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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가문의 천재는 사실 귀환자-77화 (77/141)

77화

미첼은 그녀를 보자마자 얼굴을 구겼다.

“정소율.”

“할 일이 없으면 마법이나 연습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정소율은 냉랭한 목소리로 미첼을 쏘아붙였다.

‘의외네.’

서진은 그녀가 보인 차가운 모습이 색다르게 느껴졌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면모였기에.

“딴에 같은 스승을 뒀다고 쪼르르 달려와서 편들긴.”

미첼은 아니꼬운 듯 혀를 차며 물러났다.

“사이가 많이 안 좋은가 보군요. 스승끼리 경쟁하는 사이라서 그런 겁니까?”

서진은 미첼이 사라진 방향을 보며 질문했고 정소율은 작게 한숨 쉬며 답했다.

“그것보단 학파 간 다툼이 심해서 그래요. 특히나 청위 학파와 적위 학파는 과거부터 충돌이 잦았어요. 그게 계속 이어져 내려오는 거죠.”

“보복이 보복을 낳는, 그런 느낌이군요.”

“맞아요. 거기다 넓긴 해도 같은 건물에 있으니 부딪힐 일도 많구요.”

“그렇겠죠.”

같은 가문의 핏줄이라도 서로 경쟁하는데 하물며 생판 남인데다 학파까지 다르니 오죽할까.

정소율은 서진과 함께 9계층으로 이동하며 말했다.

“참, 되도록 8계층에는 안 가는 게 좋아요. 적위학파 영역이거든요. 미리 말했어야 하는데 죄송해요.”

마탑에선 기본적인 에티켓인데 알려줘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정소율이 서진에 대해 품고 있는 이미지가 초래한 실수였다.

늘 뭐든지 잘 알고 있는 모습만 봐왔기 때문에.

그러나 서진은 별 신경 쓰지 않았기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신선하고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그런데 아까 말했던 일은 다 끝낸 겁니까?”

“네. 혹시 마법 때문에 그러시나요?”

“맞습니다.”

“그럼 제 방으로 가요.”

**

서진이 마탑에 온 지 어느덧 한 달.

현재 부마탑주 심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레이놀즈의 말대로 칼렙과 거의 비등한 평가 점을 받고 있었다.

사실 조금 밀릴 뻔했지만 웨이브에서 얻은 플레어 오우거의 사체 연구 덕분에 동수를 이룰 수 있었다.

그리고 남은 평가 대상은 제자 양성.

“역시나 마지막은 대결로 마무리 되는구먼.”

원로원장은 오랜만에 구경거리가 생겨 기쁜 듯이 입을 열었다.

부마탑주는 마탑주와 원로원의 결정에 따라 임명되기에 심사에서만큼은 탑주와 동등한 힘을 가진 사람이었다.

“누가 대결하게 될지도 기대되는군.”

“레이놀즈로선 부디 1번이 뽑히길 바래야겠어.”

원로원의 마법사들은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착석했다.

그들이 내려다보고 있는 곳은 원형 전투장.

오늘 대결을 펼칠 장소였다.

“2번이 뽑히면 일방적이라 재미가 없을 것 같소.”

부마탑주 후보가 심사 때 등록해야 하는 제자는 두 명.

그렇지만 제자 간의 대결은 딱 한 번만 이루어진다.

1번으로 결정 나면 1제자끼리, 2번이라면 2제자간의 대결이 시작된다.

예전부터 제자였던 정소율이 1번, 서진이 2번이었다.

그래서 원로원들은 1번이 나오길 바라고 있었다.

그래야 5레벨 간의 싸움을 볼 수 있을 테니까.

칼렙의 1제자도 5레벨이었으니.

“그런데 레이놀즈가 데려온 2제자는 마법은 몰라도 6레벨 검사 아닙니까? 도리어 칼렙의 2제자가 불리할 수도 있겠는데요.”

대결을 참관하러 온 마탑의 학구장이 원로원들 사이에서 질문을 던졌다.

“잘 모르나 보군. 육체적인 힘을 못 쓰게끔 조치한다네. 조금 이따가 보면 알게 돼.”

오로지 마법만 사용해서 상대방을 꺾어야 하는 무대.

그러니 원로원에서 서진의 승산이 없다고 여기는 건 당연했다.

“레이놀즈는 무슨 생각으로 검사를 데려온 걸까요.”

“들어보니 뇌기는 잘 쓴다고 하네.”

