟아졌다.
‘무슨 놈의 검술이.’
고연성은 막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었다.
검에 담긴 힘은 강맹한데 움직임은 흐르는 물과 같다.
마치 허공에 떠 있는 중검(重劍)을 상대하는 기분.
반격을 할 여유나 틈이 전혀 없다.
더 감탄스러운 건 이 와중에 자신을 가르치고 있다는 점이다.
“허리가 비었네.”
“그렇다고 발목을 비우진 말고.”
“이거 몇 번 받아쳤다고 벌써 검이 흔들리면 안 되지.”
조언의 개수와 함께 고연성의 상처는 늘어갔다.
그럴수록 그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대련 직전까지만 해도 한서진을 내심 무시하는 태도를 드러내지 않았던가.
분명 재능이라곤 전혀 없는 1레벨이라고 했는데.
그런데 지금은 그에게 가르침을 받고 있다.
고연성은 창피한 마음에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둘렀다.
서진은 그런 모습을 보며 허점을 찔렀다.
“힘을 과하게 주니까 연결 자세가 끊기잖아.”
“큭.”
“뭐 이쯤에서 끝낼까.”
싹이 보여서 재미 삼아 가르쳤지만 마무리 지을 때가 됐다.
이미 고연성의 몸은 성한 구석이 없을 정도였으니.
서진은 뒤로 물러난 다음 고연성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이제 마지막이니까 한번 받아쳐 봐.”
치지직!
서진의 뇌기가 심상치 않은 기류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검신에 자색 전류가 모여드는 순간.
흑룡검술 제3식 뇌격포(雷擊砲)
응축된 번개가 폭발적으로 발사되었다.
잔뜩 긴장한 고연성은 마나를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사용할 기술은 흑룡검술 제3식인 섬광벽(閃光壁)
서진과 같은 순서의 3식이지만 완전히 다른 기술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서진은 천 년 동안 자신에게 맞게 개량해버렸으니까.
물론 지금 고연성에게 그런 사실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덮쳐오는 전격을 막기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했으니까.
파지지직!
아래에서 솟구쳐 오른 푸른 번개는 벽이 되어 고연성을 보호했다.
그뿐만 아니라 뇌벽은 전방을 향해 눈부신 빛을 내뿜었다.
그러나 서진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
뇌격포는 흔들리지 않고 섬광벽과 부딪혔다.
콰아앙!
충돌의 여파로 인해 연무장 바닥이 박살 나며 주변은 흙먼지로 자욱해졌다.
그건 가까이서 관람 중이던 사람들에겐 날벼락이었다.
“콜록, 콜록.”
“퉤, 아 입에 흙 들어갔어.”
“근데 어떻게 된 거야. 잘 안 보이네.”
이윽고 먼지가 가라앉고, 대련의 결과가 드러났다.
연무장 바깥까지 날아가서 쓰러져있는 고연성과 검집에 검을 넣고 있는 한서진.
“보고도 믿기지 않는군.”
백랑대장은 한숨을 쉬고 부하에게 고연성을 옮기라 지시했다.
그는 심판으로서 이 대련을 마무리 짓기 위해 연무장 중앙으로 걸어 나갔다.
“후, 다들 보셨다시피 이번 대련의 승자는 한서진 도련님입니다!”
그와 동시에 함성이 울려 퍼졌다.
관중석에선 가지각색의 반응이 나왔다.
“와 저게 그 한서진 맞냐?”
“그러게 동일 인물이라고 보기가 힘들 정도야.”
“크, 뭔가 있으니까 대련 승낙한 거 아니겠어. 역배 제대로 터졌네.”
옆에 있던 외무각의 홍보실 직원도 한마디 거들었다.
“첨엔 짜고 치는 줄 알았는데 마지막 공격 보니까 아니구나 싶었다.”
“저런 검술을 보고 짜고 친다고? 넌 절대 헌터하지 말고 홍보실에 있어라. 저 정도면 내가 평가할 엄두도 못 낼 정도의 수준이야. 미친 거라고.”
“그 정도냐?”
“어, 맘 같아선 내 검술도 봐달라고 하고 싶을 정도.”
“근데 이상하지 않냐.”
“뭐가.”
“한서진 1레벨이라며 언제 저렇게 강해졌지?”
“그러게. 뭐 방법이 있었겠지, 흑룡가의 장손이니까.”
“단기간에 저렇게 강해질 방법이 있다면 쓰러지기 전엔 왜 그렇게 약했지?”
주변의 사람들 모두 입을 다물었다.
여러 가설은 떠오르지만 모두 설득력이 없는 망상 수준이었기에.
결국 누군가가 주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이제 더 복잡해지겠어.”
“아, 후계자 경쟁?”
“그렇네, 가주님은 무조건 실력주의인데 저렇게 폭풍 성장을 해버렸으니.”
놀라운 반응을 보인 건 일반 관람석뿐만이 아니었다.
“흐음.”
옆에 있던 대한가문회장이 믿기지 않는 듯 말을 걸었다.
그는 조금 전까지 봤던 자색 전류가 뇌리에 깊게 박혔다.
“저 색은 흑룡검술 7성을 달성해야 나오는 거 아닌가? 자네 손자가 벌써 7성을 달성했단 말인가?”
“글쎄, 보기엔 5레벨 이하의 마력이야.”
“그래서 신기한 거지. 자색을 띠려면 7레벨이 되어야 하는데 아무리 봐도 그렇진 않으니.”
흑룡가주는 불현듯 어떤 책 내용이 떠올랐다.
“가능할지도 모르지.”
“무슨 말인가.”
“초대 가주께서 쓴 회고록에 의하면 검술의 이치를 통달한다면 경지보다 높은 색이 나타난다고 했네.”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그게 말이 되는가. 경지가 낮은데 이치를 다 깨우치다니.”
대한가문회장은 초대가주의 회고록이라고 하나 납득이 힘들었다.
정말 모순이 아닐 수 없으니까.
흑룡가주도 친구인 회장의 의견에 뭐라 하지 않았다.
“사실 나도 반신반의했지. 그런데 이제 달라졌어. 증거가 저렇게 버젓이 있지 않은가.”
“끄응, 그렇긴 하구만.”
“그리고 이렇게 얘기만 할 게 아니라 저 녀석을 불러서 물어보면 확실해지겠지.”
“저기 안 그래도 오고 있구먼.”
한서진은 가문의 주요 인사들이 있는 이곳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가는 곳은 흑룡가주 쪽이 아니었다.
“음? 저놈은...”
한서진의 발끝은 던전기획실 1팀장을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