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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가문의 천재는 사실 귀환자-55화 (55/141)

55화

“저기 나가는 놈 막아!”

세 개의 A급 던전이 동시에 개방된 만큼 전투 현장엔 고성과 폭음이 난무하고 있었다.

이번 트리플 던전 브레이크에서 지켜야 할 것은 두 가지.

몬스터가 흑룡검가를 짓밟지 못하게 저지하는 것과 눈을 돌린 몬스터가 도시로 내려가기 전에 처리하는 것.

가문마다 하나씩 맡은 던전을 잘 막기만 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작전이었다.

그렇게 세 가문의 헌터들은 이탈하는 몬스터를 최대한 막으며 착실하게 한 마리씩 죽여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잘 유지되던 흑룡가의 전열은 데스메이지의 등장으로 적신호가 켜지고 말았다.

현재 흑룡대가 상대하고 있는 몬스터는 스켈레톤 나이트.

사실 A급 던전에서 나오기엔 비교적 약한 몬스터지만, 보스급 몬스터인 데스메이지가 있다면 전세가 급변한다.

모든 스켈레톤 몬스터의 공격력과 방어력, 수복력을 대폭 상승시키며,

적에겐 일시적으로 스텟을 하락시키는 저주를 거는 최악의 보스몬스터 중의 하나.

최후방에서 버프와 디버프를 걸어대니 공략하는 입장에선 까다로울 수밖에.

던전에선 화력을 집중해 스켈레톤 군단을 뚫어내고 데스메이지부터 없애버리는 전술이 정석.

그러나 지켜야 할 것이 많은 현 상황에선 위험한 선택지였다.

데스메이지를 공격하기 위해 일부 헌터들을 차출하면 가까스로 유지되고 있는 방어선이 흔들릴 테니.

그렇다고 마냥 버티기만 할 수도 없는 노릇.

핵을 부수지 않으면 계속 살아나는 스켈레톤 나이트를 상대로 시간을 끌면 체력이 버티질 못한다.

원거리 스킬을 지닌 헌터들이 데스메이지를 공격해 보지만 스켈레톤 나이트의 호위에 막혀서 닿지 않는다.

“부대장님, 저놈 먼저 치러 갑시다. 이대로 가다간 죽도 밥도 안됩니다.”

흑룡대의 부대장인 허대일도 당연히 문제점은 인식하고 있었다.

다만 딜레마에 빠진 상황 속에서 선택을 고민하고 있을 뿐.

기갑성가와 철혈백가 방향을 살펴봤지만 저쪽도 여유가 없는 건 매한가지.

결국 흑룡부대장은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데스메이지 먼저 친다.”

허대일은 인원을 선별해 데스메이지 타격대를 만들었는데, 그중엔 설하윤도 포함되어 있었다.

지금은 소속이 다르다 해도 예전에 같은 흑룡대였으니까.

무엇보다 최대한 빠르게 데스메이지를 죽이기 위해 멤버를 최정예로 구성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헌터들이 일부 빠지자 나머지 흑룡대원은 더욱 필사적으로 몬스터를 막아내야 했다.

그 희생을 바탕으로 급조된 타격대는 스켈레톤 나이트를 쳐내며 돌진했다.

퇴각로가 차단되며 나아갈수록 포위당할 뿐이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콰아앙!

어떻게든 뚫고 나가야 했다.

놈들의 영역이 아닌 던전 밖이다 보니 비교적 빠르게 돌파하고 있었다.

그중에 가장 먼저 도달한 설하윤은 무형의 검기를 데스메이지에게 쏘아 보냈다.

스켈레톤 무리를 뚫는 게 난관일 뿐이지 데스메이지 자체는 자기 방어 수단도 없으며 몸도 약하다.

죽이는 것은 정예로 구성된 타격대의 화력만으로 충분했다.

이윽고 흑룡부대장이 마지막 일격을 가한 순간, 데스메이지의 안광이 시뻘겋게 번뜩였다.

어둠만이 가득했던 눈에서 붉은빛이 터져 나오며 느껴지는 기괴함.

이미 핵이 깨져서 몸이 부서지고 있음에도 강렬한 살의가 파도처럼 밀려오는 것 같았다.

샤아아아악!

흑룡부대장은 심상치 않음을 느끼며 소리쳤다.

“다들 물러나!”

죽기 직전의 자폭인가.

아니면 새로운 종류의 저주일까.

무엇이 됐든 허대일은 타격대를 구성한 자신이 떠안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런 각오가 무색하게 데스메이지의 마지막 저주는 허대일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커억.”

