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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가문의 천재는 사실 귀환자-17화 (17/141)

17화

성주원은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조건이 뭔데.”

“나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 상황에 따라 내가 요청하면 기갑성가의 헌터를 보내 주거나 아니면 돈을 필요로 할 때도 있을 거고.”

“너무 추상적이고 포괄적이잖아.”

“인정해. 그런데 계약서로 명시하려니 이 바닥이 워낙 변수가 많아서 힘들더군.”

“그렇긴 한데.”

“쉽게 생각하면 돼.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기갑성가의 힘으로 적당한 선에서 도와주는 것. 항상 우호적인 스탠스는 기본이고.”

성주원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이건 너에게 너무 불리한 거래 아닌가. 우리가 마나 재능이 늘고 나서 모른척하면 어쩌려고.”

“우선 걱정해줘서 고마워, 하지만.”

서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되면 정인호 부단장도 내 거래대상이 되겠지.”

“너...!”

성주원은 순간 몸을 일으켰다가 다시 털썩 앉았다.

“사과하지. 괜히 떠보는 말을 했군.”

“아니 사과할 필요는 없어. 솔직히 당연한 의문이었으니까. 그리고 담보는 하나만 있는 게 아니야.”

“뭐라고?”

“내 스킬로 컨트롤이 수월해진다면 반대로 회수도 가능하다는 건 생각 못했나 보네.”

“앗! 그런!”

이번엔 성가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성주원은 손질된 머리를 괜히 뒤로 넘기며 말했다.

“정말 쓸데없는 걱정을 했군.”

“혹시 진심이었어? 그러면 미안하고.”

“됐어, 네가 만만한 인간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 그걸로 퉁치지 뭐.”

사실 회수 얘기는 거짓말이다.

강제 사항이 없는 계약이라 한번 툭 던졌는데 쉽게 믿을 줄 몰랐다.

전혀 눈치채지 못한 성주원은 다른 질문을 했다.

“그러면 언제까지 해야 되는 거냐.”

“지금부터 시작해서 네가 가주가 되고 나서 5년까지.”

“생각보다 짧다?”

무장의 적합성은 나이가 들수록 떨어진다.

그렇기에 기갑성가의 헌터는 은퇴가 빠르다.

가주도 마찬가지.

사실 소가주만 되면 가주 취임까지는 금방이다.

소가주 결정 회의가 상당히 중요한 이유였다.

당연히 서진도 알고서 정한 기간이다.

“너무 길면 싫어할 거잖아.”

“그렇긴 한데.”

성주원은 뭔가 마음에 안 드는지 미간을 찌푸리다 입을 열었다.

“5년은 짧으니까 3년 추가해서 8년 어때.”

“시장 바닥에서 흥정하는 것도 아니고.”

서진은 헛웃음을 흘렸다.

“됐어. 그냥 5년 해. 내가 너희 가문 사정 모르는 것도 아니고.”

한 명의 강력한 군주가 통치하는 흑룡검가와 달리 기갑성가는 간접 민주제에 가까웠다.

세월이 흐를수록 가주의 힘이 빠질 텐데 기간을 늘린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그건 성주원 본인이 훨씬 잘 알고 있을 터였다.

“이걸 고맙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이야기는 정리됐으니 난 먼저 간다.”

“어.”

성주원이 나가고 휴게실에는 서진과 성가을만 남았다.

“그렇게 됐으니 지금 시작할래? 오늘은 오염된 마나 찌꺼기 제거만 해야 되겠지만.”

“저야 언제든 환영이에요.”

**

서진은 기갑성가에서 기존 예상보다 오래 머물게 되었다.

남매의 마나 경로를 건들기 위해선 용체화가 필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체화는 지속할수록 서진에게 부담이었고 불가피하게 재능 개화 작업은 느리게 진행되었다.

결국 3주가 지나고 나서야 마칠 수 있었다.

성가을의 등에서 손을 떼며 서진이 말했다.

“이제 끝났어.”

그녀는 이전보다 빨라진 마나 순환 속도와 정교해진 조절 능력을 한껏 체감할 수 있었다.

너무나 벅찬 마음이 든 성가을은 일어나서 서진을 안았다.

“고마워요 오빠. 계속 말해도 부족한 것 같아요.”

“아냐. 은혜 갚을 겸 거래를 했을 뿐인데.”

