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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가문의 천재는 사실 귀환자-38화 (38/141)

38화

“처음 보는 괴물이라더니.”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었다.

인간이 강제로 얼기설기 엮어서 만든 키메라였으니까.

다리는 웨어울프, 몸통은 어린 시기의 트롤, 머리는 리자드맨의 것이었다.

전부 만만한 몬스터는 아니지만 그것을 합친다고 시너지가 난다는 보장은 없는 법.

당장 달려오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웨어울프의 다리 덕분에 빠르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균형이 맞지 않는다.

한번 삐끗하면 쓰러질 정도로 불안정하다.

서진이 알고 있는 웨어울프는 누구보다 빠르면서 착지 순간까지 철저한 균형을 유지하는 몬스터였다.

저런 조잡한 도약이 아니라.

키메라가 지척까지 도달했지만 서진은 물러섬이 없었다.

오히려 반보 앞으로 향하며 서진의 검이 아래에서 위를 향해 사선으로 그어진다.

“크에엑.”

허술한 접합 부위가 손쉽게 뜯어져 나갔다.

마나에 기댈 필요도 스킬을 쓸 이유도 없었다.

이 정도의 빈틈을 보이는 키메라는 천 년간 익힌 검술만으로 상대하기 충분했다.

사선으로 올라갔던 검이 이번엔 수평으로 베어졌다.

툭.

리자드맨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지며 굴러갔다.

“키엑!”

남은 건 두 마리.

하나는 설하윤에게 갔지만 크게 걱정하진 않는다.

그녀도 스킬에만 의존해 성장한 반쪽짜리는 아닐 거라 믿기 때문에.

두 번째로 덤벼든 키메라는 처음 녀석보단 사정이 나았다.

아무래도 사람이 만들다 보니 개체별로 완성도 차이가 눈에 띄게 나타난다.

다리 접합이 잘되어 스피드는 봐줄 만했지만 공격을 하는 순간 상체가 크게 흔들린다.

그만큼 서로 다른 몬스터를 이어 붙인다는 게 쉽지 않다는 것.

서진은 한 부위씩 관찰하다 키메라의 목을 잘랐다.

카앙!

설하윤에게 눈을 돌리니 아직 다치진 않았지만 대치 상태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서진의 시선을 의식한 걸까.

그녀는 방어태세를 풀더니 키메라에게 과감하게 허점을 드러내고 공격을 유도했다.

단번에 달려던 키메라에게 오른팔이 베이기 직전.

그녀는 몸을 틀어 회피하며 목을 베어냈다.

“서진 님.”

설하윤은 평소와 다르게 숨을 크게 고르며 다가왔다.

하긴 언제 실전에서 마나를 봉인당한 채 싸워봤겠는가.

서진도 이계에서의 경험이 없었다면 설하윤만큼도 못 했을 것이다.

“수고했습니다. 하윤 씨.”

그런 서진을 보는 설하윤은 뭐라 말할 수 없는 복잡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서진은 왠지 그녀의 눈동자를 보니 과거가 떠올랐다.

예전에 무재(無才)라고 손가락질을 받을 때 자신이 둘째 동생을 부러워하며 보냈던 시선.

물론 그때의 서진과 현재 그녀의 위치는 다르니 같은 종류의 감정은 아니겠지만.

서진은 작게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저놈부터 죽이고 마저 대화를 나누죠.”

키메라 3마리는 알아서 다가온 게 아니었다.

지금 도망치는 저놈이 끌고 온 거지.

몇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 달리고 있지만 서진의 기감에 명확하게 잡혔다.

투신으로 살아오면서 축적되었던 감각.

마나를 못 쓸지라도 경험은 남아있다.

팡!

서진은 스프링처럼 앞으로 튀어 나가 금세 도망자를 따라잡았다.

아깐 점 수준으로 보였지만 이젠 등이 훤히 보일 정도.

서진은 허벅지에 수납되어 있던 단검을 빼냈다.

“가져오길 잘했군.”

가문에서 출발하기 전, 검 한 자루로 부족한 일이 있을까 봐 챙겨 왔는데 이렇게 쓰일 줄이야.

서진은 손에 쥔 단검을 놈에게 던졌다.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단검은 정확히 발목에 꽂혔다.

“아아악!”

푸드덕!

나무에 매달려있던 새가 날아갈 정도로 큰 비명이 울려 퍼졌다.

서진은 느긋하게 다가가 등을 지그시 밟으며 질문했다.

“여긴 뭐 하는 곳이지.”