그 옆에 있던 흑룡대원과 설하윤까지 가슴에 의문의 충격을 받고 움직일 수가 없었다.

주위엔 아직도 스켈레톤 나이트가 득실거리는 상황.

데스메이지라는 구심점을 잃은 몬스터들은 잠시 혼란을 느끼다 이내 먹잇감으로 시선을 돌렸다.

몸이 속박된 3명의 헌터에게 스켈레톤 나이트들이 검을 치켜들며 달려들었다.

설하윤은 여태껏 살아오면서 이처럼 허무함을 느낀 적이 없었다.

스켈레톤 나이트 세 마리가 검을 찔러와도 무엇 하나 할 수 없었으니까.

뭔지도 모르는 저주로 인해 움직일 수 없어서 죽게 된다니.

설하윤이 할 수 있는 건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뿐이었다.

유일하게 미련이 남는 게 있다면 그가 가주가 되는 걸 보지 못한다는 것 정도.

스켈레톤 나이트의 검이 심장에 닿으며 설하윤이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는 순간,

하늘에서 강림한 자줏빛 번개가 지상에 내리 꽂혔다.

콰아앙!!

어두운 밤하늘이 찢겨나갈 정도로 강렬한 자색 전류.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뇌명과 발을 딛고 있는 대지에서 전해지는 진동.

그것은 죽음을 각오했던 설하윤의 심장이 새롭게 두근거릴 만큼 인상 깊은 광경이었다.

그리고 현장에 있는 모든 흑룡가 헌터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였다.

시선의 주인공인 한서진은 안도의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막느라 고생했어.”

파지직!

서진의 번개가 다시 한번 천둥소리를 내며 스켈레톤 나이트를 휩쓸기 시작했다.

**

“야, 그건 저기로 옮겨.”

“네!”

간밤의 트리플 던전 브레이크 사건은 동이 틀 때쯤 마무리가 되었다.

각 가문의 헌터들은 숙소로 들어가 몰려오는 수마에 몸을 내주며 잠에 들고, 이번엔 사체 처리팀의 헌터들이 일할 차례였다.

위기가 곧 기회라고 했던가.

무려 세 개의 A급 던전을 막아내면서 사체가 굉장히 많이 쌓였다.

사체들은 각 가문이 맡은 던전별로 나눠 가지기로 했다.

물론 분배를 확인하는 것 말고도 서진에겐 아직 일이 남아있었다.

간밤의 일을 기록하고 부상자를 확인하거나 기갑성과 철혈백가에도 관련 내용을 발송하는 등.

전투에 비해선 아무것도 아니어도 꼭 하고 넘어가야만 하는 일이었다.

서진은 잠시 머리를 식힐 겸 밖으로 나가 가문의 전경을 내려다보았다.

큰 사건을 겪었음에도 가문의 분위기는 오히려 고양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가문의 피해가 전무했기 때문.

중간에 이탈하는 몬스터는 도시에 내려가기 전에 전부 처치했으며 사망자도 없었다.

이 모든 건 미리 두 가문을 불러들였기에 가능했던 일인 만큼 가문 사람들이 서진을 향해 보내는 시선 속에 경탄이 섞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서진은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이유는 데스메이지가 마지막에 시전 했던 저주.

서진은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저주인지 알고 있었기에.

데스메이지가 붉은 안광을 빛내기 전에 막는 게 최선이었지만 그땐 거리가 닿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다.

지난 과거에 집착하는 성격은 아니기에 미련은 갖지 않는다.

중요한 건 현 사태를 파악하고 대책을 수립하는 것.

서진은 아직 잠들지 않은 설하윤을 불러들였다.

“하윤 씨, 아직 샤워 안 했죠?”

“네? 아, 죄송합니다. 금방 씻고 오겠습니다.”

서진의 곁에서 일을 돕느라 쉴 틈이 없었던 그녀는 벌떡 일어섰다.

사람이 대뜸 샤워를 언급하는 이유는 보통 냄새, 청결과 연관이 있으니까.

“아니 그게 아니에요.”

서진은 방을 나가려는 설하윤을 다급히 말렸다.

자신을 돕느라 샤워를 못 한 사람을 놀릴 만큼 양심이 없는 건 아니었다.

애초에 그런 의미도 아니었고.

데스메이지의 저주를 받게 되면 가슴 중앙에 문양이 생긴다.

