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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가문의 천재는 사실 귀환자-66화 (66/141)

66화

“한서진...큭.”

김차열은 피식 웃다가 괴성을 지르며 마기를 일으켰다.

몸은 움직일 수 없어도 제자리에서 흑마법 정도야 얼마든지 쓸 수 있었기에.

검붉은 화염이 김차열을 둘러싸며 치솟아 오른다.

“고작 그걸로!”

백화연은 쌍심지를 켜며 철벽을 만들어 전신에 덧씌웠다.

이전보다 더욱 진화된 형태.

화염을 뚫고 김차열에게 도달한 백화연은 방패로 그를 강하게 후려쳤다.

“커헉!”

김차열은 화염 속에서 멀리 튕겨 나갔다.

“끄으.”

기절시키기 위한 공격이었지만 김차열은 의식을 잃지 않고 일어섰다.

백화연이 작게 혀를 찰 때, 서진은 점멸로 김차열의 등 뒤에 도달했다.

한 번 더 무력화시키기 위해 서진의 검이 김차열의 다리에 닿기 직전, 화염이 다시 일어났다.

그도 6레벨의 흑마법사인 만큼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었다.

뒤에 기척이 느껴진 순간에 바로 방어할 수 있는 마법을 캐스팅한 것이었다.

그러나 압축된 뇌검은 화염을 갈라버리고 김차열의 다리를 베어버렸다.

“으아악!”

다리 힘을 잃어버린 김차열은 앞으로 털썩 엎어졌다.

어차피 6레벨 정도 되면 다리 좀 잘린다고 금방 죽지 않는다.

계속 기절시키려다 여차하다 놓치는 것보단 이런 방법이 안심되었다.

그리고 혹시나 예상치 못한 흑마법으로 도주할지 모르니 김차열의 오른팔에 검을 꽂아 넣었다.

“아아악! 개새끼야!”

김차열은 눈에 독기를 품고 서진을 올려다봤다.

기습만 안 당했으면 이렇게 허무하게 제압당하진 않았을 텐데.

그래비티 에리어를 파괴당하면서 허용한 일격이 너무나 뼈아픈 결과를 불러왔다.

그러나 김차열은 마법사답게 빠르게 상황 판단을 내렸다.

이미 전세는 한서진에게 넘어갔고, 이것을 뒤집을 여력은 없다.

다리가 잘리고 팔이 관통당한 상태에서 같은 6레벨인 한서진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심지어 철혈가주까지 있는 상황.

김차열은 이곳이 자신의 사지임을 직감했다.

다만 바로 죽이지 않고 있다는 것은 무언가 캐내고 싶은 것이 있다는 뜻.

그런데 만약 자신이 한서진에게 정보를 누설하고 그걸 가주가 알게 된 순간, 가문에 있는 가족에게 막대한 불이익이 가게 될 터.

그리고 어차피 정보를 말해도 결국 한서진이 살려주진 않을 것이다.

비슷한 경험이 있기에 알 수 있었다.

정보를 다 얻고 나면 필요 없는 포로를 살려둔 적이 없었으니까.

‘어차피 이미 살긴 글렀어. 그렇다면.’

정보를 알려주며 죽을 순 없다.

김차열은 눈을 크게 뜨며 최후의 마법을 발동했다.

화르륵!

한순간에 전신에서 피어오른 불꽃.

자결을 위해 스스로 몸을 불태우기 시작한 것이다.

김차열은 몸이 타들어 가는 고통 속에서 정신을 놓아버린 듯 광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하! 제압했다고 생각했겠지만 소용없게 되었군.”

“하아.”

서진은 짧은 한숨을 쉬며 가까이 다가갔다.

애초에 흑마법사를 편하게 구속할 수 있을 거라 아주 기대하진 않았다.

그래도 한두 질문 정도는 할 여유가 있을 줄 알았건만.

마기로 일으킨 불이라서 소지품도 전부 소각할 심산인 듯하다.

“하여간 미친놈들이야.”

김차열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서진을 비웃고 있었다.

생명력과 남아있는 마기를 전부 바쳐서 만든 화염이기에 절대 끌 수 없을 것이다.

시체가 다 타기 직전까지 꺼지지 않는 불이었다.

서진은 무심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며 투기를 일으켰다.

붉은 투기로 감싼 검이 불길에 닿자 종이 잘리듯이 화염의 일부가 흩날리며 사라졌다.

김차열은 고통을 잊을 정도로 경악했다.

“뭣...!”