“으윽..”

“대답이 없군.”

서진은 반대편 발목에 단검을 꽂았다.

“아악! 개새끼야!”

“다시 한번 묻지. 여긴 뭐 하는 곳이냐.”

“시발! 보면 몰라 네가 죽여버린 시험체를 만드는 곳이다. 십새끼야.”

“누가 만들지?”

“....”

“또 답이 없군.”

서진이 발목에 꽂았던 단검을 뽑자 그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말한다고!”

“그럼 말해.”

서진은 그의 앞으로 가서 눈을 쳐다봤다.

그 순간, 서진의 예민한 감각은 오른 손가락이 움직이려 하는 걸 잡아냈다.

그리고 즉시 오른 팔목에 단검을 쑤셔 박았다.

“끄아아악!!”

“수작을 부리려 하니까 그렇지.”

“크흑, 으아아.”

그는 무엇이 억울하고 분한지 눈물과 콧물을 흘리고 있었다.

“대답할 생각이 없어 보이니 죽여야겠군.”

“잠까...”

“이라고 할 줄 알았나.”

서진은 이번에 허벅지를 찔렀다.

“말 안 해도 돼. 그냥 장난감이 필요한 거니까.”

서진의 단검이 이윽고 사타구니로 향하는 순간, 그의 입이 열렸다.

“적륜성!”

어디서 들어본 단어에 서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렇지.

장민의 친부가 적륜성주라 했던가.

“재밌는 우연이군.”

“뭐?”

“몰라도 된다.”

“어쨌든 이제 말했으니 살려줄 거지?”

“아직 멀었어. 왜 이곳에서 키메라를 만든 거냐고.”

“난 몰라! 그냥 돈 받고 일하러 온 것뿐이라고.”

기색을 보니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진 않다.

“그럼 안내해. 키메라 만드는 곳으로.”

“시발, 네가 발목 병신 만들었으면서 어떻게 안내하라고.”

그때 설하윤이 한마디 보탰다.

“제가 끌고 가겠습니다. 어차피 방향만 들으면 되니까요.”

**

파삭.

시험체와 연결되어 있던 세 개의 구슬이 부서졌다.

그게 의미하는 바는 하나다.

침입자가 시험체를 쓰러트릴 만큼 강하다는 것.

연구원은 부서진 구슬을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연구자로서 현실을 외면할 순 없는 노릇.

그는 연구소장에게 이 사실을 전달했다.

“정말이냐?”

역시나 부정하는 소장에게 부서진 구슬을 보여주었다.

“흐음.”

연구소장은 숨을 들이켜며 손가락을 살짝 떨었다.

시험체는 말 그대로 미완성된 키메라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여태까지 침입자를 죽이기엔 차고 넘쳤는데.

지금 남아있는 시험체는 15마리.

평소엔 한 마리당 최소 두 명의 헌터를 처리해왔기에 부족하다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 불안감이 느껴진다.

“지금 침입자가 어떤 상태인지 알 순 없겠지?”

“예.”

마경에서 CCTV를 설치 할 수도 없는 데다 마나까지 못 쓰니 알 방법은 없었다.

“아마 3마리 상대로 겨우 이긴 거겠지?”

애써 좋은 방향으로 생각해보지만 불안감이 덜어지진 않는다.

이윽고 연구소장의 결정이 내려졌다.

“처리반장에게 말해서 10마리 데려가라고 해.”

“소장님, 그럼 시험체가 5마리밖에 안 남는데요.”

한 마리 만들 때마다 갖은 수고가 들어가는 걸 생각하면 실로 뼈아픈 손실이었다.

“야, 아직 10마리 다 손상된다고 확정된 게 아니야. 3마리 죽였다고 10마리 상대가 될 거라 생각해?”

“그렇겠죠?”

수가 늘어난다면 상대하는 난이도는 그 이상으로 올라가니까.

그것이 보편적인 진리이기에 연구원도 그리 믿었다.

**

“으워어!”

마경에 들어온 서진과 설하윤의 적은 키메라만 있는 게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키메라보다 몬스터가 조금 더 까다로웠다.

물론 놈들도 같이 결계의 영향을 받기에 평소보다 힘이 약하지만 본능이란 건 무시할 수 없는 법이니.

오로지 생명체를 죽이기 위해서만 살아가는 존재니까.

그렇다 해도 서진에게 위협적인 수준은 아니었다.

촤악!

칠흑의 검이 달려들던 오크의 몸을 반으로 갈랐다.

