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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가문의 천재는 사실 귀환자-51화 (51/141)

51화

“아니...!”

숨죽이며 지켜보던 천궁의 헌터들이 엉덩이를 떼며 일어났다

“저 붉은 검기는 뭐지?”

“저만한 갑주를 입었는데도 한 방에 날아갔어.”

“마나보다 훨씬 밀도가 높고 파괴적인 힘이군.”

웅성대는 사람들의 분위기 속에서 벽에 처박힌 가레스가 움직였다.

“으으.”

순간적인 폭발력을 담아서 내려쳤음에도 가레스는 퍽 멀쩡해 보였다.

다만 투기에 직격 당했던 방패는 치명적인 손상을 입고 역소환되어 사라졌다.

다시 두 발을 딛고 선 가레스의 얼굴에 자만심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긴장감이 역력했다.

일검에 방패를 잃었으니 그럴 수밖에.

가레스는 방패 대신 검을 앞세우고 상체를 살짝 굽혔다.

그렇게 경계 자세로 거리를 유지하는 척하다 새로운 흑마법을 읊조렸다.

체인 바인드.

작지만 선명하게 들린 캐스팅이 들림과 동시에 서진의 주위에서 생겨난 사슬 다발.

촤르륵!

서진이 자리에서 벗어나자 사슬도 그에 맞춰서 뻗어온다.

귀찮지만 이런 건 일일이 부수기도 힘들고 마냥 피하는 것도 능사가 아니다.

서진은 사슬을 쳐내며 땅을 박차서 순식간에 가레스의 지척까지 접근했다.

이렇게 시전자를 직접 공격하는 게 제일 빠르다.

서진이 측면에서 검을 올려 치니 가레스도 검으로 맞받아쳤다.

그 순간, 서진은 검로를 틀었다.

가레스의 검은 측면을 향하고 있기에 정면을 텅 비워두고 있었다.

서진의 검은 세로로 일직선을 그리며 투구를 내리쳤다.

카앙!

무방비하게 맞은 가레스는 뒤로 크게 밀려났다.

사슬 마법이 강제로 취소될 만큼 머리를 강타당해서 전신이 후들거렸다.

투구가 아무리 단단하다고 한들 저렇게 맞으면 데미지가 안 들어갈 리가 없었으니.

비틀거리던 가레스는 강하게 발을 찍고 걷는가 싶더니 서진에게 검을 겨누고 달려온다.

쿵 쿵.

데스나이트의 갑주에 속력이 붙으면 그 자체로 압도적인 위력을 갖는다.

어지간한 물리력은 깔아뭉개며 마법도 반감시키는 괴물 전차.

다만 상대가 좋지 않았다.

서진이 사용하는 것은 마나 기반 스킬이 아닌 독자적인 투기.

이것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과 통찰이 없다면 의미 없는 공격이 될 뿐이다.

지금처럼.

서진은 투기가 서린 검으로 돌진하는 가레스의 옆구리를 찢어발겼다.

콰드득.

“아아아악!”

가레스의 선혈이 비산하며 힘을 잃은 그는 고꾸라졌다.

서진은 바닥에 나뒹구는 가레스를 가라앉은 눈빛으로 바라봤다.

‘옆부분이 파괴되는 정도론 역소환되지 않네. 그리고 저 마기는 상시 발동 중인 건가.’

가레스의 전신을 감싸는 마기가 크게 베인 상처 위를 덮었다.

“반드시... 죽인다.”

이미 형세가 많이 기울었음에도 가레스는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깨물며 검을 지팡이 삼아 일어섰다.

“의지는 대단하군.”

[근력이 12 상승합니다]

별다른 공격을 하고 있지 않고 지친 상태인데도 적당한 스텟이 들어올 정도니.

가레스의 피 섞인 다짐은 말뿐만이 아니었다.

몸을 덮고 있던 마기가 밖으로 흘러 나와 갑주 전체를 감싸더니 이전보다 더욱 어두운 갑주로 재탄생했다.

주변의 배경이 어색해질 정도로 짙은 어둠이었다.

무릎을 꿇고 수그리고 있던 가레스는 갑작스레 튀어 오르며 서진을 향해 검을 찔렀다.

캉.

‘뭐지.’

검을 틀어서 공격을 흘린 서진은 미심쩍은 의구심이 들었다.

기본적인 육체 스펙과 전투 센스가 동시에 상승한 느낌.

거기다 저급한 약으로 일시적으로 스텟을 올린 헌터들과는 성질이 다르다.

이계에서 인간은 없었기에 지금 처음 보게 된 건가 생각했지만 주변의 반응을 보니 그게 아니었다.

“흑마법 중에 저런 기술도 있었나?”

