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현지완은 서진을 노려보며 외쳤다.
“제정신이 아니구나 한서진! 마도현가 소가주의 차를 막아서고 망가트리다니.”
“당신이야말로 뻔뻔하기 그지없군.”
“뭐라?”
“남의 가문에 수작을 부린 놈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이야.”
현지완은 헛소리를 들은 것처럼 대꾸했다.
“뭔 소리인지 모르겠군. 망상에 젖어 이런 습격을 한 것에 대해선 흑룡가주에게 정식으로 항의하며 책임을 묻겠다.”
“책임? 좋지. 네놈이 어설프게 본가에 간섭을 하려던 것에 대한 업보를 치르게 해주지.”
서진의 허리춤에서 매끈한 칠흑의 검이 뽑혀 나왔다.
현지완도 마나를 끌어올리며 입을 열었다.
“해보자는 거냐, 한서진. 얼마 전에 5레벨에 오른 네가, 6레벨 마법사를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 얼마나 큰 오만인지 깨우치게 해주마.”
둘에게서 나온 무형의 기에 눌린 운전기사는 차에서 도망쳤다.
그 순간, 검기와 뒤섞인 자줏빛 번개가 현지완이 앉아있는 뒷좌석을 휩쓸었다.
콰광!
블링크로 검격의 폭풍을 피한 현지완.
이번엔 그의 손에서 나온 푸른 전격이 땅을 긁으며 보닛 위에 있는 서진에게 향했다.
서진이 뒤로 도약하며 피하자 번개는 애꿎은 차만 박살 냈다.
하지만 현지완에게 방금 공격은 페이크일 뿐이었다.
점프한 서진의 발이 땅에 닿는 순간 아래에서 전격 폭발 마법이 터졌다.
콰앙!!
아스팔트가 터져나가며 아래에 묻혀있던 흙더미가 비산 했다.
방금 마법을 직격으로 맞았으니 최소 사지 하나는 중상일 것이다.
현지완은 마나로 안력을 높이며 서진의 상태를 확인했다.
‘응?’
흙먼지가 내려앉으며 모습이 드러난 한서진은 너무나 멀쩡했다.
‘저 옷이 꽤 좋은 아이템인가?’
하기야 한서진은 흑룡가 장손이니 마법 몇 방 막을 정도의 방어구는 입고 다니겠지.
그렇다면 아이템이 의미가 없어질 정도로 때려 박아주면 될 일이다.
현지완의 손아귀에서 또 다른 마법이 펼쳐졌다.
전방의 넓은 범위를 파도처럼 휩쓰는 라이트닝 웨이브.
앞으로 나아갈 틈을 주지 않는 거대한 파도에 한서진은 방어만 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콰가가각!
번개가 지나간 곳은 아스팔트가 전부 뒤집어질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자랑하는 마법이었다.
‘어느 정도로 다쳤을지 궁금하구만.’
그런데 서진이 보이지 않는다.
“어디 갔..”
현지완은 뒤에서 느껴진 기척에 즉시 실드를 전개했다.
차앙!
전개하자마자 실드가 깨졌다.
하지만 애초에 한 장으로 막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검사가 순간적으로 내는 파괴력은 마법사의 단일 마법 화력을 능가할 수 있다는 걸 알기에.
현지완은 순식간에 5 중첩의 실드를 만들어냈다.
처음 깨진 실드보다 마나를 더 주입해서 만든 강화판이었다.
서진은 거북이처럼 두꺼운 방어막 껍질 안에 있는 현지완을 쳐다봤다.
그러자 그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웃는다.
과연 네가 이걸 부술 수 있냐는 도발.
이런 도발은 정면으로 부수는 것이 도리다.
서진은 검 손잡이에 힘을 주며 들어 올렸다.
그리고 왼손을 뻗어 검을 두 손으로 쥐었다.
다량의 마나가 손을 타고 검에 흘러 들어가며 뇌기로 치환된다.
파지지직!
점점 커지는 자줏빛 뇌기.
칠흑의 검신이 번개에 가려져 아예 안 보일 때쯤, 서진이 움직였다.
실드 안에 있던 현지완은 숨을 들이켰다.
검에서 저런 뇌기가 뿜어져 나온 건 본 적이 없었다.
이윽고 미증유의 힘이 담긴 검이 실드를 내리쳤다.
현지완이 자신했던 실드가 한 장씩 깨져나간다.
차앙!
괴물 같은 서진의 뇌기는 4번째 실드를 부쉈음에도 기세가 사그라들 줄 몰랐다.
그리고 마지막 한 장이 남은 순간.