그리고 아까 붙잡았던 놈을 쳐다봤다.

저놈 말대로 향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겉도는 기분이 들었기에.

“하윤 씨는 어떻게 생각해요?”

“저도 마찬가집니다.”

주어가 없었음에도 바로 대답할 정도로 그녀도 같은 기분이었다.

하긴 너무 쉽게 생각한 걸지도 모른다.

자기네 본거지를 그리 쉽게 뱉을 리가 없겠지.

적륜성은 말한 걸로 보아서 당장 말해도 괜찮은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한 게 분명하다.

“하윤 씨, 그냥 끝내세요.”

“예.”

서진의 명령을 받은 그녀는 데리고 있던 놈의 목숨을 끊어버렸다.

혼자서 찾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게 적의 말에 휘둘리는 것이니 차라리 죽이는 편이 낫다.

살짝 피로감이 찾아온 서진은 나무에 기대앉았다.

여전히 상대적으로 부족한 체력 스텟은 작은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곧이어 들리는 키메라 특유의 울음소리.

서진은 걸림돌을 짓뭉개고 다시 일어섰다.

지면을 통해 전달되는 느낌으로 볼 때 아까보다 최소 3배 이상이다.

“서진 님.”

설하윤이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그를 불렀다.

확실히 가볍게 여길 상황은 아니었다.

저놈들은 왜 여기서 키메라를 만들고 있는 걸까.

그리고 키메라를 통해서 하려는 일이 무엇인지.

궁금한 것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번에도 사람은 한 명이군.’

아마 개인의 역량에 따라 컨트롤 가능한 키메라 수가 다른 게 아닐까.

서진은 가볍게 추측했다.

“크르.”

마침내 키메라가 서진의 눈에 보일 만큼 접근했다.

리자드맨의 머리에선 지극히 짐승의 소리가 새어 나왔다.

본래 리자드맨은 동족은 물론이고 인간과도 의사가 통할 때가 있을 만큼 영민한데, 키메라의 머리가 되어버리니 남은 장점이라곤 날카로운 이빨뿐이었다.

그리고 아까 봤던 키메라보다 달라진 점은 접합부를 보호하고 있는 금속 링.

하기야 키메라의 약점은 제작자들이 제일 잘 알 것이다.

다만 처음 봤던 키메라에 그게 없던 이유는 그동안은 없어도 괜찮았을 테니까.

서진의 추측을 증명하듯 금속 링의 퀄리티는 낮아 보였다.

자신이 들고 있는 영웅 등급의 검이라면 저런 금속 따윈 얼마든지 부술 수 있을 것이다.

본격적으로 시험해 보기 위해 서진은 키메라 사이로 뛰어들었다.

10마리 중에 제일 앞에 있는 키메라를 향해 검을 수직으로 내려쳤다.

콰악!

단단한 검신이 쇠를 부수고 키메라의 피륙을 갈랐다.

팔이 떨어지자마자 균형을 상실한 키메라에게 서진의 검이 안식을 선사했다.

그러자 이번엔 키메라 두 마리가 동시에 뛰어올라 서진의 좌우로 달려들었다.

서진은 그 자리에서 검을 크게 휘둘렀다.

아름답게 그어진 반원이 키메라 두 마리의 목을 갈랐다.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급히 채운 금속 링은 아무짝에 소용이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처리반장은 저도 모르게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저거 뭐 하는 놈이야.’

여기에 침입한 다른 헌터들은 예외 없이 키메라 앞에서 허무하게 무너졌다.

몬스터 앞에 선 일반인처럼.

그런데 저놈은 뭐길래 키메라를 저리 쉽게 죽인단 말인가.

10마리는 과하다고 생각했던 처리반장의 등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튀자.’

저런 인간은 자신이 상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심지어 잠깐 지켜보는 사이 키메라는 벌써 7마리가 죽어있었다.

그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난 뒤 등을 돌려 뛰기 시작했다.

“허억, 허억.”

오늘따라 유독 빠르게 숨이 차올랐지만 다리는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달리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커헉!”

갑자기 뒤통수에 전해진 강한 충격에 앞으로 고꾸라졌다.

“뭐지.”

뭐 때문에 넘어진 거지.

영문을 몰라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던 그의 눈에 리자드맨의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설마.

‘저 머리로 나를 맞춘 건가?’

다시 일어나 무릎을 세우던 그에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키메라만 주고 도망가면 어쩌냐.”

저벅 저벅.

서진이 다가오며 내는 발소리가 처리반장의 귀에 크게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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