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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가문의 천재는 사실 귀환자-68화 (68/141)

68화

“너...”

본래 서진의 얼굴이 드러나자 신범수의 표정이 서서히 변했다.

믿기지 않는 듯 미간을 찡그리다가 안색을 바꾸더니 크게 웃었다.

“하하하! 이거 누구야 나한테 처맞았던 한서진이잖아. 정말 반갑군. 여긴 웬일로 왔지? 설마 복수하러 온 거냐?”

신범수는 조금 전 품었던 경계심을 거두고 퍽 안심하는 기색이었다.

서진은 그런 모습을 보며 실소했다.

노골적인 단면을 엿본 것 같았기에.

자신보다 밑이라고 취급했던 사람이 나타나니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우습게 여기는 것이다.

뭐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었다.

“네가 여긴 무슨 일로 왔냐, 대답 좀 해봐.”

“왜 왔을까. 소가주씩이나 돼서 그렇게 눈치가 느려서 되겠어?”

“감히 소가주님께!”

서진의 말에 호위 헌터가 대신 분노하며 검을 뽑았다.

신범수는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피식 웃었다.

“마약 공장에 무슨 일로 왔든지 일단 맞으면 알아서 술술 뱉어내겠지. 여기에 온 이상 멀쩡히 살아서 나갈 기대는 하지 마라. 넌 보지 말아야 할 걸 봤어.”

그는 호위 헌터에게 턱짓하며 지시했다.

“일단 저놈 무릎 꿇려서 데려와.”

“예! 소가주님.”

서진은 세 명의 헌터가 다가오는 걸 보며 말했다.

“말은 바로 하자. 하지 말아야 할 걸 저지른 거지. 안 그래? 쓰레기 소가주.”

서진의 주위로 자색의 전류가 휘몰아쳤다.

흑룡검술 제5식 전광검.

가장 앞에 선 헌터의 심장을 한줄기 번개가 관통하고 지나간다.

정지됐던 흐름이 다시 돌아온 순간, 굵직한 뇌격이 옆에 있던 헌터를 집어삼켰다.

콰릉!

마지막 남은 호위 헌터가 달려들지만, 점멸을 통해 후방에서 내려치는 서진의 검을 피하진 못했다.

찰나에 3명을 처리한 서진은 얕게 숨을 내쉬었다.

신범수는 호위 헌터가 다 죽었음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오늘 데리고 온 녀석들은 얼마든지 대체 가능한 헌터들이었으니까.

“너 한서진 맞냐? 완전 다른 사람 같네. 근데 그 정도론 나한테 복수하려면 한참 멀었어.”

“그러는 너는 예전보다 혀가 길어졌군.”

“허, 건방도 늘었네. 이번 기회에 나한테 한번 맞아야겠다.”

환영신가의 검술은 무척이나 변칙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직선으로 뻗어가는 흑룡검술과 대척점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혹자는 환영검술을 더 높게 치기도 한다.

파괴력만 강한 중검은 피해버리면 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평가.

확실히 환영으로 현혹하는 검술은 까다롭긴 하다.

신범수가 발검하자 백염(白炎)이 피어오른다.

넓게 퍼진 백염은 서진의 시야를 가리며 신범수를 가려주었다.

‘뒤.’

[마력이 17 상승합니다]

서진은 등 뒤에서 오는 검격을 받아쳤다.

“생각보다 잘 막네. 그럼 이건 어떠냐!”

변칙적으로 휘어지는 염검(炎劍)을 서진은 연달아 막아냈다.

이런 신범수의 검술은 서진과 상성이 좋지 않은 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것에 얽매이기엔 천 년이란 세월은 너무나 막대한 경험이었다.

파직.

느슨하게 스파크를 일으키던 전격이 검신에 달라붙어 압축되기 시작했다.

키이잉!

고막을 찢을듯한 공명음까지 내며 완성된 뇌검은 여기저기 피어오른 백염을 단번에 베어냈다.

그제야 신범수는 조금 경각심이 생겨났다.

“뇌기를 그렇게까지 다루다니 확실히 달라졌군. 그럼 내 것도 보여주지.”

서진의 뇌검과는 달리 화려하게 흩날리는 백염검.

얼핏 검신이라는 형체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신범수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선으로 표현하자면 네 검이 직선, 내 검은 곡선인데 과연 네가 제대로 상대할 수 있을지 궁금하군.”

말이 끝나자마자 서로의 검이 부딪혔다.

아니 부딪힌 모습은 단순한 환상.

신범수의 염검은 어느새 서진의 등 뒤에서 어깨를 노리고 있었다.

