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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가문의 천재는 사실 귀환자-24화 (24/141)

24화

다시 문이 닫히자 홍세인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서진이 한 발짝 내딛는 순간 빠르게 말을 했다.

“흥분해서 눈에 뵈는 게 없는 상태인가 본데 감당할 수 있겠어? 국가직 헌터를 상대로 폭력을 행사한 후계자라니. 이거 언론에 공개하면.”

“그건 나중에 생각하려고.”

서진은 요즘 너무 참고 다니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존댓말을 쓰고 인내심을 키우는 등 티 나지 않는 노력을 해왔다.

하지만 사람의 본성은 쉽게 숨겨지지 않는 법.

하물며 천 년에 걸쳐서 만들어진 투쟁심은 참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뭐?”

그것을 알 리가 없는 홍세인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서진은 홍세인의 멱살을 잡고 들어 올렸다.

신변의 위기를 직감한 홍세인은 다급히 말했다.

“잠깐만, 잠깐만. 우리 말로 합시다. 아깐 내가, 아니 제가 잘못했습니다.”

홍세인은 서진에게 싸움으론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직감하고 항복했다.

서진은 그대로 힘을 실어 벽에 던져서 홍세인을 풀어주었다.

“컥.”

항복한 상대를 패는 건 재미도 없고 투쟁욕도 생기기 않았기에.

홍세인은 바지를 털고 일어나 거친 한숨을 쉬었다.

조금 전 한서진의 분위기는 장난이 아니었다.

만약 태도를 굽히지 않았다면 반신불수가 됐을지도 모른다.

‘보통 명문가의 후계자도 마관청을 상대로 이렇게 막 나가는 경우는 없었는데.’

홍세인이 보기에 한서진은 미친놈이었다.

“저...”

입은 뗐지만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말문이 막혔다.

그때 한서진이 질문을 던졌다.

“대전 사건 언제부터 재조사 시작했지?”

“2일째입니다.”

“알아낸 정보는?”

“그날 던전이 터진 장소로부터 약 500미터 떨어진 빌딩의 옥상에서 두 명의 헌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루엣 형태라서 정확하진 않지만 한 명은 여자로 추정됩니다.”

“실루엣이 어떤지 보고 싶은데 관련 기록물은?”

홍세인은 황급히 가방을 뒤져서 그림 한 장을 꺼냈다.

“여깄습니다. 스킬로 당시 상황을 보고 난 뒤에 직접 그린 거라 많이 엉성합니다.”

홍세인은 자판기처럼 수사 정보를 술술 뱉어냈다.

사실 이현지의 능력으로 밝혀낸 정보였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대답 안 하면 패 죽일 듯이 보는데 입을 안 열 수가 없었다.

“이게 끝인가?”

“예? 예.”

“계속 조사한다고 했는데 정해놓은 계획은 없나?”

“사실 단서가 워낙 적은 데다 이미 시간도 한참 지난 후라서 어렵습니다.”

홍세인이 가진 마나를 추적하는 스킬로도 역부족이었다.

조사 첫날 깨달았다.

이건 못 잡는다는 것을.

이현지의 강력한 사이코메트리도 어렴풋한 실루엣이 한계였다.

이미 40일 가까이 지난 시점이라는 게 너무 치명적이었다.

‘이틀 차부턴 적당히 수사하는 척하며 쉬려고 했는데.’

마광병 걸린 흑룡가 도련님 좀 건드리면서 시간을 보내려 했던 과거의 자신을 죽이고 싶었다.

‘흑룡검가 오지 말걸.’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은 법이다.

그러나 서진의 압박이 느슨해지자 홍세인은 딴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무사히 나가기만 하면 확 다 까발려버릴까.’

언론에 먼저 퍼트리면 아무리 미친놈이어도 자신을 쉽사리 못 건들 것이다.

그렇게 고민하는 홍세인을 본 한서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무슨 생각해.”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근데 저 볼일도 끝났는데 슬슬 가봐도 되겠습니까?”

“그전에 이거 듣고 가지.”

서진의 손에 들린 소형 녹음기에서 아까 정보를 누설했던 대화가 흘러나왔다.

홍세인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가 가까스로 평정심을 찾으며 말했다.

“그 대화는 제가 겁박당한 간접 증거이기도 합니다만.”

서진은 그것을 못 들은 척 혼잣말을 했다.

“알아보니 마관청의 직원이 수사 정보를 유출하면 최소 6개월 감봉부터 최대 파직까지 다양하던데. 이 녹취 본은 어느 정도의 징계를 불러올지 궁금하군.”

