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자줏빛 번개가 약점을 타격하자 고통스러운 비명이 울려 퍼졌다.
키이익!
스컬 아나콘다의 살기는 더욱 짙어져 고스란히 스텟으로 전환되었다.
[근력이 2 상승합니다]
무거운 거체를 꿈틀거리며 서진의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움직이는 속도를 높여서 쉽사리 맞추지 못하게 할 생각인가 보다.
그리고 독을 내뿜으며 접근을 차단하려 했다.
하지만 녀석의 독도 끊임없이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경험에 의하면 30초의 지속시간이 끝나면 3초 정도 독을 내지 못한다.
서진은 시간을 재면서 서서히 접근을 시도했다.
‘지금이다.’
독이 멈춘 순간, 서진의 검에서 솟구쳐 나온 번개가 뼈를 다시 강타했다.
키이이익!
스컬 아나콘다는 온몸을 비틀며 방향을 급격히 틀었다.
잔뜩 약이 올랐는지 엄청난 속도로 꼬리를 서진에게 휘둘렀다.
콰앙!
가까스로 꼬리 칼날을 흘려보낸 서진.
그러나 칼날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서진을 압박했다.
[마력이 2 상승합니다]
얼마나 살의가 가득했으면 공격을 피하기 급급한 와중에도 스텟이 상승하고 있었다.
약점을 두 번이나 맞은 스컬 아나콘다는 더 이상 봐주지 않겠다는 듯 움직임이 달라졌다.
‘A급이라 빡세긴 하네.’
행동 패턴을 꿰고 있지 않았다면 진작에 몸이 두 동강 났을 것이다.
‘앞으로 몇 번이나 맞춰야 하지?’
쐐액!
딴생각하기 무섭게 꼬리가 공기를 찢으며 바로 옆을 내려쳤다.
‘일단 여기서 벗어나자.’
서진은 점멸로 꼬리가 닿는 범위에서 탈출했다.
단번에 머리 부근으로 이동했지만 이번엔 독가스가 서진에게 쏘아졌다.
지금 바로 피한들 완전한 회피는 불가능한 위치다.
‘그렇다면.’
서진은 독에 노출될 각오를 하고 약점을 공격하기로 결심했다.
파지직!
흑룡검술 제1식 섬아.
검 끝에서 솟구친 번개가 약점이 되는 척추를 강타했다.
‘세 번째 타격.’
하지만 그 대가로 서진의 몸에 스며든 독이 마나 경로를 오염시키고 움직임을 억제했다.
독을 대비해서 전용 슈트를 입었음에도 이 정도라니.
거기다 항마제의 효과마저 독 때문에 사라지는 중이었다.
서진은 뒤로 물러나 빠르게 약을 꺼내 삼켰다.
“조금 낫네.”
다행히 상태가 안 좋은 건 스컬 아나콘다도 마찬가지였다.
끼이이익!
던전의 벽이 울릴 정도로 몸부림치던 스컬 아나콘다는 갑자기 멈추더니 머리를 쳐들었다.
그리고 입에서 무언가를 토해냈다.
시시시식.
입에서 나온 스컬 스네이크가 떼거지로 서진을 향해 밀려왔다.
“서진 님!”
그때 설하윤이 한걸음에 달려왔다.
상당히 지쳐 보이는 그녀는 반투명한 회색 검기를 두른 검을 내려쳤다.
검기는 파도처럼 스컬 스네이크들을 휩쓸었다.
설하윤은 거칠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수가 조금 줄어들었다 했더니 다시 저렇게 만들어버리는군요.”
“조금만 버텨줘요.”
“물론입니다.”
잔뜩 토해낸 스컬 아나콘다의 움직임이 잠시 둔해졌다.
‘점멸.’
서진은 순식간에 녀석의 지척까지 도달해 뇌격포를 꽂아주었다.
콰앙!
방심하다가 약점을 처맞은 스컬 아나콘다는 비명을 지르며 독을 사방으로 뿜어댔다.
치익.
서진은 진득한 독을 피해 물러나면서 뼈에 금이 간 것을 포착했다.
‘조금만 더 하면 되겠어. 그리고 빨리 해야 돼.’
스컬 아나콘다가 퍼트린 독가스는 공기 중에 퍼져나가 던전을 채워나가고 있었다
사실 독 때문에 서진의 몸은 이미 영향을 받아 둔해지고 있었다.
스컬 아나콘다는 서진의 상태가 안 좋아진 걸 본능적으로 깨닫고 빠르게 다가왔다.
키이이익!
귀가 찢어질 듯한 포효를 하며 서진을 집어삼키려 들었다.
A급 보스몬스터의 응축된 살기는 피부를 저릿하게 만들 정도였다.
