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서진은 아래로 처진 현지완의 머리를 잡아서 들어 올렸다.
현지완은 심각한 부상으로 인한 통증 때문에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했다.
“감찰각주, 어서 시작해.”
“예.”
감찰각주는 자백 스킬을 발동했다.
정신력 조건이 충족되어 바로 사용 가능했다.
감찰각주가 현지완과 눈을 마주친 순간, 그의 눈동자가 흐릿해져 갔다.
‘됐다.’
우선 제일 급한 것부터 질문했다.
“평소에 정두진 장로, 유니온의 체이서와 연락을 주고받은 적 있나.”
“그렇다...”
“어떤 방법으로 연락을 했지?”
“직접 만날 때도 있고... 사람을 시켜서 대리로 만나게 할 때도 있다.”
“누구를 시켜서 내보냈나?”
“나는 비서를 시키고, 정두진 장로는 아랫사람을 보내곤 했다.”
“그 아랫사람이 누구지?”
“내원당의 종합지원실장.”
감찰각주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 정도 정보면 게임 끝이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기엔 이 기회가 아깝다.
“평소 어떤 정보를 정두진에게 받았지?”
“흑룡검가가 소유권을 가지려고 하는 던전 정보를...으윽.”
현지완은 말하다 말고 머리를 부여잡더니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감찰각주는 낭패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서진 님. 스킬이 해제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지.”
마법사는 마력과 지력이 높아서 정신 계열 스킬이 잘 통하지 않는다.
원초적인 고통을 선사해도 기본 저항력이 있기에 몸이 알아서 스킬을 끊어내는 경우가 있다.
“어차피 중요한 건 얻었으니까.”
감찰각주는 이미 부하에게 전화를 걸어 종합지원실장의 수색을 명령하고 있었다.
통화가 끝나고 감찰각주는 서진에게 보고했다.
“지금 말해놨으니 가문에 도착할 때쯤이면 결과가 나와 있을 겁니다.”
정두진 장로는 수색을 통과했지만, 종합지원실장은 어떨까.
한직이라 관심조차 안 가졌던 인물이 정두진의 꼭두각시였을 줄이야.
본래 관심을 받지 않는 인물일수록 내부 관리가 허술한 면이 있다.
“기대되네.”
“그런데 서진 님, 현지완 소가주는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그것도 문제네.”
어찌 보면 현지완이 체이서를 정두진과 연결해준 것이 대전 사건의 단초였다.
그런 면에서 판단한다면 죽여야 마땅하다.
하지만 마도현가의 소가주라는 직함이 서진을 망설이게 했다.
분명 이 놈을 죽이면 후폭풍이 거셀 것이기에.
마도현가는 물론이고 대한가문회에서도 문제를 삼겠지.
만약 뉴스에 나오게 되면 더 귀찮아질 것이다.
‘하지만.’
살려준다고 해서 현지완이 고마움을 느끼진 않을 테지.
오히려 어떻게든 서진을 죽이고 싶어 할 것이다.
마도현가의 가주도 마찬가지.
분노를 억누르며 지켜볼 뿐이지 서진을 용서하진 않을 게 분명하다.
그리고 서진은 번거롭게 후환을 남기는 성격이 아니었다.
일반인이라면 모를까 6레벨 마법사라는 적은 없애는 게 맞다.
하지만 죽이기 전에 확인해야 할 게 있었다.
“감찰각주, 지금 수색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전화해봐.”
“예.”
잠시 후, 1분도 안 되는 짧은 통화를 마친 감찰각주는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자택에서 증거 발견했고 지원실장은 감찰각에 끌고 가는 중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정두진이 드나들었던 타 지역 건물 주소가 발견되어 그쪽으로 향하는 중입니다.”
“그렇군.”
결정을 내린 서진은 검을 들어 현지완의 목을 내리쳤다.
그것을 본 감찰각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서진 님 괜찮은 겁니까?”
“뭐가.”
“소가주가 죽었으니 마도현가는 전쟁을 불사할지도 모릅니다.”
“못할걸? 당시 참사였던 던전 브레이크 사건에 소가주가 연루되었던 걸 알면 마도현가는 쪽팔려서라도 움직이지 못해.”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제가 우려되는 점은 조용히 넘어가진 않을 것 같습니다.”
“상관 없어.”
예상되는 여러 난관이 떠오르지만 죽인 걸 후회하지는 않는다.
**
서진은 감찰각주와 함께 가문으로 복귀했다.
시체인 현지완은 감찰각에서 따로 가져오기로 했다.