홍세인은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그는 한서진의 말을 받아칠까 하다가 그냥 포기했다.

결국 파워 게임으로 간다면 명문가의 후계자보다 자신이 받는 피해가 훨씬 클 테니까.

거기다 초반에 흑룡가의 후계자를 은근히 용의자로 몰고 간 자신의 언행 또한 문제가 될 여지가 있었다.

한서진이 어떤 인물인지 자세히 알아보기 전에 섣불리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마관청 소속이라는 자부심과 마광병을 보고 감정이 앞서는 바람에 일을 그르쳤다.

“하아,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냥 말씀하십쇼.”

“대단한 걸 바라진 않는다. 오늘 일은 입 닫고 앞으로 대전 건에 대해 조사하다가 추가로 알게 된 정보가 있다면 공유할 것.”

“정말 그거면 되겠습니까?”

“못 믿겠어?”

“아닙니다. 그럼 대전 던전 브레이크 건 종결하기 전까지 얻은 정보는 모두 보내드리겠습니다.”

“이제 나가 봐.”

소기의 성과를 얻은 서진은 홍세인을 내보내고 구현수 비서를 불렀다.

“무슨 일 있었습니까?”

구현수는 흐트러진 응접실 내부를 보고 말했다.

서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거 때문에 부른 건 아니고, 사람 좀 찾아줬으면 해서.”

서진은 던전 브레이크 사건에 대해 간략하게 말해주며 그림을 건넸다.

“알겠습니다.”

이렇게 단서가 들어온 이상,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누군지 알아내서 반드시 습격한 대가를 치르게 해줄 것이다.

**

집에 돌아온 서진은 이제야 상태창을 다시 열어서 확인했다.

❴한서진❵

【레벨】5

【특성】투신전[1]

【스텟】근력116 체력100 민첩113

마력120 지력109

【스킬】흑룡검술(5성) 투신공(5성)

용체화(해츨링)

【상태】마광병 31% 진행

‘마광병이 어느새 3분의 1이 진행됐군.’

서진은 시선을 돌려서 이번에 개방된 투신전을 열어보았다.

[투신전]

-스킬 ‘투신의 가호’를 소유한 존재를 가신으로 삼을 수 있다.

-가신의 수에 따라 ‘투신공’의 효과가 상승한다.

-레벨이 오를 때마다 ‘투신의 가호’를 다른 존재에게 한번 부여할 수 있다.

-부여한 스킬은 가신이 되기 전까진 회수할 수 있다.

-가신이 될 시에 어떤 상황에서도 주인을 해할 수 없으며, ‘투신의 가호’ 효과가 추가된다.

*현재 ‘투신의 가호’ 보유자 : 설하윤.

‘투신공의 효과가 더 오른다고?’

마광병 진행이 생각보다 빠른 지금, 반길만한 내용이었다.

이런 건 지체할 필요가 없다.

서진은 곧바로 설하윤을 호출했다.

설하윤은 오자마자 상기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기신 거 축하드립니다. 서진 님.”

“아뇨, 하윤 씨가 도와줘서 잘된 거니까.”

“그럼 무구예식은 언제 하시는 건가요.”

“내일 일단 맞추러 갈 겁니다. 아, 여기 앉아요.”

“네.”

서진은 설하윤을 거실로 안내하고 본론을 꺼냈다.

“사실 이렇게 부른 이유는 하윤 씨의 스킬 때문입니다.”

“네?”

뜬금없는 서진의 말에 마스크 위의 설하윤의 눈동자가 커졌다.

“투신의 가호라는 스킬 쓰고 있죠?”

“네, 도대체 어떻게 아셨나요?”

“그건.”

서진은 잠시 말을 멈추고 고민에 빠졌다.

어디까지 얘기해야 좋을까.

투신전의 설명만 보면 설하윤 입장에선 가신이 되어도 좋을게 없었다.

이미 투신의 가호를 갖고 있으니까.

그러니 그녀가 가신이 되면 서진만 좋은 거다.

‘그런데 설하윤은 어떻게 얻은 거지?’

뒤늦게 든 궁금증.

투신의 가호는 자신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스킬이 분명하다.

하지만 설하윤은 서진이 지구로 돌아오고 난 뒤에 처음 본 사람이었다.

‘그러고보니.’

서진은 그녀의 과거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여기서 과거를 들어보면 투신전과 연결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서진 님?”

