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소문?”
홍세인 과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희 마력관리청에선 주기적으로 북한 지역의 동태를 살핍니다.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라 해도 한국의 영토니까요.”
“직접 들어가나?”
“그럴 때도 있고 손이 부족한 시기엔 의뢰 공고를 내서 맡깁니다.”
서진은 홍세인의 표정을 보고 문제가 있다는 걸 짐작했다.
“그게 잘 안 풀렸나 보군.”
“맞습니다. 여태까지 3번의 의뢰를 넣었는데 전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보통은 성공 확률이 높나?”
“예, 최소 5인 이상 팀을 기준으로 계약을 맺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돌아옵니다.”
서진은 그 말에 의문을 품고 파고들었다.
“그런데 돌아오지 못했다면 소문은 무슨 소리지.”
“예, 그건 위에서 도망쳐 내려온 사람에게 들은 말 때문입니다.”
“거기에 사람이 있다고?”
“예, 백야로 도망치치 못한 범죄자나 수련을 위해서 들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역시나 세상엔 미친놈들이 많다.
홍세인은 계속 말을 이었다.
“물론 이번에 말한 사람은 전자에 해당됩니다. 도망치러 깊숙이 들어갔다가 이상한 걸 보았다고 말하더군요.”
“그게 뭐지?”
“그놈 말로는 처음 보는 괴물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말을 어떻게 믿지?”
서진의 합당한 의문에 홍세인은 인정하며 말했다.
“명색이 마관청 수사과인데 거짓말 정도는 구분 가능합니다. 하하.”
“그럼 새로운 몬스터가 나타난 건가?”
“저희도 그렇게 추측해서 의뢰를 통해 탐사대를 보냈는데 결과는 조금 전 말씀드렸다시피...”
낯선 괴물이란 말에 서진은 궁금증이 생겼다.
과연 이계에서 못 보던 몬스터인 걸까.
“이렇다 보니 아무도 나서려고 하지 않습니다.”
“상위 길드나 가문에선 귀중한 전력을 실험 삼아 보내려 하지 않을 테고, 그 외는 레벨이 낮아서 고려 대상조차 아니니까.”
“그렇습니다. 그래서 흑룡검가라면 다르지 않을까 해서 오게 됐습니다.”
단순히 북쪽 지역과 인접해서가 아니라 여러 사정이 겹쳐서 흑룡가를 찾아온 것이었다.
“그러면 마관청에서 확인하고 싶은 건 뭐지.”
“그 괴물의 확인과 정체, 기왕이면 괴물을 죽여서 시체를 가져오고 싶습니다.”
“쉽지는 않겠군.”
“시체까지는 저희의 욕심이고 어떤 녀석인지 확인만 해도 충분합니다.”
서진은 얘기가 얼추 마무리되자 흑룡가주를 보며 말했다.
“그럼 홍세인 과장이 말한 대로 탐색만 하면 됩니까.”
“내가 뭐라 할 것 같으냐.”
“흑룡가 후계자라면 괴물의 시체 정돈 가져와야 한다. 뭐 그런 말을 하시겠죠.”
흑룡가주는 기꺼운 듯 흐릿하게 웃었다.
“잘 알고 있구나. 예전부터 북한 지역에서 생긴 문제는 흑룡가와 협력해서 막아왔다. 그 덕분에 챙긴 수혜도 적지 않으니 공생관계라 할 수 있지.”
맞는 말이었다.
이곳 개성은 오롯이 흑룡검가의 지역이니까.
공권력보다 가문의 영향력이 강한 이유도 정부의 암묵적인 인정이 있었기 때문이고.
물론 그것이 자의반 타의반인 인정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가문의 윗 마당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돈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곳을 윗 마당이라 표현하는 분은 흑룡가주님뿐일 겁니다.”
열심히 맞장구치는 홍세인에게 서진이 말했다.
“그러면 그 괴물을 봤다는 곳이 어딘지는 알고 있나?”
“범죄자의 말을 토대로 분석했을 때, 저희 마관청에선 예전의 곡산 부근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지도를 보니 개성에서 북동쪽에 위치한 곳이었다.
홍세인은 수첩을 뒤적거리며 추가 정보를 말했다.