가문에 돌아온 감찰각주는 제일 먼저 정두진 장로의 거처를 옮기라 명령했다.
조사실에서 감찰각 뒤편에 있는 감옥으로.
당연히 정두진 장로는 이에 크게 반발했다.
“감찰각주. 정신을 놓은 건가? 아무리 시간에 쫓기더라도 이유도 없이 장로를 감옥에 넣어?”
“근거는 여기 있습니다.”
감찰각주는 지원실장 자택과 정두진의 다른 집에서 발견한 증거들을 책상 위에 나열했다.
“이, 이게...”
“조사실에 갇혀 계시다 보니 소식이 늦으신가 봅니다. 조금 전 수색을 끝냈고 관련 자료들은 전부 확보했습니다.”
“감찰각주!!”
“크게 소리치셔도 변하는 건 없습니다.”
정두진은 믿기지 않았다.
아무런 단서도 흘리지 않았는데 어떻게 종합지원실장을 특정해낸 걸까.
감찰각주가 이렇게 능력이 뛰어난 인물이었던가.
‘아니야.’
정두진은 고개를 저었다.
5개월간 지켜본 바로는 낭중지추 같은 사내는 아니었다.
그럼 뭐가 달라진 걸까.
‘한서진.’
정두진은 이 사태의 원흉을 떠올리고 이를 갈았다.
그는 목소리를 낮게 깔며 말했다.
“감찰각주. 한서진이 과연 가주가 될 수 있을 것 같은가? 가문 내 많은 이들이 집법회주의 사람이며 둘째 도련님은 해외에서 날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네.”
“저는 그런 거 관심 없습니다.”
감찰각주의 단호한 태도에 정두진은 탄식했다.
“답답한 사람 같으니. 자네가 어중간하게 한서진을 편든다면 나중엔 그 잘난 감찰각주에서 쫓겨나게 될 게야.”
“그거야 제 팔자입니다.”
“후, 말이 안 통하는군.”
이런 놈을 두드리고 있어 봐야 의미가 없다.
차라리 한서진과 대화를 나누는 게 더 생산적일 것이다.
“자네는 됐으니 한서진 오라고 하게.”
“나 찾아서 뭐 하려고?”
마침 서진이 조사실에 발을 들였다.
정두진은 서진에 대한 적대감을 누르고 한풀 기세가 꺾인 목소리로 말했다.
“한서진. 꼭 이래야겠느냐.”
“갑자기 약한 소릴 하는군.”
“지금이라도 증거들을 덮고 넘어간다면 그 은혜는 잊지 않으마.”
“은혜가 아니라 원수로 갚겠지.”
서진은 책상 위에 펼쳐진 증거 자료 중 하나를 들었다.
“종합지원실장을 통해서 내 헬기 경로를 파악하고 그걸 유니온에 전달. 결국 그날 총 72명의 시민들이 죽었지.”
서진이 면전에서 까발리자 정두진의 얼굴이 구겨졌다.
“기어코 끝을 보겠다는 거냐.”
“당연히 봐야지. 어렵게 증거를 수집했는데.”
“후후, 집법회주님과 맞서서 이길 자신이 있느냐?”
“이복 숙부랑 맞설 필요는 없지. 상황 파악이 느린 건가, 아니면 애써 외면하는 건가.”
“뭐라?”
“이 지경이 될 때까지 회주에게 언질이라도 받은 적 있나? 당신은 버림받은 거야. 감찰각에 갇힌 순간부터.”
정두진이 은연중에 느끼고 있는 불안감.
서진의 말은 칼날처럼 정두진에게 박혔다.
“아니야. 네가 뭘 안다고 그러느냐!”
그는 큰소리를 쳐보지만,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계속 희망을 품는 것도 자유긴 하지. 감찰각주. 이제 얘기는 다 끝난 것 같은데.”
“알겠습니다.”
감찰각주가 신호를 주자 문밖에 서 있던 직원들이 정두진을 끌고 갔다.
**
정두진에 대한 루머가 사실로 밝혀지자 흑룡가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어디를 가나 그 얘기뿐이었고, 던전기획실 1팀도 마찬가지였다.
“와 난 정 장로가 그 정도일줄은 몰랐다.”
“그러니까, 한서진은 그런 증거를 어떻게 찾아냈지?”
“들리는 말로는 다 자기가 직접 알아왔다던데.”
“미쳤네, 근데 이제 정 장로는 어떻게 되는 거야?”
“죽지 않을까. 한서진이 끝장내려고 혈안이 돼있을 텐데.”
“글쎄, 그건 힘들걸. 정 장로는 일반인 신분인 데다가 죄명도 사실 애매해. 헬기 경로 알려준 거 뿐이니까.”