[민첩이 3 상승합니다]
[체력이 2 상승합니다]
[마력이 5 상승합니다]
[마력 수치가 120을 초과하였습니다]
[Lv.5가 되었습니다]
[마나가 회복됩니다]
[투신전이 개방되었습니다]
[상태이상 ‘중독’이 사라집니다]
❴한서진❵
【레벨】5
【특성】투신전[1]
【스텟】근력116 체력100 민첩113
마력120 지력109
【스킬】흑룡검술(5성) 투신공(5성)
용체화(해츨링)
【상태】마광병 31% 진행
‘드디어.’
일단 투신전이 뭔지 알아보는 건 나중 일이다.
눈앞의 위기를 타개하는 것이 먼저다.
서진은 용체화를 발동해 마나를 최대 출력으로 끄집어냈다.
흑룡검술 제5식 전광검(電光劍)
파직!
뇌기가 번쩍인 순간, 서진의 시간 흐름이 비틀리기 시작했다.
서진을 제회한 모든 사물의 움직임이 정지에 가깝게 느려진다.
광속과 같은 뇌검이 유지되는 시간은 5초.
서진은 땅을 박차고 스컬 아나콘다의 머리 위에 착지했다.
찰나의 시간이 끝나기 직전, 자줏빛 번개가 눈부실 정도로 발산되었다.
파지지직!
서진은 곧장 일곱 번째 뼈를 향해 번개를 내리꽂았다.
콰아아앙!
그리고 시간은 다시 기존의 흐름을 되찾았다.
스컬 아나콘다의 머리는 마지막 비명을 지르며 아래로 추락했다.
쿠웅.
설하윤과 성가을 주변에 있던 스컬 스네이크 또한 움직임을 멈추었다.
**
이번 던전의 입회자로 따라온 백랑대장은 시간을 확인했다.
한서진이 던전에 입장한 지 7분.
입회자이기에 지켜만 보고 있지만 불안한 마음이 슬며시 들었다.
‘그러니까 무슨 생각으로 이런 던전을 고른 거지.’
객관적으로 그 세 명으론 절대 이 던전을 공략할 수 없다.
‘아니면 혹시.’
어차피 한재열을 못 이길 것 같아서 A급 던전을 고른 건가.
최소한의 명분이라도 챙기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해가 간다.
물론 매우 실망스러운 행동이지만 말이다.
백랑대장은 옆에서 같이 기다리고 있는 정보건을 힐긋 쳐다봤다.
시선을 느낀 정보건이 입을 열었다.
“하실 말씀 있습니까?”
“아닙니다.”
하지만 너무나 평온해 보이는 정보건을 보며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팀장님은 아무렇지 않으십니까?”
“네? 뭐가요?”
“셋 전부 저 던전에서 죽을 수도 있습니다.”
“글쎄요.”
백랑대장은 그제야 정보건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깨달았다.
“공략할 거라 믿으시는 겁니까?”
“예.”
백랑대장 입장에선 근거 없는 정보건의 신뢰가 너무나 이상했다.
“무슨 이유가 있습니까?”
“서진이랑 맞대고 대화를 나눠보면 묘한 느낌이 듭니다. 항상 자신감에 차 있는 모습에 빨려 들어간다고 해야할까, 휘말리는 것 같기도 하구요.”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백랑대장을 보며 정보건은 웃음기를 머금고 말했다.
“그런데 말씀하시는 걸 보니 백랑대장님은 조금 걱정되시나 봅니다.”
“예, 그렇긴 합니다. 시체를 치우긴 싫으니까요.”
선선히 솔직하게 대답한 모습에 정보건은 살짝 눈을 크게 떴다.
“의외군요.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제가 그 정도로 냉혈한은 아닙니다.”
“하하, 실례했습니다.”
그 사이 시간은 2분이 더 지나있었다.
백랑대장은 눈살을 찌푸리며 한숨을 쉬었다.
‘들어가자마자 나오긴 민망하니까 안에서 버티고 있는 건가?’
들어가서 확인을 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그때, 던전 입구가 일렁거렸다.
누군가 나올 때 나타나는 현상.
‘드디어 나오는군.’
나오기까지 9분이 걸렸다.
시늉만 하러 들어간 것치곤 A급 던전에서 나름 오래 버텼다.
‘설하윤 헌터 덕분이겠지.’
하지만 백랑대장의 착각은 한서진을 본 순간 깨져버렸다.
“스컬 아나콘다?”
그의 손에 들린 머리뼈는 틀림없이 스컬 아나콘다였다.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시체가 맞았다.
“아아!”