서진이 말하다 말고 생각에 빠지자 설하윤이 불렀다.

“아 미안해요.”

서진은 가신에 대해 제안하기 전에 그녀의 과거부터 알 필요성을 느꼈다.

“하윤 씨. 지금 밤이긴 한데 시간 괜찮아요? 얘기가 짧게 끝나진 않을 것 같아서.”

“아, 네. 괜찮습니다.”

“혹시 저녁 먹었어요?”

“아뇨, 아직.”

“잘됐네요, 그럼 일단 밥부터 먹죠.”

배가 좀 차야 말도 잘 나올 테니 말이다.

**

서진은 설하윤과 저녁을 먹고 나서 은근슬쩍 본론을 꺼냈다.

“그러고 보니까 하윤 씨는 어떻게 흑룡가에 오게 됐나요?”

“그게...”

잠시 고민하던 설하윤은 고개를 살짝 아래로 내리며 입을 열었다.

“사실 민유라 헌터님 덕분입니다.”

“음? 제 어머니 성함과 똑같네요.”

“네, 서진 님 어머니가 맞습니다.”

“정말이에요?”

“네.”

“지금 되게 놀랐어요. 혹시 처음에 호위로 온 것도 그것과 관계가 있나요.”

“그렇습니다.”

의외의 사실에 서진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아직 아까 질문의 답변을 못 받았다.

“그럼 원래 주제로 다시 돌아가서, 왜 어머니 때문에 가문에 오게 된 거죠?”

“실은.”

설하윤은 짧게 과거 이야기를 해주었다.

보육원에서 살다가 서진의 어머니 눈에 띄어 검술을 받은 것.

당시 설하윤은 어머니를 따라 흑룡가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허락받지 못했기에 서진과 안면이 없었던 것이다.

“하윤 씨가 거절당했을 때 슬프진 않았나요?”

“그 당시엔 조금 침울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서진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흑룡대에 들어갔던 설하윤은 그제야 그 마음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은 아무렇지 않습니다. 그때도 아쉽기만 했지 큰 감정은 없었으니까요.”

“그렇군요.”

“서진 님.”

“네.”

“혹시 이런 대화가 아까 말하려다가 만 투신의 가호와 연관이 있나요?”

“안 그래도 지금 그걸 물어보려고 했습니다. 그 스킬은 언제 얻은 건가요.”

“흑룡대 들어가기 이전 자호대 소속일 때 4레벨이 되면서 얻었습니다.”

“흐음.”

얘기를 전부 들었지만 왜 먼저 생겼는지 확실한 이유는 밝히지 못했다.

‘아직 투신전 개방 초기니까 나중에 가면 알게 되려나.’

그리고 지금은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다.

‘가신.’

서진은 설하윤에게 투신전에 대해 말해주기로 결심했다.

이걸 말 안 하면 대뜸 가신이 되라는 꼴밖에 안 되니까.

“하윤 씨, 제가 5레벨이 되면서 투신전이라는 특성이 하나 생겼습니다.”

“투신 말입니까?”

“네, 하윤 씨가 보유한 스킬과 같은 단어가 있죠. 근데 이 능력이 참 재밌더군요.”

서진은 투신전에 대해 하나씩 설명했다.

설하윤은 차분히 다 듣고 나서 입을 열었다.

“제가 가신이 되면 서진 님에게 좋은 것이군요.”

“그렇죠.”

설하윤은 선선하게 대답했다.

“하겠습니다.”

“고민할 시간을 드리려고 했는데.”

“괜찮습니다. 제약 사항도 저에겐 없는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그렇다면야.”

서진은 투신전 창을 열어서 설하윤의 이름을 터치했다.

그리고 가신으로 삼겠냐는 물음에 예를 눌렀다.

[‘설하윤’이 가신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곧바로 확인 창이 나타났고 설하윤은 서진을 보며 말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제 주인님이라고 말해야 할까요.”

“아뇨, 됐습니다.”

서진과 설하윤은 서로 가벼운 웃음을 흘렸다.

**

다음날 오전, 서진은 흑룡검가의 공방 앞에 서 있었다.

던전 경쟁에서 이긴 보상을 얻기 위해서.

공방은 가문에서 한참 떨어져 있어서 이번에 처음 보는 것이다.

‘생각보다 크네.’

바깥보다 열기도 느껴지며 건물 안쪽에서 망치를 두드리는 소리도 들린다.

서진은 천천히 걸으며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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