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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가문의 천재는 사실 귀환자-20화 (20/141)

20화

“너 술 취했냐?”

사실 서진이 술이 약해서 맥주 한 캔만으로 취해서 헛소리를 한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 멀쩡해.”

목소리 톤이 올라간 정보건에 비해 서진은 침착했다.

“형. 머리가 잘 안 돌아가면 내일 다시 얘기할까?”

오히려 한서진이 정보건을 더 걱정해주었다.

“아니 잠깐만.”

정보건은 앞에 놓인 생수를 벌컥 마신 뒤에 다시 물어봤다.

“내 귀가 이상한 게 아니라면 방금 A급 던전이라고 한 거 맞지?”

“어.”

“야 A급 던전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하는 말이야? 내가 현장에서 일하면서 A급에 드나드는 헌터들 대부분이 8레벨 이상이었어. 그것도 최소 5인 이상 팀을 이룬 상태로 입장해.”

정보건은 던전 입구 관리직을 하며 수많은 공략팀을 봐온 경험이 있었다.

그는 서진이 경쟁에 눈이 멀어 어떻게 된 건 아닌지 진심으로 걱정되어 말을 쏟아냈다.

“너랑 설하윤 헌터 둘이서 A급 던전에 간다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야.”

정보건은 말하는 도중에 혹시 하는 생각으로 질문을 꺼냈다.

“아, 3명이 팀으로 입장한다고 했으니까 설마 나머지 한 명이 엄청난 헌터인 거냐?”

10레벨 헌터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근데 그게 말이 되나?”

정보건은 자신이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가정이라 고개를 갸웃했다.

그럴 수밖에.

국내에서 10레벨 헌터는 흑룡가주와 한국헌터협회장뿐이니까.

서진은 드디어 조용해진 정보건을 보며 말했다.

“정신 사나우니까 앉아봐.”

“크흠, 내가 좀 흥분했네, 미안하다.”

“형, 내가 술 취해서 말하는 것도 아니고 자살하려는 것도 아니야. 가능해서 그런 거지.”

정보건은 옅게 미소 짓고 입을 열었다.

“그래, 내가 할 일은 너를 믿는거지. 그러면! 조건은 A급이기만 하면 돼?”

“아니, 개체 수가 적은 던전이어야 해.”

“괜찮겠냐?”

몬스터 수가 적다는 건 그만큼 몬스터가 강하다는 걸 의미한다.

정보건은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지만 서진의 눈빛은 확고했다.

“응.”

“휴, 알았다. 내일부터 바로 알아볼게. 그런데 그 정도 급의 던전이면 쉽진 않겠어.”

A급 던전 자체가 얼마 없을뿐더러 그마저도 다른 길드나 가문이 공략권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안 되면 전쟁을 해서라도 공략권을 뺏어와야지.”

“진심이야?”

“농담이지, 한국에 없으면 해외에서 찾아봐.”

“정말 해외도 괜찮냐?”

“꼭 한국의 던전이어야 된다는 조건은 없었거든.”

“그러면 할만한데. 헌터 약소국들을 중점으로 알아보면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공략권 따내기도 어렵진 않을 거고.”

정보건은 말을 하던 중에 문득 다른 걱정이 하나 생겨났다.

“그런데 말이야. 괜찮을까?”

“뭐가?”

“한재열 쪽에서 훼방이 들어올 수 있지 않냐. 맘에 드는 던전 골라놨더니 뺏어간다던가. 내 괜한 걱정인가.”

“아냐. 걔라면 그럴만하지. 근데 그것도 대책이 있으니까 상관없어.”

서진의 머릿속엔 기갑성가의 성주원이 있었다.

원하는 던전을 찾고 나면 성주원의 이름으로 공략 계약을 걸어놓을 생각이었다.

한재열이 아무리 용을 쓴다 한들 기갑성가의 장자를 건드리진 못할 테니까.

“그러니 형은 조건에 맞는 던전 탐색에만 힘을 쏟아줘.”

“그래. 내일부터 미친 듯이 알아볼게.”

**

다음 날 서진은 설하윤과 함께 연무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설하윤은 은월검류로 일대일 대결 감각을 익히기 위해.

서진은 자신보다 높은 레벨의 헌터를 상대하며 실전 감각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물론 투신의 자리에 올랐던 서진이 조금 쉰다고 감각이 녹슬어질 리 없다.

그냥 하고 싶은 일에 핑계를 갖다 붙였을 뿐.

서진에게 투쟁과 싸움은 이미 습관을 넘어선 무언가가 되어버린지 오래다.

‘그리고 하윤 씨가 은월검류를 어디까지 익혔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이래저래 설하윤과의 대련은 서진에겐 즐거운 기대감을 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기분도 잠시.

“오 이게 누구야.”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남자의 말에 서진은 멈춰 섰다.

남자가 서진에게 가까워질수록 술 냄새도 진해졌다.