“그것도 검을 뽑지 않으면 무용지물이잖소. 여기선 검도 쓰지 못하니.”

“몬스터 웨이브에 찾아간 김에 급하니까 데려온 것 아니겠소? 레벨은 엄청 빨리 올렸다고 하니 그걸 기대했겠지.”

원로원의 마법사들은 실망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레이놀즈답지 않군.”

“그러게 말입니다. 공용 마법조차 익히지 못했을 시간인데.”

“재능이 있다면 라이트 정도는 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그에 반해 미첼은 벌써 3레벨이라죠?”

“빠르다 빨라. 저 칼렙이 채찍질한 결과겠지만.”

“하여간 성과는 괜찮은데 성격이 너무 불같은 친구야.”

“뭐 결과가 좋으니 된 거 아니겠습니까.”

그때 번호를 정하기 위해 마탑의 직원이 나타났다.

방법은 간단했다.

레이놀즈와 칼렙이 각자 무작위로 1부터 9까지 적힌 숫자가 적힌 종이를 고른다.

그리고 두 숫자의 합이 홀수면 1번, 짝수면 2번으로 결정된다.

레이놀즈와 칼렙은 종이를 고르고 동시에 공개했다.

결과는 3과 5.

합이 짝수이기에 2제자끼리의 대결이 성사되었다.

원로원에선 작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저런.”

“칼렙 녀석, 운이 좋구만. 벌써 웃고 있네.”

“그런데 레이놀즈는 여전히 덤덤해 보이는군.”

“이 순간에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건가.”

“체념한 거 아니겠나. 이미 진 게임이니.”

“그러게 진작 제자를 받았으면 좋았을 텐데.”

“생각보다 일찍 후보에 올랐지 않은가. 본인도 여유롭게 제자 받으려고 했다가 급했을 거야.”

대결에 출전할 제자는 스승이 처음부터 가르친 마법사만 내보낼 수 있다.

급하다고 마탑에서 적당한 마법사 하나 골라서 내보내는 짓을 방지하는 규칙이었다.

“그래서 저 한서진이란 자는 정말 마탑에 오기 전까지 마법에 문외한이었나?”

“검사해보니 그렇다고 하네. 정말 딱 한 달만 배워서 저기에 서 있는 거지.”

“허 참.”

그들의 시선은 한서진에게 집중되었다.

**

“서진 님이면 무조건 이길 거예요.”

응원하는 정소율의 눈빛엔 어떠한 의심이나 불안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레이놀즈도 마찬가지였다.

“시원하게 이기고 오게.”

현재 서진의 마법 경지는 3레벨 마스터.

보름 만에 2레벨에 도달하고 나머지 보름 동안 3레벨 마법을 다 습득한 것이다.

물론 칼렙의 2제자인 미첼도 3레벨이지만 두 명이 확신하는 이유가 있었다.

서진의 마법 캐스팅 속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으니.

거기다 냉철한 상황 판단력에 따른 적절한 마법 연계도 한몫했다.

같은 레벨이라도 질적으로 다르다는 확고한 믿음을 주기에 충분한 재능과 실력이었다.

“그럼 갔다 오겠습니다.”

서진은 원형 전투장에 올라섰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직원이 다가와서 족쇄를 내밀었다.

“한서진 마법사는 대결 전에 이걸 착용하셔야 합니다.”

착용할 때만 육체 스텟을 하락시키는 아이템.

“마력과 지력엔 영향이 없는 아이템이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직원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설명창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도 입으셔야 합니다.”

마탑에서 특수 제작한 로브.

특별한 기능이나 방어력은 없는, 가볍고 나풀거리는 옷이었다.

서진과 미첼의 전투 준비가 완료되고 직원이 둘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승리 조건은 전투 불능이 되거나 입고 계신 로브가 절반 이상 훼손되면 패배로 간주합니다.”

서진은 옷자락을 살짝 들었다.

[내구도 : 300/300]

“두 분 모두 이상 없음을 확인하셨습니까?”

서진과 미첼은 고개를 끄덕였고 직원은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마탑주의 입에서 시작이라는 말이 나온 순간, 미첼은 화염을 뿜어냈다.

화르륵!

“실드도 모르는 한서진이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이죠”

“결과가 너무 뻔해서 역시 재미가 없네요.”

하지만 대부분의 예상을 깨고 화염은 서진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선명한 막이 화염을 막아내고 있었기 때문에.

“저건 실드?”

“이럴 수가.”

