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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가문의 천재는 사실 귀환자-23화 (23/141)

23화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헌터는 집단에 소속되길 원한다.

통계를 봐도 프리 헌터보다 소속 단체가 있는 헌터의 수명이 더 길다.

비교적 안정적으로 오래 살고 싶다면 어디든 들어가는 것이 현명한 선택인 것이다.

대한민국의 헌터들은 크게 네 가지의 선택지가 있다.

길드, 가문, 군대, 그리고 마력관리청.

길드와 가문은 종종 부딪히며 갈등을 맺긴 해도 크게 보면 성격이 비슷한 집단이다.

그렇기에 헌터들이 소속을 고민할 때 가장 많이 고려하며 선택하기도 한다.

그리고 군대는 저레벨 헌터들이 어쩔 수 없이 입대하는 케이스가 많은 곳이다.

받아주는 가문이나 길드가 없을 때, 군대는 쉽게 들어갈 수 있으니까.

하지만 마력관리청은 정반대의 성향이라 할 수 있다.

같은 국가직이라도 군대와 마관청 헌터의 대우는 전혀 다르다.

상위 길드나 가문에 들어갈 수 있는 인재들이 모인 곳이 바로 마력관리청이다.

국내에서 마력이 관련된 사건, 인물 등 모든 일을 조사하고 처리하는 기관.

그만큼 엘리트들이 모인 곳이기에 자부심은 물론이요, 특권 의식까지 지닌 이들이 적지 않았다.

마관청 수사국 요원인 홍세인도 그중 하나였다.

“하아...”

그는 산더미 같은 서류 사이를 걸어가 의자에 털썩 앉았다.

홍세인은 커피를 마시며 잠시 눈을 붙였다.

“돈을 벌면 뭐 하냐고 쓸 시간이 없는데. 존나 피곤하다.”

물론 돈만 보고 들어오진 않았지만 흔한 쇼핑할 시간마저 없는 건 심했다.

그렇게 잠깐의 커피 타임을 즐기고 있는데 문이 벌컥 열었다.

“깜짝이야. 광규야, 문 좀 벌컥 열고 다니지 좀 마라.”

“선배님, 국장님이 잠시 부르십니다.”

“뭐? 무슨 일로?”

“그건 모르겠습니다.”

“아 씨, 또 귀찮은 일 시키려고 그러는 거 아냐?”

홍세인은 부스스한 머리를 긁으며 국장실로 향했다.

“부르셨습니까, 국장님.”

“이리 와봐.”

홍세인은 불길함을 느끼며 국장의 책상 앞까지 다가갔다.

“자.”

국장은 서류를 하나 던져주었다.

“뭡니까. 이게?”

제목을 보니 대전에서 일어난 던전 브레이크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거 끝나지 않았나?’

사건 다음 날 다른 요원이 현장 조사했지만 별다른 이상이 없어 종결된 건이었다.

‘어?’

서류를 빠르게 훑어본 홍세인은 얼굴을 구겼다.

귀찮고 복잡한 일을 맡게 될 거라는 확신을 느꼈기 때문에.

국장은 그런 홍세인을 보며 말했다.

“대전 던전 브레이크 건, 네가 다시 조사해봐라.”

“사건 일로부터 거의 40일이나 지났는데요?”

“그래서 못하겠다는 말은 아니지?”

홍세인은 저렇게 싱긋 웃는 국장의 표정이 제일 무섭다.

“합니다, 하는데. 이걸 그땐 왜 몰랐던 겁니까?”

“이현지가 그땐 휴가였잖냐.”

“아...”

“이현지가 복귀하고서 그 건이 거슬렸는지 직접 현장에 가서 발견해냈지.”

사이코메트리 능력을 보유한 그녀가 첫 조사 때, 빠졌었다면 이해가 갔다.

“그럼 이번에 이현지랑 같이 조사합니까?”

“아니, 걔는 다른 일 있다.”

“대전 상공에서 B급 던전 터진 사건보다 중요한 겁니까.”

“어, 충북 지역에서 연쇄 살인하는 헌터 새끼 잡아야 하니까. 사건이 시급함을 따지면 이쪽이 위지.”

“후우, 그렇네요.”

“대전 건이 가볍지 않은 일이란 건 나도 공감해. 근데 지금 워낙 위쪽에서 쪼고 있어서 연쇄 살인부터 빠르게 마무리해야 해.”

“알겠습니다. 그럼 다른 사건 잠시 홀드해도 됩니까?”

“그건 안돼, 대신 배당되는 사건 줄여줄 테니 잘 알아봐.”

