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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가문의 천재는 사실 귀환자-61화 (61/141)

61화

세리아는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할지.”

서진은 그녀의 말을 끊고 질문을 던졌다.

“성역 스킬 8레벨이 된 거 맞습니까.”

“네? 맞아요. 그런데 어떻게 아신 거죠?”

“소문을 들었습니다. 당신이 힐베르토 패밀리에 잡히게 된 결정적인 원인도 그 때문일 겁니다.”

“아, 지나가다 어린애들 치료해준 적 있었는데 그게 퍼졌나 보네요.”

세리아는 이제 깨달았다는 듯 천연스럽게 살포시 웃었다.

“후회하진 않습니까? 스킬 안 썼으면 잡힐 일도 없었을 텐데.”

“전혀요.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할 거예요. 그리고 한서진 님께서 결국 이렇게 구하러 와주셨으니까요.”

미소를 짓는 그녀의 표정엔 진심만이 오롯이 담겨있었다.

세리아가 대충 어떤 인물인지 파악한 서진은 본론을 꺼냈다.

“제가 당신을 구하러 온 건 가문의 헌터들이 걸린 저주 때문입니다. 그러니 여기서 벗어나면 흑룡검가로 가주셔야겠습니다.”

“네, 얼마든지 좋아요.”

“그럼 대화는 이쯤에서 끝내고 여기서 탈출하죠.”

창문 밖을 보니 조직원들이 몰려와 이미 포위를 하고 있었다.

동서남북의 건물에서 전부 빠져나온 모양.

하지만 주변에 언더 보스급의 헌터는 느껴지지 않는다.

대부분 잔챙이며 중간에 4,5레벨급 헌터는 대여섯 명.

“전부 죽일 필요는 없습니다. 저택을 나가기만 하면 되니까 방해하는 놈들만 처리합시다.”

“네.”

“알겠습니다.”

정소율, 설하윤의 대답과 동시에 서진은 창문을 깨고 바깥으로 향했다.

“저 새끼 죽여!”

서진이 내려오자 전 조직원의 화력이 쏟아졌다.

기본적인 총탄부터 마나가 담긴 화살까지.

서진은 천라를 펼쳐 공격을 막아내고 만천뇌우로 전방을 쓸어버렸다.

뒤이어 내려온 설하윤이 무형참으로 십수 명의 목을 날려버리고 정소율도 물폭탄으로 적의 수를 줄여갔다.

그렇게 눈에 띄게 시체가 늘어갈수록 조직원들의 포위망은 뒤로 밀려났다.

그뿐만 아니라 죽고 싶지 않은 이들이 대열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번 퍼져버린 공포는 주변까지 물들이는 법.

결국 서진이 검을 휘두르지 않아도 길이 열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략 반 정도 남았군.’

서진은 잠시 뇌기를 거두고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리 힐베르토 패밀리라 해도 이 정도면 조직이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을 터.

전부 없앤다면 깔끔하겠지만 그것까진 서진이 관여할 바가 아니었다.

더 이상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기에 서진과 그녀들은 차를 뺏어 타고 저택을 빠져나왔다.

목적지는 에콰도르 국경으로 갈 수 있는 밀림.

운전대를 잡고 있는 설하윤은 가속 페달을 밟으며 칼리에서 빠르게 벗어났다.

그리고 1시간쯤 지나서 차량은 인적이 드문 황폐한 대지를 달리고 있었다.

뒷좌석에 앉아있던 세리아는 아까 서진이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한서진 님, 아까 말씀하셨던 저주의 이름이 무엇인가요?”

“데스메이지의 사망 확정입니다.”

“네? 그런 저주는 처음 들어봐요. 과연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그건 걱정 안 해도.”

서진은 말을 하다가 입을 닫았다.

후방에서 강한 마력의 기류가 감지되었기 때문에.

뒤를 돌아보니 마개조 된 트럭이 멀리서 쫓아오고 있었다.

“꼬리가 붙었군요.”

“서진 님, 이대로 간다면 따라 잡힐 것 같습니다.”

설하윤이 운전을 잘한다고 해도 일반 차량의 출력으로 개조된 차를 따돌리긴 역부족이었다.

“제가 막아볼게요.”

정소율이 나서려는 순간, 거뭇한 회색 구름이 전방을 넓게 뒤덮었다.

서진은 직감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다.

“하윤 씨!”

서진의 외침에 그녀는 급하게 차체를 틀었다.

사아아악!

가까스로 피한 구름에선 강산성 물질이 쏟아져 내려왔다.