“그리고 또 하나 이상한 점은 그 범죄자가 괴물을 만났을 때, 마나가 움직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말이 안 맞는데, 그럼 어떻게 살아서 도망쳤지?”
“괴물의 움직임이 잠시 멈췄다고 합니다. 그 사이에 필사적으로 도망쳐서 살았다고 하더군요.”
“그놈은 지금 어디에 있지? 가능하면 만나보고 싶은데.”
“저희에게 인계되었을 땐 이미 중독이 심하게 진행된 상태라서 심문 하루 뒤에 사망했습니다.”
서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가주를 보며 입을 열었다.
“이 정도면 아무리 후계자 임무라도 보상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서진은 자원봉사자가 아니기에 맨입으로 할 생각이 없었다.
흑룡가주는 흔쾌히 답했다.
“좋다. 하지만 대단한 보상을 내걸기엔 어떤 상황인지도 불확실한 단계다. 사안의 위험과 심각성을 증명한다면 그에 맞는 보상을 주도록 하마.”
“알겠습니다.”
**
다음날, 준비를 마친 서진에게 홍세인이 다가왔다.
“저, 근데 같이 안 가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원래 안 갔다며.”
“그렇긴 합니다만.”
“방해될 것 같으니까 안 따라와도 돼.”
최소 인원을 선호하는 서진에겐 설하윤 한 명이면 충분했다.
“알겠습니다.”
“방금 안심한 것 같은데.”
“아, 아닙니다!”
홍세인은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원래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그게 꼭 모든 상황에 들어 맞..”
“농담이다. 이제 가야겠군.”
홍세인은 허리를 굽히며 인사했다.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서진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설하윤의 차에 탑승했다.
설하윤은 핸들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서진 님. 어느 쪽으로 나가실 겁니까?”
“북부 게이트로.”
개성을 오가려면 동서남북에 있는 게이트 중에 하나를 거쳐야 했다.
추측 장소가 곡산 부근이라 했으니 북쪽으로 나가서 우측으로 가로질러 갈 생각이었다.
서진의 손에 지도가 들려있기에 가능한 계획이었다.
현대 사회에서 지도는 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이지만 마경에 한해선 얘기가 달랐다.
던전과 몬스터가 점령한 지형은 변화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닦아놓은 길은 사라지고 새로운 질서가 구축된다.
거기에 몬스터들이 내뿜는 탁한 마나 때문에 인공위성도 무용지물이 된다.
결국 예전처럼 사람이 직접 걸으며 지형을 그려나가야 한다.
서진의 손에는 선대 흑룡가 헌터들의 피로 만들어진 지도가 들려있었다.
이조차 아직 완벽을 입에 담기엔 한참 모자라지만 아주 귀한 지도임은 분명했다.
“서진 님. 도착했습니다.”
설하윤의 차는 이윽고 도로의 끝에 도달했다.
여기서부턴 걸어가야 한다.
서진과 설하윤은 출입금지 표지판을 넘으며 마경에 발을 들였다.
**
과거부터 강이란 지형은 물류 운송의 핵심이 되기도 하고 영토를 구분 짓는 경계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던전이 등장한 현재까지도 그 역할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북한 지역이 몬스터 마굴이 되어갈 때 압록강 너머에 있는 랴오닝성은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강 건너 불구경을 했던 지역.
덕분에 누구보다 마경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어떤 가능성을 엿본 헌터도 존재했다.
다름 아닌 랴오닝성의 패자로 군림하고 있는 적륜성주.
예전부터 모종의 가능성을 보고 투자한 그는 이제 곧 싹을 틔우기 직전 단계까지 와있었다.
마경의 지하연구소에서 올라온 보고서가 그것을 증명했다.
그러나 그가 보고서를 넘기려는 순간, 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초대하지 않았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손님이 온 탓이었다.
검은 후드를 덮어서 입까지만 간신히 보이는 사내에게 적륜성주가 말했다.
“게일러.”
“내가 일하는 데 방해한 건가.”
“아니 됐어. 그보다 무슨 일이야.”
언뜻 나긋하게 보이는 적륜성주의 태도는 성의 식솔들이 봤다면 대경할 장면이었다.
“한동안 안 왔으니 어떤지 보러 왔지. 아, 그건가.”
게일러라 불린 남자가 손가락을 까딱하자 보고서가 허공을 날아 그의 손에 안착했다.