“글쎄. 난 갑옷 소환해서 입는 것도 소문으로 듣다가 이번에 처음 본 거라서.”

아무래도 인간이 흑마법을 익히면서 변칙적인 새로운 스킬이 만들어지는 모양이다.

가레스는 서진의 눈동자, 어깨, 발 등의 모든 움직임을 고려하며 공격 자세를 잡았다.

‘확실히 달라졌군.’

이전엔 갑주의 성능을 믿고 설쳤다면 이제는 완숙한 기사가 갑주라는 날개를 등에 업은 느낌.

그나마 다행이라면 추가적인 마법은 쓰기 힘들다는 점일까.

파악!

서진에게 쇄도한 가레스는 송곳 같은 마기로 내리꽂았다.

서진은 마기를 쳐내고 좌측으로 빠지며 가레스의 팔뚝을 베었다.

스윽.

진득하게 덮고 있는 마기가 꿈틀거리며 서진의 검격을 경감시켰다.

가레스가 공격을 위해 다시 검을 치켜드는 순간, 갑자기 움직임이 경직되며 검마저 떨어트렸다.

서진은 이게 무슨 현상인지 알아챘다.

‘과부하.’

육체의 한계를 억지로 넘어버리면 저런 부작용이 생긴다.

점멸로 순간 이동한 서진은 가레스의 발목을 절단했다.

“으아아악!”

그러자 가레스는 괴성을 지르며 발작하더니 잠시 후 공기 빠진 풍선처럼 축 늘어졌다.

데스나이트의 갑주와 마기가 사라지고 나서 확인해보니 숨이 멎은 상태였다.

심문하려고 발목만 잘랐는데 죽어버리다니.

혹시 데스나이트의 갑주를 소환하는 흑마법의 부작용인 걸까.

이때 천궁의 길드장이 다소 어수선해진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나섰다.

“생사결에서 이기신 것 축하드려요. 간만에 좋은 전투를 봐서 눈이 즐거웠어요.”

아직 바닥에 가레스의 시체가 있음에도 그녀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서진만 바라봤다.

백야라는 무법 도시에서 자리 잡은 천궁의 길드장에게 저런 죽음은 아무렇지 않았으니.

“상황은 정리됐으니 천궁에서 억류 중인 인원들은 어찌하시겠어요? 원한다면 천궁에서 직접 그들을 흑룡검가까지 보내드리죠.”

가레스의 부하들이 한둘이 아니었으니 맡기는 편이 낫겠지.

“그렇게 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처리하죠. 그런데..”

문선영은 살짝 허리를 숙이며 서진에게만 들리게끔 속삭였다.

“혹시 흑룡검가 말고 천궁의 주인이 될 생각은 없나요?”

“예?”

“훗, 농담이에요.”

그녀는 다시 반듯하게 허리를 세우며 말했다.

“그럼 다음에 좋은 인연으로 볼 수 있길 기대할게요.”

“예. 감사했습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서진은 천궁을 나와 백야를 빠져나갔다.

**

바닥에 웅덩이처럼 고인 피가 점점 퍼져나간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상처 부위를 막으려 해도 소용이 없다.

속절없이 흘러나오는 아빠의 피와 의미 없이 피로 점철된 케린의 양손.

7레벨급의 마인이 남긴 상처는 너무나 빠르게 한 사람의 생명력을 꺼트리고 있었다.

간발의 차로 도착한 토벌대가 마인을 처치했지만 그게 무슨 소용일까.

토벌대와 같이 온 힐러도 아빠의 치명상을 치료하지 못했다.

-케...린.

그녀의 아버지는 무어라 말을 하려다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그만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울려 퍼지는 소녀의 비명.

새하얀 원피스가 붉게 물들 정도로 케린은 아빠의 품에서 눈물을 쏟아내다 의식을 잃었다.

“하악.”

케린은 잠옷이 땀에 젖은 채로 꿈에서 깨어났다.

아빠가 마인에게 죽으면서 자신이 ‘던전 지배’라는 스킬을 각성한 날.

이제 몇 번째인지 세는 것도 포기할 정도로 같은 꿈이 반복된다.

다만 분명한 건, 이 꿈을 꿀 때마다 마인에 대한 증오가 깊어진다는 것.

그래도 한동안 안 나오길래 이제 끝난 건가 싶었는데.

오랜만에 그 꿈을 꿔서 그런가 처음으로 스킬을 사용한 그날도 떠올랐다.

당시 아빠를 죽인 마인의 추모 행사를 열었던 사람들.

그 마인이 원래는 봉사도 많이 할 정도로 선하면서 유명했다고 하는데 케린이 알 바는 아니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솟아오른 분노만 있을 뿐.