독이 닿은 지면이 단번에 패일 정도의 위력.

불가피하게 차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멈출 수밖에 없었다.

탁.

서진이 차에서 내리자 쫓아오던 차의 조수석 문이 열렸다.

그 정체는 역시나 마약왕이라 불리는 카밀로 힐베르토.

서진은 몇 걸음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마약왕이 이렇게 뒤꽁무니를 쫓아서 잘도 찾아왔군.”

“중서부 전체가 내 영역인데 쉽게 도망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그리고 내 집을 쑥대밭을 만들어놓고 쥐새끼처럼 도망가는 놈들 잡으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

“뭐, 집 보안이 형편없어서 덕분에 쉽긴 했어. 감사를 표하지.”

철컥.

힐베르토는 건틀릿을 착용하며 섬뜩한 안광으로 서진을 노려봤다.

“애송이...함부로 입을 놀린 대가는 각오해야 될 거다.”

“집도 제대로 못 지킨 개가 지껄이는 말이라 제대로 들리지 않는군.”

“이 새끼가!!”

피가 거꾸로 솟구칠만한 도발에도 힐베르토는 노호를 토해내며 돌진했다.

서진에게 날아드는 태산마저 짓누를 듯한 권격.

[근력이 18 상승합니다]

[마력이 20 상승합니다]

필살의 의지가 진할수록 서진은 오히려 좋았다.

‘8레벨이라 스텟 상승 폭도 크군.’

서진은 가볍게 땅을 박차면서 주먹을 피했다.

콰앙!

단순한 공격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주먹과 충돌한 지면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애송아 또 도망치는 거냐.”

힐베르토는 천천히 허리를 피며 아까보다 더 짙은 독을 발산했다.

“네가 느리다는 생각은 안 하는 건가. 힐베르토.”

“흐, 크하하하!!”

힐베르토는 전혀 생각지 못한 호칭에 파안대소했다.

“어린놈이 내 이름을 그리 부르는 건 정말 오랜만이야. 배짱은 마음에 들지만 그 건방이 언제까지 갈지 궁금하군.”

카앙!

서진의 뒤편에선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마약왕을 태우고 차를 몰았던 조직원과 설하윤이 검을 맞대고 있는 것이었다.

세리아를 다시 데려갈 심산이겠지만 설하윤이 버티고 있는 이상 불가능하다.

서진은 그녀를 믿으며 눈앞의 힐베르토에게 집중했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현재는 마약왕과 부하 한 명뿐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뒤처졌던 조직원들이 대거 몰려올 게 분명하다.

서진이 한 발짝 내딛자 힐베르토는 음침하게 웃었다.

“너도 짐작하고 있겠지. 조금 지나면 부하들이 전부 온다는 것을.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그전에 곤죽을 만들어줄 테니까.”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의 전신에서 녹색의 독이 새어 나와 공간을 채워나갔다.

독무(毒霧).

공간 지배력이 우수해 마약왕이 애용하는 스킬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네놈이 뭘 어찌할 수 있을까.”

힐베르토가 자신감에 찬 조소를 흘려보냈다.

하지만 서진의 곁에 있는 수 속성 마법사가 이를 가만히 지켜보지 않았다.

“볼텍스 포그.”

그녀의 주변에 나타난 수만 개의 물방울이 회전하며 공기 중에 퍼져있는 독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8레벨 헌터의 스킬이라 전부 흡수하진 못해도 상당 부분 상쇄시켜주었다.

그리고 바닥에 깔린 농도가 짙은 독무를 없애기 위해 다른 마법이 추가로 발현되었다.

“아쿠아 그라운드.”

정소율의 발아래에서 생성된 물이 얕게 퍼져나간다.

발등을 겨우 덮을 정도라 살상력은 전무했지만 독을 효과적으로 밀어내는 것에 성공했다.

찰팍.

힐베르토는 물 때문에 질척해진 땅바닥을 내려보다 다시 고개를 들었다.

“마법사가 귀찮게 하는군.”

파앙!

흙탕물을 박차며 정소율을 향해 나아갔지만 서진이 막아섰다.

“네가 나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힐베르토는 독을 뿜어내며 거침없이 주먹을 내질렀다.

카앙!

서진은 그것을 검면으로 힘을 흘리며 받아냈다.

“제법이군. 허나 독은 어쩔 텐가.”

힐베르토의 말대로 서진의 피부를 통해 독이 스며들고 있는 상황.

아직 베놈 스콜피온의 내단을 흡수하지 못한 터라 대책이 없었다.

