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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가문의 천재는 사실 귀환자-34화 (34/141)

34화

설하윤이 지냈던 미래보육원은 흑룡검가에서 많이 떨어져 있었다.

개성에서 경북까지 내려가야 했으니까.

운전대를 잡고 있던 설하윤은 중간쯤 왔을 때 휴게소에 잠시 들렀다.

서진은 먼저 화장실을 가고 설하윤은 휴게소 공원의 벤치에서 바람을 쐬었다.

그리고 설하윤이 홀로 앉아 있는 모습은 주변 남자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피부가 드러나지 않는 검은색의 긴바지와 재킷에다 마스크로 가리고 있어도 타고난 매력은 자연스레 흘러나왔기에.

하지만 멀리서 보기만 할 뿐, 접근하는 사람은 없었다.

허리에 찬 칼을 보면 바로 헌터라는 걸 알 수 있기 때문에.

하지만 뭐든지 예외가 있는 법.

휴게소에 일반인이 있다면 헌터도 있기 마련이다.

던전을 공략하고 돌아가는 중에 휴게소에 들른 허주태의 발걸음이 멈췄다.

옆에서 같이 걷던 길드원들이 그를 향해 물었다.

“부길드장님. 왜 그러십니까.”

길드장의 아들을 모시고 다니는 길드원들은 갑자기 멈춘 그가 의아스러웠다.

“너희들은 먼저 가 있어.”

하지만 부길드장의 시선이 닿은 곳을 보자 단번에 이해됐다.

그들은 멀어지는 부길드장에게 들리지 않게 중얼거렸다.

“아우라가 느껴지는 여자가 무슨 말인지 오늘 처음 알게 됐다.”

“나도.”

가까이 다가간 허주태는 벤치에 앉아있는 설하윤을 보며 웃었다.

휴게소에서 이런 여자를 만난 게 마치 던전에서 득템한 기분이었다.

옆에 찬 검을 보니 더욱더 마음에 들었다.

일반인은 엄두도 못 낼 테지만 자신은 다르니까.

허주태는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창염 길드의 부길드장 허주태라고 합니다.”

간판은 얼마든지 자신이 있었다.

창염 길드하면 경북 지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니까.

설하윤은 귀찮은 기색을 숨기지 않고 고개를 들어 쳐다봤다.

하지만 얼굴에 철판을 두른 그가 고작 그걸로 물러날 리 없었다.

“하하, 다름이 아니라 오늘 창염 길드에서 B급 던전을 최초로 공략한 기념으로 파티를 하는데 초대하고 싶어서요.”

“거절하겠습니다.”

“그러지 말고 한번 생각해보시죠.”

허주태는 명함을 내밀었다.

설하윤은 내민 명함을 무시하고 일어났다.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공원에서 편히 쉬고 싶었는데 물거품이 돼버렸다.

그때 볼일을 마친 서진이 다가왔다.

“하윤 씨, 무슨 일 있어요?”

“뭐야 너는.”

허주태 입장에선 갑자기 등장한 그가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그리고 멀리서 지켜보던 길드원은 서진의 얼굴을 본 순간 기겁했다.

“저 사람은.”

7레벨급 마인을 처치하고, A급 던전을  고작 3명이서 공략하고, 최근엔 6레벨 마법사인 소가주를 죽여버린 인물.

흑룡검가의 후계자라는 배경을 차치하더라도 매우 위험한 헌터였다.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철없는 도련님은 한서진의 얼굴을 기억하지도 못하겠지.

하지만 자신들은 아니었다.

길드원들은 바로 달려가 부길드장을 연행하다시피 끌고 갔다.

“야! 너희들 왜 그래? 시발, 놓으라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다급한 사과와 함께 빠르게 서진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

“도착했습니다.”

몇 시간 후 차에서 내린 서진은 설하윤을 따라 보육원을 걸어 들어갔다.

“하윤 씨, 그냥 이렇게 불쑥 들어가도 되나요?”

“괜찮습니다. 미리 연락은 해뒀습니다.”

서진은 설하윤과 함께 원장실에 도달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중년의 여성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윤아!”

“오랜만입니다. 원장님.”

보육원장은 설하윤의 손을 잡고 흔들다가 서진을 바라봤다.

“이분은 누구니? 남자친구?”

“아, 그.”

드물게 설하윤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며 그녀가 웃었다.

“후후, 농담이야 하윤아.”

보육원장은 서진에게 인사했다.

