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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가문의 천재는 사실 귀환자-65화 (65/141)

65화

마기가 느껴지는 곳을 보니 검은 로브를 입은 남자가 지나가고 있었다.

서진은 오래 보지 않고 시선을 돌렸다.

온갖 인간이 몰려드는 블랙 마켓이니 흑마법사가 오는 것이 이상한 게 아니니까.

“왜 그래?”

앞서 걷던 백화연이 서진을 돌아봤다.

“아니야. 가자.”

서진은 고개를 저으며 걸음을 뗐다.

계단을 올라 1층에 들어서자 꽤 시끌벅적했다.

경매로 올리기엔 가치가 낮은 아이템을 판매하는 곳이라 이해는 되었다.

“상당히 넓군.”

밖에서 보던 것보다 내부가 광활하게 느껴졌다.

백화연은 서진의 소매를 잡으며 말했다.

“우리가 갈 곳은 2층이야. 아니면 둘러보고 갈래?”

“아니.”

“1층에서도 경매를 관람할 순 있지만 2층이 좀 더 쾌적하거든.”

“그럼 초대장도 두 종류가 있겠네. 네가 가진 건 더 좋은 거고.”

“그렇지.”

백화연은 엘리베이터 앞에 있는 직원에게 초대장을 보여주며 통과했다.

2층으로 올라가니 층이 바뀌었다는 걸 알려주듯 바닥부터 재질이 달랐다.

마력석을 이용해서 만든 금빛 대리석이 2층 전체를 은은하게 빛내주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템이 미술품처럼 전시되어 있어 조용하게 감상하기 좋았다.

마나를 감출 수 있는 벨트라던가, 검사들의 속성 마나를 증폭시키는 반지, 마력석을 깎아서 만든 예술품까지.

“이것들도 파는 건가?”

“응. 그런데 1층과 차이점이 있어.”

1층의 물건은 가격이 정해져 있지만 2층의 물건은 가격표가 없었다.

“저기 프런트에 금액을 써서 제출하면 제일 높은 금액을 쓴 사람이 살 수 있어. 다만 비공개라서 오픈 경매와는 다르지.”

“그렇군.”

“대체로 경매보단 싸게 사는 편이라 들었어. 근데 이제 경매 슬슬 시작하겠다.”

서진과 백화연은 물건을 둘러보다 경매가 열리는 메인 홀로 입장했다.

2층이라 그런지 내부엔 자리가 여유로웠다.

서진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백화연과 나란히 착석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경매의 사회자가 입장했다.

“안녕하십니까. 이번 경매의 진행을 맡은 레딘입니다.”

잠시 후 의례적인 인사말이 끝나고 첫 번째 물건인 검 한 자루가 등장했다.

서진은 딱히 관심이 없었기에 백화연에게 물어보았다.

“목판이란 건 언제쯤 나오지?”

“대단한 가치 있는 물건은 아니라서 아마 초반에 나올 거야.”

“그런데 만약 흑마법사가 두 명 이상이라 특정이 어렵다면 어쩔 셈이지.”

입장할 때 서진이 잠깐 살펴본 결과로는 1층, 2층 합쳐서 여러 곳에서 마기가 느껴졌었다.

백화연도 그 점을 예상하였기에 바로 대답이 나왔다.

“그럼 내가 살 거야. 그놈이 목판에 대한 집착이 심하다면 따라붙겠지.”

“안 따라온다면 돈을 날리는 셈이군.”

“어쩔 수 없잖아. 현재 정보로는 이게 최선이니까.”

“그렇긴 하지.”

서진과 백화연이 기다리던 목판은 5번째로 등장했다.

사회자는 목판을 가리키며 힘찬 목소리로 경매 물품을 소개했다.

“자, 이번엔 트윈 헤드 오우거 던전에서 나온 물건! A급 던전에서 발견된 아티팩트입니다. 발견자 이름을 따서 실러스의 목판이라 불리는 물건이죠.”

폭 30센티 수준의 굵은 나무 방패 같은 목판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아직 감정에 성공한 분들이 없어서 용도를 파악할 수 없는 물건입니다만, A급 던전에서 나온 아티팩트 자체가 희소한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여기 계신 분들은 잘 알고 계실 겁니다.”

그 말에 일부는 고개를 끄덕인다.

“만약 감정에 성공한다면 지금 점쳐지는 가치보다 몇십 배 올라갈 거라 장담합니다. 사실 긁지 않은 1등 복권이라 봐도 무방하지요.”

그때 서진의 근처 앉은 이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저거 살 거야?”