상상하지 못했던 광경에 원로원과 마탑주까지 눈빛에 이채를 보였다.

서진은 실드를 취소하며 바닥에서 물을 일으켰다.

바닥에서 솟아난 네 개의 물줄기는 미첼을 포위하듯 덮쳤다.

여기서 원로원은 더욱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저건 원소 마법 아니오?”

“아니, 놀랄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한 달 만에 공용 마법을 익히고 원소 마법까지?”

“조용, 일단 좀 봅시다.”

강력한 물의 압력이었지만 미첼의 둥근 실드에 막혀 쓸려 내려갔다.

한 발짝 뒤로 물러난 미첼은 화염으로 창을 만들어 쏘아 보냈다.

콰강!

조금 흔들리긴 했지만 서진의 실드는 굳건했다.

미첼은 생각보다 단단한 강도에 입술을 깨물며 다음 마법을 준비했다.

실드로 버틸 속셈인듯하니 통째로 태워버릴 생각이었다.

미첼은 서진을 노려보며 마나를 끌어올렸다.

어차피 실드 중일 때는 아무 것도 못한다.

시간이 걸리지만 위력이 강한 마법을 내보일 타이밍.

하지만 서진의 공수 전환은 미첼의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서진이 실드를 벗자마자 미첼의 머리 위에서 격류가 쏟아졌다.

“큭!”

미첼은 급하게 캐스팅을 취소하고 실드를 발동했다.

“엇?”

그리고 미첼이 작게 당황하는 소리가 실드 너머로 들려왔다.

서진의 이번 마법은 일반적인 아쿠아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쿠아는 기본적으로 맑은 상태이지만 물이 항상 투명하지만은 않다.

지금 서진이 일으킨 물도 그런 흙탕물이었다.

서진의 앞에서 넘쳐흐른 탁류는 미첼의 실드를 완전히 가리듯이 둘러쌌다.

이로써 미첼의 시야는 완전히 차단된 상황.

저레벨 실드의 치명적인 문제점은 발동 중엔 이동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5레벨쯤 되면 마법사의 실력에 따라 응용이 가능해지지만 그전까진 가만히 실드만 치고 있을 수밖에 없다.

서진은 그 점을 이용해 흙탕물로 미첼의 실드를 가렸다.

지금 미첼은 서진이 어디에 있는지 밖을 내다볼 수 없는 상태.

저기서 무사히 빠져나가려면 실드를 취소함과 동시에 불로 물의 장벽을 밀쳐내야 한다.

아니면 로브가 손상되는 걸 감수하며 뚫고 나오든지.

더블 캐스팅이 가능하다면 어렵지 않겠지만 미첼의 경우엔 해당하지 않으니.

그사이 서진은 매직미사일을 준비했다.

수속성은 기본적으로 다른 원소 마법에 비해 살상력이 약하다.

물을 압축하거나 마나가 압도적으로 많다면 쓸만하지만 저레벨에선 어림도 없는 소리.

그러니 서진은 확실한 공격 마법으로 승부를 낼 생각이었다.

스무 개의 매직미사일이 공중에 만들어진 순간.

콰앙!

실드를 감싸던 물이 화염과 함께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로브의 내구도 하락을 막기 위해 물을 밀어내는 방법을 고른 것이다.

단일 캐스팅만 가능한 미첼이기에 실드는 존재하지 않았다.

서진이 노리고 있던 빈틈이 드러난 순간.

허공에 있던 매직미사일이 미첼에게 내리꽂혔다.

콰가광!

무방비 상태의 미첼에게 그대로 직격했다.

그가 입고 있던 로브는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찢겨나갔다.

털썩.

의식을 잃은 미첼은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좌중엔 무거운 침묵이 짙게 깔렸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대결의 결말.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 그때 마탑주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대단하군요.”

그의 박수 소리를 시작으로 원로원은 경악 섞인 감탄을 내뱉었다.

“저, 저게 가능한 일입니까?”

“방금 한서진 마법사가 한 것, 더블 캐스팅 아닙니까? 내가 잘못 본 건가.”

“그리고 벌써 물을 변환해서 사용하는 점도 놀랍소.”

“레이놀즈 계층장! 정말 2제자가 한 달 전에 마법을 시작했단 말이오?”

레이놀즈는 은은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예. 마탑에 기록이 남아있으니 시간 날 때 확인해보시면 됩니다.”

쿵!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 칼렙은 바닥을 강하게 찍으며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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