화염을 날려버리자 왼쪽 가슴에 새겨진 작은 문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크아악!”

김차열은 죽기 직전 한 번 더 화염을 일으켜 스스로 흉부까지 태우며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쌍익의 그림은 확실하게 서진의 뇌리에 각인되었으며 익히 알고 있던 문양이었다.

‘환영신가.’

대한민국의 3대 가문 중의 하나.

한때 흑룡검가, 철혈검가를 넘어 한국제일 가문이란 말에 가장 근접했던 가문이기도 했다.

9년 전, 반강제로 봉문을 당하고 쥐 죽은 듯 살고 있을 줄 알았건만.

여기서 그 가문의 문양을 보게 될 줄이야.

환영신가에서 직계의 인정을 받고 충성을 바친 헌터만이 저 문양을 새긴다.

그 말의 현재 마약의 유통이 환영신가 직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의미.

서진은 이번 일의 배후를 짐작해냈다.

결국 어떻게든 정보를 숨기려 했던 흑마법사의 애처로운 노력은 헛수고가 된 셈.

“저기.”

그때 뒤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서진을 불렀다.

서진이 몸을 돌리자 노신사가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구해줘서 고맙네. 듣던 대로 흑룡검가 후계자의 무위가 참으로 대단하더군.”

“아닙니다. 보다시피 저놈에게 볼 일이 있었을 뿐이라서.”

“아니, 그렇다 한들 나를 구명한 사실이 없어지는 게 아니네.”

노신사는 단호하게 말하며 손에 쥔 가방을 내밀었다.

“차라리 잘됐어. 이건 자네가 가져가 주겠나?”

조금 전 경매에서 낙찰받은 목판이 들어있는 가방이었다.

“자네가 저 흑마법사와 무슨 연관이 있는진 몰라도 필시 이 목판과도 관계가 있겠지.”

사실 목판은 아무 관계도 없었지만 서진은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나 같은 노인네의 수집품으로 있는 것보단 자네가 가져가는 것이 좋겠어.”

“괜찮겠습니까. 낙찰액이 상당하지 않습니까.”

“그깟 돈이 목숨보다 중요하겠는가.”

그에 서진은 더 사양하지 않고 가방을 받았다.

“그럼 다음에 좋은 인연으로 만나길 기대하겠네.”

노신사는 백화연과도 짧게 대화를 나누고 나서 호위 헌터와 함께 현장을 벗어났다.

그리고 백화연은 서진의 곁에 다가와 뼈만 남고 다 타버린 흑마법사의 시체를 쳐다봤다.

“아까 뭐 본 거야?”

백화연은 아까 뒤편에 있었기에 서진이 무엇을 봤는지 궁금해했다.

“심장 부위에 쌍익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어.”

“뭐?”

백화연은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홱 돌려서 서진을 바라봤다.

그러나 서진이 이런 걸로 거짓말을 할 성격은 절대 아니었다.

“환영신가의 헌터였다니.”

백화연은 조심스레 서진의 눈치를 살폈다.

어릴 적 서진에게 아픈 기억을 안겨준 사람 중 한 명이 환영신가의 후계자였으니까.

한참 어렸던 시절,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3대 가문의 후계자는 서로 종종 만났던 적이 있었다.

그때 약했던 서진은 환영신가의 장자에게도 무시를 받곤 했다.

그러다 한번 크게 시비가 붙어 대련까지 갔었는데 서진이 무참하게 패배했었다.

그 뒤로도 서진은 계속 약했기에 복수는 할 수 없었고 다른 이들도 평생 그럴 일은 없을 거라 판단했다.

백화연은 서진이 먼저 말을 할 때까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기다렸다.

“화연아.”

“응?”

“흑마법사 추적해서 원래는 어떻게 하려 했어?”

“붙잡아서 증거를 얻고 다른 가문과 연계해서 나머지 놈들 잡아들이려고 했지.”

“그런데 이미 증거는 불타 사라져 버렸네. 본 사람은 나뿐이고. 이런 경우엔 어떻게 할 거지?”

“그건...”

잠시 고민하려는 백화연에게 서진이 말했다.

“어렵게 생각 안 해도 돼. 그냥 내가 들어갈 테니까.”

“뭐라고?”

“내가 환영신가에 직접 간다고.”

“아니, 다른 문제는 제쳐두고 거기 들어간 순간 너라는 걸 알아볼 텐데?”

“괜찮아, 그건 방법이 있어.”

서진이 받은 목판에 답이 있었다.