“아니. 전 주인이었던 레드혼 길드장도 알아내지 못했는데 사서 뭐 하게. 뭐 엄청 단단하니 경우에 따라 쓸 곳은 있겠네.”

“미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든다는 레드혼 길드장도 못 했다고? 근데 저게 나무인데 그렇게 단단해?”

“길드장도 부숴보려고 했는데 실패했단 얘기는 공공연한 비밀이야. 도저히 못 써먹을 것 같으니 그냥 경매장에 내놓은 거지.”

서진은 경매장 중앙에 놓여있는 목판을 지그시 쳐다봤다.

보랏빛을 띠는 나무인데 보는 각도에 따라 오묘하게 색이 바뀐다.

서진은 저런 나무를 본 적이 있었다.

‘지구에서 저걸 볼 줄은 몰랐는데.’

마하수(魔河樹)라는 나무에서 얻은 목판이 분명했다.

마나를 머금은 강 인근에서 자라는 나무인데 평균적인 수명이 까마득하게 높다.

몇백 년 동안 자란 마하수는 물리, 마나로는 거의 손상되지 않는다.

그러니 그 길드장이 부술 수가 없지.

저 목판을 부수려면 마나 외의 기운이 필요하다.

마기라던가 아니면 서진의 투기로도 가능했다.

물론 마기라 해도 최소 8레벨이 되어야 하며 투기는 경험상 6레벨로도 충분했다.

그리고 저 목판 안에 뭐가 있을지도 짐작이 간다.

“서진.”

한창 생각을 이어가는 서진에게 백화연이 속삭였다.

“왜.”

“너 뭔가 알고 있어? 표정이 묘한데.”

“글쎄.”

“어어? 뭔데 나도 알려줘.”

“나중에. 여긴 듣는 사람이 많아.”

그 사이 목판을 한껏 포장한 사회자는 시작 경매가를 외쳤다.

“그럼 삼백만 달러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삼백십.”

“삼백오십.”

A급 던전의 아티팩트이니 전문 수집가엔 나름의 가치가 있겠지.

물론 용도를 알 수 없기에 경쟁을 하는 참가자는 곧 3명으로 금세 줄어들었다.

지금부터다.

서진은 기감을 확장해서 한 명씩 살펴보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자글자글한 주름과 목소리에서 노인이란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체내의 마나량도 극히 미약해서 일반인 수준이라도 될 정도.

하지만 메마른 신체에서 풍기는 분위기에서 지긋한 여유가 느껴진다.

아마 헌터 업계에서 기업체를 이끌며 막대한 부를 쌓은 사람이 아닐까 예상이 된다.

어쨌거나 현재 찾는 녀석과 공통점은 없다.

서진은 시선을 다른 쪽으로 향했다.

패도적인 기세를 내뿜는 남성.

한눈에 봐도 육체를 단련하는 무도가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저 사람도 패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사람에게 고개를 돌린 서진의 눈매가 좁혀졌다.

‘마기.’

분명한 흑마법사였다.

거기다 아까 서진의 곁을 지나갔던 로브를 입은 그 남성이었다.

서진은 백화연의 귓가에 속삭였다.

“찾았어.”

“돈 굳었네.”

어느덧 응찰액은 육백만 달러를 넘어서고 있었다.

서진은 가볍게 웃으며 백화연을 떠보았다.

“굳은 거 맞아? 살 수 없는 건 아니고?”

서진이 알기론 철혈백가는 예산 운영을 굉장히 빠듯하게 하는 편이었다.

그렇기에 아무리 철혈가주라해도 70억가량의 현금을 이런 일에 지출할 순 없을 터.

서진의 예상이 맞았는지 백화연은 입술을 살짝 내밀며 불평했다.

“가문에 돈 들어갈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거든?”

그때 앞쪽에서 혀를 차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쯧!”

흑마법사가 응찰을 포기한 모습이 보였다.

정확히는 돈이 부족해서 노신사에게 재력 싸움에서 진 것이지만.

결국 흑마법사가 노리던 목판은 다른 사람에게 낙찰되었다.

**

‘젠장. 늙은이가 채가다니.’

김차열은 이를 갈며 앞을 노려보고 있었다.

돈은 충분함을 넘어서 차고 넘치게 챙겼다.

문제는 예상외의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난 것.

그딴 산 송장에게 뺏길 줄이야.

어차피 그런 노인네가 가져가 봤자 쓸 일도 없을 텐데 뭐하러 사는 건지.

하여간 수집가라는 놈들은.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지.’