벌써부터 마비 증상과 함께 마나가 꼬이기 시작한다.

서진은 용체화를 발동해 마나 운용력을 높여서 급한 불을 끄고 힐베르토의 전신을 빠르게 훑었다.

‘아직은 부족해.’

서진이 노리는 건 수분을 이용해 전격의 위력을 극대화하는 것.

현재 조금 젖어있긴 하나 원하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

서진은 힘겹게 주먹을 막는 척하며 정소율이 마법을 캐스팅할 시간을 벌어주었다.

그때 땅을 적시던 얕은 물이 떨리더니 여러 개의 날카로운 창이 치솟았다.

힐베르토는 서진을 밀치며 뒤로 피했고 대상을 잃은 창들은 서로 부딪히며 크게 물을 튀겼다.

그리고 이번엔 그의 머리 위에서 폭포처럼 물이 쏟아졌다.

더블 캐스팅을 이용해 미묘한 간격을 두고 발동했지만 힐베르토는 전부 피해냈다.

“마법이 너무 느리군.”

힐베르토가 그녀를 비웃었지만 애초에 공격의 목적은 따로 있었다.

땅바닥에서 찰랑거리는 물과 마법을 피하는 과정에서 머리까지 젖은 힐베르토의 상태.

조건은 완성되었다.

독 때문에 몸과 마나 경로가 굳어가고 있어도 상관없다.

여태까지 이룩해온 운용력을 통해 강제로 몸을 일깨우며 뇌기를 만들어낸다.

거기다 서진은 현재 용체화 상태.

마나 간섭 묘리를 담은 번개가 검을 타고 올라온다.

아마 이 공격 하나 때문에 몸을 혹사시키느라 마광병 진행도가 높아지겠지만 감내하는 수밖에.

불평하거나 한탄할 필요도 생각도 없다.

그저 앞으로 보며 계속 나아갈 뿐이니까.

그것을 위해선 먼저 마약왕을 없애버려야겠지.

서진은 강렬하게 빛나는 뇌검을 물이 가득한 바닥에 꽂았다.

파지지직!

자줏빛 전류가 물을 타고 전도되어 순식간에 힐베르토의 신발에 닿았다.

그리고 그의 정수리까지 전격이 도달하는 데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크으윽!”

힐베르토는 전신을 바늘로 강하게 찌르는듯한 감각에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일반적인 헌터라면 이미 죽었겠지만 힐베르토는 8레벨 헌터.

그를 멈출 수 있는 시간은 고작 찰나에 불과할 터.

하지만 서진에겐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흑룡검술 제5식 전광검.

힐베르토가 마비된 순간에 날카로운 뇌격이 목을 찔러 들어간다.

파직!

평소 그의 신체 능력이라면 반응속도만으로 능히 피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주 잠깐이지만 마나와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

힐베르토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푸욱.

서진의 검이 깊숙이 그의 목을 꿰뚫으며 피가 비산했다.

아마 힐베르토는 이곳이 자신의 사지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을 터.

“굳이 안 따라왔으면 살았을 텐데.”

서진은 그의 목을 절단하여 아직 남아있을지 모르는 숨통을 완전히 끊어버렸다.

그렇게 보스가 죽으면서 설하윤이 상대하고 있던 부하도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

서진은 드디어 콜롬비아를 떠나 흑룡검가로 돌아갔다.

복귀한 서진은 곧바로 저주에 걸렸던 흑룡부대장과 대원을 호출했다.

사실 한국에 가는 동안 설하윤 먼저 치유해주려 했지만 세리아가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말하길 성역 스킬은 단계별로 효과가 강해지며 제일 높은 효과를 발동하면 한 달 동안은 못 쓴다고 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스킬이 되면서 이계에서 봤던 성역보다 제약이 강해진 듯했다.

“그럼 할게요?”

세리아는 성역을 발동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확인했다.

“네. 하시죠.”

서진은 고개를 끄덕였고 세리아는 작게 입을 열었다.

그녀가 성역이라고 말하는 순간, 찬란한 주황빛 영역이 저주에 걸린 세명에게 씌워졌다.

반구형의 막은 잠시 유지되다 잘게 흩어지며 빛을 감추었다.

“어! 정말 사라졌어요!”

상태창을 확인한 흑룡대원이 소리쳤고 흑룡부대장과 설하윤도 말끔하게 저주가 사라졌음을 확인했다.

흑룡부대장 허대일은 무언가를 생각하듯 눈을 감았다 떴다.

그리고 서진에게 다가가 허리를 깊게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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