정확히는 두꺼운 목판 안에 들어있는 물건이 아티팩트였다.

**

서진은 흑마법사 시체 수습은 백화연에게 맡기고 가문으로 돌아갔다.

흑룡가는 이미 가문의 헌터가 어느 경로로 마약을 접하게 되었는지 조사에 착수해 있었다.

감찰각주에게 물어보니 철혈백가와 마관청과 같이 조사하는 모양이다.

백화연은 서진의 부탁을 받고 아직 문양에 대한 정보를 얘기하지 않았기에 둘만 알고 있는 상황.

서진은 흑룡대장을 찾아갔다.

환영신가의 헌터들을 상대하며 스텟을 올리고 복수까지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순 없으니.

흑룡대장은 대뜸 찾아온 서진을 의아하게 바라봤다.

“무슨 일이십니까?”

“지금 가문에서 마약 퍼트린 놈들 잡으려고 하는 건 알고 있겠죠.”

“예.”

“그와 관련해서 어딘지 짐작 가는 곳이 있습니다.”

“정말입니까? 거기가 어디입니까?”

서진은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흑룡대장에게 작은 지도를 보여주었다.

“아직 확실하지 않아서 무작정 흑룡대를 이끌고 쳐들어갈 순 없습니다. 다만 제가 정해놓은 이 위치에 대기하고 있으세요.”

“그러면 도련님께 도움이 되는 겁니까?”

“네.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만약 환영신가가 맞다면 증거를 수집하고 가문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무력 충돌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아무리 서진이라 해도 환영신가 전체를 상대할 순 없는 노릇.

흑룡대는 최소한의 보험이었다.

서진은 흑룡대장과 대화를 마치고 잠시 집에 돌아와 가방을 내려놓았다.

가방 안에는 두꺼운 목판이 오묘한 빛을 뽐내고 있었다.

수백 년간 자란 마하수는 상황에 따라 모습을 바꿀 수 있었다.

그런 마하수의 특성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아티팩트가 이 목판 안에 있는 것이다.

서진은 투기를 일으켜 목판을 반으로 쪼갰다.

그러자 단단했던 목판이 바스러지며 나무 가면이 모습을 드러냈다.

[천변(千變)]

-등급 : 영웅

-내구도 : 7000/7000

-효과 : 착용자의 생각에 따라 모습을 바꿀 수 있다.

단순한 얼굴뿐만 아니라 키, 골격, 헌터가 사용하는 속성의 색마저 변환 가능하다.

키나 골격은 큰 폭으로 바꿀 순 없지만 사람의 인상은 작은 변화로도 크게 달라 보이는 법.

다른 사람으로 모습을 바꾸기엔 더할 나위 없는 아티팩트였다.

그 사회자의 말대로 경매에 다시 낸다면 수백억은 가뿐히 돌파하겠지.

서진은 가면을 품에 넣고 강원도로 향했다.

**

환영신가는 한국에서 가장 넓은 땅을 소유한 가문이다.

한때 강원도 일대에 넓게 퍼져있었지만 봉문을 당하면서 다소 줄어든 상황.

본가는 춘천시 인근에 있으며 헌터들이 전문적으로 훈련하는 곳은 철원, 다른 생산 건물은 홍천에 있는 걸로 알려져 있다.

‘이 중에서 마약을 생산하고 유통할 만한 곳은 어디일까.’

춘천에 도착한 서진이 잠시 고민하고 있을 때 뒤에서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거기 너!”

고개를 돌리니 환영신가의 무복을 입은 남자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넌 뭔데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지. 여긴 환영신가의 영역이다. 너 같은 소속도 없는 피라미가 얼씬거릴 수 있는 곳이 아냐.”

천변을 쓰고 있는 상태였기에 환영신가의 헌터는 상대가 한서진인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냥 검을 찬 하급헌터로 보이고 있을 뿐.

그와 별개로 서진은 속으로 헛웃음이 나왔다.

봉문 당한 가문의 헌터가 지역에 내려와서 이런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으니까.

‘아, 그러고 보니.’

올해로 봉문 9년째였던가.

봉문 기간이 10년이니 슬그머니 다시 영향력을 되찾으려는 모양인가 보다.

최근 마약의 유통이 늘어난 이유도 봉문 기간이 거의 끝나가기에 그랬던 것.

서진이 생각하느라 말이 없자 남자는 피식 웃었다.

“왜 무섭나? 헌터라는 녀석이 이렇게 쉽게 쫄아서야.”

환영신가의 헌터는 입가를 비틀며 서진에게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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