“반가워요. 보육원을 운영하고 있는 이혜림이에요. 한서진 님 맞으시죠? 항상 후원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그녀는 손을 모으고 인사를 한 뒤 말을 이었다.

“이렇게 얼굴을 뵈니 확실히 유라 님이 생각나네요.”

이혜림 원장은 서진의 어머님을 떠올리며 살짝 눈가를 글썽였다.

서진은 그런 반응에 기분이 조금 묘해졌다.

가문 밖에서 이 정도로 어머니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그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

잠시 후 이혜림 원장은 다시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제가 주책이었나요? 그럼 한서진 님은 처음 왔으니 안내를 해드릴게요.”

그녀는 보육원 곳곳을 돌아다니며 설명을 시작했다.

“저 각성자 전용 놀이터도 신유라 님이 후원해 주신 거예요. 저기 레벨 측정기도.”

보육원 이 저곳엔 어머니의 흔적이 가득했다.

그리고 각종 기구를 보니 돈 들어갈 곳이 많다는 것도 피부로 체감되었다.

“요즘은 괜찮습니까?”

“네, 후원자님 덕분이에요.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그만 감사하셔도 됩니다.”

오늘 둘러보면서 몇 번을 들은 건지 모르겠다.

“그럼 이쯤에서 가보겠습니다.”

“네, 시간 나면 언제든지 오셔도 괜찮아요.”

서진은 어머니의 흔적이 가득한 곳을 다시 빠져나왔다.

**

흔히 뉴스에서 범죄를 저지른 헌터들이 보도될 때마다 많은 이들이 돌을 던진다.

특히 헌터가 아닌 일반인들이 더욱 분노하며 비판과 비난을 던진다.

아무래도 실생활에서 헌터에게 크고 작은 피해를 본 경우가 있기 때문에.

그렇기에 뉴스를 보며 헌터를 싸잡아서 욕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헌터의 집단인 가문과 길드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거의 유일하게 욕을 안 먹는 가문이 있었는데 그곳이 철혈백가다.

강북의 북한산 아래에 위치한 철혈백가는 몬스터로부터 서울의 방위를 책임지는 곳이다.

물론 같은 3대 가문 중 하나인 흑룡검가도 북쪽에서 내려온 몬스터 웨이브를 주기적으로 막고 있다.

그런데도 양 가문의 평판이 비슷하지 않은 원인은 바로 가주에게 있었다.

현 흑룡가주는 기본적으로 방관하는 태도를 유지해왔다.

그에 비해 철혈백가는 소속 헌터들에 대한 관리가 철저했다.

그 때문에 헌터들 사이에선 선호도가 갈리지만 일반인들은 맹목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 철혈백가의 가주가 바뀌고 나서도 가문의 분위기는 변함이 없었다.

또각또각.

철혈백가의 최상층.

한 층 전체가 가주실로 이루어진 곳에 양복을 빼입은 비서가 편지를 내밀었다.

“아, 가주님. 여기 대한가문회 초대장입니다.”

그녀는 평소처럼 아가씨라고 부르려다 얼른 호칭을 바꾸었다.

그걸 눈치 못 챌 백화연이 아니었다.

“언니. 방금 아가씨라고 말할 뻔했지?”

“아닙니다. 그리고 언니라는 호칭은 부디 바꿔주시죠. 가주님.”

“싫어.”

민나희는 가까스로 한숨이 나올뻔한 걸 참았다.

어릴 때부터 보았던 가족 같은 동생이라 해도 언니라고 불리는 건 난감했다.

예전이야 괜찮았지만 지금은 가주니까.

3일 전에 공석에서 실수로 언니라고 불렸다가 얼마나 낯이 뜨거웠는지.

하지만 하지 말라고 강하게 주장하긴 힘들었다.

전 철혈가주님이 돌아가신 상황에서 자신까지 벽을 쳐버리면 분명 외로울 테니까.

그 사이 백화연은 편지를 다 읽고 내려놓았다.

“일주일 후에 가주끼리 한번 모이자고 하네.”

보통 한 달 전에 날짜를 잡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사안이 급할 경우 당겨지기도 한다.

“혹시 전 약혼자인 한서진 때문입니까.”

백화연은 가늘게 뜬 눈으로 그녀를 째려봤다.

“지금 놀리는 거야? 확 해고해버릴까 보다.”

“죄송합니다. 가주님.”

그녀는 옅게 웃으며 사과하는 태도를 취했다.

