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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가문의 천재는 사실 귀환자-43화 (43/141)

43화

침묵이 짙게 깔린 뇌옥 내부.

‘지하 3층. 13번.’

클레어는 연구소장이 갇혀 있는 방으로 향했다.

낮에 미리 파악해두었기에 그녀의 발걸음엔 망설임이 없었다.

철컥.

언락으로 잠금을 풀어버리고 잠들어 있는 연구소장에게 다가갔다.

‘무거워.’

마법으로 근력을 강화하고 연구소장을 가볍게 만들지 않았다면 들기 힘든 수준이었다.

물건이라면 아공간 가방에라도 넣어버리는 건데.

깨워서 같이 나갈 수도 있지만 그러면 변수가 늘어난다.

이 작전에선 최대한 돌발상황을 억제하는 것이 중요했으니.

연구소장을 데리고 뇌옥에서 나가기 직전, 클레어는 그를 잠시 내려놨다.

그리고 가방에서 총 3개의 폭발물을 꺼냈다.

여기에 마기를 불어넣으면 각인된 익스플로전 마법이 일정 시간 뒤에 발동되는 아이템이었다.

데려가지 못하는 연구소 직원들은 전부 없애는 편이 좋으니까.

뿐만 아니라 현장에 남아 있을지 모르는 마기 흔적, 잠시 대화를 나눴던 경비 헌터, 전부를 없애기 위한 목적이 포함되어 있었다.

적합한 위치에 폭탄을 배치한 클레어는 다시 연구소장을 들고 문을 열었다.

‘아무도 없어.’

마기를 퍼트려 봐도 걸리는 존재가 없었다.

근무 교대 시간까지 파악하고 일을 진행했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클레어는 정적이 가득한 어둠 속에서 가문 밖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남자가 있었다.

‘이제 나가는군.’

클레어가 서진을 눈치채지 못한 건 사실 당연했다.

흑룡검가는 매우 넓고 많은 건물이 존재하는 곳이다.

뇌옥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서진이 작정하고 기척을 숨겼으니 모를 수밖에.

“갑시다.”

도저히 클레어가 들을 수 없는 거리에서 서진은 중얼거렸다.

현재 시각 오전 2시 15분.

서진의 명령 같은 부탁을 받고 같이 잠복했던 두 명이 있었다.

설하윤과 백랑대장은 잠이 달아난 얼굴로 서진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뇌옥에 누군가 침입할지 어떻게 알아챈 걸까.

두 명은 그것이 몹시 궁금했지만 서진에겐 별일이 아니었다.

이계에서 자주 부딪쳤던 7성주 중에 한 놈이 마기를 쓰는 리치였으니까.

서진으로선 마기 감지에 이골이 날 수밖에.

낮에 뇌옥 근처에서 흑마법사의 냄새를 맡은 서진은 새벽까지 이렇게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다만 그런 서진이 뇌옥에서 바로 잡지 않은 이유는 연구소 직원들 때문이었다.

자칫 뇌옥에서 전투가 벌어진다면 기껏 잡은 놈들이 허무하게 죽어버릴 수 있으니.

저 흑마법사도 이판사판으로 다 죽이려 할 공산이 크고.

서진은 본격적으로 흑마법사를 따라가기 전에 뇌옥을 가리켰다.

“백랑대장은 저기 가서 일단 확인해.”

흑마법사가 얌전히 뇌옥을 빠져나왔을 리가 없다.

백랑대장은 알겠습니다라고 답하며 뇌옥으로 향했다.

그리고 서진은 설하윤과 함께 흑마법사를 쫓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밤의 추격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서진 일행의 존재를 느낀 클레어가 도주를 멈췄기 때문에.

자연스레 서진도 흑마법사 앞에 멈춰 섰다.

클레어 입장에선 가문을 적당히 벗어났으니 꼬리를 떼고 갈 필요성이 있었다.

그리고 서진은 뇌옥에서 멀어졌으니 1차 목표는 달성했기에 서로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털썩!

클레어는 연구소장을 깨우며 바닥에 내던졌다.

“어억.”

영문도 모르고 바닥을 뒹굴며 일어난 연구소장.

어리둥절해하는 그에게 클레어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에 적힌 곳으로 가. 지금 죽고 싶진 않지?”

연구소장 앞에 명함 크기의 종이 한 장이 날아와 땅바닥에 박혔다.

“...예, 예!”

상황 판단은 빨랐기에 메모를 주워 들고 바로 달려서 도망쳤다.

클레어는 멀어지는 연구소장을 힐긋 보다 서진에게 말했다.

“안 쫓아가도 돼? 어렵게 잡았다면서.”