“너 이새끼! 정 장로 왜 실드쳐? 그리고 뭐가 애매해. 완전히 배신자더만.”
“그럼 너는 한서진 응원하는 거냐?”
“개인적으론 한치성보단 한서진이 낫긴 하지. 둘다 냉정한 분위기는 있는데 결이 다르다고나 할까.”
이렇듯 가문 내에서 정두진의 처분에 대해 여러 의견이 오가고 있었다.
**
“흐음.”
흑룡가주는 방금 모든 전말을 보고 받은 참이었다.
“가문의 장로가 쥐새끼 짓을 하고 있었군.”
보고서에는 정두진이 마도현가에게 빼돌린 정보들이 적혀있었다.
그 때문에 마도현가에게 던전 입찰 경쟁에서 5번이 밀렸다.
“형석아. 이놈 내가 죽이면 문제 되냐?”
“절차는 따르시는 편이 좋을듯합니다.”
사회는 헌터가 일반인을 죽이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무작정 죽일 수는 없었다.
전직 헌터라 하더라도 말이다.
“한서진 그놈은 은근히 다 죽이고 다녔지 않나?”
“하지만 전부 상대가 먼저 잘못한 경우였지 않습니까. 게다가 헌터가 아닌 일반인에겐 폭력은 썼어도 죽인 적은 없습니다.”
그랬다.
막 나가는듯한 서진도 알고 보면 절묘한 선을 지키고 있었다.
“쯧. 가주 회의를 통해 결정해야겠어.”
“준비하겠습니다.”
김형석 비서는 회의에 참여해야 될 인물들에게 참석 시간을 통보했다.
**
그로부터 3시간 후, 가주 회의실에는 5명의 인원이 앉아있었다.
회의실은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아 적막함이 가득했다.
하지만 가주가 들어온 순간, 침묵이 깨졌다.
“형석아.”
“예.”
가주 뒤에 선 김형석 비서는 오늘의 의제를 말했다.
“정두진 전 장로의 처분과 후속 조치에 대한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제일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서진이었다.
“은월각주.”
“네?”
“정보가 새고 있다는 낌새는 못 느끼셨습니까?”
서진은 초장부터 그에게 직구를 날렸다.
“의심스러운 정황은 파악하고 조사 중이었습니다.”
“조사를 아주 신중히 하시나 봅니다. 감찰각보다 늦은 걸 보니.”
은월각과 감찰각은 조직의 특성이 겹치는 부분이 있어 늘 라이벌 관계였다.
그렇기에 이런 식의 비교는 은월각주를 상당히 자극했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잘한 것이 없기에 말을 못 한채 분노를 삭일 뿐이었다.
그리고 서진의 타깃은 은월각뿐만이 아니었다.
“숙부는 집법회주면서 몰랐습니까?”
한정후는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집법회주는 장로들 위에 있는 게 아니다. 집법회라는 모임이 원활하게 굴러가게끔 애쓸 뿐이지.”
“하지만 지금은 원활하지가 않습니다만.”
“집법회주라고 모든 장로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순 없으니까.”
사실 한정후가 집법회 내에서 제일 큰 파벌의 주인인 건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런데 태연히 저런 말을 내뱉는 것도 일종의 재능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장로 중에서 정두진이 숙부와 제일 많은 교류를 나누지 않았습니까? 제일 친한 장로도 파악을 못하다니. 어떻게 된 겁니까. 숙부님.”
“작정하고 숨기면 알 재간이 없지. 너도 겨우 증거를 얻지 않았느냐.”
“그러니까 집법회랑 거리가 먼 저도 눈치를 채고 밝혀냈는데 회주님은 모르셨다 이 말이군요.”
한정후가 능구렁이처럼 넘어가려고 해도 한서진이 집요하게 그의 실책을 언급했다.
사실 한정후가 정두진에게 한서진에 대한 지시를 내린 적은 없었다.
정두진이 저지른 다른 죄들도 마찬가지.
그 때문에 연관 증거도 없다.
하지만 정두진을 방관한 것 자체가 한정후의 의도가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서진이 지적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그 점이었다.
애초에 이 사건의 명분은 오로지 한서진에게 있기에 어떤 식으로 답해도 피할 수 없었다.
“그건...”
한정후가 말하려는 순간, 김형석 비서가 가주에게 다가가 말했다.
“가주님. 방금 마도현가의 가주가 흑룡가 정문을 통과했다고 합니다.”
자식을 잃은 아버지가 직접 가문에 쳐들어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