어차피 돈밖에 없는 늙은이다.

호위 헌터는 있어 보이지만 충분히 상대할만해 보였다.

가치 있는 물건을 자격이 되지 않는 자가 들고 있어선 안 되는 법.

저 목판은 마기가 아니면 건드릴 수 없는, 그야말로 흑마법사만을 위한 아티팩트.

‘저건 가주님이 가져야 하는 물건이야.’

김차열은 목판을 낙찰받은 늙은이를 습격하기로 결심했다.

그게 아니면 방법이 없었으니까.

어차피 블랙 마켓 측에선 경매가 끝난 이후의 일에 대해선 신경 쓰지 않는다.

물론 습격에 대해 의심 가는 참석자에 대한 제명 조치는 있겠지만 상관없다.

가주님께 저 목판을 가져다 드리는 것이 훨씬 중요하기에.

김차열은 리무진을 타고 나간 노신사를 은밀히 쫓기 시작했다.

‘이쯤이면 좋겠군.’

차로 뒤를 쫓으며 적당한 습격 타이밍을 재던 김차열은 마기를 끌어 올렸다.

차의 헤드라이트 앞에서 만들어진 플레임 불릿.

총 4개의 화염탄이 리무진의 타이어를 향해 쏘아졌다.

파앙!

한꺼번에 타이어가 터지며 차가 길게 미끄러졌다.

좌우로 비틀거리던 차는 구석에 충돌하고 나서야 멈추었다.

김차열도 빠르게 차를 세우고 나서 집중해서 더 파괴력이 높은 마법을 캐스팅했다.

“블레이즈 캐논.”

커다란 검붉은 화염구가 리무진을 향해 떨어졌다.

그 순간 차 안에서 호위헌터가 경호 대상인 노신사를 안고 튀어나왔다.

“그래 그거야.”

김차열은 노인이 들고 있는 가방을 보며 눈을 빛냈다.

“얌전히 내놓으면 이대로 물러가 줄게.”

“자네 같은 양아치에겐 줄 물건은 없네.”

단호한 거절에 김차열은 입가를 비틀었다.

“늙은이가 살 만큼 살아서 이제 죽고 싶은가 보군.”

김차열은 다가오는 호위 헌터 두 명을 보며 실소했다.

“너희가 날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해? 그래비티 에리어.”

검은빛이 도는 돔 형태의 중력장이 펼쳐졌다.

“크윽.”

전신을 짓누르는 압력에 호위 헌터들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거기에 김차열은 중력 사슬로 헌터를 더욱 구속했다.

‘후우.’

이 중력장은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아서 추가 캐스팅은 김차열에게 부담이었다.

그러나 5레벨의 근접 헌터 둘을 상대하려면 이게 최선이다.

전위가 없는 상황에서 공격 마법만 난사하다간 목이 잘리기 십상이니까.

김차열은 단검을 뽑으며 호위 헌터에게 다가갔다.

추가 캐스팅은 불가능하니 검으로 숨통을 끊어야 했다.

“아무런 힘도 못 쓰고 마법사에게 검으로 죽는 기분이 어때?”

“크윽...”

김차열은 그들을 비웃으며 심장을 향해 단검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 순간.

콰릉!

하늘에서 내려온 번개 한줄기가 중력장을 찢어발기며 김차열에게 내리꽂혔다.

“크아아악!”

난데없는 뇌격에 직격당한 김차열은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서진은 뇌기를 흩뿌리며 한숨을 돌렸다.

“다행히 늦진 않았네.”

흑마법사가 혹여 눈치챌까 서진이 거리를 벌려서 추적하느라 이제 도착한 것이었다.

마비당한 김차열을 본 백화연이 중얼거렸다.

“너, 진짜 조절 잘하네. 비결이 뭐야?”

“그냥 하다 보면 돼.”

“그거 진짜 재수 없는 대답인 거 알아?”

백화연의 질투 섞인 농담에 서진은 피식 웃으며 흘려 넘겼다.

“틀린 말은 아닌데.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저놈이니까.”

서진은 마비가 풀려가는 김차열에게 한 번 더 번개를 꽂았다.

마기를 쓰는 흑마법사는 용체화의 마나 간섭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해야만 했다.

물론 아무리 조절을 잘한다 한들 여러 번 하면 죽을 수밖에 없지만.

“씨이발, 너...뭐야.”

김차열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서진을 노려봤다.

“너한테 볼일 있는 사람. 그러고 보니 아직 가면을 안 벗었네.”

서진이 가면을 벗자 김차열의 동공이 확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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