그것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한 서진은 지척에서 섬아를 내다 꽂았다.

콰르르!

포효하는 듯한 번개는 백염과 충돌하여 상쇄되었다.

신범수는 전투가 생각대로 풀리지 않자 미간을 찌푸렸다.

“이상하군 내가 6레벨인데, 혹시 너 레벨이 뭐냐?”

“언론에서 떠들어 댄 거 들었을 텐데?”

“난 찌라시는 안 믿거든. 당연히 구라인 줄 알았는데 정말 6레벨일 줄이야. 그렇다면 이걸 볼 자격이 있겠어.”

신범수는 서진을 일부 인정하고 다른 기술을 선보였다.

환영검술 백검파(百劍波).

작열하는 화염이 전부 검이 되어 서진을 향해 격류처럼 밀려들었다.

도망쳐봤자 포위당할 뿐.

서진은 마나를 한 번에 끌어내 뇌기를 검에 축적했다.

흑룡검술 제3식 뇌격포.

콰앙!

폭발적으로 뻗어나간 번개가 백검파의 중심이 되는 곳을 관통하자 힘을 잃은 화염이 비산했다.

바람을 타고 날아간 불이 나무에 옮겨붙으며 사방이 불타기 시작했다.

그때 서진을 향해 공중에서 낙하하는 한 쌍의 염익(炎翼).

과거 대련했을 당시에 딱 한 번 겪었던 기술.

경험상 피하는 건 좋지 않으니 이 자리에서 막아낸다.

흑룡검술 제4식 만천뇌우.

평소보다 훨씬 범위가 되어 위력이 상승된 전격이 염익을 향해 쇄도했다.

“크악!”

고통 섞인 신음이 들려올 만큼 수천 개의 번개 바늘이 날개를 뚫고 박혀 들어갔다.

염익은 방향을 틀어 서진과 떨어진 땅바닥에 불시착했다.

신범수는 잔뜩 구겨진 표정을 억지로 피며 여유를 유지하려 했다.

예전에 압도적으로 이겼던 녀석에게 조바심을 내고 싶지 않은 거겠지.

서진은 그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너도 별수 없구나.”

“뭐?”

서진의 어투에서 불쾌감을 느낀 신범수는 낮은 목소리로 뱉었다.

“네까짓 게 뭔데 아는 척하는 거냐.”

“아는 척이라,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냥 그렇게 보여서 말했을 뿐인데 말이야.”

“이 새끼가 잠깐 공격을 주고받았다고 너랑 내가 같은 급인 줄 알아? 넌 평생 내 밑이야.”

“그럼 와봐. 증명해보라고.”

서진의 도발에 신범수의 등에서 다시 백염이 피어올랐다.

환영검술 봉황화신(鳳凰化身).

백염이 날개가 되어 펄럭이자 강한 아지랑이를 일으켰다.

신범수가 움직임에 따라 짙은 잔상이 남아서 어느 게 실체인지 파악하기 힘들 정도.

“네가 이걸 막을 수 있을까.”

나무 꼭대기까지 날아오른 신범수는 공중을 유영하며 서진을 향해 불꽃을 내뿜었다.

쉽게 피했지만 그것은 단순한 위장 공격.

살기가 담긴 건 공중에서 빠르게 낙하하며 쇄도하는 신범수의 염검이었다.

[근력이 15 상승합니다]

서진은 투기를 흡수하며 공격을 흘려보냈다.

그러나 비행이 가능한 저 기술의 특징은 공격의 전환이 빠르다는 것.

서진이 검으로 받아치거나 흘려도 곧장 다른 빈틈을 파고들어 공격해온다.

콰앙! 콰앙!

뇌검과 염검이 연신 부딪히며 충격파가 터져나간다.

신범수의 검에서 치솟는 화염이 갈수록 비대해지며 자줏빛 전류를 뒤덮으려 하고 있었다.

“뒤져 이 새끼야!”

그러나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진 신범수의 얼굴과 달리 서진은 차분하기 그지없었다.

비행체가 까다로운 건 맞지만 와이번을 비롯해 많은 비행형 몬스터를 상대한 서진에겐 약점이 되지 않았다.

그에 신범수는 화가 치밀어올랐다.

무엇이 진짜인지 구분하기도 힘든 환경에서 자유로운 공격 전환을 전부 막아내는 서진이 믿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멀리 떨어져서 화염만 날릴 수도 없는 것이, 이 기술은 마나를 상당히 많이 소모한다.

그런데 아직 서진에게 이렇다 할 피해를 주지 못하고 있으니.