“...알겠습니다.”

홍세인은 국장실을 나와 다시 사무실로 향했다.

의자에 앉은 그는 천천히 보고서를 살피기 시작했다.

‘한서진.’

던전에서 나온 몬스터를 대부분 처리한 헌터였다.

‘이상한데.’

보고서에 적혀있는 한서진의 레벨은 4.

트롤은 B등급 던전에서 나온 몬스터.

몬스터 등급과 헌터 레벨의 간극이 너무 크다.

“보고서가 잘못됐을...리는 없고.”

아래를 더 읽어보니 당시에 시민이 찍었던 사냥 영상이 있다고 덧붙여져 있다.

“그래?”

그는 바로 영상을 켜서 확인했다.

“...잘 싸우네.”

화면 속이 한서진은 베테랑 헌터처럼 트롤을 농락하며 사냥했다.

‘4레벨이 맞나?’

홍세인은 왠지 모를 의구심이 들어 눈가를 찌푸렸다.

‘그리고 특이사항은 마광병.’

한서진의 병명을 본 홍세인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마광병이 있으면서 헌터를 해?’

겨우 잊었던 과거의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

그 선배가 죽은 이후론 마광병이라면 치가 떨린다.

그는 커피를 들이켜고 서류에 첨부된 한서진의 사전을 쳐다봤다.

“흑룡검가.”

한국의 3대 가문 중의 하나.

마력관리청의 힘이 세다곤 해도 흑룡가는 조금 부담스러운 것이 현실이다.

“그래도 마관청인데 지네들이 어쩌겠어.”

처음엔 귀찮기만 한 일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재밌을지도 모르겠다.

**

흑룡가주의 집무실.

한벽호는 난데없는 마관청의 방문 소식을 듣고 서진을 바라봤다.

“무슨 일로 찾은 건지 짐작 가는 게 있느냐.”

“없습니다.”

한재열은 갑작스러운 이 상황이 오히려 기회로 여겨졌다.

“오전에 서진 형님이 공략한 던전 때문에 온 것은 아닐까요?”

“한재열.”

“네, 조부님.”

“한 번만 말할 테니 잘 듣거라.”

“예?”

“현 시간부로 너는 이제 흑룡검가의 후계자가 아니다.”

그 말에 한재열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조부님!”

“결과에 승복 못 하고 개소리를 지껄이는 패배자 따윈 흑룡가주에 어울리지 않는다.”

한재열은 가주의 책상 앞으로 뛰쳐나왔다.

“그래도 이건 너무 과한 결정입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김형석 비서는 속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저런다고 가주님의 결정이 바뀔 일은 없다.

괜히 심기를 더 건드리는 꼴이 될 뿐이지.

한재열도 할아버지의 성정은 알지만 절대 이렇게 물러날 순 없었다.

그동안 해온 게 얼만데.

“말도 안 됩니다. 고작 이런 일로 후계자 지위를 박탈당한다는 게.”

“그만.”

갈무리되어 있던 10레벨 헌터의 기세가 밖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크윽.”

한재열은 심한 압박감을 느끼며 무릎이 굽혀졌다.

“여기서 더 입을 연다면 흑룡가에서 나가야 할 거다.”

서릿발 같은 가주의 말에 한재열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형석아.”

“예.”

한벽호는 서진을 보며 턱짓했다.

“저 녀석에게 그거 말해주거라.”

“알겠습니다.”

김형석 비서는 서진에게 다가가 축하의 말을 건넸다.

“승리를 축하드립니다. 그럼 한서진 님의 무구예식을 진행하겠습니다. 오늘 중으로 공방에 통보할 테니 내일 오전에 방문하시면 됩니다. 원하는 장비의 종류도 그때 협의하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보고를 하러 왔던 비서는 눈치 보며 입을 열었다.

“마관청 직원은 응접실로 안내했습니다.”

“그럼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궁금증이 돋은 서진은 바로 응접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얕은 턱수염이 있는 남자가 앉아있었다.

그는 서진에게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마력관리청 수사국 과장 홍세인입니다.”

“한서진입니다.”

둘은 악수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잠깐 정적이 흐르고 홍세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렇게 찾아온 건 다름이 아니라 대전의 던전 브레이크 사건. 기억하시죠?”

기분 탓일까.

서진이 느끼기엔 묘하게 취조하는 듯한 어조였다.

“기억하죠.”

“그때 한서진 씨는 헬기를 타고 이동하는 중이셨구요.”

“네.”