현지완은 블링크를 발동해 지정된 좌표로 순간 이동했다.
실드의 파괴만을 위해 키워놓은 뇌기는 공기 중에 흩어지며 사그라들었다.
츠즈즈.
현지완은 몰래 캐스팅울 준비하며 서진에게 말을 걸었다.
“대단하군. 그동안 뇌속성을 쓰는 검사를 여럿 봤지만 그만큼 뽑아낼 수 있는 헌터는 처음이야.”
서진은 비웃음을 흘리며 검으로 현지완을 겨눴다.
“그거, 언제 완성되는 거지?”
“배려해 준 건가. 바로 시작될 거다. 지금!”
쿠릉.
하늘에서 미약한 뇌성이 울리더니, 팔뚝만 한 번개가 비처럼 내려왔다.
쾅! 콰앙!
번개 비는 소나기처럼 서진이 있는 곳에 집중적으로 내리쳤다.
서진은 주변에 어지러이 꽂히는 번개에 아랑곳하지 않고 무덤덤하게 서 있었다.
직접적으로 몸에 닿을만한 공격만 쳐내면서.
[근력이 5 상승합니다]
[체력이 4 상승합니다]
[마력이 7 상승합니다]
[지력이 6 상승합니다]
이것이 서진이 현지완의 범위 마법을 전부 받아낸 이유였다.
규모가 클수록 현지완에게서 나오는 투기도 늘어났으니까.
하지만 아쉽게도 마법은 오래가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번개 비를 스무 번 정도 쳐내니 주변이 조용한 상태였다.
“다른 건 없나?”
서진은 선물상자를 재촉하는 기분으로 현지완을 닦달했다.
현지완은 방금 마법에서도 상처 하나 입지 않은 서진의 모습이 믿기지 않았다.
“기다리기 지루한데.”
서진은 직접 선물상자를 열기 위해 점멸로 현지완에게 이동했다.
팟.
그에 현지완도 블링크로 거리를 벌리며 거대한 라이트닝 볼트를 만들어 쏘아냈다.
쿠구구!
압도적인 크기의 라이트닝 볼트는 아스팔트까지 쓸어버리며 서진에게 향했다.
[근력이 5 상승합니다]
[민첩이 7 상승합니다]
[마력이 8 상승합니다]
[지력이 7 상승합니다]
서진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검을 들었다.
그리고 현지완의 마법과 그에 비해 너무나 얇아 보이는 서진의 검이 서로 부딪혔다.
파지지직!
같은 번개가 충돌하며 공간마저 찢어버릴 듯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일순 비등해 보였던 맞대결은 서진이 검을 아래로 베면서 승패가 판가름 났다.
검에 의해 반으로 갈라진 라이트닝 볼트는 중심을 잃고 사방으로 퍼지며 사라졌다.
하지만 현지완이 준비한 마법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서진의 머리로부터 수 미터 떨어진 상공에서 나타난 번개 다발이 내리꽂혔다.
콰가광!
미리 감지했던 서진은 점멸로 회피했다.
푸른 번개는 아무것도 없는 지면을 강타했다.
서진은 불쑥 올라와 있는 아스팔트를 발판 삼아 총알처럼 튀어나갔다.
식겁한 현지완은 즉시 마나 베리어를 생성해 접근을 막았다.
“휴.”
역시 다급할 땐 시전 속도가 빠른 공용 마법이 최고였다.
하지만 현지완의 이른 안심은 실책이었다.
흑룡검술 제1식 섬아.
검에서 솟구친 번개가 마나 베리어를 전부 깨부수고 현지완을 덮쳤다.
콰아앙!
현지완은 반사적으로 실드를 켰음에도 공격의 여파로 인해 십수 미터를 나뒹굴었다.
흙은 잔뜩 뒤집어쓴 그는 다시 일어서며 마나를 퍼트렸다.
검사라는 족속들은 언제 다가와서 검을 휘둘러댈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직 없군.’
자신이 감지한 영역 내에는 한서진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현지완이 잠깐 방심했을 때.
영역 밖에 있던 서진이 전광검을 펼쳤다.
찰나에 현지완 앞에 도달한 서진은 복부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뇌기로 감싸여진 검이 살을 가르며 피가 터지는 순간.
전광검이 끝나고 정신이 든 현지완은 바디 실드를 발동했다.
몸 주변을 둘러싸는 구체형 일반 실드와 달리 피부처럼 전신을 덮으며 몸을 보호하는 마법.
혼신의 힘을 다해 발동한 바디 실드는 서진의 검을 잠깐 멈추게 했다.
‘블링크.’
가까스로 틈을 만들어 서진의 검으로부터 탈출했다.