이러다 마나가 떨어지면 역으로 당할지 모른다.

신범수는 품에서 마약 한 알을 꺼내 삼켰다.

“그 약, 저 공장에서 만든 건가.”

“그것보단 더 좋은 거지. 왜? 나만 먹으니 불공평한 것 같냐?”

“그럴 리가.”

약의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항마제를 먹고 있는 서진이 그런 말을 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예전보다 우습게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네.”

“너 미쳤냐?”

“그렇잖아? 한때는 힘을 아끼면서도 나를 압도했었는데 지금은 마약을 찾는 신세라니.”

서진의 연민 섞인 말을 들어버린 신범수의 목에 힘줄이 불거졌다.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한서진. 운 좋게 좋은 스킬 얻었다고 눈에 뵈는 게 없나 보군.”

“좋은 스킬이라니?”

“모르는 척하지 마. 그럼 몇 개월 만에 6레벨로 올라간 게 정상이냐? 다른 놈들도 다 그리 생각할 거다.”

“딱히 운 좋게 얻은 건 아니지만.”

투신공 덕분이라는 사실은 맞으니 서진은 선선하게 인정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야. 그런데 그 모습. 썩 보기 좋아 보이진 않군.”

무슨 마약을 먹은 건지 신범수의 전신이 불긋해진 상태였다.

“상관없어. 너만 죽일 수 있다면.”

마나를 다시 채운 신범수는 백염을 서진에게 쏘아 보냈다.

화르륵!

거대한 백염은 십수 마리의 불새가 되어 서진의 사방을 점하며 쇄도했다.

서진은 똑같이 받아쳐 줄 생각이었다.

흑룡검술 제1식 섬아 변랑(變狼).

굵직한 전격이 여러 갈래로 나눠지며 늑대로 변해 불새들을 물어서 찢어버렸다.

신범수에게 방금 공격은 미끼에 불과했다.

화염에 숨어 서진의 지척에 도달한 그는 염검을 내질렀다.

백염이 서진의 허리를 파고들려는 순간, 시간이 한없이 느려졌다.

기회를 노리고 있던 건 오히려 서진이었다.

화염에 둘러싸인 와중에도 신범수의 접근을 눈치챈 서진이 전광검을 발동한 것.

‘그래도 제법이군.’

기습하는 입장인데도 신범수의 전신은 화염으로 감싸여져 있었다.

마치 주변에 타오르고 있는 불길과 같이.

혹여나 반격에 실패하더라도 몸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도 보인다.

서진처럼 감이 좋거나 경험이 많지 않으면 당할 수밖에 없는 공격.

대단한 한 수였지만 상대가 좋지 않았다.

파지직!

자줏빛 전류가 날카로운 창이 되어 백염을 꿰뚫었다.

콰앙!

신범수는 즉시 몸을 틀어 서진의 검을 쳐내고 뒤로 물러났다.

백염 덕분에 치명상은 피했지만 어깨에선 피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신범수는 서진에게 당했다는 굴욕감으로 인해 눈에 핏발이 섰다.

“너 같은 놈을 상대로 이것까지 보이고 싶진 않았는데.”

그는 최후의 자존심을 꺼내 들었다.

환영의 정점은 거짓을 진실로 느끼게 하는 것.

공중에 떠오른 신범수가 다섯으로 나뉘어 서진을 향해 낙하하기 시작했다.

어느 쪽이 본체일까.

그들이 일으키는 하얀 불꽃은 서진의 시야를 현혹시켰다.

하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길은 존재하는 법.

눈앞의 현상에 정신이 팔려 목표를 놓쳐선 안 된다.

그리고 서진은 생각지 못했던 가능성을 열어젖혔다.

용체화 상태에서 신범수가 보인 기술을 접한 순간.

[새로운 스킬 ‘뇌영환보(雷影幻步)’가 추가됩니다]

파지직!!

발아래에 강렬한 스파크가 튀며 서진의 몸이 둘로 나뉘었다.

“뭣...!”

신범수는 믿기지 않는 광경에 경악했다.

현재 서진은 하나이자 둘이었다.

한계까지 압축된 뇌검이 신범수의 분신을 찢어버리자 형체를 잃어버린 화염이 흩날렸다.

동시에 휘둘러진 서진의 일검에 네 명의 분신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이제 남은 실체는 단 하나.

“이게 도대체...”

두 개의 뇌검이 신범수의 심장을 향해 찔러 들어갔다.

“커헉!”

그의 심장에서 터져 나온 피가 서진의 손을 가득 적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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