성가을은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제가 아니 저희가 더 크게 받은 것 같아요. 만약 도와드릴 일이 있으면 꼭 연락해 주세요. 무조건 갈게요.”

“그래.”

서진은 이제 기갑성가를 떠날 준비를 했다.

공방을 나서자 성주원이 마중을 나왔다.

마나 재능이 올라간 덕분인지 한결 여유로운 얼굴이었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그러게, 이렇게 오래 있을 생각은 없었는데.”

“혹시나 흑룡검가에서 쫓겨나면 우리 가문으로 와라. 일자리를 줄게.”

“개소리하는 걸 보니 마음이 좀 편안해졌나 보네.”

“오빠, 이거 챙겨가세요.”

시답잖은 대화 중에 성가을이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받아서 열어보니 10통의 약이 들어있었다.

“이거 꽤 비쌀 텐데.”

서진이 전에 샀던 RS3보다 윗급으로 보였다.

“히히, 조금 도움이 될까 해서요.”

“고마워. 이 정도면 당분간 돈 나갈 일 없겠다. 그럼 이제 갈게.”

“그래 잘 가라.”

서진은 흑룡검가에서 내려보낸 차를 타고 기갑성가를 빠져나갔다.

**

가문으로 복귀하니 설하윤이 서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 돌아오시나 했습니다.”

“하하. 오랜만에 보는 것 같네요.”

“도중에 헬기가 추락했다고 들었을 때 상당히 걱정했습니다. 다치신 곳은 없다고 들었는데 후유증은 없으십니까.”

“전혀 없어요. 멀쩡합니다.”

괜찮다는 대답을 했음에도 그녀는 서진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서진은 설하윤의 눈빛에서 왠지 모를 압박감을 느꼈다.

“서진 님.”

“네?”

“다음부터는 외부 스케줄이 있을 때 무조건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에이, 굳이 안 그래도.”

설하윤은 한발자국 더 다가와 강렬한 의지를 담은 눈빛을 쏘아냈다.

잠깐의 눈싸움 끝에 서진은 결국 항복했다.

“알겠습니다. 다음부터는 같이 가죠.”

그녀는 만족하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서진 님.”

“이번엔 뭡니까.”

“만약 그때 주신 제안이 아직 유효하다면 은월검류를 배우고 싶습니다.”

“아하, 잘 생각했어요. 그럼 잠깐 들어올래요?”

설하윤은 서진을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

2층에 있는 방으로 들어간 서진은 책을 하나 꺼내왔다.

“은월검류(隱月劍流)의 구결을 적어놓은 책입니다. 이제 하윤 씨 거니까 다 익히면 불태워도 좋습니다.”

“보관해도 괜찮습니까?”

“네. 여기저기 퍼트리지만 않는다면요.”

설하윤은 두 손으로 받으며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최대한 빠르게 익히겠습니다.”

“천천히 해도 괜찮아요.”

“그리고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가요?”

“원래 다음 주에 한재열의 무구예식이 예정돼있었는데 알고 계셨습니까.”

“그러고 보니 생각도 못 하고 있었네요.”

흑룡가의 직계가 성인이 되면 명장이 장비를 만들어주는 걸 무구예식이라고 한다.

서진은 20살에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아직 무구예식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가주님이 한재열의 차례를 미루고 서진 님부터 하라고 하셨습니다.”

“아, 그럼 한재열은 난리가 났겠군요.”

“예, 그쪽 라인에서 반발이 있었고 그러자 가주님은 서진 님이 돌아오면 순서를 정해보자고 하셨습니다.”

무구예식의 문제가 이거였다.

제작 시 필요한 희귀 재료 때문에 3년마다 한 번씩 순서가 돌아간다는 것.

올해 한재열의 나이가 20살인데 공교롭게도 같은 해에 한서진이 깨어나 버렸다.

즉, 이번에 못하는 사람은 3년을 기다려야 한다.

거기다 역대 가주들은 전부 무구예식을 치뤘기에 후계자라면 반드시 해야되는 명분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런 말이 나온 지 며칠 됐습니까?”

“5일 전 일입니다.”

이때 전화가 울렸다.

받아보니 역시나 무구예식 건이었다.

“하윤 씨, 저 잠깐 다녀올게요.”

서진은 집무실로 향했다.

