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먼지를 잔뜩 덮어쓴 ㄹ 픽업트럭은 브레이크가 없는 것처럼 질주하고 있었다.
기름이 바닥나기 직전이었지만 마침 목적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투박한 진회색의 4층짜리 건물.
옆으로 길게 뻗어있었으며 그 주위를 둘러싼 차가운 콘크리트로 만든 벽이 저택을 보호하고 있었다.
거기다 경계 탑과 벽 위의 윤형 철조망까지.
서진은 옆에 쭈그려 있는 녀석을 툭 치며 물어봤다.
“저 건물 맞아?”
“예, 맞습니다.”
서진의 손길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존댓말을 쓰고 있었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설하윤은 진입을 방해하는 바리케이드를 보며 서진에게 말했다.
“서진 님. 어디서 멈출까요?”
“그대로 밀어붙이죠.”
“네?”
서진의 대답에 정소율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저런 장애물과 함께 사람이 막고 있는데 그대로 가자고 하다니.
설하윤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소율 씨. 청위 학파라고 했으니 수속성 마법을 쓰겠네요?”
“네...”
“그럼 물로 보호막을 만들 수 있습니까? 차의 속력에 맞춰서.”
“가능해요.”
마법 얘기가 나오자 단번에 그녀의 눈빛이 변했다.
“후우.”
가볍게 숨을 내쉬며 눈을 감고 집중한다.
“아쿠아 베리어.”
구체형 물이 생겨나더니 면적을 넓히며 차의 정면을 감싸버린다.
차의 시속이 100킬로를 넘어가는데도 보호막은 흔들림이 없을 정도로 안정적이었다.
타다다당!
차의 속력이 줄어들지 않고 돌진하자 조직원들이 총을 난사해온다.
물론 전부 마법에 막힐 뿐이지만.
설하윤은 속력을 더 높이며 그대로 바리케이드를 들이받았다.
호기롭게 총을 쏘던 조직원들은 겁을 먹고 옆으로 피했다.
서진은 그럴 줄 알았기에 피식 웃어넘겼다.
“안으로 쭉 들어갑시다.”
꼴에 조직이라고 저택 부지는 생각보다 넓다.
설하윤은 건물의 정문을 향해 차의 방향을 꺾으며 멈춰 세웠다.
“운전 잘하시네요.”
“감사합니다.”
묘하게 뿌듯한 눈빛을 보니 실력에 자부심이 있는 듯했다.
앞으로 실력을 뽐낼 기회를 종종 만들어 줘야 할까.
실없는 생각을 하는 사이 정소율은 전면만을 막던 베리어를 차 전체로 확산시켰다.
타다다당!
전체 보호막이 완성되기 무섭게 총탄이 날아든다.
건물에 있던 놈들과 바깥에서 경계 중이었던 조직원이 몰려들어 총구에서 불꽃을 뿜어댔다.
정소율은 다음 단계로 미리 생각해놓은 듯 마나를 움직였다.
“아쿠아 볼트.”
반구형의 베리어에서 수백 개의 수구(水毬)가 새로 뽑혀 나오더니.
파앙!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으아악!!”
물폭탄을 맞은 조직원들은 내장이 터지거나 벽에 처박혀서 사지가 부러지는 등.
생긴 것과 다르게 상상 이상의 위력을 발휘했다.
과연 마탑의 정식 제자다운 마법 컨트롤 실력.
주변이 정리된 걸 확인한 서진은 차 위로 올라가 건물의 4층을 향해 도약했다.
창문을 깨고 들어가니 널찍한 원목 책상과 함께 보이는 모히칸 머리를 한 남성.
보스의 동생이 털어놓았던 형의 모습이었다.
보아하니 뒤늦게 도망치려 한 모양인데 이미 늦었다.
아니 너무 빨리 쳐들어온 탓일지도.
서진은 놈을 발로 차서 구석에 처박고 입을 열었다.
“네가 알폰소 패밀리의 보스냐.”
“뭐 하는 놈이냐.”
형제 아니랄까 봐 내뱉는 말이 비슷하다.
“보스!”
아직 건물에 남아 있던 조직원들의 일부가 4층으로 올라왔다.
“니들은 보스 모시고 어서 가라. 이놈은 내가 막겠다.”
그중에 그나마 마나가 많이 느껴지는 사내 한 명이 나섰다.
스릉.
그는 검을 뽑고 서진을 노려보며 말했다.