그때 처음으로 근처에 있던 던전을 끌어와서 행사장에서 터트린 순간, 케린은 답답했던 감정이 해소되는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두 번, 세 번 던전 브레이크를 거듭할수록 심리적 저항감은 낮아졌다.

유니온에 들어간 이후론 생활비도 걱정이 없었다.

자금을 뒷받침해주는 후원자들이 많았으니까.

덕분에 케린은 별다른 경제활동을 하지 않아도 돈이 부족할 일은 없었다.

그녀가 몰두해야 할 일은 오로지 마인이 될 사람을 사전에 죽이는 것.

현재 한국에선 제일 거슬리는 한서진이 살아있지만 이것도 조만간 끝이다.

쿨럭.

물을 마시기 위해 냉장고를 열려던 케린은 갑자기 피를 토해냈다.

백색의 냉장고 문이 붉게 얼룩졌지만 신경 쓸 겨를 없이 화장실로 향했다.

“케흑. 구웩.”

곧 있을 정상회담 일정에 맞춰 일을 터트리기 위해 무리해서 몸을 혹사한 결과였다.

지속적인 마나 탈진과 마력 증폭 약을 계속 복용하면서 동반된 수면 장애까지.

다 죽어갈 듯한 몸 상태지만 그녀의 안광만은 무섭게 번뜩이고 있었다.

이전보다 한서진의 레벨이 올랐기 때문에 몸을 챙길 여유는 없다.

인터넷에서 아무리 여론을 부추겨봐도 결국 현실에서 막지 않으면 의미가 없음을 확인했으며,

특히 한 지역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흑룡검가에겐 여론이 미치는 영향력이 미비하다.

“그러니 내가 죽이는 수밖에.”

둔감하고 멍청한 사람들을 마인의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이 죽는 거야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니까 알아서 감수하라지.

텅.

케린은 다시 냉장고를 열어 500미리 생수병을 비워버리고 아무렇게나 던졌다.

“이제 6레벨이라는데 멍청한 인간들.”

어쨌든 이제 며칠 후면 대망의 작전 결행일.

그날 한서진을 죽이고 나면 지긋지긋한 한국과도 안녕이다.

다음엔 어디로 갈까.

그냥 한동안은 유니온 본부에 가서 쉴까.

“응, 그게 좋겠어.”

케린은 익숙하게 후드를 뒤집어쓰고 집을 나섰다.

**

가문으로 돌아온 서진은 감찰각주와 함께 가레스의 부하들을 심문하기 시작했다.

이제 숨길 이유도, 의리도 없어진 그들이기에 금방 정보를 뱉어냈다.

길드 이름은 검은 성전.

모든 길드와 가문은 우선 마관청에 창설 신고를 해서 등록을 해야 되는데 조회해보니 기록이 없다.

백야에 있는 길드답다고 해야 할까.

그냥 호칭만 길드지 그냥 가레스의 사조직이다.

중요한 건 가레스에게 같은 흑마법사 연인이 있다는 정보였다.

아마 뇌옥을 침입했던 흑마법사가 그 연인이겠지.

다만 부하들은 얼굴은 몰랐지만 다른 수확이 있었다.

이름이 클레어라는 것과 가레스가 끼고 있던 반지에 위치추적 기능이 있다는 것.

가레스가 착용하던 물품은 전부 보관해둔 상태였기에 서진은 창고로 가서 묵빛 반지를 꺼내왔다.

반지는 가레스의 마기에만 반응한다고 하는데 이현지가 있으니 상관없다.

물건의 기억을 읽어버리면 되니까.

등급이 올라간 이현지의 스킬은 이전보다 명확하게 기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케린이란 녀석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일단 클레어가 우선이지만.

“어때요?”

“백야 말고 다른 곳에 숨어있네요. 어딘지 알아냈어요.”

“그럼 바로 갑시다.”

서진은 혹시 모를 도주를 대비해 설하윤과 백랑대 일부를 차출해서 출발했다.

그리고 1시간 정도가 지나고, 서진과 이현지는 서울 도심 속 오피스텔 빌딩 앞에 멈춰 섰다.

서진은 건물을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여기 맞습니까?”

“네, 확실해요.”

서진은 이현지에게 호실 번호를 확인한 후 점멸로 유리문을 통과해 들어갔다.

“1201호.”

문 앞에서 흘러나온 미약한 마기의 냄새가 서진의 후각을 자극하고 있었다.

그날 놓쳤던 흑마법사와 같은 마기였다.

서진은 한 번 더 점멸로 단번에 집안으로 이동했다.

집이 그리 넓지는 않아서 그런지 클레어가 바로 보인다.

그리고 서진과 눈이 마주친 클레어의 동공이 확대되었다.

“너..!”

“반가워. 드디어 찾았네.”

서진의 자주색 번개가 곧바로 클레어의 심장을 꿰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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