“난 안 가도 괜찮아. 하윤 씨.”

“예.”

설하윤은 서진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땅을 박차고 튀어 나갔다.

클레어는 예상했다는 듯 바닥에 마법진을 그려냈다.

“내가 보낼 것 같아?”

이런 방해도 클레어의 작전 예상 범주 내에 있었다.

“우어어어!”

클레어가 소환한 몬스터는 미노타우로스.

B급 던전에서 등장하는 상위 몬스터였다.

그런데 피부가 더 거무튀튀한 것을 보면 서진은 일반 미노타우로스와 다를 거라 예상했다.

쾅!

미노타우로스는 자신의 키보다 큰 장창으로 설하윤을 막았다.

시간을 끌 순 없었던 설하윤은 은월검류 5단계를 꺼냈다.

아직 미숙한 수준이지만 무리를 해서라도 뚫어야 했다.

체내의 마나가 한꺼번에 빠져나가며 검에 집중되었다.

하지만 겉으론 어떤 현상도 나타나지 않았는데 이것이 은월검류의 특장점이었다.

그리고 아무런 전조도 보이지 않았던 그녀의 검에서 무형의 검기가 쏘아졌다.

은월검류 5단계를 발동하고 미노타우로스의 심장에 검기가 닿기까지.

불과 1초밖에 지나지 않은 찰나의 시간이었다.

푸욱!

설하윤의 입가엔 선혈이 흘러나왔고 검기는 심장을 뚫었다.

하지만.

쐐액!

죽은 줄 알았던 미노타우로스가 창을 휘둘렀다.

카앙!

가까스로 비켜 맞은 설하윤은 뒤로 크게 밀려났다.

클레어는 그 모습을 보며 웃음을 흘렸다.

“후후, 내 소환수가 그렇게 만만할 줄 알았어?”

클레어의 미노타우로스는 흑마법 특유의 개량을 거쳐 생명 코어를 6개나 가지고 있는 소환수였다.

즉, 6번 목숨을 끊어야 비로소 활동이 멈춘다는 의미.

초반부터 5단계를 사용해 몸이 상한 설하윤에겐 부담이 될 터.

“하윤 씨, 이놈은 내가 상대할 테니까 연구소장 쫓아가세요.”

서진이 나섰지만 가만히 지켜볼 클레어가 아니었다.

“누구 맘대로?”

곧이어 나타난 두 번째 소환진.

어둠 속에서 더 짙은 흑풍이 불어닥치며 새로운 소환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림자 기사.’

지구의 던전에선 극히 드문 몬스터지만 이미 이계에서 봤던 서진은 바로 알아봤다.

지구에선 등장 사례가 워낙 적어 등급 분류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몬스터.

어둠에 숨은 그림자 기사는 서진도 상대하기 만만치 않은 놈이다.

서진이 검에 뇌기를 불어넣을 때, 클레어는 몸속에서 날뛰는 마기를 진정시키고 있었다.

사실 이만한 몬스터를 연달아 내보내는 것은 소환계 흑마법사인 클레어도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계획의 완벽함을 위해 혹시 몰라 사전에 준비해놓았고, 노력의 결실을 거두게 되었다.

그런 클레어조차 예상 못 한 것이라면 서진과 설하윤의 무력 수준.

미노타우로스와 그림자 기사는 고작 1명씩 막기 위한 소환수가 아니었다.

상급 헌터가 팀 단위로 올 때를 대비한 수였는데.

‘저 인간들은 대체 뭐야.’

잠시 둘을 노려보던 클레어는 고개를 저으며 잡념을 털어냈다.

어쨌든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으니 현장을 이탈하기만 하면 된다.

“서진 님!”

그때, 폭탄을 전부 제거한 백랑대장이 합류했다.

‘쟨 또 뭐야.’

클레어는 붉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다시 한번 손짓으로 마법을 캐스팅했다.

이미 2번의 소환으로 무리를 한참이다.

3번째 소환을 하고 나면 요양은 불가피하겠지.

그나마 다행이라면 저놈의 무력은 앞선 두 연놈보단 약하다는 점일까.

그녀는 마기가 몸을 망가트리고 있는 것을 느끼며 헬 하운드를 소환했다.

세 번째 소환수가 등장한 순간, 서진은 그녀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음을 직감했다.

흑룡검술 제5식 전광검.

번개가 흐르는 영원 같은 순간, 서진의 몸은 그림자 기사를 넘어 클레어에게 도달했다.

강렬한 자줏빛 뇌기의 창은 그녀의 심장을 향하고 있었다.

공격이 상대에게 닿는 즉시 시간의 흐름이 복구되는 전광검의 특성상.