“헌터인가 보군.”
아무래도 여긴 헌터가 비교적 적은 지역인가 보다.
신선하긴 하지만 한가롭게 상대하며 놀아줄 생각은 없었다.
투기를 흡수해도 스텟도 안 들어올 정도니.
“부탁한다. 파버.”
그 와중에 보스가 부하의 부축을 받으며 도망치려 할 때, 서진의 검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흑룡검술 제4식 만천뇌우.
순식간에 압축된 번개가 4층에 있는 조직원들을 향해 폭우처럼 쏟아졌다.
그리고 전격의 방향을 조절해 보스를 살려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세상에.”
아래층을 정리하며 뒤늦게 올라온 정소율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검사가 저렇게 정밀한 마나 컨트롤을 선보이는 건 처음 봤기 때문에.
그가 시전한 스킬이 검의 영역이긴 해도 마나와 연관된 부분은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저 정도면 마탑에서도 한서진보다 정교하게 운용할 수 있는 마법사는 거의 없을 수준.
물론 검사와 마법사는 마나를 사용하는 방식이 다르기에 딱 잘라 비교를 할 순 없지만 압도적인 경지라는 건 확실했다.
알폰소는 주위에 휘몰아친 전격의 폭풍에 넋을 잃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정신을 차린 그는 검을 들고 마나를 일으켰다.
우웅.
가까스로 검기를 내보이는 수준.
서진이 그간 보았던 검사 헌터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카앙!
서진은 일검에 무기를 날려버리고 알폰소의 목에 검을 갖다 댔다.
“도대체 뭐하러 온 거냐. 네놈들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 알폰소의 정신은 완전히 공포에 물들어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럴 만했다.
10분도 안 되는 시간에 거의 모든 조직원을 잃고 자신마저 죽게 생겼으니.
“정규군에서 고용한 사냥개들이냐.”
“전혀 상관없는데.”
“큭, 그래 그놈들이 이런 헌터들을 고용할 능력과 의욕은 없을 테니.”
알폰소는 입가를 비틀며 실소했다.
“이제는 내가 질문하지. 듣기론 힐베르토 산하조직이라는데 맞나?”
“그래.”
“너희 같은 산하조직이 얼마나 있지?”
“10곳.”
“생각보다 적군.”
“규모가 커지면 힐베르토 패밀리에게 조직이 분해되니까. 얼마 없을 수밖에.”
거기에 조용히 듣고 있던 정소율이 한마디 보탰다.
“아마 다른 조직이 적은 대신 힐베르토 패밀리가 그만큼 비대할 거예요.”
서진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다른 질문을 꺼냈다.
“그럼 10곳 모두 너희 같은 조직이냐.”
“흐흐, 아주 제대로 무시하는군. 그래 창피하지만 우리 조직은 약한 편이다. 하지만 어차피 힐베르토 패밀리가 있는 한 산하 조직 비교는 의미가 없어.”
“그만큼 차이가 심하나.”
“그렇지, 물론 네놈들 같은 괴물 기준에선 다르게 보일 순 있겠군.”
“혹시 이 여자를 본 적 있나.”
서진은 일부러 갑작스럽게 세리아의 사진을 꺼내서 보여주었다.
그래야 방심한 사이 첫 순간에 반응이 드러나기 때문에.
“세리아 마르테네스라는 이름인데.”
사진과 이름을 들은 알폰소의 동공이 흔들렸다.
“반응을 보니 알고 있군. 말해.”
서진은 검에 힘을 주었다.
“시발, 칼 그렇게 안 눌러도 말한다고. 힐베르토 패밀리에서 찾던 여자다.”
“찾던?”
말의 뉘앙스가 거슬린 서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미 찾았나?”
“몰라. 이전에 한두 번 지령이 내려오더니 그 뒤부턴 아무 말이 없었거든.”
“세리아에 대한 다른 정보는 들은 적 없나?”
“그 여자가 주황빛이 도는 영역을 만드는 걸 봤다는 소문이 퍼진 적이 있었지.”
그 말에 정소율이 다급하게 질문했다.
“그 소문이 돌기 시작한 시기가 언제죠?”
“아마 열흘 정도 됐을 거다.”
소문이 진실이라면 성역이 8레벨로 올라섰다는 뜻.
그렇다면 마약왕도 세리아를 찾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을 터.
성역은 매우 희소하며 그만한 가치를 지닌 스킬이다.