그렇지만 오전부터 술 냄새 풍기는 사람치곤 느껴지는 마력이 만만찮다.

남자는 야성적인 기세를 뿌리며 서진을 보며 말했다.

“한서진, 맞지?”

“그러는 당신은?”

“모르는 건가. 나름 유명하다고 자부하는데. 이차경이다. 이번에 던전 뭐시기 한다고 고용된 신세지.”

이차경은 서진을 위에서 훑고 나서 큰 소리로 말했다.

“우리 고용주에게 안 지려면 많이 노력해야겠어. 참고로 난 8레벨이니까 힘들겠다 싶으면 그냥 놓아버리는 것도 좋을 거야.”

“한재열이 당신더러 나에게 그런 말을 전하라던가? 8레벨 신세가 말이 아니군.”

“겁을 상실했나?”

이차경은 자신을 도발한 서진에게 손을 뻗으려다 멈칫했다.

‘이 녀석.’

십수 년간의 용병 생활로 쌓아온 감이 경고를 보냈다.

섣불리 건들면 위험하다고.

수많은 사선에서 살아남은 이유가 이런 육감 덕분이었다.

이차경은 다시 서진을 눈으로 샅샅이 살폈다.

밖에 드러난 근육과 자세, 내부의 마력 수준과 마나 크기까지.

‘5레벨, 아니 4레벨 정도?’

한재열 그 애송이도 분명 한서진이 4레벨이라 말했다.

하지만 이상했다.

분명 옆에 서 있는 저 여자가 레벨이 더 높은데도 한서진이 더 위험하게 느껴졌다.

이차경은 일단 한발 물러서기로 했다.

어차피 가문 내라서 장손인 한서진을 크게 다치게 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빽 믿고 설치는 부류는 아닌 것 같은데.’

이차경은 그런 놈들을 워낙 많이 봐왔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거 생각보다 만만치 않을지도 모르겠어.’

원래 흑룡검가 구경도 하고 돈도 벌 겸 반쯤 놀러 온 마음가짐이었는데 조금 찝찝해졌다.

‘성공 보수를 놓치긴 아까운데.’

이차경은 미간을 잠시 찌푸리다 침을 뱉고 생각을 비웠다.

“과한 걱정이야, 과한 걱정.”

고용주가 말하길 한서진 쪽은 영입할 수 있는 고레벨 헌터가 없다고 했으니.

정보가 사실이라면 무난하게 성공 보수를 얻고 끝낼 수 있으리라.

**

이차경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고 있는 서진을 설하윤이 불렀다.

“서진 님.”

“하윤 씨는 저 사람에 대해 알고 있나요?”

“들은 바는 있습니다. 몬스터, 헌터에 관련해서 돈 되는 일이라면 국내외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인물입니다. 최근에는 활동이 줄어들어 접촉이 힘들어졌다는 말이 있었습니다만.”

“한재열이 용케 데려왔군요.”

서진을 바라보는 설하윤의 눈빛엔 걱정이 서렸다.

“서진 님. 혹시 나머지 한 명은 정하셨습니까?”

“네. 안 그래도 오후에 연락해 볼까 합니다.”

“누군가요?”

“기갑성가의 성가을이라고 알아요?”

“예. 압니다. 그런데...”

설하윤은 뒷말을 흐렸지만 서진은 생략된 의미를 알아들었다.

우리 둘과 4레벨의 성가을로는 부족하단 말이겠지.

“괜찮습니다. 제가 지려고 경쟁을 하는 게 아니니까.”

“알겠습니다.”

설하윤은 단호한 서진의 말에 우려스러운 감정을 지웠다.

짧은 기간이지만 여태까지 그가 보여줬던 행보를 되짚어보면 믿고 따르기에 충분했다.

**

“도련님.”

한재열의 방에 들어온 비서는 오늘 입수한 정보를 그에게 전했다.

한재열은 눈썹을 씰룩이며 입을 열었다.

“정보건이 밤늦게 한서진 집에서 나왔다고?”

“예. 오후 11시쯤에 목격했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은 없었어?”

“둘만 대화를 나눈 듯합니다.”

“그럼 그렇지.”

한재열은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서진이 던전 건으로 기댈만한 사람이 정보건 팀장 말고 누가 있겠어.”

한재열은 한서진의 행동이 너무 예상과 똑같아서 심심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럼 정보건은 지금 어때? 뭐 하고 있어.”

“오늘 외근 나갔다고 합니다.”

“어디로?”

“헌터협회와 대한가문회라고 들었습니다.”

한재열은 잠시 턱에 손을 올리며 생각했다.

“흠, 던전은 흑룡가에서 소유한 걸로도 해도 될 텐데 거긴 왜 갔을까. 넌 어떻게 생각해.”

“던전의 등급 대비 공략 난이도가 쉬운 것을 찾으려고 갔을 수 있습니다.”

“오오, 역시 김비서. 일리가 있어.”