“대한가문회의 소회합에 참석하러 가는 길이셨죠?”

“알고 있으면 읊지 말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이건 서로가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중요한 작업입니다.”

“그 작업이 왜 필요한 겁니까.”

“대전 사건에서 혐의점이 발견되었거든요. 누군가 스킬로 던전을 강제로 터트렸습니다.”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서진은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다.

단순 사고였다면 헬기에서 스텟이 들어오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홍세인에겐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생각보다 별로 안 놀라시네요.”

“당시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호오, 그렇다면 어떤 점에서 이상함을 느끼셨습니까.”

“그건 제 능력과 관련된 부분이라 답을 해드릴 수 없습니다.”

“수사에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으니 말씀해주시죠.”

“거절하겠습니다.”

홍세은은 턱수염을 쓸며 서진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아쉽군요. 그럼 당시의 상황 설명은 해줄 수 있겠죠?”

영상은 봤지만 당사자의 설명에서 건질 수 있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그 정도야 얼마든지.”

서진은 헬기가 추락한 순간부터 마지막 트롤을 잡을 때까지의 과정을 말해주었다.

설명을 다 듣고 난 홍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런데 트롤이 B등급 몬스터인데 쉽게 죽이시더군요. 4레벨인데.”

“요령만 알면 어렵진 않습니다.”

천 년 동안 몬스터만 보고 지내면 레벨의 한계 정도야 넘을 수 있게 된다.

“요령이라. 그걸 몰라서 헤매는 헌터들이 수두룩한데...”

서진은 굳이 대꾸하지 않았다.

홍세인도 대답을 기대하진 않았기에 계속 말을 이었다.

“그럼 헬기 위에서 던전이 터질 때 다른 헌터의 존재를 느꼈습니까.”

“네, 위치는 전혀 파악할 수 없었지만.”

“그 뒤로도 뒷모습이라든지 보거나 하진 않았구요?”

“예.”

“흠, 어쨌든 알겠습니다. 그런데 앞뒤가 안 맞는 점이 있습니다.”

홍세인은 끊임없이 서진의 반응을 체크하면서 말했다.

”아까는 능력에 관련된 거라 말할 수 없다고 했으면서 사냥 영상은 내버려 두는 이유가 뭡니까.”

“뭔가 했더니, 보여줘도 괜찮은 능력과 말할 수 없는 능력은 다른 겁니다. 이쯤에서 얘기는 마무리 짓죠.”

“네? 아직 질문이 남아있습니다. 앉아주시죠.”

“프흐. 앉아주시죠 라니.”

서진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곤 점멸로 홍세인의 옆으로 순간 이동해 그의 목을 움켜잡았다.

“커억.”

“좋게 대해주니까 내가 만만한가.”

서진이 목을 강하게 쥐고 있는 것만으로 홍세인은 압도당해 움직일 수가 없었다.

“끄으윽.”

“네가 나를 의심하니 이참에 명확하게 말해두지. 범인은 따로 있다. 착각에 사로잡혀 엄한 사람을 몰지 않았으면 좋겠군.”

홍세인은 죽음의 문턱에서 힘겹게 고개를 미세하게 끄덕였다.

서진은 압박을 거두고 목을 풀어주었다.

“쿠헥. 켁, 케엑.”

잠시 후 겨우 숨을 고른 홍세인은 붉어진 얼굴로 서진을 노려봤다.

“후우, 오늘 마력관리청의 요원을 이런 식으로 겁박한 일에 대해 분명 후회할 날이 있을 거다. 없으면 내가 만들어주지.”

홍세인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분명했다.

후계자 신분의 한서진이 국가직 헌터를 건들지 못할 것이란 생각.

방금 목을 조르긴 했지만 결국 죽지도 않았고 다친 곳도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한서진이란 인물을 제대로 알지 못해 생긴 패착이었다.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군.”

말이 끝난 순간, 복부를 강타 당한 홍세인은 벽까지 날아갔다.

쿠웅!

“큭, 씨발.”

홍세인은 목까지 올라온 올라온 핏물을 뱉었다.

분명 같은 헌터인데 공격하는 순간을 놓치고 무방비하게 처맞았다.

‘마광병에 걸렸다는 놈이 어떻게 저런 움직임을 보이는 거지.’

직접 맞기까지 했지만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했다.

그때, 응접실 밖을 지키고 서 있던 백랑대원 한 명이 큰 소음을 듣고 들어왔다.

“무슨 일입니까?”

“나가.”

“옙.”

한서진의 차가운 눈빛을 본 백랑대원은 다시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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