“언니 말대로 한서진 때문인 건 맞아. 정확하겐 마도현가 소가주 문제지만”

이 건은 대한가문회에서 공론화가 될 수밖에 없었다.

가문의 후계자가 소가주를 죽인 사건이니까.

백화연은 편지를 서랍에 넣으며 말했다.

“어쨌든 가긴 해야겠지. 가주가 된 이후로 첫 번째이기도 하고,”

“그럼 참석 답장을 보내겠습니다.”

**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나고, 대한가문회의 본부가 있는 서울에 7명의 가주가 모였다.

원탁을 중심으로 앉은 그들 사이는 겉으론 크게 나빠 보이진 않았다.

“철혈가주.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시오. 도움을 줄 테니.”

“감사합니다.”

회의가 시작되기 전, 가주들에겐 백화연이 상당한 관심거리였다.

“철혈가주의 나이가 지금 25살인데 최연소 아니신가?”

“그건 아니야. 초대 가문 시기엔 20대 초반이 몇 명 있었다고 하니.”

“그렇군.”

“그러면 철혈가주는 마음에 드는 사람은 없는가?”

“그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칼같이 끊어내는 백화연의 대답에 원탁이 잠시 조용해졌다.

그리고 대한가문회장이 입을 열었다.

“철혈가주, 잘 끊어 주셨습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회담을 시작하겠습니다.”

모두의 얼굴이 신중해졌다.

한서진이 현장에서 현지완을 죽인 것이 과연 적정한 대처였는가.

이것이 오늘 원탁 회담의 주제였다.

그러므로 당사자 격인 마도현주와 흑룡가주는 참석에서 제외되었다.

만약 부적절하다는 결론이 날 경우, 한서진에게 대한가문회의 징계가 내려진다.

“물론 마도현가 소가주는 분명한 죄가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이미 마도현가는 소가주가 저지른 죄로 인해 여러 던전의 권리를 빼앗기고 있었다.

기갑성가의 가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끝난 것이죠. 죽을죄를 지었으니 죽었을 뿐.”

“그래도 그건 아니오. 판사도 즉결처형은 못 하는데 하물며 소가주를 그런 식으로 죽인다는 게 참...”

열화권가의 가주가 말을 마치며 혀를 찼다.

적호검가에서도 맞장구쳤다.

“아무리 헌터라 해도 그런 행동은 선을 넘은 게 맞습니다.”

그 말에 백화연이 반박했다.

“아니요. 저였어도 그 상황이었다면 현지완 소가주를 죽였을 겁니다.”

“허허, 혹시 전 약혼자라서 비호하는 건가.”

그녀는 깔끔하게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외람된 말씀이지만 적호가주의 자제분이 일반인을 폭행해 뇌사 상태로 만든 일이 더 선을 넘는 것 같습니다만.”

“뭐요! 왜 주제와 쓸데없는 얘기를!”

이때 대한가문회장이 끼어들었다.

“자, 너무 흥분하지 말고 얘기를 이어갑시다.”

하지만 이미 감정이 상해버린 가주가 있는 이상 제대로 된 회담이 계속되긴 힘들었다.

결국 대한가문회장은 10분 정도 지켜보다가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그럼 이쯤에서 의견을 정리하겠습니다. 한서진이 과했다고 판단하는 가주분들은 손을 들어주십시오.”

백화연과 기갑가주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철혈백가 영향력 아래에 있는 가문의 가주 2명도 손을 들지 않았다.

기갑성가와 동맹 관계에 있는 가주도 마찬가지.

그러다 보니 7명 중 2명만이 손을 들고 있었다.

대한가문회장은 대충 예상했던 그림이기에 별다른 동요 없이 입을 열었다.

“그러면 한서진 건에 대해선 5명 문제없음으로 의견이 정해졌으니 이만 회담을 마칩니다.”

**

회담이 끝나고 백화연은 대기하고 있던 리무진의 뒷좌석에 털썩 앉았다.

민나희는 조금 피곤해 보이는 그녀에게 말했다.

“잘 끝나셨습니까?”

“응, 그러니까 연락을 해봐.”

“혹시 그 던전 때문에요?”

“뇌기를 다루는 근접형 헌터가 필요한데 딱이잖아.”

“같이 공략해야 될 텐데 안 불편하신가요.”

“자꾸 놀리지 말고.”

나른했던 백화연의 눈빛에 힘이 들어갔다.

민나희는 모른 척하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연락해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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