그런 헌터가 자기 구역에 제 발로 들어왔으니 무조건 잡아서 평생 억류시키려 하겠지.
세리아는 무력적인 측면에선 매우 약하니 어렵지도 않을 테니 말이다.
“세리아 관련된 다른 정보는 없나?”
“몰라. 내가 아는 건 이게 끝이다.”
“그럼 마약왕에 대한 건?”
알폰소는 인상을 구기며 고개를 저었다.
“아주 골수까지 뽑아먹으려고 하는군. 그분은 함부로 입에 담을 수 없어.”
“당장 죽고 싶지 않으면 빨리 말해.”
“시발...”
멀리 있는 공포보다 눈앞의 칼이 무서운 알폰소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최근에 들은 소식은 힐베르토가 베놈 스콜피온이란 몬스터를 공략하려...커억!”
그 순간 알폰소의 입에서 녹색 거품이 나오더니 절명했다.
“이건.”
설하윤이 다가와 냄새를 맡고 말했다.
“독입니다. 아마 금제가 걸려있었던 것 같습니다.”
“금제?”
“네, 일부 그런 스킬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힐베르토가 독을 쓰는 헌터라고 했으니 이런 금제를 산하 보스에게 심어둔 듯합니다.”
듣고 싶은 정보는 거의 다 들었지만 마지막 말이 끊긴 것이 거슬렸다.
“아무래도 베놈 스콜피온을 힐베르토가 노리고 있는 것 같은데.”
그에 대해 정소율이 첨언했다.
“베놈 스콜피온이 밀림에서 서식한 지 1년 정도 됐는데 그간 공략을 못 해서 놔두고 있었다는 말은 들었어요.”
“그렇다면 최근에 뭔가 진척이 있었나 보군.”
확실히 베놈 스콜피온은 공략법을 모르면 까다로운 몬스터 중의 하나다.
겉의 갑각이 매우 단단해서 어지간한 공격은 통하지도 않고 움직임도 잽싼 데다 헌터도 즉사시킬만한 극독을 품고 있다.
하지만 그런 만큼 녀석을 죽인 뒤에 얻을 수 있는 내단이 특별하다.
서진은 내성을 얻기 위함이지만 힐베르토는 독 사용자이니 다른 활용처가 있을 터.
아마 독 능력의 향상과 깊은 연관이 있겠지.
“저, 그런데 금제를 걸었던 부하가 죽었으니 힐베르토가 알게 되지 않을까요?”
정소율이 조심스레 꺼낸 의견에 설하윤이 답했다.
“서두르는 게 좋겠습니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할까요? 세리아가 있는 곳을 모르는데...”
차후 목적지에 대해 서진은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마약왕의 저택이 있는 칼리로 향할 겁니다.”
“칼리요?”
“세리아를 찾으라는 지령을 한두 번만 내린 게 신경이 쓰여서요. 일단 칼리로 가서 세리아가 이미 납치된 상태인지 확인해야겠습니다.”
게다가 베놈 스콜피온도 칼리 인근에 있다고 했으니까.
여기까지 와서 내단을 놓칠 순 없다.
**
하루가 지나고, 서진 일행은 칼리에 도착했다.
도시에 들어오기 전 삼엄한 검문이 있었지만 들키지 않고 순조롭게 들어올 수 있었다.
정소율의 위장 마법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실력자가 검문소에는 없었으니.
그리고 마약왕의 저택을 찾는 일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정보를 수집할 필요도 없이 대저택은 눈에 띄는 곳에 과시하듯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정소율은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 파악을 마쳤다.
“결계나 마법에 대한 대비도 없어요.”
칼리에서 마약왕의 저택을 공격할만한 인간은 없다는 자신감인 걸까.
아니면 헌터가 많지 않은 이곳 특성상 인재가 없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어찌 됐든 조사하기 한결 편해졌다.
“갑시다.”
우선 저택에서 나오는 놈들 중에 아무나 납치해서 정보를 빼낼 생각이었다.
세리아가 이미 잡혔다면 어떤 식으로든지 티가 날 테니까.
“그런데 만약에 정말 저택에 세리아가 갇혀 있으면 어떡하죠?”
정소율은 불안감이 가득한 얼굴로 서진을 바라봤다.
“그럼 빼내면 되죠.”
“...8레벨인 마약왕 상대로 할 수 있을까요?”
“굳이 상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서진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그에 대한 대책도 이미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