과연 흑마법사인 그녀의 심장을 관통할지 서진도 자신할 수 없었다.

파지지지직!!

자색의 전류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멈춰있던 시간을 깨웠다.

격렬한 번개가 심장을 파고 들려는 찰나.

촤악!

“아아아악!!”

침묵의 절명 대신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림자 기사의 능력 중 하나.

소환자가 위험할 때 즉시 그림자 갑옷이 되어 육체를 보호하는 것.

하지만 심장은 가까스로 보호에 성공했지만 갑옷이 완전히 전개되기 전이었다.

그렇기에 어깨로 비껴간 번개를 막을 순 없었다.

‘역시 이 정도가 한계인가.’

서진은 땅바닥에 떨어진 클레어의 왼팔을 내려다봤다.

쉬익!

길게 아쉬워할 틈도 없이 그림자 기사의 검이 날아온다.

‘역시나 대단하군.’

갑자기 소환자의 팔이 하나 날아갔음에도 소환수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상태였다.

통상적으로 소환자의 정신 상태와 소환수는 연결되어 있어 저만한 타격을 입으면 강제 역소환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마기를 사용하는 흑마법이라 세 소환수 모두 건재했다.

콰앙!

설하윤은 방금 두 번째로 미노타우로스를 죽였고, 백랑대장은 헬 하운드와 격전을 벌이는 중이었다.

서진도 상황은 비슷했다.

특히 그믐달이 뜬 밤의 그림자 기사는 은신과 암습의 능력이 극도로 상승하니 힘들 수밖에.

물론 언제까지고 이놈들을 상대할 필요는 없다.

저 여자도 소환수를 역소환 해야되니까.

일반 마법보다 흑마법의 강제 역소환이 훨씬 더 페널티가 강하니 저쪽도 오래 버티긴 상당한 부담일 것이다.

그러니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몬스터들은 사라진다.

‘하지만.’

그걸 기다리다간 연구소장은 아예 놓쳐버리고 만다.

서진은 항마제를 하나 더 까서 먹으며 점멸을 발동했다.

공격을 하던 그림자 기사의 검은 서진을 놓치고 애꿎은 땅을 갈랐다.

“백랑대장, 그림자 기사 잠시만 막고 있어.”

서진은 헬 하운드 지척에 이동해 체내 마나를 움직이며 검을 들었다.

흑룡검술 제6식 연폭뢰(連爆雷)

콰앙! 쾅! 콰앙!

서진이 검을 한번 휘두를 때마다 멀지 않은 공중에서 낙뢰가 내리치기 시작했다.

폭음을 내는 번개가 서진의 검술에 맞춰서 계속해서 떨어져 내린다.

서진의 영역 내에 있는 헬 하운드에게 쉴 새 없이 짧은 낙뢰가 꽂힌다.

연폭뢰의 최대 횟수는 30번.

한번 시작되어도 언제든지 끊고 다시 이어나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서진은 멈추지 않고 검을 내려치며 번개를 쏟아부었다.

콰아앙!

그리고 20번째 낙뢰를 맞은 순간, 단단한 몸집을 자랑하던 헬 하운드는 힘을 잃고 쓰러졌다.

“쿨럭!”

클레어는 역소환의 대가를 강하게 치러야만 했다.

안 그래도 트리플 소환으로 한계에 치달았던 몸은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의 작전 진행은 불가능이었다.

클레어는 미노타우로스의 소환을 해제하며 그림자 기사는 갑옷으로 전환했다.

그림자 기사의 은신으로 기척을 숨긴 그녀는 연막탄을 던지며 퇴각했다.

설하윤은 서진이 말을 하지 않아도 연구소장을 찾기 위해 움직였다.

“백랑대장도 따라가.”

“예.”

서진은 연막 속을 헤치며 클레어가 있었던 자리에 도달했다.

역시나 마기의 흔적은 뚝 끊겨있었다.

**

이후 날이 밝고 나서 오전이 지나, 다시 해가 저물어갈 때쯤.

흑룡가에선 간밤의 사건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얘기가 퍼져가고 있었다.

“이번에 한서진이 연구소장 빼내려는 거 막았다며?”

“흑마법사가 오는 거 알고 대기 타고 있었다는데 어떻게 알았나 몰라.”

“특히 뇌옥에서 근무하던 헌터들 한서진 아니었으면 다 죽었을 거라고 하니까 대단하긴 해.”

“그런데 가주님이야 그렇다치고 흑룡대장은 눈치를 못 챘나? 그게 궁금하네.”

외무각 직원의 의문에 다른 직원이 입을 열었다.

“아, 그거?”

“왜 뭐 알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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