간절히 기도하던 태국의 정부 인사들은 환하게 펴진 얼굴로 서진에게 달려갔다.
백랑대장은 커다란 의문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저걸 어떻게 잡은 거지?”
이에 정보건이 한마디 건넸다.
“백랑대장님, 제말이 맞았죠?”
그는 입을 벌리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쿠웅.
육중한 골렘이 힘을 잃고 무너져 내렸다.
“끝났군.”
한재열은 던전에서 나와 입회자에게 물었다.
“얼마나 걸렸지?”
“공략 시간 12분 10초입니다.”
“이 정도면 무조건이야, 무조건!”
옆에 있던 이차경 헌터는 고개를 끄덕이며 확신했다.
한재열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예. B등급 던전이니까요.”
“그럼 나하고 이쪽 양반은 이쯤에서 헤어지면 되나?”
“그러셔도 됩니다. 성공 보수는 가문에 돌아가면 입금해 드리겠습니다.”
“좋아.”
그렇게 한재열을 도와주었던 헌터 두 명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헤어졌다.
입회자는 한서진 측도 끝났다는 문자를 받고 입을 열었다.
“한재열 님. 이제 가문으로 돌아가서 대기하시면 됩니다.”
“그러지.”
한서진은 멀리 태국까지 갔다고 하니 돌아오려면 시간이 걸렸다.
“뭐 한다고 거기까지 간 건지.”
한재열은 가문으로 가는 차 안에서 비서에게 물었다.
“그래서 한서진 언제 온다고?”
“저녁 7시쯤 도착한다고 합니다.”
일주일 동안 정보건의 뒤를 열심히 밟았지만 결국 알아내지 못했었다.
그랬는데 설마 하니 해외 던전이었다니.
한재열은 왠지 입맛이 썼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자신의 기록은 넘지 못할 테니까.
‘어쨌거나 이기면 되는 거 아니겠어.’
**
해가 아래로 떨어지며 저녁이 찾아올 때, 서진 일행은 태국에서 돌아왔다.
그리고 백랑대장과 함께 집무실로 향했다.
던전 경쟁의 결과는 가주가 직접 통보하기 때문에.
서로가 공략한 던전의 등급과 종류, 공략 시간, 멤버 등 모든 정보가 취합되어 가주에게 보고되었을 것이다.
서진도 사실 궁금했다.
한재열이 어떤 던전을 공략했는지.
달칵.
집무실의 문을 열자 일주일 전처럼 미리 한재열이 와있었다.
흑룡가주와 비서, 한서진과 한재열 그리고 두 명의 입회자까지.
“다 모였군.”
한벽호는 비서에게 눈짓하며 의자에 기댔다.
김형석 비서는 목을 가다듬고 말을 꺼냈다.
“그럼 던전 경쟁의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비서는 자신이 봐도 쉬이 믿기 어려운 승자를 발표했다.
“한재열 님이 공략한 던전은 B등급이며 시간은 12분 10초. 한서진 님이 공략한 던전은 A등급, 시간은 9분 3초. 고로 승자는 한서진 님입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한재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다시 말해봐요. 뭐라고요?”
“한서...”
비서가 같은 말을 하려는 순간, 흑룡가주가 그것을 끊고 말했다.
“한재열, 네가 방금 들은 게 맞다.”
“조부님.”
한재열은 흑룡가주 앞으로 성큼 걸어 나왔다.
“A급 던전이라뇨. 서진 형님은 고작 4레벨입니다. 설하윤 헌터가 있다 해도 이건 말이 안 됩니다.”
“지금 결과에 승복을 못하겠다는 거냐.”
“너무 현실성이 없으니 이러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니면 한서진, 설하윤 말고 다른 한 사람이 대마법사라도 됩니까?”
눈에 뵈는 게 없어진 한재열은 열변을 토해냈다.
그만큼 한벽호의 시선도 차갑게 식어갔다.
김형석 비서는 가주의 심기가 더 상하기 전에 먼저 나섰다.
“셋째 도련님, 백랑대장이 일련의 과정을 전부 지켜보고 녹화까지 했습니다. 스컬 아나콘다 시체도 현재 한국으로 수송 중입니다. 태국 현장에서 목격한 사람도 많습니다.”
“증거가 있다고 해도 4레벨이 어떻게 할 수 있냔 말입니다.”
서진은 한재열의 항변 중 오류 사항을 지적해주기 위해 말을 꺼내려했다.
그때,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가주님, 급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들어와.”
집무실에 들어온 비서실 직원은 서진을 힐긋 보고 나서 말했다.
“마력관리청 수사국 직원 두 명이 방금 가문을 방문했습니다.”
“그놈들이 왜 왔어?”
“한서진 님에게 물어볼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