아직 샤워를 안 했다면 볼 일이 없었을 테니 그걸 확인하려 꺼낸 말이었다.

너무 급하게 말하려다 보니 설하윤에겐 어떻게 들릴지 생각 못 한 실수였다.

“씻고 오란 뜻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봐야 할 게 있습니다.”

서진은 설하윤에게 옆에 있는 빈방에서 문양이 있는지 확인해보라 말했다.

잠시 후 다시 들어온 그녀의 안색은 전보다 확실하게 굳어있었다.

설하윤은 무언가 알고 있는 듯한 서진에게 말했다.

“제 몸에 생긴 검은 문양이 혹시 데스메이지 때문인 겁니까?”

“네. 그놈이 발동할 수 있는 최상급 저주를 나타내는 문양일 겁니다. 그러고 보니 상태창에도 나와 있지 않을까 싶은데 한번 확인해 보세요.”

진작에 이 말부터 할걸 그랬나.

피로가 누적되다 보니 말을 꺼낼 순서가 뒤집힌 느낌이다.

“사망 확정...”

설하윤은 상태창을 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서진은 저주의 이름까지 듣고 나서 확신했다.

자신이 알던 저주가 맞다는 것을.

사실 이계로 가기 이전의 서진은 몬스터에 대해 굉장히 무지했었다.

최악의 둔재였기에 던전을 접할 기회도 없었고 몬스터도 잘 모를 수밖에 없었다.

나중엔 헌터라는 것 자체에 염증을 느껴서 알려고 하지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런 서진이 박식해진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이계에서의 경험이고 두 번째는 지구의 몬스터 특징이 이계와 같았기에.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서진은 지구의 데스메이지에 대해선 들어본 적 없었어도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이번엔 경우가 조금 달랐다.

“하윤 씨는 사망 확정이란 저주를 듣는 모양이군요.”

“네, 데스메이지가 그런 저주를 걸 수 있다는 건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서진은 이미 알고 있는데 설하윤을 비롯한 흑룡대원들은 몰랐으니까.

그녀의 말대로면 여태까지 지구에 등장했던 데스메이지는 힘이 제한된 상태였다는 뜻이다.

아니 되짚어보면 그런 사례가 이미 하나 있지 않았던가.

‘크라켄의 던전.’

이전보다 훨씬 까다로워진 탓에 철혈백가도 힘들어할 정도였으니.

그때는 단순히 공략에 난항을 겪었다면 이번엔 정보의 공백 때문에 무방하게 저주에 걸려버린 것이다.

서진은 궁금해하는 설하윤을 위해 입을 열었다.

“사망 확정이란 저주는 이름 그대로라고 보면 됩니다. 다만 죽음에 이르기까진 대략 30일 정도 걸립니다.”

즉발성 마법이 아닌 저주이기에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시일이 걸리는 편이었다.

서진은 이계에서 미리 정보를 얻었었기에 걸린 적은 없었다.

사망확정은 낮은 확률로 발동되는 데다 범위는 반경 3미터 안에 있는 대상에만 한정되기에 알고만 있으면 피하는 건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다 마력과 지력이 8레벨급이 되면 통하지고 않고.

하지만 정보를 몰랐던 타격대는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었겠지.

“그리고 30일 동안 쇠약해지거나 그러진 않고 시간이 된 순간 심장이 멈추게 됩니다.”

이런 정보를 어떻게 알고 있는지 물어볼 법도 한데 설하윤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입을 열지 못할 정도로 충격을 받은 걸까.

그러나 서진은 그녀에게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진 않았다.

사망 확정을 해주하는 방법도 머릿속에 들어있었으니.

“그러고 보니.”

서진은 데스메이지와 가까이 있던 헌터가 설하윤 외에 두 명이 더 있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하윤 씨, 흑룡부대장하고 그 옆에 있던 흑룡대원 알고 있죠?”

“예.”

“그 두 명 오라고 하세요.”

둘을 불러서 확인해보니 역시나 사망 확정에 걸린 상태였다.

문제는 해주하는데 필요한 재료들이 희귀해서 세 명분을 구할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설하윤만 살리는 건 가능하겠지만 그렇다고 나머지 두 명을 버릴 순 없었다.

고심이 깊어지는 그때, 서진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인은 김형석 비서.

통화 버튼을 누르자 비서가 아닌 한벽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진이냐.

“예.”

-그래, 던전 브레이크는 잘 막았다고 들었다. 일단 그 얘긴 나중에 가서 하기로 하고, 지금은 네게 제안할 것이 있다.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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