던전 정보가 많은 두 곳에 가서 리스트를 확보해볼 심산인가 보다.

“하지만 대한가문회는 몰라도 협회에서 쉽게 내주진 않을 텐데.”

“아마 안돼도 본전이라는 생각 아니겠습니까.”

“그렇겠지. 어차피 뒤를 밟으면 알게 돼. 오늘부터 정보건한테 사람 붙여.”

“알겠습니다.”

기껏해야 C급 던전을 고르겠지만 한재열은 느긋하게 풀어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가 어렵사리 비교적 쉬운 던전을 찾아냈을 때, 그걸 가로채버릴 것이다.

“정보건이나 던전기획실 애들 지켜보고 있어. 분명 가문이 아닌 개인으로 공략권을 따놓을 거야.”

흑룡가 명의로 던전을 잡으면 기획실의 던전 리스트에 올라가게 된다.

리스트에 있는 던전은 가문의 헌터가 요구하면 할당되기 때문에 무조건 개인 이름으로 예약을 해야 한다.

“그리고 던전 확인되면 공략 들어간다.”

“예.”

“던전에 몰래 공략할 애들은 알아봤어?”

“오후 9시에 접촉해서 제안할 예정입니다.”

“좋아.”

던전 경쟁에서 쓰이는 형태는 사냥형이 아닌 공략형 던전.

빠르게 치고 빠지면 증거도 남지 않는다.

‘이래서 형님은 안된다고 한 건데. 뭐 어차피.’

당일날 처참하게 밀리면 설하윤의 마음도 바뀌게 될 것이다.

거기다 호위 헌터까지 뺏으면 한서진은 거의 고립된다.

‘마지막으로 정보건까지 어떻게든 밀어내고 나면.’

소가주의 길에 한 발짝 더 다가서게 된다.

이번 경쟁도 전체적인 계획은 잡혀있으니 실행만 잘하면 된다.

다만 아직 공략 멤버 중에 한 자리가 비어있다.

‘8레벨 이차경 헌터만으로 든든하긴 하지만.’

한서진 측엔 6레벨 설하윤이 있으니 완벽하게 안심이 되진 않는다.

어머니가 헌터를 알아보겠다고 했으니 기다리는 수밖에.

사실 한재열이 끌어들이고 싶었던 헌터는 흑룡대장이었다.

하지만 아직 자신의 역량이 부족했기에 포기.

그 밑의 대원들도 누군가를 지지하는 행위를 삼가고 있어서 영입은 실패했다.

어쩔 수 없이 자호대로 시선을 돌렸지만 자호대장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었다.

‘그래도 부대장은 성과가 있었으니 괜찮아.’

비록 그의 약점을 잡아서 거래하는 사이긴 하지만 말이다.

부대장을 떠올리던 한재열은 어젯밤에 했던 지시가 떠올랐다.

“자호부대장에게 지시 한 건 어떻게 됐어?”

“상황 봐서 해보겠답니다.”

“쯧.”

“대신 실행하면 약속했던 물건은 꼭 챙겨달라고 말했습니다.”

“큭, 그렇게 말한 걸 보면 하겠네.”

**

“후우, 수고하셨습니다. 서진 님.”

“하윤 씨, 생각보다 은월검류의 성취 진척도가 빠르네요.”

서진과 설하윤은 가벼운 대련을 끝내고 차분히 숨을 골랐다.

“그렇게 보이십니까?”

“네. 그러니까 조바심 내지 말아요.”

“명심하겠습니다.”

설하윤은 구석에 있던 물통을 들고 와 목이 마른 서진에게 건넸다.

“고마워요.”

뚜껑을 따려고 하는 순간, 낯선 목소리가 서진을 불렀다.

“오랜만입니다. 첫째 도련님.”

대련을 지켜보고 있던 자호부대장이 연무장의 중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5년 만이라 기억하실진 모르겠습니다만 자호대의 부대장을 맡고 있는 함가원입니다.”

“내가 그 정도로 기억력이 안 좋진 않아. 반가워, 함가원 부대장.”

설하윤이 보기엔 오랜만에 만난 둘의 사이는 그닥 화목해 보이지 않았다.

함가원은 검 손잡이를 툭툭 건들며 서진에게 말했다.

“두 분이 대련하는 거 보고 저도 삘을 받아서 말이죠. 도련님하고 하고 싶은데 어떠십니까?”

“거절한다면.”

“싫다면 뭐 어쩔 수 없죠.”

하지만 서진의 투신공은 함가원의 말과 반대되는 결과를 알려왔다.

[근력이 2 상승합니다]

가벼운 살기만으로 이 정도라니.

물론 그가 호승심을 부추기기 위해 의도적으로 흘린 것이겠지만.

어쨌든 이런 맛있는 투기를 소유한 헌터와의 대련이다.

무슨 생각으로 접근한 건진 몰라도 철저히 뽑아먹어 줘야겠다.

“좋아. 해보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