“크윽!”
현지완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복부의 출혈을 손으로 막았다.
4레벨 이후에 이 정도로 다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자신보다 한 레벨 낮은 검사 따위에게 당할 줄 몰랐다.
진리를 추구하는 마법이 무식한 검보다 우위에 선다고 여기는 현지완에겐 큰 치욕이었다.
현지완은 빠드득 이를 갈며 공용 마법을 캐스팅했다.
“매직 미사일!”
순수 마나로 이루어진 수백 개의 작은 포탄이 현지완의 머리 위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가 손짓한 순간, 전부 서진에게 쏘아졌다.
[근력이 5 상승합니다]
[민첩이 5 상승합니다]
[마력이 6 상승합니다]
서진은 매직 미사일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투기를 흡수했다.
비교적 약한 마법이라 그런지 아까보다 상승 폭이 낮다.
탁!
서진은 가볍게 발을 굴리며 마법의 포화를 돌파하기 시작했다.
흑룡검술 제2식 천라.
검 끝에서 나온 뇌기가 공중에서 덧대어지며 방어막이 되었다.
콰강!
하지만 수백 발의 매직 미사일을 막기엔 천라만으론 역부족이었다.
현지완은 서진이 매직 미사일을 검으로 쳐내는 모습을 보며 아까부터 품었던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었다.
‘저 검은 전격 마법이 안 통해.’
저 검에 마법이 닿을 때, 전격 마법과 공용 마법의 반응이 다르다.
이는 현지완에게 매우 큰 페널티였다.
‘도련님 아니랄까 봐 검도 과분한 걸 쓰는군’
현지완은 혀를 차며 자신의 배를 쳐다봤다.
지금 입고 있는 옷도 아라크네의 거미줄로 만든 비싼 아이템인데 서진의 검은 그것을 비웃듯 베어버렸다.
‘언젠가 반드시 무릎을 꿇려주마.’
지금은 상황이 좋지 않다.
주력인 전격 마법이 막힌 이상 승기는 희박하다고 봐야 했다.
저런 놈은 공용 마법만으론 절대 이길 수 없다.
문제는 여기서 어떻게 탈출해야 하는가.
장거리 이동 마법인 텔레포트는 7레벨이 되어야 가능하다.
이때 포화를 뚫고 나온 서진이 가까이 다가오자 현지완은 즉시 멀어졌다.
‘실드, 블링크.’
그런데 서진의 검에서 무언가 번쩍이더니 번개가 일직선으로 뻗어져 나와 실드를 파괴했다.
“끄아악!”
실드를 부순 뇌격포는 현지완의 우측 어깨를 집어삼켰다.
“커헉.”
다음 마법을 준비하고 있던 현지완은 내부가 진탕되어 피를 토했다.
마나를 아끼려 실드를 하나만 두른 것이 치명적인 실수였다.
탁.
지척에 서진의 발소리가 들리고, 검이 다시 현지완의 배를 찔렀다.
“끄으윽.”
현지완은 어깨와 복부의 심각한 통증 탓에 마법 하나 제대로 완성하기 힘들었다.
하물며 좌표를 지정해야 하는 5레벨급의 블링크는 더욱더 무리였다.
서진은 검을 살짝 비틀어 고통을 가중 시켰다.
“이래서 마법 쓰는 놈들이 귀찮단 말이지.”
쉽게 도망 갈 수 있으니까.
그렇기에 어떤 고통을 줘야 마법을 못 쓰는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특출나게 정신력이 강한 놈들은 소용이 없지만 현지완은 그 부류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정도로 복부를 헤집어 놓으면, 마나 경로가 어그러져 대부분의 마법사는 회복되기 전까진 마법을 못 쓴다.
제압을 마친 서진은 숨어있는 감찰각주를 불렀다.
“감찰각주, 이제 나와.”
멀리 숨어있던 그는 숨을 헐떡이며 즉시 달려왔다.
서진은 현지완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정도면 감찰각주 스킬, 쓸 수 있지?”
“예... 됩니다.”
감찰각주는 이런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그는 마도현가의 차량을 습격하기 한 시간 전, 서진이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소가주 그놈에게 감찰각주 스킬 쓰면 연결고리가 되는 증거를 뱉어내겠지. 안 그래?
-맞습니다만 제 스킬은 멀쩡한 상태에선 안 통합니다. 서진 님.
-알아, 그래서 각주의 스킬을 쓸 수 있는 정신 상태로 만들어줄게.
-예?
‘그때 했던 말을 이렇게 해내실 줄이야.’
감찰각주는 서진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경외감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