착.
서류를 수초 만에 훑은 게일러는 옆의 소파에 아무렇게나 던졌다.
“거의 다 되어가는군.”
“그렇지.”
“그런데 최근 두 달간 3번이나 헌터들이 기웃거렸다고 적혀있는데.”
“깔끔하게 처리했어.”
그러자 검은 후드가 좌우로 흔들렸다.
“아니. 괜찮지 않아. 빨리 완성해서 폐쇄하도록 해.”
“하지만 전에 추가 연구를 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결계는 다른 곳에 설치해 줄 테니 신경 쓰지 말고 완성하는 것에 집중해.”
“그러도록 하지.”
게일러는 등장했을 때처럼 다시 소리 없이 사라졌다.
**
희미한 불빛 아래, 벽에 비친 그림자는 연신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예, 예, 알겠습니다. 보고 드렸듯이 한 달이면.”
그러다 굽신거리던 등이 멈칫했다.
“예? 너무 짧은, 아닙니다. 예, 알겠습니다.”
탁.
얘기가 끝났는지 그림자의 주인인 남자는 허리를 펴고 한숨을 쉬었다.
그때, 문을 열고 들어온 젊은 남자가 말했다.
“소장님 왜 그러십니까.”
“위에서 연락이 왔다. 보름 만에 끝내고 철수하라고.”
젊은 남자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네? 아휴 그게 됩니까? 3주 정돈 있어야 하는데.”
“한 달이라고 말했는데 안 먹혔다.”
“혹시 그 일 때문 아닙니까? 최근 2달 동안 세 팀 온 거 보고했지 않습니까.”
연구소장은 까칠하게 난 턱수염을 매만지며 말했다.
“괜히 보고 했나.”
“너무 걱정이 많은 것 같습니다. 어차피 결계 때문에 지상에선 마나도 제대로 못 쓰는데.”
“그래도 아직 시험체가 중간에 멈칫하는 증상이 있으니 그건 고쳐야 하긴 해.”
“그렇죠.”
“이제 금방이니까 잠 없다고 생각하고 빠르게 끝내자.”
“알겠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마치고 받는 30억을 생각하면 그깟 잠 줄이는 거야 아무 일도 아니었다.
삐익-
“어, 소장님 누가 영역에 들어왔습니다.”
“뭐? 아 진짜. 빨리 철수해야 하긴 해야겠네. 몇 명인데.”
“두 명 감지됐습니다.”
“시험체 세 개 보내.”
연구원은 곧바로 처리반에 소장의 지시를 전달했다.
**
“이번엔 또 어떤 놈이려나.”
시험체들과 같이 나온 처리반의 헌터는 입꼬리를 올리며 침입자에게 향하고 있었다.
이곳에서의 근무는 그에게 천국이나 마찬가지였다.
즐길 거리는 없지만 업무가 너른 데다 돈도 많이 들어온다.
평생 있는 곳도 아니니 잠깐의 지루함만 견디면 돈이 쌓인다.
게다가 완전히 지루한 것도 아니었다.
가끔 영역에 들어온 헌터들을 죽이는 일이 기다려질 정도였으니까.
마나를 못 써서 무기력해진 놈들이 농락당하며 죽는 모습이 어찌나 재밌는지.
물론 마나를 못 쓰는 건 자신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시험체를 컨트롤 할 수 있는 키가 있기 때문에 상관없다.
‘이번에도 좀 가지고 놀다가 죽여야지.’
“크르.”
낯선 침입자의 냄새를 맡은 시험체가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5분 정도 달린 끝에 멀리서 두 개의 인영이 보였다.
**
설하윤은 멀리서 달려오는 괴물을 보며 입을 열었다.
“서진 님. 먼저 가세요.”
그녀는 저걸 보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헌터들이 왜 돌아오지 못했는지.
마나를 못 쓰는 이곳에서 저런 괴물을 상대할 수 있는 헌터가 몇이나 될까.
평소 특성이나 스킬에 의존해 싸워왔던 헌터라면 아예 승산이 없을 정도다.
스텟이 있어도 마나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으니까.
하지만 서진은 담담하게 괴물을 응시하고 있었다.
“재밌겠네요.”
마나?
그런 걸 못 쓴다 해도 서진에겐 상관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