도착해서 문을 열어보니 가주와 그의 비서 그리고 한재열 역시 와있었다.

흑룡가주는 비서에게 말했다.

“형석아. 네가 설명해라”

“알겠습니다.”

김형석 비서는 안경을 올리며 입을 열었다.

“사실 과거에도 이런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리고 해결 방법은 항상 동일했습니다. 던전 경쟁.”

“그게 뭡니까.”

“두 분께 일주일의 시간을 드릴 겁니다. 본인 포함 최대 3명의 공략 인원으로 던전을 클리어하시면 됩니다. 그때 클리어한 던전의 등급이 더 높은 분이 승리입니다.”

“만약에 둘 다 같다면요?”

“그렇다면 다시 위의 과정을 반복합니다.”

한재열은 다른 질문을 꺼냈다.

“같이 던전을 공략할 헌터는 누구든 상관없는 겁니까?”

“네. 흑룡검가의 헌터가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다만 본인을 제외한 직계 혈손분들은 공략멤버로 선택이 불가능합니다.”

가족을 제외한 인원으로 던전 경쟁을 치러야 한다는 게 기본적인 취지였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던전도 개인 돈을 쓰든 던전기획실 힘을 빌리든 상관없습니다. 다만 7일 후 당일날 공략할 던전이 없어도 패배입니다.”

후계자 개인의 무력뿐만 아니라 돈, 정보, 인재 등 종합적인 능력이 중요한 대결이었다.

설명을 마치자 가주가 입을 열었다.

“들었듯이 오늘부터 시작한다. 이의 있느냐.”

“없으면 할 말은 끝이다.”

서진과 한재열이 집무실을 나가자 가주가 비서에게 물었다.

“형석아.”

“예 가주님.”

“넌 누가 이길 것 같으냐.”

“한재열 도련님이 이기지 않겠습니까? 쌓아온 기반의 차이가 심합니다.”

“그렇긴 하지.”

김형석 비서는 가주의 심중에 대해 조심스레 물어봤다.

“혹시 한재열 도련님을 밀어주기 위해 경쟁을 붙이신 겁니까?”

한벽호는 물음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다.

무거운 침묵에 비서는 곧장 머리를 짧게 숙였다.

“쓸데없는 질문을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형석아.”

“예.”

한벽호는 비서의 질문에 괘이치 않는 듯 말을 꺼냈다.

“조바심 내지마라. 시간이 지나면 싹수가 선명해질테니.”

“명심하겠습니다.”

김형석 비서는 성급했던 실언을 자책했다.

어차피 흑룡검가의 주인이 바뀔 일은 한참 뒤일테니까.

**

한재열은 바로 자신의 어머니를 찾아갔다.

이혜린 또한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기에 먼저 말을 꺼냈다.

“재열아. 그래서 어떻게 됐니?”

“던전 경쟁이란 걸 하게 됐습니다.”

한재열이 구체적으로 설명을 마치자 이혜린은 안심했다.

들어보니 이건 아들에게 굉장히 유리한 경쟁이다.

‘시아버지가 한서진 편을 들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이야.’

그녀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아들에게 말했다.

“3명만 갈 수 있으니 신중하게 골라야겠구나.”

“네. 한서진 쪽에는 절대 밀리지 않을 헌터로..”

이혜린은 고개를 저었다.

“재열아. 우리 쪽 헌터만 고려해선 시야가 좁아진다.”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한서진 곁에 있는 설하윤을 빼 오면 훨씬 치명적이지 않겠니? 걔 6레벨이라며.”

“예, 그런데 가능할까요. 어머니.”

26살의 젊은 나이를 생각하면 꼭 데려오고 싶은 헌터였다.

“아마 설하윤은 지금 불만이 많을 거다.”

“왜죠?”

“설하윤이 비서가 되고 나서 한 일을 생각해보렴.”

이혜린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자기 약 사러 가기 위해서 운전기사처럼 부리고, 던전에 5일 연속으로 투입시켜서 엄청나게 고생을 시키질 않나, 최근에는 한 달 가까이 방치하며 신경도 안 써줬더구나. 알아보니 기갑성가에서 먹고 자고 놀기만 했다고 들었다.”

“아...”

“그러니 네가 가서 말을 해보렴. 이런 건 밑에 사람 보내는 대신 직접 가서 제안하는 게 좋으니까.”

“알겠습니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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